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작굴서 羅雀掘鼠[그물 라/ 참새 작/팔 굴/ 쥐 서]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음.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어찌할 방법이 없음. 
[출전]『新唐書』
[내용]당(唐)나라 현종(玄宗)의 통치 말기, 정치가 부패하자 변방의 안록산(安祿山)은 군대를 일으켜 당나라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서기 756년, 진원(眞源) 현령 장순(張巡)은 군대를 동원하여 안록산 토벌에 나섰다. 이듬해, 안록산의 아들 안경서(安慶緖)는 윤자기(尹子琦)를 보내 십만 대군으로 장순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당시 장순에게는 겨우 삼 천명의 병력 뿐으로 수적으로 열세였다. 윤자기의 군대는 어떤 때에는 하루에 20여 차례나 공격을 해 왔지만, 장순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 윤자기의 군대는 수적으로는 우세하였지만, 성(城)을 함락하지 못하며, 몇 달 동안 대치하게 되었다. 장순은 몇 달 동안 구원군을 기다렸지만 그들이 오지 않자, 성  안의 식량과 풀이 다 바닥날 상황이었다. 형세가 급박하게 변하자 장순은 부하 남제운(南霽雲)을 보내 포위망을 뚫고 임회(臨淮) 태수 하란진명(賀蘭進明)에게 위급한 소식을 알렸다. 그러나 임회태수는 장순의 명성을 시기하여, 그들의 위급함을 보고도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

 윤자기는 강공(强攻)으로는 성을 함락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방법을 바꾸어 장순에게 투항을 권유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장순은 이에 굴하지 않고, 쉴새 없이 공격해 오는 적들을 모두 물리쳤다. 얼마 후, 성안의 식량이 점점 줄어들자, 군인들은 매일 한 수저의 쌀만을 먹었다. 이에 장순은 먹을 것을 확보하기 위하여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심지어는 그물을 쳐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으며, 갑옷과 활에 붙어있는 소가죽을 삶아서 굶주림을 달래라고 하였다(至羅雀掘鼠, 煮鎧弩以食).그러나 구원병의 도움이나 식량 보충도 없는 상태에서 장순의 군대는 많은 적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예문]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보람없는 행동으로 -------금의야행(錦衣夜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허송세월하다가---비육지탄(비肉之嘆)
일단 저지른 일을 되돌릴 수도 없고 ------------복수불반(覆水不返)
최악의 상태에 처해 방법도 없으니 -------------나작굴서(羅雀掘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일체불응(一切不應)' 뿐이다.
                       <2005년 12월 21일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유은혜>

■ 낙락장송 落落長[떨어질 락/길 장/소나무 송]

☞가지가 축축 늘어진 오래된 큰 소나무.
[속담]낙랑장송도 근본은 종자(길도 한걸음으로 시작한다) / 낙락장송 큰나무도 깍아야만 동량된다

[예문]
▷ 성삼문, 유응부의 시조

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낙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성삼문)
 

간밤의 부던 바람에 눈서리 치단말가.
낙락장송이 다 기울어 가노매라.
하물며 못다 핀 꽃이야 닐러 무엇하리오
--<유응부>,『청구영언

▷ 바람아 퉁텡부지마라. 낙랑장송 취행이 왔느냐. 예 - 등대허였소. 단산오동 그늘밑 문왕 어루든 채봉이 왔느냐. 예 - 등대허였소.장삼소매를 떠들어 메고 저정거리던 무선이 왔느냐. 예 - 등대허였소.≪춘향가 ≫中

▷ 토끼란놈 거동 보아라 홀롱게를 추켜들고 홰홰돌려 당겨놓니 별주부 모양보소. 네 발을 물에 헤염치듯 내 젖으며 나무쟁반 떠나가듯 공중의 높이 떠 뱅뱅돌아 올라 간다. 낙랑장송 늘어진 가지에다 칭칭감어 메여놓니 가련허다 별주부는 할 일 없어 죽것구나. 그 때의 토끼란 놈은 그늘 밑에 앉어 바라보며 별주부를 조롱허는듸.≪판소리 수궁가 ≫

▷ 제비는 물을 차고, 기러기 무리져서 거지중천(居之中天)에 높이 떠서 두나래를 훨씬 펴고 백운간(白雲間)에 높이 떠서 천리 강산 머나먼 길을 어이 갈꼬 슬피 운다. 원산(遠山)은 첩첩(疊疊), 태산(泰山)은 주춤하여, 기암(奇巖)은 층층(層層), 장송(長松)은 낙락(落落), 에이구부러져 광풍(狂風)에 흥을 겨워 우줄우줄 춤을 춘다...≪유산가(遊山歌)≫

▷ 동구릉의 왕릉유적과 이를 지키는 노송들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부디 저 솔들이 동구릉의 낙락장송으로 푸르고 울창하게 번성하여 함께 누리고(활용活用), 가꾸며(보존保存) 이어가야 할(전승傳承)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언제나 사랑받길 진심으로 소망한다.<2006 뉴시스>  

■ 낙백 洛魄[떨어질 락/혼백 백]

혼이 떨어지다, 넋을 잃음, 뜻을 얻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있음
[출전]사기(史記) 역생육가열전( 生陸賈列傳)

[내용] 역생이기라는 사람이 있었다. 집안이 가난하고 쇠락하였으며 이렇다할 직업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글은 읽었으나 일거리를 찾지 못하던 중 마을의 문지기  자리를 하나 얻었다. 그 당시 그의 고향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미친 선생' 이라며  비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남을 설득시키는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는 자신의 궁색한 처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패공(沛公) 유방을 만나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싶어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들은 나를 바보 취급하지만, 책략이   뛰어나니 그분에게 한번 만나고 싶다고 전해 주게." 패공은 선비를 싫어하여 갓쓴  선비만 보면 갓을 벗겨 오줌을 눌 정도요, 어찌 당신 같은 유생을 소개시켜 주겠소?"  그러나 역이기는 개의치 않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상관없으니, 만나게만 해주시게."  

 마침내 역이기는 패공을 만나게 되었다. 때마침 패공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씻고  있었는데, 역이기를 보고 일어나기는커녕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역이기는 불쑥 물었다.  "당신은 진나라를 도와 제후를 공격하려는가, 아니면 제후들을 이끌고 진나라를  공격하려는가?" "야! 이놈아, 내가 제후들을 이끌고 진나라를 공격하려는 것도 모른단  말이냐?" "그렇다면, 다리를 고치고 앉아 어른인 나를 만나야 되지 않겠는가?"  패공은 느낀 바 있어 태도를 고치고 역이기를 상석에 앉히고 천하 대사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역이기는 패공의 세객이 되어 제후들 사이에서 큰 활약을 했다.

[원문]< 生食其>者, <陳留高陽>人也. 好讀書, 家貧落魄, 無以爲衣食業, 爲里監門吏.  然縣中賢豪不敢役, 縣中皆謂之狂生

[예문]
▷ 이때 강화 도령 원범은 만불성양의 꼴이 아닌 낙백하고 가난한 떠꺼머리 총각이었다.≪박종화, 전야≫

▷ 궁벽한 촌의 낙백한 양반들  

■ 낙불사촉 樂不思蜀[즐거울 락/아니 불/생각 사/나라 촉]

☞위(魏)나라의 융숭한 접대에 촉(蜀)나라에 있었던 궂은 일을 다 잊는다, 눈 앞의 쾌락에 젖어 자기 본분을 망각한다
[출전]『삼국지』
[내용] 제갈량이 죽은 후 촉나라 유선(劉禪)은 위나라 사마소의 침공을 받자 스스로 손목 을 묶고 성문을 열어 투항한다. 그의 아들 유감은 아버지의 항복 결정에 반기를 든다. "저승에 가서 무슨 낯으로 할아버지를 뵈오려 합니까? 끝까지 싸워야 합니 다". 결국 아들은 아버지의 고집에 불만을 품고 할아버지 사당앞에서 자결한다.

 유선은 촉나라를 세운 유비의 아들. 그는 알아서 항복했다는 정상이 참작돼 비록 패장이지만 참형은 면한다. 사마소는 유선을 비롯한 항복한 촉의 장수들을 자기 처소로 초청해 주연을 베푼다. 이 자리에서 모든 장수들이 풍성한 대접을 받으면서도 서글픈 신세에 눈물을 흘리는데 오직 유선만은 즐거워 어쩔 줄 모른다.

뜻밖의 행동에 사마소가 까닭을 물었다. "그대는 촉나라가 생각나지 않소?" 유선 은 "이곳 생활이 즐겁기 때문에 촉나라 일은 생각나지 않습니다(樂不思蜀)"라고 대답했다. 아비가 세운 나라를 말아먹고도, 자식이 자결로 버틴 원망도 한 잔 술 로 잊은 것이다.

■ 낙양지가 洛陽紙價[강이름,지명,이을 낙/볕 양/종이 지/값 가]

☞낙양의 종이 값. 낙양의 지가를 올리다'하는 뜻. 곧 저서가 호평을 받아 베스트 셀러 가 됨/훌륭한 글을 다투어 베끼느라고 종이의 수요가 늘어서 값이 등귀한 것을 말함이니 문장의 장려함을 칭송하는 데 쓰이는 말.

