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인성호 三人成虎
[석
삼/사람 인/이룰 성/범 호]
☞세
사람이 호랑이를 이루다. 거짓도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 |
■ 삼재 三才
[석 삼/재주
재]
☞만물을 지배하는 세 가지. 天, 地, 人. 단군신화에서 삼위태백, 천부인 3개, 무리 3000명, 풍백·우사·운사,
360여 가지 일, 삼칠일간의 금기 모조리3이다. 실상 환인, 환웅,
단군의‘3대(三代)’로 이루어지는 ‘삼신(三神)’체계가 고대신화의
원형을 이룬다. 임재해 교수(안동대)는 그의 저서〈민족신화와 건국
영웅들〉에서 단군신화의 인간상을 셋으로 나눈다. 신격으로서의 황웅,
동물격인 곰녀, 그리고 인격인 단군이 3의 원형체계라는 것이다. 해모수가
동명왕으로 이어지고, 동명왕이 유리왕으로 이어지는 고대 부여족의
신화적 중심인물도‘3대’이기는 마찬가지다. |
■ 삼종지도 三從之道
[석 삼/따를 종/어조사 지/이치 도]
☞세가지 따라야 할 도리, 옛날 여자가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을 가면 남편을 따르며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르라는
말 |
■ 삼천지교 三遷之敎
[석 삼/옮길 천/어조사 지/기르칠 교]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뜻으로,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 그 환경이 중요함을 가리키는 말. |
■ 삼청 三淸
[석 삼/푸를
청]
☞① 강원도 강릉을 일컫는 말 : 강릉은 맑은 물, 푸른 소나무, 깨끗하고 어진 마음으로 이름나 있다.-->청송(靑松), 청수(淸水), 청심(淸心) ②가야금의 넷째 줄 이름. ③ 도교에서, 신선이 산다는 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의 세 궁(宮). |
■ 삼한갑족 三韓甲族
[석 삼/나라 한]
☞우리 나라에서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 |
■ 상가지구 喪家之狗
[죽을 상/집 가/어조사 지/개 구]
☞상가집의 주인 잃은 개. 여위고 지칠대로 지친 수척한 사람을 비유한
말. 또는 궁상맞은 초라한 모습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얻어 먹을
것만 찾아 다니는 사람. [원문] 鄭人或謂子貢曰 東門有人한대“其?似堯요 其項類皐陶요 其肩類子産이라. 然自腰以下는 不及禹三寸이요 壘壘若喪家之拘라. ”子貢以實告孔子하니 孔子가 欣然笑曰“形狀未也라. 而似喪家之拘는 然哉로다. 然哉로다. 라고 하였다. ** 鵠(고니 곡) ?(이마 상) 肩(어깨 견) 腰(허리 요) 壘(맬 루) 欣(기쁠 흔) 哉(어조사 재) [해설]오랫동안 떠돌아다녔고,
정치적으로 실의에 빠졌으며, 정나라에서도 뜻을 이루지 못한 공자의
모습은 말 그대로 볼품 없고 처량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 모습을 본
사람이 공자를 상가지구라 비유한 것이다. [참고]孔子라면 최고의 聖人인
만큼 모든 면에서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물론 凡人과는
다른 叡智(예지)와 高邁(고매)한 品德을 가진 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적인 면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하나의 自然人으로서 슬프면
울고 기쁘면 울 줄 알았다. |
■ 상궁지조 傷弓之鳥 [다칠 상/활 궁/어조사 지/새 조]
☞활에 상처를 입은 새는 굽은 나무만 보아도 놀란다. 한 번 궂은
일을 당하고 나면 의심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
■ 상분 嘗糞
[맛볼
상/똥 분]
☞지극한 효성/ 지나친 아첨 이때부터 그는 매일 밤 북진(北辰·북극성)에 빌었다.그의
효심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소리가 들려왔다. "수명은 다했다.
다만 너의 효성을 봐서 이 달말까지만 연장해 주겠다." "대변의 즙을 보여 주십시오." 이윽고 가져온 대변 즙을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달면 병은 낫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대부님의 것은 씁니다. 그러니 곧 쾌차하실 겁니다. 염려 놓으십시오." 위원충은 그의 이 낯두꺼운 아첨에 배알이 뒤틀렸다. 그 후 병이
나아 조정에 나가자, 위원충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사실을 폭로해
버렸다. |
■ 상사병 相思病
[서로 상/생각 사/병 병]
☞서로 생각하는 병, 남녀 사이에 사랑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해 생긴병≒연병(戀病)·연애병·화풍병·회심병.
