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의 64괘(卦) 중 38번째인 화택규(火澤규)의 모양이 상화하택(上火下澤)이다. 불(火)은 위로 타오르려 하고, 못물(澤)은 아래로 고여드니 곧 ‘등지고 어긋남’(규)의 괘이다. 물과 불은 비록 상극이나, 물이 아래로 흐르고 불이 위로 타올라 화합하면 좋지만 상화하택은 그 반대다.
신영복 교수의 ‘강의’를 빌리면 주역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교(交)와 통(通)이다. 하늘이 위에, 땅이 아래에 있는 천지비(天地否)는 가장 자연스러운 형상이지만, 하늘의 기운은 위로 솟구치고 땅의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 교통하지 못하는 탓에 나쁜 괘가 된다. 땅이 위에, 하늘이 아래에 있는 지천태(地天泰)가 주역에서 가장 이상적인 괘가 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교수신문이 올해 한국의 사회상을 압축하는 사자성어로 ‘상화하택’을 꼽았다. 교통이 없는 분열과 반목의 한 해였다는 것일 터. 탈선의 이념대립, 계층과 지역의 갈등, 상생과는 거리가 멀었던 정치, 갈등의 전위에 섰던 청와대 등등. 무엇보다도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징표로까지 부각된, 도저해진 사회양극화를 감안한다면 상화하택이라는 데 공감할 도리밖에 없다.
교수들이 뽑은 지난해 사자성어는 편을 갈라 서로 공격한다는 당동벌이(黨同伐異), 지지난해는 우왕좌왕(右往左往)이었다. 우왕좌왕에서 당동벌이를 거쳐 상화하택, 결국 혼선과 분열의 사회상이 반복되어온 셈이다.
주역은 나쁜 괘일지라도 대응 여하에 따라 좋은 괘로 바꿀 수 있음을 일깨운다. ‘화택규’에서 무기(활)를 만들었다고 한다. 세상이 괴란하여 어지러울 때 그것의 심각성을 깨닫고 타개의 노력을 기울이면 좋은 세상으로 가는 무기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이다.
실로 숨가쁘게 달려온 2005년이 저물고 있다. 황우석 교수 파문과 사학법을 둘러싼 알력의 풍진이 자욱해, 차분한 되돌아봄의 시간을 갖기마저 힘든 세밑이다. 해도 열흘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떠오를 새 해, 규(규)가 아닌 화동(和同)의 신년이기를 바라본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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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이 뽑은 올해 사자성어 ‘약팽소선’ 
2005.11월 고3 대성모의고사 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