[출전]진서(晉書) 문원전(文苑傳)
[내용] 진(晉:265∼316)나라 시대, 제(齊)나라의 도읍 임치(臨淄) 출신의 시인에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추남에다 말까지 더듬었지만 일단 붓을 잡으면 장려한 시를 썼다.

그는 임치에서 집필 1년 만에 "제도부(齊都賦)"를 탈고하고 도읍 낙양[洛陽:하남성(河南省) 내]으로 이사한 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도읍 성도(成都), 오(吳)나 라의 도읍 건업(建業:南京), 위(魏)나라의 도읍 '업'의 풍물을 읊은 "삼도부(三都賦)"를 10년 만에 완성했다. 그러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화(張華) 라는 유명한 시인이 "삼도부"를 읽어 보고 격찬했다. "이것은 반(班)장(張)의 유(流)이다". 후한(後漢) 때 "양도부(兩都賦)"를 지은 반고[班固:"한서(漢書) "저 술", "이경부(二京賦)"를 쓴 장형(張衡)과 같은 대시인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자 "삼도부" 는 당장 낙양의 화제작이 되었고, 고관대작은 물론 귀족환관문인 부호들이 그것을 다투어 베껴 썼다. 그 바람에 '낙양의 종이값이 올랐다 "洛陽紙價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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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司空張華見而歎曰 班張之流也 使讀之者 盡而有餘 久而更新 於是 豪貴之家 競相傳寫 洛陽爲之紙貴 

[예문]중국을 이해하는 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몇 년 전부터 중국 관련 서적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웨난의 고고학 시리즈로 낙양지가를 올린 뒤 중국 관련서를 꾸준히 펴내고있는 ‘일빛’에서 나온 이 책은 4명의 전문가가 중국의 문화, 문학, 역사, 철학, 정치, 경제 등을 쉽고 짜임새 있게 풀어 썼다.<2003 한국일보>

■ 낙엽귀근 落葉歸根[떨어질 락/입사귀 엽/돌아갈 귀/뿌리 근]

☞'떨어진 잎사귀는 뿌리로 돌아감'이라고 풀이되며 모든 생명체는 그 생명을 다하면 그 근본으로 돌아감을 뜻함

[출전]전등록(傳燈錄)
[내용] 육조(六朝) 혜능(慧能)이 열반에 들 때에 여러 중생들의 물음에 답하기를 "떨어지는 잎사귀는 근본으로 돌아가고 돌아올 때를 기약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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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落葉歸根 來時無日

[예문]취임식보다 퇴임식은 언제나 초라하며 참석자 수도 훨씬 적은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전 평소에 존경하던 어느 광역단체장의 퇴임 인사장을 받고 다시 한 번 존경의 깊이와 무게를 더하게 되었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란 말처럼 평소 지원해주었던 이웃주민들 속으로 들어가 또다른 삶을 살겠다는 내용이었다.<2006 매일경제>

■ 낙점 落點 [떨어질 락/점 점]

☞벼슬아치를 뽑을 때 임금이 뽑을 사람의 이름 위에 점을 찍던 일.
[내용].조선시대에 관리를 임명하는 데에는 원칙이 있었으니, 인사를 담당한 이조나 병조에서 비삼망(備三望)이라 해서 세 사람을 추천하여 왕에게 올리면 왕은 자신의 의중에 드는 한 사람의 이름 위에 점을 찍어서 뽑았다. 점이 찍힌 사람의 편에서 보면‘수점(受點)’으로 되지만 점을 찍은 왕의 편에서 보면‘낙점(落點)’으로 되는 것이다.

[예문]
▷ 연전에 우리 시삼촌께옵서 동지상사 낙점을 무르와 북경(北京)을 다녀오신 후에, 바늘 여러 쌈을 주시거늘, 친정(親庭)과 원근(遠近) 일가에게 보내고, 비복(婢僕)들도 쌈쌈이 낱낱이 나눠 주고, 그 연분(緣分)이 비상(非常)하여 너희를 무수히 잃고 부러뜨렸으되, 오직 너 하나를 연구(年久)히 보전(保全)하니, 비록 무심한 물건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迷惑)지 아니하리요.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弔針文』중에서

▷ 내년 1월 MBC에서 전파를 타는 '궁' 시즌 2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주인공에 낙점된 신예 허이재에 대한 네티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스타뉴스>

[참고]천거(薦擧)란 관리로 등용할 수 있는 인재를 추천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때 중앙과 지방의 정3품 이상의 벼슬아치들은 3명의 인재를 추천할 의무를 가졌으며, 인재를 추천하는 사람을 거주(擧主)라고 했다. 만약 추천한 사람이 적임자가 아니라면 연대 책임을 졌다.

■ 낙정하석 落井下石 [떨어질 락/우물 정/아래 하/돌 석]

☞다른 사람이 재앙을 당하면 도와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재앙이 닥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출전]한유()가 친구 유종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묘지명()

[내용].“아! 선비는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비로소 그 지조()를 알게 된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컴컴한 골목에 살면서 서로 사랑하고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놀면서 즐겁게 웃으며, 자기의 심장이라도 꺼내 줄 것처럼 친구라고 칭하고,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죽음과 삶을 함께할 거라고 아주 간절하게 말한다. 그러나 머리털만큼이나 작은 이익이라도 있는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눈을 부릅뜨고 사람을 구분할 줄도 모른다.

 함정에 빠진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돌을 들어 던지는 사람이 많다[落陷穽 不一引手救 反-之 又下石焉者 皆是也(낙함정 불일인수구 반제지 우하석언자 개시야)]. 이처럼 개화되지 않아 금수와 같은 사람들은 어째서 직접 가서 일을 하지 않으면서 자기들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한유는 유종원이 소인배들의 모함으로 기개를 펼치지 못하고 저승으로 먼저 간 것을 애도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지었다. 유종원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문장을 잘 쓰기로 명성이 자자했으며, 조정에 나아가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있었다. 그는 순종(順宗)이 즉위한 뒤 왕숙문(王叔文) 등이 주도하는 정치개혁에 가담하였다가 혁신 정치가 실패하여 유주자사(柳州刺史)로 좌천되어 귀양살이를 하다가 47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유와 함께 고문부흥(古文復興)을 영도한 인물로서 ‘도를 밝힘[명도(明道)]’을 문학관(文學觀)의 강령으로 삼고 《봉건론(封建論)》《영주팔기(永州八記)》등을 저술하였다. 그의 정치 활동에 있어서도 ‘도(道)’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했다.만일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튼튼한 밧줄을 내려 주기는커녕 오히려 돌을 던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물에 빠진 사람은 생사(生死)의 기로(岐路)에 서 있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지만 돌을 던진다면 죽음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친구나 주위 사람들이 평온하고 안락한 생활을 할 때는 물론이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때, 더욱 구렁 속으로 밀어넣는 행동을 결코 해서는 안되며, 그 동안 쌓아 온 신뢰 속에서 온정의 손길을 뻗쳐야 한다.<두산백과>


■ 난공불락 難攻不落
[어려울 난/칠 공/아니 불/떨어질 락]

☞공격하기가 어려워 함락시키지 못함
[내용]
제갈공명은 위나라의 작은 성 진창성을 공격하자 진창성을 지키고 있던 학소는 휘하에 단 천명의 병력으로 성을 굳게 지켰다.

이에 감탄한 제갈공명은 이렇게 말했다 "학소가 지키는 진창성이 '난공불락'이로다 <삼국지>





[예문]
▷ 총수 차녀임에도 불구하고 1975년 동양제과 구매부 평사원으로 입사해 26년 만인 2000년 사장에 올랐을 만큼, ‘밑바닥’부터 다졌다. 때문에 실무감각이 강하고 판단력과 결단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다. 객관적 열세를 딛고,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CJ의 아성을 무너뜨린 작년의 쾌거가 이를 입증한다.<2006 한국일보>

▷ 이상민의 인기아성은 진정 난공불락의 철옹성인가?. 유부남’ 이상민(현대)이 결혼후에도 변함없는 인기를 과시하며 스포츠서 울이 제정하고 세계적인 스 포츠브랜드 나이키가 협찬하는 99∼2000 프로농구 ‘올해의 인기선수’ 중간집계에서 1위에 올랐다. <스포츠서울>

▷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천848m) 남쪽으로 3㎞ 떨어진 곳에 있는 로체 남벽은 80도에 이르는 경사도와 낙석, 강풍, 눈사태 위험 등으로 난공불락(難功不落)의 거벽으로 꼽힌다. <연합뉴스>

■ 난상가란 卵上加卵[알 란/위 상/더할 가/알 란]

☞알위에 알을 포갠다--정성이 지극하면 감천함
[출전]『醒睡稗說 성수패설』
[내용]한 벼슬아치가 귀양을 가게 되었다.아내에게 말했다."살아서 못돌아 올 것 같소.혹 알위에 알을 포갤 수 있다면 몰라도.."아내는 그 날부터 밤낮없이 계란 두 개를 소반위에 놓고서 포개지게 해 달라고 축원하였다.어느날 밤 임금이 미행을 하다가 축원하는 소리를 듣고 죄인을 풀어 주었다.
[유]지성감천[至誠感天]

■ 난의포식 暖衣飽食[따뜻할 난/옷 의/배부를 포/먹을 식]

'따뜻한 옷과 배부른 음식'이라고 풀이되며 생활에 부자유스러움이 없음을 뜻함
[유]호의호식(好衣好食)

[출전]『맹자(孟子) 』등문공상( 文公上)
[내용]등문공(騰文公)이 맹자에게 신하를 보내 정전법(井田法)에 대해 물었다.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의 군주께서는 인정을 베푸시고자 많은 신하 가운데 당신을 뽑아 내게  보내셨습니다. 그러니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십시오.