[원문]宋人哀之
遂號其木曰 相思樹 相思之名 起於此也 |
■ 상아탑 象牙塔
[코끼리 상/어금니 아/탑 탑]
☞대학(大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학문과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 속세를 떠나 오로지 학문이나 예술에만 잠기는 경지.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생트뵈브가 낭만파 시인 비니의 태도를 비평하며 쓴 데서 유래한다.(tour d'ivoire) [예문] ▷ 그 사람들은 문서가 가짜 증언이라고 믿고 있는데요." 티빙이 킬킬 웃었다. "로버트, 하버드의 상아탑이 자네를 연약하게 만들었구먼. ▷ 행동을 상반된 것으로 보면, 그 둘이 투쟁을 하는 가운데 우리는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상아탑에 묻힌 현실성 없는 엘리트주의자'니,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사기꾼'이니 하면서 어느 한쪽을..<책-미운오리새께의
출근> |
■ 상전벽해 桑田碧海
[뽕나무 상/밭 전/푸르를 벽/바다 해]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 세상이 몰라 볼 정도로 바뀐
것. 낙양성
동쪽 복숭아꽃 오얏꽃 [해설] 상전벽해는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의미에서 자신도 모르게 세상이 달라진 모습을 보고 비유한 말이다. 또한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될 수 있을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세월의 무상함을 연상케 하는 고사성어이므로, 그날 그날을 최선을 다하여 삶을 누리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살이이다.<네이버백과> [예문] |
■ 상중지희 桑中之喜
[뽕나무 상/가운데 중/어조사 지/기쁠 희]
☞남녀간의 밀회, 음사(淫事), 간통(姦通) |
■ 새옹지마 塞翁之馬
[변방 새/늙은이 옹/어조사 지/말 마]
☞변방에 사는 늙은이의 말. 인생의 길흉화복은 항상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
아들이 절름발이가 된 지 한 해가 후딱 지났다.
그동안 점 따위는 치지 않았다. 흉노들이 중국의 요새 밑으로 밀물처럼 쳐들어 왔다.
“마을의 젊은이들이여, 오랑캐를 막아야 한다! 모두들
전투에 참가하라!”
|
■ 생면부지 生面不知
[날 생/얼굴 면/아니 불/알 지]
☞태어나서 만나 본 적이 없는 전혀 모르는 사람. |
■ 생살여탈 生殺與奪
[날 생/죽일 살/줄 여/빼앗을 탈]
☞살리고 죽이고 주고 빼앗다. 남의 목숨이나 재물을 마음대로 하다. |
■ 서시빈목 西施顰目
[서쪽
서/베풀 시/눈살찌푸릴 빈/눈 목]
☞서시가 눈살을 찌푸린다는 뜻. ① 영문도 모르고 남의 흉내를 내서
웃음거리가 됨 ② 남의 단점을 장점인 줄 알고 본뜸 그런데 그녀는 길을 걸을 때 가슴의 통증 때문에 늘 눈살을
찌푸리고 걸었다. 이것을 본 그 마을의 추녀(醜女)가 자기도 눈살을
찌푸리고 다니면 예쁘게 보일 것으로 믿고 서시의 흉내를 냈다. 춘추 시대 말엽의 난세(亂世)에 태어난 공자가 그 옛날 주왕조(周王朝)의
이상 정치(理想政治)를 그대로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에 재현시키려는
것은 마치 '서시빈목'을 흉내 내는 추녀의 행동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
■ 서제막급 噬臍莫及
[씹을 서/배꼽 제/말 막/미칠 급]
☞배꼽을 물려고 해도 입이 미치지 않는다는 뜻. 곧 기회를 잃고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음의 비유. |
■ 석권 席卷
[자리 석/ 말 권]
☞자리를 마는 것과 같이 토지 등을 공략하여 모두 차지함
나중에 유방이 수세에 몰리다가 패하자 유방을 배반하고 항우편에 붙었다. 기회를 보아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하는 위표의 간사스러운 태도에 분개한 유방은 그를 잡아오게 했다. 결국 장군 한신에게 잡힌 위표는 유방의 명령에 따라 죽음을 당하고 만다. 또 당시에 팽월이란 자가 있었는데 유방편에 붙어서 게릴라전으로 항우의 초나라 군대를 괴롭히곤 했다. 그의 공적을 인정한 유방이 그를 양왕(梁王)으로 삼았는데 나중에 항우군을 해하(垓下)에서 격파하는데 혁혁한 무공을 세우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5년 뒤 유방이 반란군토벌을 위해 도움을 청하는데 듣지 않았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유방은 팽월에게 반란의 흔적이 있다고 덮어씌워 잡아 죽였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 두 사람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위표와 팽월은 비천한 집안 출신으로 천리의 땅을 석권(席卷)했는데…
그 명성이 날로 높아졌지만 반란의 뜻을 품다가 결국 잡혀 죽음을 당했다."
