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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 아홉 번째 이야기
2012년 3월 8일 (목)
동창이 밝았느냐

1.
동방이 밝았는가 종다리가 우짖는다
소치는 아이는 어찌 방에서 잠만 자나
산너머 있는 밭은 이랑이 넓디넓은데
아직도 일어나지 않으니 언제나 갈고


東方明否鸕鴣已鳴
飯牛兒胡爲眠在房
山外有田壟畝闊
今猶不起何時耕

- 남구만(南九萬 1629~1711) 〈번방곡(飜方曲)〉《약천집(藥泉集)》

2.
새벽이 밝았는가
꾀꼬리가 벌써 우짖는데
얄미운 소치는 놈들은
아직도 한밤중이로구나
윗녘 밭의 긴긴 이랑을
오늘 안에 다 못 갈겠네


東方欲曙未
鶬庚已先鳴
可憎牧竪輩
尙耽短長更
上平田畝長
恐未趁日耕

- 이형상(李衡祥 1653~1733)〈독농과(督農課)〉《병와집(甁窩集)》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희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너머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위 두 편의 한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남구만의 시조를 한역(漢譯)한 것이다. 첫 번째 작품은 남구만이 직접 자신의 시조를 한역한 것인데, 원 시조의 내용을 일단 제쳐놓고 한시(漢詩)만을 텍스트로 해서 다시 한글로 번역해 보았다. 두 번의 번역을 거치며 본래의 모습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매우 흥미롭기도 하거니와 시의 번역이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본래 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의 구조를 지니는데 남구만이 한역한 시는 글자 수의 출입은 있으나 기승전결의 4구로 구성된 한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종장의 내용이 3구와 4구로 나누어져서 맥이 빠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주요 시어인 동창[東方], 노고지리[鸕鴣], 소치는 아이[飯牛兒] 등을 그대로 옮겨와 원작의 정서와 내용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두 번째 한역은 이형상의 작품인데 한시의 형식은 시조의 형식과 전개를 반영하기 쉬운 5언 6구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시조의 주요 시어들은 남구만의 시와 비교해볼 때 노고(鸕鴣)가 창경(鶬庚)으로, 반우아(飯牛兒)가 목수배(牧竪輩)로 바뀌었으며 중장의 의문문으로 표현된 문장이 ‘얄밉다’는 보다 구체적인 감정으로 표현되었고, 종장에서의 ‘언제 갈려 하는가’라는 완곡한 표현이 ‘오늘 안에 다 못갈까 걱정된다’는 식으로 좀 더 명시적으로 표현되었다. 오늘날 번역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형상의 번역이 원작의 형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내용을 자신의 해석에 따라 명시화시켰다는 면에서 현대의 번역 방식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문집을 보다보면 이와 같이 시조나 시가를 한자로 번역한 한역 작품이 적지 않게 보인다. 『조선조 시가한역의 양상과 기법』(김문기ㆍ김명순 공저, 태학사, 2005)에 의하면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약 750여 수의 한글 시조가 한자로 번역되었는데 이렇게 지속적으로 많은 수의 시조가 한역된 것은 조선의 이중적인 문자 체계 때문이었다고 한다. 즉 훈민정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를 더 우세하고 보편적인 표기문자로 인식한 조선 지식인층은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을 오래 보전하고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는 한역이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물론 뛰어난 작품을 자신의 손으로 번역해 보고픈 번역자의 문학적인 욕구도 작용했을 것이다. 당시 번역을 담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한시를 짓는 작가이자 번역가들로 작가와 번역가의 그룹이 따로 구분되지 않았다. 남구만은 약 11수의 시조를 번방곡(飜方曲)이란 이름으로 한역하였고, 이형상도 약 70여 수의 시가를 한역하였다.

  약 300년 전에 행해진 한역 과정과는 정반대의 번역 작업이 현대의 번역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당시에는 한글로 된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오래도록 보전되길 바랐다면, 오늘날에는 한문으로 된 옛 조상의 훌륭한 작품을 한글로 번역하여 오래 보전하고 널리 전파하고자 하고 있으니, 그 목적에 있어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번역 자세는 당시 시조의 한역이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현대의 번역보다 오히려 더 자유로운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놀랍다. 조선시대 한문으로 된 글을 번역한 언해(諺解)의 번역태도는 너무도 신중하고 경직된 모습이었는데 그 반대의 번역은 어째서 이토록 생기발랄한가. 역시 번역은 권력의 문제인가?

 

글쓴이 : 김성애(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