 대체로 인정(仁政)이라는것은 먼저 밭의 경계선을 명확히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경계가 확실치 않으면 아무리 정전법을 시행하여도 균형이 깨어지며 관리의 녹도 그것에 의해 정해지거나 불공평한 일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기에 폭군이나 탐관이 있는 곳은 경계가 불확실한 것이 특징입니다. 경계를 확실히 정해 두면 정확히 밭을 분할할 수가 있고, 농작물의 수확량을 기초로 녹(祿)을 결정하는 게 쉬워집니다." 맹자는 말한다. "인간의 생활이란 분업을 하는 것입니다. 원시적인 자급자족만으로는 나라의 기틀을 공고히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 묵자의 영향을 받은 허행이라는 이가 송나라로부터 등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  그는 거친 옷을 입고 자신이 지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 언젠가 그는 등문공에게 임금도 백성과 마찬가지로 손수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는 인물이었다.  "농기구나 그릇 등의 당장에 쓰지 않는 물건은 필요한 이웃의 쓰지 않은 물건과 바꾸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우 임금 같은 분은 여덟 해 동안 아홉 개의 큰 강을 막으셨으며 세 번이나 자신의 집 앞을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군왕과 선각자들이 강을 막고 농사 짓는 법을 가르쳐 주어 백성들이 따뜻한 옷을 입고 배불리 먹고 사는 것(暖衣飽食)이 아니겠습니까."

[원문]人之有道也 飽食煖衣 逸居而無敎 則近於禽獸 聖人有憂之

■ 난장(亂場)판[어지러울 란/마당 장]

☞여러 사람이 떠들거나 뒤엉켜 뒤죽박죽이 된 곳.

[내용] 옛날에는 관리로 등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를 거쳐야 했다. 그래서 과거를 볼 때가 되면 오로지 급제를 위해 수년동안 공부를 한 양반집 자제들이 전국 각지에서 시험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렇듯 수많은 선비들이 모여들어 질서없이 들끓고 떠들어대던 과거마당을 '난장이라고 했다. 과거 시험장의 난장에 빗대어 뒤죽박죽 얽혀서 정신 없이 된 상태를 일컬어 난장판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우리말 유래 사전 >

[참고] 난장(-場) : 시골에서 정한 장날 이외의 특별히 며칠간 터놓은 장, 한국의 장은 18세기 이후 농민의 농업생산에 필요한 미곡·농기구·면화·면포 등이 주요한 상품으로 등장하면서 발전하여, 19세기 초에는 전국적으로 1천 여 장이 설 정도로 크게 번성하였다. 그 과정에서 대개 5일 간격으로 열리는 5일장 체계가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5일장 외에도 특수지역 및 특수산물이 한꺼번에 많이 생산되는 지방에서는 난장이라는 부정기적인 장이 열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때 난장을 여는 것을 '난장을 튼다'라고 한다.

난장은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 동안만 열리는 정기적인 장과는 달리 때로는 물자가 생산되는, 또는 집하되는 기간에 따라 짧게는 10일, 길게는 2개월까지 열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우 외에도 마을의 흉액을 예방하려고 난장을 트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마을에 흉년·물난리·산사태·화재·호환(虎患)·돌림병 및 지방관의 죽음 등과 같은 흉액이 자주 일어나 마을이 폐촌될 위기에 처할 때 이를 예방하려고 난장을 튼다. 난장을 열어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면 그 기세로 마을의 흉액을 일으키는 나쁜 귀신을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밖에도 난장과 비슷한 형태로는 황해도 연평의 조기 파시(波市)와 같이 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시장인 파시, 처음에는 한 해에 봄·가을 두 차례씩 열렸으나 뒤에는 가을 한 차례만 열어 약재만을 다룬 약령시(藥令市)가 있다.

대규모 난장의 경우는 주로 예성강의 고량포, 남한강의 목계, 금강의 강경, 영산강의 영산포, 섬진강의 광양·하동, 낙동강의 초계밤말[草溪栗旨]·안동 등의 포구에서 열렸는데, 쌀·보리·콩 등의 곡물이 주종을 이루었고 그 지방의 주요 특산물이 함께 거래되었다.

이러한 난장에는 거래 물량이 많은 만큼 각지에서 여러 계층의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소비와 유흥적 낭비를 조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파렴치한 행위가 난무하는 폐해도 심하였다.

[예문]
▷ 그의 아파트에는 가구라고는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깨져 있고 먼지가 쌓여 있으며, 온통 난장판이다. 거실 한가운데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다. 그 위에는 원고, 책, 신문, 아내의 바느질거리에서 나온 찢어진 천 조각들, 이가 빠진 찻잔, 더러운 스푼, 칼, 포크, 양초, 잉크병, 유리컵, 파이프, 담뱃재들이 한 테이블 위에 뒤죽박죽으로 놓여 있다.” <2006한겨레--너무나 인간적인 마르크스>
▷ 난장판이 벌어지다
▷ 난장판을 벌이다
▷ 회의가 난장판이 되다
▷ 저녁상에서는 조무래기 애들 여덟이 떠들고 싸우고 울고 웃고 난장판을 쳤다.≪유진오, 구름 위의 만상≫ 

 

■ 난형난제 難兄難弟[어려울 난/맏 형/어려울 난/아우 제]

☞형이 낫다고 하기도 어렵고 아우가 낫다고 하기도 어렵다. 어느 편이 낫다고 우열을 가리기가 곤란할 때 쓴다.

[동]莫上莫下(막상막하)/伯仲之勢(백중지세)/互角之勢(호각지세:두 뿔(角)이 길이나 굵기에서 큰 차이가 없다/優劣難分(우열난분)/
[속담]콩이야 팥이야 한다.(네 콩이 크니 내 콩이 크니 한다.) /도토리 키재기/ 막동이 씨름하듯.(童角抵戱) /두꺼비 씨름 누가 질지 누가 이길지.

[출전]筍子 世說新語

 

[내용] : 후한(後漢) 말의 학자 진식(陳寔)은 덕망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그의 아들 진기(陳紀), 진심(陳諶)과 더불어 세군자로 불리어졌다. 진기의 아들 진군(陳群)도 역시 뛰어난 수재로 재상의 자리에 올랐었다. 진군이 어렸을 때 어느 날 진심의 아들 진충(陳忠)과 놀다가「서로 자기 아버지의 공적과 덕행을 논하였는데 서로 자기 아버지가 낫다고 하여 결말을 짓지 못하였다. 그래서 할아버지인 진식에게 물으니,“형이 낫다고 하기도 어렵고 아우가 낫다고 하기도 어렵구나.”라고 대답하였다.

[원문]各論其父功德하여 爭之不能決하여 咨于太丘하니 太丘曰 元方難爲兄하고 季方難爲弟니라.

 

[참고]

栗--이산해
一腹生三子하니     한 배에 자식 셋이 생겼으니
中者兩面平이라     가운데 놈은 두 볼이 평평하구나
秋來先後落하니     가을이 오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떨어지는데
難弟又難兄이라     아우라고 하기도 어렵고 또 형이라고 하기도 어렵네


[예문]올 시즌 프로야구 투수부문은 시즌 막판까지 난형난제의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일 것 같다. 22일 현재 다승·구원·방어율 등 투수부문은 절대강자가 보이지 않는 각팀의 혼전과 타고투저의 영향으로 투구내용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다. 그러나 각 팀이 선발요원 부족과 부상 등으로 선발 로테이션이 무너지면서 마구잡이식 투수기용이 잦아, 힘이 떨어지는 후반기로 갈수록 투수들의 성적은 가파른 하강세를 그릴 가능성이 높다. --<한겨레신문>에서

 

■ 남가지(일)몽 南柯之夢 .南柯一夢 [남녘 남/나뭇가지 가/어조사 지/꿈 몽]

☞남쪽 가지 밑에서 꾼 한 꿈. 꿈과 같이 헛된 한 때의 부귀영화. 일생과 부귀영화가 한날 꿈에 지나지 않는다.
[동]蟻夢(의몽) : 개미의 꿈.槐安夢(괴안몽) 一場春夢(일장춘몽) : 한바탕의 봄 꿈. 邯鄲之夢(한단지몽) : 한단의 꿈.(一炊之夢.邯鄲枕.黃粱夢 浮生若夢(부생약몽) : 뜬 인생이 꿈과 같다.白日夢(백일몽) : 한 낮에 꾸는 헛된 꿈

[출전]南柯記』異聞集(남가기 이문집) [내용]강남 양주 교외에 순우분이란 협객이 있었다. 그의 집 남쪽에 큰 느티나무가 있어 그 아래서 친 구들과 술을 마시며 어울리고 있었는데, 그 날도 친구들과 술을 마신 후 나무 그늘 아래서 잠이 들었다. 그 때 자줏빛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 "저희들은 괴안국(槐安國) 국왕의 사자인데, 당신을 모시고 오라는 명을 받들고 왔습니다" 하였다.