두 사람은 지략에 뛰어나 한 몸이 무사하면 나중에 다시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여겨 포로가 되는 것도 사양하지 않았다. 결국
천리의 땅을 석권한 위표와 팽월은 천하를 석권한 유방의 비위를 건드려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
■ 선견지명 先見之明
[먼저 선/볼 견/어조사 지/밝을 명]
☞앞 일을 미리 내다보는 총명. |
■ 선공후사 先公後私
[먼저 선/공변될 공/뒤 후/사사로울 사]
☞공사(公事)를 먼저 하고 사사(私事)를 뒤로 미룸.[동]滅私奉公
내(염파) 가 인상여를 보게 되면 필히 그를 혼내 주겠다." 하자 인상여가 그 소릴 듣고 조회 때 마다 늘 병을 핑개되어 염파와 더불어 서열을 다투지 아니하고 혹 나가다가 염파를 바라보면 즉시 피하니 인상여의 식객(食客)들이 다 그러한 인상여를 부끄럽게 여겼다. 그러자 인상여가 말하길 "막강한 진(秦)나라를 내가 욕을 보인
사람인데 유독 염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막강한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처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염파 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두 호랑이 격인 나와 염파가 서로 싸운다면 그 형세가 둘다 온전하지
못할 것 이다. [예문] |
■ 선농단 先農壇
[먼저 선/농사 농/제단 단]
☞조선시대와 중국에서 농사와 인연이 깊은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를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풍년들기를 기원하던 제단. 기원은 신라 때까지 거슬러올라가며,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태조 이래 역대 왕들은 이곳에서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선농제를 올렸다. 선농단 앞에는 밭을 마련하여 제사가 끝나면 왕이 직접 경작을 하면서 권농에 힘썼다. 행사 때 모여든 많은 사람을 대접하기 위하여 쇠뼈를 고은 국물에 밥을 말아낸 것이 오늘날의 설렁탕이라고 한다. 선농탕이 설렁탕으로 음(音)이 변한 것이다. 제단은 사방 4m의 석축단(石築壇)이었는데, 《한경식략(漢京識略)》에는
1476년(성종 7)에 선농단을 축조하여 왕이 친히 제를 지내고 적전을
갈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선농단 친경(親耕)은 1909년까지 행해지다가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폐지되었다. |
■ 선우후락 先憂後樂
[먼저 선/따를 종/높을 외/시작할 시]
☞걱정할 일은 남보다 먼저 걱정하고, 즐거운 일은
남 다음에 자신의 즐거움을 찾음. 곧, 목민관(牧民官)의 자세. |
■ 선종외시 先從隗始
[먼저 선/따를 종/높을 외/시작할 시]
☞먼저 외로부터 시작하라. 큰 일을 이루려면 먼저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죽은 말의 뼈를 천금을 주고 샀다는 임금에 대한 소문이 천리마 세 필을 불러오게 하였다면, 전하께서 부족한 저부터 신임하여 우대해 주셨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 저보다 더 훌륭한 인재들이 모두 전하께 의지하러 오게 될 것입니다. 비록 신은 죽은 말의 뼈에 지나지 않으나 전하께서 저를 등용하여 천리마처럼 아끼신다면 사방에서 살아 있는 천리마들이 올 것이므로 궂이 각 지방으로 사람을 보내 인재를 찾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곽외의 의견은 탁월한 것이었다. 