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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史草(사초)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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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 문자학자 서개 <설문계전>서 “초고는 거칠게 쓴 글”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당시 국가기록원에 이관된 것으로 알려졌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이 국가기록원에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 후, 국가정보원의 회의록 공개 사건은 소위 ‘사초(史草) 실종’ 게이트로 번지고 있다.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의 ‘관’은 ‘館(관서 관)’자를 쓰는 역사관(歷史館)인데, 그곳에 비치돼야할 공문서인 위 대화록을 사초로 보는 것이다.

실록의 원고가 되는 ‘사초(史草)’는 고려와 조선왕조에서 썼던 우리나라만의 토속 한자어이다. ‘사관(史官)이 기록한 사기(史記: 역사기록)의 초고(草稿)’를 네 글자로 줄이면 ‘사기초고(史記草稿)’가 되고, 그것을 더 줄인 말이 ‘사초’ 또는 ‘사고(史稿)’이다. 史稿의 경우, 1723년에 중국 청나라의 왕홍서(王鴻緖)가 편찬한 <명사고(明史稿>와 중화민국 정부가 1927년에 완성한 <청사고(靑史稿)>에서처럼 중국에서도 쓰는 말이지만 그 사용은 세종실록 1430년 4월 27일자 기록(史藁=史稿)에서 보듯 우리나라가 더 오래됐다.

본래 草(초)는 ‘풀’을, 稿(고)는 ‘볏집’을 나타내는데, 왜 ‘시문(詩文)이나 그림의 초고’를 뜻하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을까? 그 연유에 대해 중국 오대 말기 남당의 문자학자였던 서개(徐鍇: 920~974)는 <설문계전(說文繫傳)>에서 稿(高자가 禾 위에 있음)자에 대해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草稿라 하는 것은 마치 들판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볏짚 마냥 조심하지 않고 거칠게 쓴 글 또는 다듬지 않은 문장을 이른다”라고 밝혔다.

즉, 사초에서의 草는 들판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잡초의 모습처럼 초서체로 대강 흘려 쓴 문장을 의미한다. 녹음기가 없던 옛적 사관들은 왕의 말을 받아 적을 때 속기체인 초서(草書)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초서체로 적은 그래서 아직은 어지러워 최종 탈고를 거치지 않은 역사기록이 곧 사초이다. 나중에 그것을 바탕으로 정서체로 다듬어 완성한 것이 실록이고. 따라서 나라기록관에 소장되어 있어야 할 그 대화록은 국정원의 2차적 보완 과정을 거친 것이므로 굳이 따지자면 사초라기보다는 정식 ‘실록’ 자료로 봐야 한다.

조선 연산군 때(1498) 일어난 무오사화(戊午士禍)는 김일손(金馹孫)이 사초에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수록한 것이 빌미가 되어 일어난 탓에 ‘사화(史禍)’라고도 한다. 그것처럼 이번 일 또한 ‘대한민국의 史禍’ 또는 ‘대한민국의 사초사(史草事)’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대종언어연구소장(www.hanja.co.kr)
 --출저 <데일리한국>박대종의 어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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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4.12 -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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