 순우분은 그들을 따라가서 국왕의 사위가 되고 남가군(南柯郡)의 태수가 되어 20년 동안 남가군을 다스려 태평성대를 이루니 왕도 그 소식 을 듣고 재상으로 삼았다. 재상이 된 지 얼마 안 되어 단라국의 군대가 침입을 해와 3만의 군대 로 용감히 싸웠으나, 패하여 많은 군사가 죽고 아내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낙담하여 관직을 사직하고 서울로 왔으나, 그의 명성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세력이 날로 커지자 괴안 국 왕은 불안을 느꼈다. "자네도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 되었으므로 한번 다녀오는 것이 어떤 가?" 왕이 순우분에게 물었다. "저희 집은 여기인데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자네는 원래 속세의 사람으로 여기는 자네의 집이 아니네." 그리하여 그는 왕의 사자를 따라 자신의 옛집으로 돌아오 게 되었다.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그는 느티나무 아래서 지금까지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일어나서 그가 꿈속에 들어갔던 늩나무 구멍을 살펴보니 그 속에는 성 모양을 한 개미집이 있었는데, 이것이 대괴안국이었던 것이다. 다시 구멍을 따라 남쪽으로 가니 또 하나의 개미집이 있었는데 이것이 남가군이었던 것이다. 그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의 덧없음을 깨닫고 도술(道 術)에만 전념하게 되었는데, 3년 후에 순우분도 세상을 떠났다. 바로 괴안국 왕과 약속한 3년 기한의 해였다.

[원문]生感南柯之浮虛 悟人生之 忍 遂棲心道門 節棄酒色 後三年 歲在丁丑 亦終於家 時年四十七 將符宿契之限矣

[속담]인생은 풀 끝 이슬. 만사가 모두 꿈 같다. 인생은 뿌리 없는 평초(萍草)

[예문]오랜 후에 비로소 제 몸이 연화 도량 성진 행자인 줄 알고 생각하니, 처음에 스승에게 수책하여 풍도로 가고, 인 세에 환도하여 양가의 아들되어 장원 급제 한림학사 하 고, 출장 입상하여 공명 신퇴하고, 양 공주와 육 낭자로 더 불어 즐기던 것이 다 하룻밤 꿈이라≪구운몽≫

[참고]

권주가『勸酒歌』

1. 불로초로 술을 빚어 만년배(萬年配)에 가득 부어 비나이다. 남산수(南山壽)를.
2. 약산 동대(藥山東臺) 어즈러진 바위 꽃을 꺾어 주(籌)를 노며 무궁무진 먹사이다.
3. 권군 종일 명정취(勸君終日酩酊醉) 하자. 주부도 유령분상토(酒不到劉伶墳上土)니 아니 취 (醉)코 무엇하리.
4. 백년을 가사인인수(可使人人壽)라도 우락(憂樂)을 중분미백년(中分未百年)을 살았을 때 잘 놉시다.
5. 명사십리(明沙十里)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워 마라. 명년 삼월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려 니와 가련하다 우리 인생 뿌리 없는 萍草라. 紅顔白髮이 절로 가 긴들 아니 늦거운가. . <歌詞,작자,연대 미상>

-->초로(草露)와 같은 허무한 인생을 탄식하고 천만 년 수부귀(壽富貴)를 누릴 것을 빌며 무궁무진 즐겨 보자는 것이다. 1·2·3·4절과 5·6·7·8·9·10절은 각각 같은 가락의 반복이다. 술잔을 권할 때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일정한 장단이 없이 마음대로 내뽑는 자유형이다. 춘면곡(春眠曲)이나 어부사(漁父詞)와 같이 4도 상행 종지법을 갖는다.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이백(李白)

夫天地者는 萬物之逆旅요 光陰者는 百代之過客이라.
부천지자    만물지역려    광음자   백대지과객
무릇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이다.

而浮生이 若夢하니 爲歡이 幾何오.
이부생    약몽      위환   기하
그런데, 덧없는 인생이 꿈과 같으니 즐거움을 누림이 얼마인가?

古人秉燭夜遊는 良有以也로다.
고인병촉야유    량유이야
옛 사람이 촛불을 잡고 밤놀이를 한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도다.

況陽春이 召我以煙景하고 大塊가 假我以文章이라.
황양춘   소아이연경       대괴    가아이문장
하물며 따뜻한 봄날은 안개 낀 경치로써 나를 부르고, 대지는 나에게 문장을 빌려주었음에랴.

會桃李之芳園하여 序天倫之樂事하니
회도리지방원      서천륜지락사
복숭아 꽃 오얏꽃 핀 향기로운 뜰에 모여 형제의 즐거운 일을 (글로) 펴니

群季俊秀하여 皆爲惠連이어늘
군계준수      개위혜련
여러 아우는 빼어나서 모두 혜련이 되었는데

吾人詠歌는 獨慙康樂이로다.
오인영가    독참강락
나의 영가는 홀로 강락에게 부끄럽구나.

幽賞이 未已에 高談이 轉淸이라.
유상    미이   고담    전청
그윽한 완상이 아직 끝나지 않아 고상한 이야기는 더욱 맑아지고

開瓊筵以坐花하고 飛羽觴而醉月하니
개경연이좌화       비우상이취월
옥같은 잔치를 벌여 꽃에 앉고 술잔을 날리며 달에 취하니

不有佳作이면 何伸雅懷리오.
비유가작       하신아회
좋은 시가 아니면 어찌 고상한 회포를 펴리요.

如詩不成이면 罰依金谷酒數하리라.
여시불성       벌의금곡주수
만약 시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벌은 금곡의 술잔 수에 따르리라. 

■ 남곽람우 南郭濫釪[남녘 남/성곽 곽/넘칠 람/피리 우]

☞남곽이 함부로 우(대나무로 만든 악기로 피리의 일종이다)를 분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능력이 있는 것처럼 속여 외람되이 높은 자리를 차지함.  

[출전]韓非子』 내저설 상편
[내용]제나라의 선왕이 사람을시켜 우를 불도록 할때는 반드시 3백명이 하도록 했다.  남곽이라는 처사도 왕을 위해 우를 불기를 원했다. 선왕은 그것을 기뻐하였으며, 이렇게 하여 수백 명이 쌀을 받게 되었다. 

선왕이 죽고 민왕이 즉위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연주하는 것을 듣기 좋아하였다. 그러자 처사는 달아났다.  일설에 한의 소후가 이런 말을 했다.  "우를 부는 자가 많으므로 나는 그들 가운데 뛰어난 자를 알지 못한다."  그러자 전엄이 대답하여 말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불도록 하여 들어 보시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

■ 남귤북지 南橘北枳[남녘 남/귤나무 귤/북녘 북/탱자 지]플래시 보기[즐거운 학교]

☞귤이 탱자가 됨.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강남에 심은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로 되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동]귤화위지 橘化爲枳

[출전]『안자춘추(晏子春秋)』
[내용] 춘추시대 말기, 제(齊)나라에 안영이란 유명한 재상이 있었다. 어느 해, 초(楚)나라 영왕(靈王)이 그를 초청했다. 안영이 너무 유명하니까 만나보고 싶은 욕망과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은 심술이 작용한 것이다. 수인사가 끝난 후 영왕이 입을 열었다."제(齊)나라에는 그렇게도 사람이 없소?" "사람이야 많이 있지요." "그렇다면 경과 같은 사람밖에 사신으로 보낼 수 없소?" 안영의 키가 너무 작은 것을 비웃는 영왕의 말이었다.

 그러나 안영은 태연하게 대꾸하였다.  "예, 저의 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臣)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뽑혀서 초나라로 왔습니다." 가는 방망이에 오는 홍두깨격의 대답이었다. 그때 마침 포리가 죄인을 끌고 지나갔다. "여봐라! 그 죄인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예, 제(齊)나라 사람이온데, 절도 죄인입니다." 초왕(楚王)은 안영에게 다시 물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하오?"하고 안영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안영은 초연한 태도로 말하는 것이었다. "
강남에 귤이 있는데 그것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고 마는 것은 토질 때문입니다. 제(齊)나라 사람이 제(齊)나라에 있을 때는 원래 도둑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랐는데 그가 초(楚)나라에 와서 도둑질한 것을 보면, 역시 초나라의 풍토 때문인 줄 압니다." 그 기지(機智)와 태연함에 초왕은 안영에게 사과를 했다. "애당초 선생을 욕보일 생각이었는데 결과는 과인이 욕을 당하게 되었구려."하고는 크게 잔치를 벌여 안영을 환대하는 한편 다시는 제나라를 넘볼 생각을 못했다.