곽외의 말에서 ‘천금매골(千金買骨)’이란 고사성어가 나온 것. 그리고 “임금께서 궂이 어진 선비를 부르시고자 하신다면 먼저 저로부터 시작하여 주십시오.(王必欲致士 先從隗如)”라는 말에서는 ‘청자외시(請自隗始)’란 고사성어가 나온 것이다. 청자외시. 이는 ‘자기 자신을 자기가 추천한다는 말’로 때로는 ‘선종외시(先從隗始)’라고도 불려진다. 어쨌든 곽외의 작전은 그대로 들어맞는다. 악의(樂毅)라는 무장은 위나라 사람이었으나 소왕이 곽외를 의지하고 새로운 집을 지어주고, 스승인 사장으로 섬긴다는 소문을 전해 듣자 연나라로 와서 상장군이 되었던 것이다. 악의는 조, 초, 한, 위, 연의 연합군을 이끌고 당시 최강국이었던 제나라를 토벌하여 수도 임치를 함락시키고 70여개의 성을 빼앗고 모든 재보를 연나라로 옮겨 버린 것이다. 이때가 기원전 284년. 제나라의 선왕이 연나라를 정벌한 지 불과 34년 후의 일에 불과하였으니, 일찍이 맹자가 ‘지금 어진 정치를 하지 아니한다면 이는 천하의 무기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왕께서 속히 명령을 내리시어 노약자들을 돌려보내고 중요한 제기를 가져오는 것을 중단시키고, 연나라 백성들과 논의하여 임금을 새로 세운 뒤에 철수하십시오.’라고 충고하였던 왕도정치의 경세지략은 34년 후에 그대로 들어맞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패도정치는 일시적으로 힘으로 정복하여 승리하는 듯 보이지만 한 순간의 영광에 불과하며 왕도정치는 얼핏 보면 무능하고 나약한 통치이념처럼 보이지만 곧 승리하여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니, 제자 베드로가 칼을 빼어 잡으러 온 사람의 귀를 잘라버리자 ‘칼을 도로 칼집에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는 법이다.’라고 말하였던 예수의 말과 상통하는 진리인 것이다. 어쨌든 맹자는 십만종의 녹봉과 빈사(賓師)의 대우를 마다하고 제나라를 떠날 결심을 한다. 평소에 맹자는 “나는 맡은 관직도 없고 말한 것에 책임도 없으니 진퇴가 어찌 너그럽고 여유 있지 않겠는가.(我無官守 我無言責也 則吾進退豈不綽綽然有餘裕哉)”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삼경(三卿)의 지위에 올랐으나 이처럼 맹자는 ‘나아가고 물러섬’에 있어 언제나 분명하고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맹자도 제나라에 대한 미련만은 쉽사리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맹자가 제나라의 국경에서 꼬박 3일간을 머물러 있었다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맹자는 마음속에 또 하나의 환상을 품고 있었다. |
■ 선즉제인 先則制人
[먼저 선/곧 즉/누를 제/사람 인]
☞먼저하면 남을 제압한다. 무슨 일이든 남보다 빨리하면 유리하다. |
■ 선풍도골 仙風道骨
[신선
선/바람 풍/도인 도/뼈 골]
☞신선의 풍채. 도사와 같은 골격. 남달리 뛰어난 풍모를 가진 사람.
또는 비범한 사람.. |
■ 선행후교 先行後敎
[먼저 선/행할 행/뒤 후/가르칠 교]
☞선인의 행위를 들어 후학을 가르침. |
■ 설부화용 雪膚花容
[눈 설/살갗 부/꽃 화/얼굴 용]
☞흰 살결에 고운 얼굴. 미인의 얼굴. |
■ 설상가상 雪上加霜
[눈 설/위 상/더할 가/서리 상]
☞눈 위에 서리가 더함. 불행이 거듭 생기는 일.. ▷ 아침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산을 허물어 내고, 흙을 나르고
하기란, 고향에서 농사일에 뼈가 굳어진 몸에도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었다.
