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한시집 ‘을병조천록’ 찾았다
[동아일보 2006-04-11 05:05]
‘벼슬아치 높이 됨은 참으로 허깨비요,/문장은 돈으로 그 값을 못 정하네/늙어서도 지조 지킴 어찌해야 온전할까/공자의 위편삼절 나도 다시 해야겠네.’(‘을병조천록’에 수록된 시 ‘잡영·雜詠’ 중에서)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1569∼1618)의 한시 382수가 발굴됐다.
국립중앙도서관(관장 김태근)은 허균이 1615∼16년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 오면서 쓴 기행시집 을병조천록(乙丙朝天錄)을 찾아내 ‘한국고전국역번역총서’ 1권으로 번역 출간했다. 허균의 저술은 1618년 그가 역모죄로 처형된 탓에 망실되고 미처 간행되지 못해 초본 형태로 남았던 시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부藁)’와 홍길동전만이 전해진다. 을병조천록은 제목만 전해져 왔다.
을병조천록은 허균의 둘째 형인 하곡 허봉(荷谷 許g)의 저술인 ‘조천록’의 하권 속에 묻혀 있었다.
최강현(전 홍익대 교수) 한국기행문학연구소장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조천록을 검토하다가 이 책의 하권이 ‘조천록 하’로 적혀 있는 겉장과 달리, 첫 장 안쪽에 을병조천록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최강현 전교수 "허균의 진솔한 유언장"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벼슬아치 높이 됨은 참으로 허깨비요, / 문장은 돈으로 그 값을 못 정하네 / 늙어서도 지조 지킴 어찌해야 온전할까 / 공자의 위편삼절 나도 다시 해야겠네"(허균 '을병조천록'의 시 잡영(雜詠) 중에서)
홍길동전을 쓴 조선 중기의 문인 허균(許筠.1569-1618)의 새로운 작품이 최근 발굴됐다.
국립중앙도서관(관장 김태근)은 그동안 책의 제목만 알려져 있던 허균의 기행시집 '을병조천록'(乙丙朝天錄)을 발굴했다고 10일 밝혔다.
'을병조천록'은 지금까지 학계에 그 제목만 알려지고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로 허균의 형인 하곡(荷谷) 허봉(許봉<竹아래封>)의 '조천록'의 하책(下冊.하권)으로만 알려져왔으며, 2004년 국립중앙도서관이 발간한 해제집 '선본해제'에서 처음 소개된 바 있다. 지금까지 허균의 작품은 '홍길동전'과 '성소부부고'만이 남아있다.
이 작품은 허균이 광해군 7-8년(1615-1616) 2년에 걸쳐 당시 명나라 수도였던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에서 머물며 느낀 정서를 한시 228편 382수로 지은 기행시집.
이 책이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책이 독립된 단일본으로 전하지 않고 그의 둘째 형인 허봉의 저술인 '하곡조천록'의 하권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
즉, 국립중앙도서관에 상ㆍ하 두 책으로 소장된 허봉의 '조천록' 하권이 사실은 허균 작품 '을병조천록'이라는 것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작품을 발굴해 우리 말로 옮긴 최강현 한국기행문학연구소장(전 홍익대 교수)은 "상책에 적힌 내용은 선조실록의 기록과 꼭 들어맞아 작자가 허봉이 분명하다"며 "하책은 겉장 책 이름이 '조천록 하'(朝天錄 下)로 적혀 있는 것과 달리, 첫장 안쪽의 책이름은 '을병조천록'"이라고 지적했다.
최 소장에 따르면 을병조천록에 수록된 시 한편 중에 "12세에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부분이 허균의 다른 저술 '성소부부고'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고, 같은 시의 '옛 별장 강릉집'이라는 표현 역시, 지금의 강릉시 초당동에 있는 허균의 '애일당'(愛日堂)을 두고 적은 것이다.
이외에도 최 소장은 "요동에 이르러 집에서 온 편지를 봤더니, 조카 재(宰)가 과거에 급제했다고 한다"는 내용의 시 역시, 허봉의 아들 재(宰)가 1615년(광해군7년) 시행된 과거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한 것을 이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허균이 역신(逆臣)으로 몰려 형장의 이슬이 되기 2년 전 지어진 이 작품이야 말로 스스로가 유서처럼 남겨놓은 진솔한 유언장"이라며 "허균의 인물 연구에 고귀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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