[원문]王曰, 縛者曷爲者也. 對曰, 齊人也. 坐盜. 王視晏子曰, 齊人固善盜乎. 晏子避席對曰,  聞之, 橘生淮南, 則爲橘. 生于淮北, 則爲枳. 葉徒相似, 其實味不同. 所以然者何, 水士異也.今民生長于齊不盜, 入楚則盜, 得無楚之水士, 使民善盜耶. 王笑曰,聖人非所與熙也. 寡人反取病焉.

[예문]
▷ 전국에서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대전의 관광산업을 끌어올려보려는 계획으로 레일바이크 설치안이 거론된 것을 탓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단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이는 레일바이크도 자칫 ‘남귤북지(南橘北枳)’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 도입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2006 대전일보>

▷ 강남에 심은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기후와 풍토가 달라서 탱자가 된다는 이야기다.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도 된다. 이번 조사에서도 환경(인프라)의 차이로 인한 ’남귤북지’ 현상이 분명히 드러났다.<동아일보>

■ 남남북녀 南男北女 [남녘 남/사내 남/북녘 북/계집 녀]

☞우리나라는 남쪽엔 남자, 북쪽엔 여자가 더 잘난 사람이 많다

[예문]최근 남북 화해 분위기로 대규모 이산가족 상봉단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고 있다. 앞으로 북한이 개방되고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면 인민배우들도남한의 방송국에 출연할 수도 있으니 각 방송국의 PD는 반갑기만 하다. PD들은 “흑인들을 보면 보통 싱싱한 힘이 느껴지는 것처럼 북한 배우들도 ‘끼’가 흐른다”고 말한다. 아리따운 북한 여배우들을 텔레비전에서조만간 만난다면 ‘남남북녀’라는 말이 바로 현실이 된다.<일간스포츠>

■ 남부여대 男負女戴[사내 남/짐질 부/계집 녀/일 대]

☞남자는 짐을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집을 떠나 살곳을 찾아 떠돌아 다니는 형상.
[유]東家食西家宿 동가식서가숙 / 遊離乞食 유리걸식 / 遊離丐乞 유리개걸

[예문]
▷ 흥남철수 마지막날인 12월24일 LST에 탄 이상준(74·인천)씨는 『배에 겨우 올라탔다가 밀려서 떨어지는 사람, 항구에 남은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며 바다에 투신하는 부모도 있었다』며 『흥남철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전쟁이요, 비극이었다』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진행된 평양 철수도 육지에서의 아비규환이었다. 영하 20∼30도의 혹한, 30∼40㎝씩 쌓인 눈길에서 남부여대의 피란행렬이 수십리씩 줄을 이었다. <조선일보>

▷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는 이 두 사람의 문답 외에 도선(道詵)·무학(無學)·토정(土亭)·격암(格庵) 등의 예언집도 있다. 이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은 1785년(정조 9) 홍복영(洪福榮)의 옥사사건 기록에서 나온다. 우매한 백성들이 이 책의 예언에 따라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피난처를 찾아 나서는 웃지 못할 희극을 수없이 연출시킨 것은 이 《정감록》의 악폐였다

▷ 백성은 가산집물을 다 탕진하고, 부모처자가 산지사방으로 흩어져서 유리개걸을 하면서 부황이 나서 텅텅 굶어 죽는 이 판에….≪박종화, 임진왜란≫

▷ 근기의 백성들은 정든 고향, 살기 좋은 낙토를 떠나 하루아침에 유리개걸하는 발가벗은 비렁뱅이가 되었다.≪박종화, 금삼의 피≫  

▷ 괜한 소리 그만둡시다. 유리개걸하는 뜨내기가 교향은 자꾸 되씹어 뭘 하겠소? 언제쯤이건 고향 아닌 되 땅에 나가서 농사나 짓고 살아야겠지요. 난 고향에서 쫒겨난 놈이오≪김주영, 객주≫

■남상 濫觴 [넘칠 람/술잔 상]

☞무슨 일의 시초나 근원이 되는 것
[동]嚆矢(효시):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내어 우는 화살 權輿(권여):저울대와 수레바탕(저울과 수레의 기초)

[출전] 『논어』『筍子』『孔子家語
[내용1]공자의 제자에 子路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공자에게 사랑도 가장 많이 받았지만 꾸중도 누구보다 많이 듣던 제자였다. 어쨌든 그는 성질이 용맹하고 행동이 거친 탓에 무엇을 하든 남의 눈에 잘 띄었다.
어느 날 자로가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나자 공자는 말했다.
"양자강(揚子江 : 長江)은 사천(泗川)땅 깊숙히 자리한 민산(岷山)에서 흘러내리는 큰 강 이다. 그러나 그 근원은 '겨우 술잔에 넘칠 정도[濫觴]'로 적은 양의 물이었다. 그런데 그 것이 하류로 내려오면 물의 양도 많아지고 흐름도 빨라져서 배를 타지 않고는 강을 건널 수가 없고,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배조차 띄울 수 없게 된다. 이는 모두 물의 양이 많아 졌기 때문이니라."
공자는 모든 일은 시초가 중요하며 시초가 나쁘면 갈수록 더 심해진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 했던 것이다. 공자의 이 이야기를 들은 자로(子路)는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옷을 갈 아 입었다고 한다.

[내용2]子路가 옷을 잘 차려입고 孔子님을 뵈었다. 그러자 孔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由야, 이 옷자락은 무엇이냐? 옛날에 강은 민산(岷山)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그 처음에 나옴에 그 근원은 가히 써 술잔에 넘칠 만하였다. 그러나 그 강의 나루에 이르러서는, 배 를 늘어놓지 못하고 바람을 피하지 못하여, 건너지 못 하였다. 오직 下流에 물이 많음이 아니겠느냐? 지금 너도 의복을 이미 盛하게 차려 입고 얼굴빛이 충만되었구나. 천하에 장차 누가 즐겨 너에게 간하랴!"
공자의 제자에 자로(子路)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공자에게 사랑도 가장 많이 받았지만 꾸중도 누구보다 많이 듣던 제자였다. 어쨌든 그는 성질이 용맹하고 행동이 거친 탓에 무엇을 하든 남의 눈에 잘 띄었다.

■ 남선북마 南船北馬 [남녘 남/배 선/북녘 북/말 마]

☞중국의 남쪽은 강이 많아 배를 타고 다니고, 북쪽은 들이 넓어 말을 타고 다닌다 함이니, 사방으로 바쁘게 돌아다닌다.

[예문]
▷ 양자강은 황하와 더불어 중국의 2대 강이자 중국 최대의 강이기도 하다. 양자강의 상류는 금사강(金沙江)이고, 그 원류는 통천하(通天河)이다. 길이가 약5,800km에 달하는 이 강은 예로부터 남선북마라 하여 중국의 수운에 널리 활용되었다.

▷ ‘역사인물과 만해’ 테마에서는 만해가 망국의 상황 속에서 을 지문덕·이순신 장군을 기리며 쓴 ‘이순신 사공삼고 을지문덕 마부삼아 파사검(破邪劍) 높이들고 남선북마(南船北馬) 하여 볼 까…’라는 무명시 육필원고가 처음 공개되며, 만해가 생전에 읽 었던 흠흠신서와 임진일록, 포은집 등도 선뵌다.<2006 문화일보--60인이 풀어헤친 만해와의 인연>

▷ 강둑에는 고삐도 없는 수십 필의 말들이 가랑비에도 아랑곳 않은 채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검은색 갈색 흰색으로 야생마처럼 튼튼해 보였다. 어미 말 틈에서 앙증스럽게 풀을 뜯는 망아지가 무척 귀여웠다. 하긴 어린 것 치고 귀엽지 않는 게 어디 있으랴.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남선북마(南船北馬)’라고 하더니 동북 삼성 일대에서는 가는 곳마다 말들이 지천이었다.<2003 오마이뉴스--하얼빈 가는길>

■ 남원북철 南轅北轍 [남녁 남/수레바퀴 원/북녘 북/수레바퀴 철]

☞수레의 긴 채는 남쪽으로 가고 바퀴는 북쪽으로 간다는 말로, 행동이 마음과 일치하지 않는것을 가리킨다

[내용]전국시대 위나라 왕이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때마침 여행을 하고 있던 신하 계량이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왓다. 그는 왕을 뵙고 말했다. "저는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북쪽을 향해 마차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남방의 초나라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나라로 간다면서 북쪽으로 가는 까닭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제 말은 아주 잘 달립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이 잘 달려도 이쪽은 초나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라고 하자, 그 사람은 '나는 돈을 넉넉히 가지고 있고, 마부가 마차를 모는 기술은 훌륭합니다.'라고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왕께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의 행동은 초나라와 더욱 멀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계량은 말을 잠시 멈추더니 다시 말했다. "왕께서는 항상 패왕이 되어 천하가 복종하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왕께서는 나라가 조금 큰 것만을 믿고 한단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왕의 영토와 명성은 떨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왕의 목표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제가 만난 사람처럼 초나라로 간다고 하면서 마차를 북쪽으로 몰고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무력이 아니고 仁德으로 천하를 제패할 것을 말한 것이다.