물도 입에 맞지 않았고, 음식도 이내 변하곤 해서, 도저히 견디어 낼
것 같지가 않았다. 게 다가 병까지 돌았다. 일을 하다가도 벌떡 자빠지기가
예사였다.-- 하근찬『수난이대』 |
■ 설왕설래 說往說來
[말씀 설/갈 왕/말씀 설/올 래]
☞서로 말이 오고 감. 어떤 일의 시비(是非)를 가리기 위해 옥신각신하다. |
■
섬섬옥수 纖纖玉手
[가늘 섬/옥돌 옥/손 수]
☞가녀리고 가녀린 옥같은 손이라는 말로 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 모시를 이리저리 삼아 두루삼아 감삼다가 ▷ 손은 섬섬옥수는 아니었지만 두둑하고 부드러워 보였다.≪박완서, 미망≫ ▷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 공주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胸裏)가 어떠했을까?≪정비석, 비석과 금강산의
대화≫ |
■ 성동격서 聲東擊西
[소리 성/동녘 동/칠 격/서쪽 서]
☞병법의 하나로 동쪽을 친다고 소리 질러 놓고 실제로는 서쪽을
친다. |
■ 성묘 省墓
[살필 성/무덤 묘]
☞ 조상의 묘를 찾아 보살핌, 또는 그런 일. 주로 설, 추석,
한식에 한다.≒간산(看山)·배묘(拜墓)·성추(省楸)·전묘(展墓)·참묘.
墓는 莫과 土의 結合으로 莫의 아래에 있는 '大'는 본디
'艸'의 變形이므로 해(日)가 아래 위의 풀숲 사이에 빠져 있는 形狀,
곧 西山에 지려고 하는 모습이다. 省墓라면 祖上의 무덤을 찾아 돌보고 겸하여 禮를 올리는 것으로 一名 拜墳, 拜掃禮라고도 한다. 封墳 주위의 나무나 풀을 돌아보고 가시나무나 雜草 등을 잘라내 깨끗이 정리하는 것으로 보통 伐草라고도 한다. 그런 다음 간단히 음식을 올리고 祖上을 追慕하며 동시에 가족간의 紐帶를 다지는 契機로 삼기도 한다. 중국 사람들은 淸明에 省墓를 하는데 '掃墓'라 부른다.
우리의 경우 설, 端午, 寒食, 秋夕 등 4대 名節에 省墓를 했는데,
지금은 보통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한다. 寒食의 省墓는 풀이
잘 자라게 하는데 目的이 있고, 秋夕의 省墓는 이듬해에 잘 자랄 수
있도록 整備하는데 目的이 있다. 물론 祖上을 追慕하는 것이 가장
큰 目的임은 말할 나위 없다. 곧 孝의 具體的인 表現인 것이다. |
■ 성하지맹 城下之盟
[성 성/아래 하/어조사 지/맹세할 맹]
■ 성혜 成蹊
[ 이룰 성/ 지름길(샛길) 혜 ]
☞샛길이 생긴다는 뜻. 곧 덕(德)이 높은 사람은 자기 선전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사람들이 흠모하여 모여듦의 비유. [내용] 전한 6대 황제인 경제(景帝:B.C. 157∼141)때 이광(李廣)이라는 명장이 있었다. 당시는 북방 흉노족(匈奴簇)과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때인 만큼 이광의 무용담 (武勇談)도 자연히 흉노족과의 전쟁과 결부된 이야기가 많은데 이 이야기도 그중 하나이다. 어느 날, 이광은 불과 100여 기(騎)를 이끌고 적 후방 깊숙이 쳐들어가 목적한 기습 공격에 성공했다. 그러나 곧 적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 하다고 판단한 이광은 부하 장병들에게 이렇게 명했다. "침착하라. 그리고 말에서 내려 안장을 풀어라." 적은 깜짝 놀랐다. 그 행동이 너무나 대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표를 찔린 적은 필연 뭔가 계략이 숨겨져 있을 것으로 믿고 주춤했다. 이때 이광은 10여 기를 이끌고 질풍처럼 적진에 돌입하여 한칼에 적장을 베었다. 그러자 적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달아났다. 이리하여 이광은 한 사람의 병사도 잃지 않고 개선했다. 그 후에도 많은 무공 을 세운 이광을 칭송하여 사마천(司馬遷)은 그의 저서 사기(史記) 이장군 열전(李將軍列傳)〉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장군은 언변은 좋지 않았으나 그 덕과 성실함은 천하에 알려져 있었다. 복숭아와 오얏 꽃은 아무 말 하지 않아도[桃李不言:덕 있는 사람의 비유] 그 아름다움에 끌려 사람들이 모여들므로 '나무 밑에는 자연히 샛길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下自成蹊].' " |
■ 세군 細君
[가늘 세/임금 군]
☞본래는 제후의 부인을 일컫던 말, 남에게 자기의 아내를 말하거나,
남의 아내를 말할 때, 한문 편지 따위에서, 자기의 아내를 이르는 말.