■ 남존여비 男尊女卑 [사내 남/높을 존/계집 녀/낮을 비]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다'라고 풀이되며, 남성을 존중하고 여성을 비하, 경시하는 일을 뜻함
[출전]『열자(列子) 』천서편(天瑞篇)
[내용]공자가 태산에서 노닐다가 영계기가 성땅의 들을 지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남루한 갖옷에 새끼로 허리를 두르고는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공자가  묻기를 "선생께서 즐거워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하니, 영계기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즐거움이 매우 많습니다. 하늘이 만물을 나게 함에 오직 사람만을 귀하게  하였는데 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 그것이 첫 번째 즐거움입니다. 남녀의 구별은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게 여기는데 나는 이미 남자의 몸을 얻었으니, 그것이 두 번째  즐거움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강보에 쌓인 채 해와 달을 못보고 죽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이미 아흔 살이니, 그것이 세 번째 즐거움입니다.

 가난한 것은 선비에게 늘 있는 일이요, 죽는 것은 인생의 끝입니다. 평범한 상태에서 처하다 죽음을 얻는 것이니 마땅히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공자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좋은 말이다. 능히 스스로 깨달아 여유를 지닌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원문]孔子遊於太山,見榮啓期行乎 之野,鹿 帶索,  鼓琴而歌. 孔子問曰:"先生所以樂,何也?"對曰:"吾樂甚多. 天生萬物,唯人爲貴. 而吾得爲人,是一樂也. 男女之別,男尊女卑,故以男爲貴,吾旣得爲男矣,是二樂也. 人生有不見日月不免襁褓者,吾旣已行年九十矣,是三樂也. 貧者士之常也, 死者人之終也,處常得終,當何憂哉?"孔子曰:"善乎?能自寬者也."

[예문]세계를 하나로 하며, 계급 차별을 없애 민족을 평등하게 하고, 인종 구분을 없애 인류를 하나로 만든다. 나아가 남존여비 사상을 없애 독립을 보존하며, 가정의 경계 또한 없애고 모든 사람을 천민(天民)이 되도록 한다. <2006 연합뉴스>

■ 낭자야심 狼子野心[이리 랑/새끼 자/들 야/마음 심]

 

☞늑대 새끼는 작아도 흉포한 성질이 있어 길들이기가 어렵다. 흉포한 사람의 마음은 교화하기 힘들다 

[출전]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
[내용]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투자문(鬪子文)은 약오(若敖)씨의 후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태어난 직후 들에 버려졌는데 호랑이가 주워다가 길렀다고 한다. 나중에 그를 발견한 사람이 "이 아이에게는 복이 있다"며 데리고 갔다.  투자문은 뒤에 초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사람 됨됨이가 공정하며, 법 집행도 엄정 공명했다. 

한 번은 그의 친척이 법을 어긴 일이 있었으나 담당 관원이 체면을 생각하여 그를 석방했다. 그것을 안 투자문은 즉시 담당 관원에게 말했다.  "국가가 법률을 만들고 담당 기관을 설치했는데, 법 집행자가 법을 무시하고 죄인을 석방하면 안 된다. 비록 나의 일가붙이일지라도."  그리고 그를 넘겨 주어, 공평한 심리를 하든가 아니면 자해를 시키든가 하라고 명하여 백성의 비난을 피하려고 했다. 그래서 담당 관원은 그 사람을 법에 따라 처벌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초나라의 성왕(成王)은 즉시 그의 집을 찾아가서 경의를 표했다. 초나라 백성들도 그 말을 듣고 저마다 말했다.  "모두가 투자문 같다면, 초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무엇을 걱정하랴."  투자문의 아우로 병부상서 자량(子良)의 아들 월초(越椒)를 보러 간 투자문이 말했다.  "저 애를 어서 죽여라. 자라서 틀림없이 우리 약오씨에 화를 가져 올 것이다. '낭자야심(狼子野心)'대로다."  그러나 자량은 아들을 죽이지 않았다. 걱정한 투자문은 죽는 자리에서 가족에게 유언했다.  "월초가 권력을 장악하거든 도망쳐라." 

그는 장래에 월초가 일족을 수중에 넣고 전멸시킬 것을 염려했다. 그가 죽은 뒤에 아들 반(般)이 재상이 되고, 월초도 아버지의 대신하여 병부상서가 되었다.  기원전 626년에 성왕의 아들 상신(商臣)은 부왕을 시해하고 왕이 되어 목왕 (穆王)이라 칭했다. 반은 알고 있었으나 발설하지 않았다.  월초는 이 기회에 재상 자리를 빼앗으려고 목왕에게 반을 중상했다. 목왕은 월초와 위가(爲賈)의 말을 믿고, 반을 죽이고 월초를 재상에, 위가를 병부상서에 각각 발탁했다. 

월초는 20년간 재상직을 보았다. 그 사이에 목왕은 죽고 장왕(莊王)이 즉위했다. 그는 장왕을 내심 경멸하면서도 왕이 위가를 중용하여 그의 권력을 삭감하려는 것을 원망하여 모반을 꾀하였다.  월초는 장왕이 외국으로 원정 나간 틈을 타 약오씨 일족을 이끌고 위가를 습격하여 그를 체포하여 죽여 버렸다.  그것을 안 장왕은 투씨의 역대 공적을 생각하여 월초에게 사죄시켜 사태를 수숩하려고 월초의 아들을 인질로 내놓으라고 제의했으나 그는 거부했다. 

다음 해 7월경, 월초와 장왕 양군이 교전하여 장왕은 약오씨의 일족을 몰살시켜 버렸다.  월초의 '낭자야심(狼子野心)'은 마침내 여기까지 발전하여 투자문이 염려한 대로 약오씨에게 큰 재난을 가져다 주었다. 

[예문]북의 변함 없는 낭자야심(狼子野心)을 바로 알고 빗나간 대북정책을 재고해야 한다(장일 자민련 부대변인, 13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연기한것은 북한이 이리와 같은 엉큼한 심보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며).<2001 동아일보>

■ 낭중지추 囊中之錐 [주머니 낭/가운데 중/어조사 지/송곳 추]

☞주머니 속의 송곳.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남의 눈에 드러나게 된다. 또는 아무리 감추려 하나 숨겨지지 아니하고 저절로 드러나 善惡을 가리게 된다.
[동]錐囊(추낭). 추처낭중(錐處囊中)이 원어(原語)이다.[속담]주머니 속에 들어간 송곳이라.
[출전]史記』-平原君傳
[내용] : 趙나라의 평원군(平原君)은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어느날 秦나라의 공격을 받아 수도 한단(邯鄲)이 포위되었다. 그래서 楚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식객 중 지용(智勇)을 겸비한 사람 20명을 뽑아 동행하고자 했지만 한 사람이 부족했다. 그 때 모수가 자천(毛遂自薦)하자,「평원군이“대저 현명한 선비가 세상을 대처함은 비유컨데 송곳이 주머니 속에 처하여 그 끝이 보이는 것과 같다. 지금 선생이 내 집에 들어와서 여기에서 3년이 되었다. 내가 들은바가 없으니 이것은 선생이 가진 재주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자 모수가“오늘 처음으로 주머니 속에 넣어 달라는 것입니다. 일찍 주머니 속에 넣어 주셨더리면 송곳자루까지 나와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원문]平原君曰“夫賢士之處世也는 譬若錐之處囊中하여 其末立見이라. 今先生이 處勝之門下하여 三年於此矣라 勝 未有所聞하니 是先生無所有也라.”毛遂曰“臣乃今日請處囊中耳니이다. 使遂蚤得處囊中하니 乃穎脫而出하니 非特其末見而耳니다.”
** 譬(비유할 비) 蚤(일찍 조) 穎(고리, 이삭, 빼어날 영)

[예문]투자자의 예탁자산에 근거해 투자전략과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주는 "자산종합관리계좌제도"가 조만간 도입되면 증권사들은 명실상부한 투자은행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기관간의 업무영역 파괴와 금융권 구조조정이 맞물리면서 증권업이 낭중지추의 저력을 발휘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 본다.<한국경제>

■ 낭중취물 囊中取物[주머니 낭/가운데 중/취할 취/만물 물]

☞주머니 속에 든 것을 꺼내 가지는 것과 같이 아주 손 쉽게 얻을 수 있다.
[속담]식은 죽 먹기. 누워 떡 먹기

[예문]
▷ 듣자오니 특재라 하는 자객이 있어 사람 죽임을 낭중취물같이 한다 하오니 천금을 주어 밤에 들어가 해하오면 상공이 알으시나 할 길 없사오리니 부인은 재삼 생각하소서≪洪吉童傳≫

▷ 비자금고발사건을 수사하지 않겠다는 검찰의 발표에 『모처럼 잘한 일』이라며 한시름 놓았던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 그와 김종필 자민련 후보는 헌법과 권력구조를 낭중취물(囊中取物)하듯이 후보단일화의 담보로 설정했다.<경향신문>

■ 낭패 狼狽[이리 랑/이리 패]

☞계획한 일이 실패로 돌아가거나 기대에 어긋나 매우 딱하게 됨.궁지에 빠짐 
[동]낭패불감狼狽不堪, 진퇴유곡 進退兩難, 진퇴양난 進退惟谷, dilemma
[출전]後漢書』 李固傳 /〈진정표(陳情表)〉
[내용1]'낭패'라는 말은 우리의 일상 생활 중에 자주 쓰이는 말이다. 어떤 일을 도모했을 때 잘 풀리지 않아 처지가 고약하게 꼬이는 경우에 사용한다.  '낭'이나 '패'나 한결같이 개사슴록(犬)변으로 이뤄졌다. 한자에서 犬변이 들어 있는 글자는 모두 동물이거나 또는 동물의 특성을 함축한 글자다. 

예를 들면 여우 호(弧), 개 구(狗), 삵쾡이 리(狸), 돼지 저(猪), 고양이 묘(猫) 등등이다.  물론 낭(狼)과 패(狽)도 마찬가지다. 낭패는 전설상의 동물이다. 낭(狼)은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 두 개가 없거나 아주 짧다. 그런가 하면 패(狽)는 앞다리 두 개가 없거나 짧다. 낭은 패가 없으면 서지 못하고, 패는 낭이 없으면 걷지 못하므로 반드시 함께 행동해야만 한다. 그런 이유로 두 녀석이 걸으려면 어지간히 사이가 좋지 않고서는 넘어지기 일쑤다. 

이 두 녀석의 성품을 분석해 보면, 낭은 성질이 흉포하지만 지모(智謀)가 부족하다. 반대로 패는 순한 듯 싶은데도 지모가 뛰어나다.  그래서 함께 먹이를 찾으러 나갈 때엔 패의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도 마음이 바뀌면 문제가 생긴다. 서로 고집을 피우면 움직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꼼짝없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간사하고 꾀가 많다는 뜻의 교활(狡猾)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 역시 개사슴록 (犬)변이다. 교(狡)나 활(猾)은 모두 동물 이름이다. 물론 실존하는 것은 아니며 전설상의 동물이다. 

[내용2]진(晉)나라의 정치가 이밀(李密)이 쓴 〈진정표(陳情表)〉라는 글에 나온다. 이밀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나 촉한(蜀漢)의 관리가 되었다. 촉한이 멸망하자, 진무제(秦武帝) 사마염(司馬炎)은 그를 태자세마(太子洗馬)로 임명하려고 했으나, 번번이 거절하였다. 그렇지만 사마염의 요청은 끊이지 않았고 이밀은 더 이상 거절할 방법이 없자 자신의 처지를 글로 써서 올리기로 하였다.

《문선(文選)》〈이밀(李密) 진정표(陳情表)〉에 있는 글 중에서 일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저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자애로운 부친을 여의었고, 네 살 때 어머니는 외삼촌의 권유로 개가를 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저를 불쌍히 여겨 직접 길러 주셨습니다. 저의 집에는 다른 형제가 없으며, 큰 아버지나 작은 아버지도 없어 의지할 곳이 없어 쓸쓸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할머니께서 연로(年老)하시니 제가 없으면 누가 할머니의 여생을 돌봐 드리겠습니까? 그렇지만 제가 관직을 받지 않으면 이 또한 폐하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되니, 오늘 신의 처지는 정말로 낭패스럽습니다[臣之進退 實爲狼狽(신지진퇴 실위낭패)].”

이밀은 지극한 효성으로 할머니를 모셔 왔다는 점을 말하면서 자신의 관직까지 포기해야 할 정도라는 것이다. 이밀의 간곡한 요청은 결국 받아들여졌다. 여기서, ‘낭패불감’은 ‘낭패스럽다’는 난감한 처지에 유래한 말이다.<두산백과>

[참고]교(狡)는 옥산(玉山)에 살며 개와 같지만 표범 무늬를 하고 있다. 머리에는 쇠뿔을 달고 있으니 그 형상이 괴이하다. 울음소리 역시 개와 비슷하다고 적혀 있다. 한가지 특별한 것은 이놈이 나타나면 그해엔 여지없이 풍작이다. 그런 점에서 교는 길조이며 어느 누구나 반긴다. 

교(狡)의 주변에는 활(猾)이 있다. 이놈은 아주 간악하다. 사는 곳은 요광산 (堯光山)인데 몸뚱이에는 돼지털이 나 있으며 동굴 안에서 겨울잠을 잔다. 한소리 기합을 지르듯 울어대면 온 천하가 큰 혼란에 빠져 버린다. 사람들은 모두 흉조의 상징이기 때문에 활을 두려워 한다. 

교(狡)나 활(猾)은 산 속에서 호랑이 같은 맹수를 만나면 스스로의 몸을 구부려 공처럼 만들어 버린다.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삼키려 들면 재빨리 입안으로 들어가 내장으로 굴러가 그것을 파먹는다. 배가 아파 호랑이가 날뛰면 맘껏 내장을 뜯어 먹는다. 그리고 호랑이가 죽으면 그제야 유유히 뱃속에서 빠져 나온다. 

망설여 결행하지 못하는 뜻의 유예(猶豫)라는 말도 동물에서 나왔다. 유(猶)는 의심이 많은 동물이다. 이놈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나무 위로 숨어 버린다. 유의 본래 뜻은 원숭이다. 예(豫)는 상(象)자가 있으므로 코끼리다. 아마 지금의 큰 코끼리보다 더 커서 매우 동작이 느렸을 것이다 (『산해경』)

[예문]
▷ 벌써 기차가 떠났다니, 이것 참 낭패로군.
▷ 또식이가 낭패가 났다는 듯 울상이 되어 말했다.≪김원일, 불의 제전≫
▷ 곡식을 가득 실은 마바리를 잃어버렸다면 실로 이만저만한 낭패가 아니었다.≪문순태, 타오르는 강≫
▷ 낭패를 당하다.
▷ 매사란 순리대로 해야지 무리로 하다가는 이런 낭패를 보는 게거든.≪이기영, 신개지≫
▷ 하루 동안 늦어서 설마 낭패되겠소.≪홍명희, 임꺽정≫
▷ 낭패하여 어쩔 줄 모르다 ▷ 연개소문 장군은 조금 낭패하였으나 그다지 얼굴빛도 변하지 않고 계속하여 현장을 달랜다.≪홍효민, 신라 통일≫ 

■ 내강외유 內剛外柔[안 내/굳셀 강/바깥 외/부드러울 유]

☞겉으로 보기에는 유순하지만 속마음은 단단하고 굳셈.
[동]外柔內剛(외유내강)[반]內柔外剛(내유외강)

■ 내우외환 內憂外患 [안 내/근심할 우/바깥 외/근심 환]

☞나라 안에도 근심스런 문제가 있고 나라 밖으로부터도 외적이 쳐들어 오는 불안전한 시국.
[출전]『晉語』
[내용]춘추시대 중엽에 강대한 초나라와 진나라가 대립한 시대가 있었다. B·C. 575년에 진나라와 초나라의 두 군대는 언능에서 마주쳤다. 당시에 진나라의 내부에서는 극씨, 낙씨, 범씨 등의 대부들이 정치를 좌우할 만큼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보다 앞서 낙서는 진나라에 항거한 정나라를 치기 위하여 동원령을 내리고 스스로 중군의 장군이 되고 범문자는 부장군이 되었지만, 진나라와 초나라의 두 군대가 충돌하자 낙씨는 초나라와 싸울 것을 주장했다. 범문자는 이에 반대하여  제후로 있는 사람이 반란하면 이것을 토벌하고 공격당하면 이를 구원하여 나라는 이로써 혼란해진다.

 제후는 어려움의 근본이라고 지적하여 말했다. "그 위에 성인이라면 안으로부터의 근심도, 밖으로부터의 재난도 지니지 않고  견디지만(唯聖人耳 能無外患 又無內憂) 우리들에게는 밖으로부터의 재난이 없으면,  반드시 안으로부터 일어나는 근심이 있다. 초나라와 정나라는 잠시 놓아두고서  밖으로부터의 근심을 내버려 두지 않겠는가?"하고 말한 것이다. 내우외환은 여기서  유래했다.

[원문] 晉伐鄭, 荊救之. 大夫欲戰, 范文子不欲, 曰 "吾聞之, 君人者刑其民成, 而後振武於外, 是以內和而外威.  今吾司寇之刀鋸日弊, 而斧鉞不行, 內猶有不刑, 而 外乎? 夫戰, 刑也,  刑之過也. 過由大, 而怨由細, 故以惠誅怨, 以忍去過. 細無怨而大不過,  而後可以武, 刑外之不服者. 今吾刑外乎大人, 而忍於小民, 將誰行武? 武不行而勝, 幸也. 幸以爲政, 必有內憂. 且唯聖人能無外患, 又無內憂,  非聖人, 必偏而後可. 偏而在外, 猶可救也, 疾自中起, 是難.  姑釋荊與鄭以爲外患乎?"