동방삭이 그의 아내를 농담 삼아 부른 데서 유래 한무제가 천하의 재능 있는 자들을 구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 문제에 관해 논의했던 것과 달리, 동방삭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자랑만 늘어 놓았었다. 그러나 한무제는 그런 동방삭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 당시는 한여름 복날이 되면 상시랑(常侍朗;시종관)들에게 고기를 나누어 주는 관례가 있었다. 이날도 상시랑들은 임금이 내린 고기를 나누어 줄 관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관리가 저녁 늦도록 오지 않자, 동방삭은 주위에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 칼을 들고 고기를 잘랐다. 주위에 있던 관리들이 그의 뜻밖의 행동에 당황해하자, 동방삭은 태연히 농담 섞인 어조로 말했다. “복날이라 빨리 집으로 가야 합니다. 하사품은 잘 받아 갑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내달려갔다. 다음날, 고기 분배를 담당했던 관리는 동방삭이 형식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사품을 가져간 것을 무제에게 보고했다. 무제는 그 당장 동방삭을 불러 무례함을 꾸짖고 직접 자기를 비판하도록 했다. 그러자 동방삭은 두 번 절하고 이렇게 말했다. “삭이여, 삭이여, 무제는 동방삭이 처음에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듯하여 고개를 끄덕였지만, 끝까지 듣고 보니 도리어 자신을 칭찬하고 있음에 그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동방삭은 기지가 넘쳐 흘렀다. 무제는 그런 동방삭에게 술
한 섬과 고기 백 근을 내렸다. [참고]중국 전한 무제 때(BC 110년경)의 강도왕 유건의 딸. 흉노(匈奴)를 견제하기 위해 톈산산맥[天山山脈] 북방에서 간쑤성[甘肅省] 서부에 걸쳐 세력을 떨치고 있던 오손국(烏孫國)의 왕(王號는 昆莫)에게 무제의 공주[皇女]로 위장해 시집갔다. 《한서(漢書)》 <서역전(西域傳)>에 의하면, 시집가 보니 왕은 노령인 데다 언어도 통하지 않아, 슬픈 마음으로 ‘원컨대, 황곡(黃鵠)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소서’라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훗날 그 나라의 풍속에 따라 왕의 손자에게 재가(再嫁)하여 딸 하나를 낳았으나, 재가한 지 4∼5년 뒤에 죽었다고 한다. <두산백과> |
■ 세속오계 世俗五戒
[세상 세/속될 속/다섯 오/경계할 계]
☞신라 진평왕때 원광법사가 화랑들에게 지켜야 할 것으로 제시한
다섯 가지 계율. |
■ 세월부대인 歲月不待人
[해 세/달 월/아니 불/기다릴 대/사람 인]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세월을 아껴라. [잡시 雜詩] [참고] 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오늘 배우지
아니하여도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少年易老學難成하니,소년은 늙기가
쉽고 학문은 이루기가 어려우니, |
■ 세한고절歲寒孤節
[해 세/추울 한/외로울 고/계절 절]
☞추운
계절에도 혼자 푸르른 대나무./ 겨울.
구블 節(절)이면 눈 속에 프를소냐? 아마도 歲寒孤節(세한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원천석, 병와가곡집> [참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나니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정보> ◑氷姿玉質(빙자옥질) : 얼음같이 맑고 깨끗한 살결과
아름다운 자질. 매화의 이칭,봄 빙자옥질(氷姿玉質)이여 눈ㄷ속에
네로구나 |
■ 세한송백 歲寒松栢 [해 세/추울 한/소나무 송/잣나무 백]
☞추운 계절에도 소나무와 잦나무는 잎이지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굳은 절개. [참고]歲寒然後知松栢之 後彫也『(논어』--추운 겨울이 지난 후에 소나무 잣나무가 나중에 시듦을 안다 |
■ 소국과민 小國寡民
[작을 소/나리 국/적을 과/백성 민]
■ 소년이로
학난성 少年易老 學難成
[쉬울 이/늙을 로/ 배울 학/어려울 난/이룰
성])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말. 少年易老 學難成
소년이로 학난성 [참고]주자십회(朱子十悔) 不孝父母,
死後悔 불효부모 사후회 |
■ 소인묵객 騷人墨客
[풍류 소/사람 인/먹 묵/손 객]
☞시문(詩文)이나 서화(書畵)를 일삼는 사람.--시인,문사,서가,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