[예문]하마스 정부의 창설과 함께 유럽의 원조를 비롯한 모든 외국 원조가 중단되었다. 하마스 정부 고사 작전은 하마스 정부 출범과 동시에 경제 지원 중단을 통한 국제적인 연대로 이루어졌고, 이스라엘을 비롯한 외세의 압력에 파타가 가세했다. 이 상황에서 공무원들과 공립학교 선생들은 체불된 임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9월 1일부터 현재까지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서 모든 관공서는 문을 닫고, 공립학교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이 파업은 파타가 주도한다고 알려져 있다.이렇게 내우외환에 직면한 하마스 정부는 더 이상 지탱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2006 프레시안>

■ 노당익장 老當益壯[늙을 로/마땅히 당/더욱 익/씩씩할 장]

☞늙었어도 기운이 더욱 씩씩함/늙어서는 뜻과 기백을 더욱 굳세게 지녀야 한다는 뜻,나이가 들었어도 결코 젊은이다운 패기가 변하지 않고 오히려 굳건함을 형용하는 말이다.
[동]老益壯 플래쉬 보기[출처:전국한문교과모임]

[출전]後漢書』마원전(馬援傳)
[내용]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명장 마원(馬援)은 어려서부터 큰뜻을 품고 글을 배우고 예절을 익혔으며 무예에도 정통하여, 그의 맏형 마황(馬況)은 그를 대기만성(大器晩成)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의 형이 젊은 나이로 죽자 마원은 상례(喪禮)를 정중히 모셔 치른 후 예를 다하여 형수를 받들었다.

그 뒤 마원이 부풍군(扶風郡) 독우관(督郵官:감찰관)이란 벼슬에 있을 때 명을 받들어 많은 죄수들을 압송하게 되었다. 그러나 도중에 죄수들이 고통에 못 이겨 애통하게 부르짖는 것을 보고는 동정심이 우러난 나머지 모두 풀어주어 제각기 제 살길을 찾아가도록 하고 자신도 북방으로 달아났다.

마원은 북방으로 가서 소·말·양 따위를 놓아 먹이면서 지냈다. 부지런하고 수완이 좋은 그는 수년간 정성껏 가축을 길러 그 규모가 수천 두까지 이르렀다. 생활이 윤택해지고 많은 돈을 벌게 되자 가까운 친구나 이웃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었고, 자기는 오히려 떨어진 양가죽 옷을 걸치고 소박한 식사를 하는 등 근검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항시 친구에게 말하였다. “대장부라는 자는 뜻을 품었으면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며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대장부위자 궁당익견 노당익장)].” 그리고 또 “가멸지더라도 사람에게 베풀지 않으면 수전노(守錢奴)일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세상이 혼란스럽게 되자, 마원은 평범한 삶을 버리고 농서(西)의 외효() 밑으로 들어가 대장이 되었다. 외효는 공손술(公孫述)과 손을 잡기 위해 마원을 그곳으로 파견하였다. 마원은 공손술의 오만(傲慢)한 행동에 크게 실망하고 의례적인 인사만을 하고는 곧장 돌아왔다.

그 후 마원은 광무제를 만나게 된다. 광무제는 마원을 만나자 예절을 다해 대접하였으며, 각 부서를 데리고 다니며 조언할 말이 있는지 물었다. 마원은 이러한 후한 대접에 감동되어 외효에게 돌아가지 않고 광무제의 휘하(麾下)에 있기로 결심하였다. 광무제는 마원을 복파장군(僕波將軍)에 임명하여 남방의 교지(交趾:越南 북부)를 평정하게 하여 성공한다.

얼마 후, 동정호(洞庭湖) 일대의 만족(蠻族)이 반란을 일으키자, 광무제가 군대를 파견하였으나 전멸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마원이 자신에게 군대를 달라고 청하며 나섰다. 광무제는 그가 너무 늙었으므로 주저하자 마원이 말하기로 “소신(小臣)의 나이 비록 예순두 살이나 갑옷을 입고 말도 탈 수 있으니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하고는 말에 안장을 채우고 훌쩍 뛰어올랐다. 광무제는 미소를 지으며, “확삭하도다, 옹은(확삭재시옹야).”이라며 출정(出征)을 허락하였다. 결국 마원은 군대를 이끌고 정벌길에 올랐다. 그 후 대장군으로 임명되어 반란을 평정하고 흉노(匈奴) 토벌에 큰 공을 세움으로써 그의 형이 말한 대로 대기만성을 이루었다.

[원문]常謂賓客曰: 丈夫爲志, 窮當益堅, 老當益壯.

[예문]최고령 출전 선수는 카메룬의 쟈케 송고. 만 37세인 송고는 스페인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뛰면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카메니와 송고는 무려 20년의 나이 차이가 난다. 한국은 ‘왼발의 달인’ 하석주가 만 33세로 가장 나이가 많다 <스포츠투데이>.

■ 노류장화 路柳墻花[길 로/버들 류/담 장/꽃 화]

☞길가의 버들과 담 밑의 꽃은 누구든지 쉽게 만지고 꺾을 수 있다는 뜻에서 기생을 말함.
[예문]
노류장화(路柳墻花)가 수절이란 말이 괴이하다. 요망한 말 말고 오늘부터 수청 거행하라.』 춘향이 여쭈오되, 『만 번 죽어도 봉행(奉行)치 못하리로소이다.』 신관이 대로하여 춘향을 결박하여 형틀에 앉힌 후 집장(執杖) 분부하여, 『대매에 허락하도록 치라.』 <춘향전>

노류장화는 인개가절이라 무심한 저 달이 구름 밖에 나더니 공연한 심사를 산란케 한다. 눈 속의 푸른 솔은 장부기상이요 학두루미 울고 가니 절세명승이라 이골 물이 콰콸콸 녹수가 변하면 변했지 양인의 정리야 변할소냐. 이화도화 만발하고 행화방초 흩날인다.<양산도타령>

노류장화몸이 되니, 차라리 다 떨치고 산중으로 들어가서 세상번뇌를 잊어 볼까. 창문을 닫쳐도 숨어드는 달빛 마음을 달래도 파고드는 사랑 사랑이 달빛이냐 달빛이 사랑이냐, 텅 비인 내가슴엔 사랑만 가득 쌓였구나. 사랑사랑 사랑이라니 사랑이란게 무엇이냐<창부타령>

■ 노마지지 老馬之智[늙을 로/말 마/어조사 지/지혜 지]

☞늙은 말의 지혜. 연륜이 깊으면 나름의 장점과 특기가 있음.
[출전]韓非子』, 說林上
[내용] :관중과 습붕이 환공을 따라 고죽국을 칠 때 봄에 가서 겨울에 돌아오다가 미혹되어 길을 잃었다. 관중이 가로되“늙은 말의 지혜를 이용할 만하다”하고 곧 늙은 말을 풀어 그 말을 따랐다.

또한 산중을 진군하고 있을 때 물이 없어 갈증이 나자 습붕이“개미는 겨울이면 남쪽에 살고 여름이면 산의 북쪽에 사는 것이므로 개미집의 높이가 한 치라면 그 지하 여덟 자를 파면 물이 있다.”고 말하여 파보니 과연 물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미물도 뛰어난 장점이 있듯이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반드시 뛰어난 점이 있어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하여 할 일을 부여한다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원문][管中濕朋이 從於桓公하여 而伐孤竹할새 春往冬反이라가 迷惑失道하다. 管中曰 老馬之智를 可用也라하고 乃放老馬하여 而隨之하다.]

** 管(대통 관) 濕(진펄 습) 迷(어두울 미) 惑(미혹될 혹) 放(놓을 방)

[예문]얼마전 검찰 인사에서 사시 11회가 고검장급으로 승진됨에 따라 같은 기수 가운데 승진하지 못한 사람들의 사표를 종용하는 분위기를 담은 기사가 각 일간지에 실렸다. 뿐만 아니라 사표 낼 사람 이 사표를 내지 않아 인사가 늦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물론 지휘체계를 살리기 위해 생겨난 관행이겠지만 동기생 한 사람이 상관으로 승진했다고 해서 다른 여러 사람들이 그 자리서 물러 나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관행이 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에 자리 잡는다면, 예컨대 30대 과장 밑에 40대 계장은 반드 시 나가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명예퇴직이니 어쩌니 해서 젊은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지식(知識)과 지혜(智慧)는 다르다. 지(知)에 오랜 경험의 세월(日)이 쌓여 지혜의 지(智)가 된다. 영어 단어를 많이 아는 것과 그쪽 문화를 아는 것은 다르다. 노마지지(老馬之智)의 교훈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응수(소설가)의 『고사산책』에서

■ 노발대발 怒發大發 [성낼 노/필 발/큰 대/필 발]

'화를 내고 크게 냄'이라고 풀이되며 크게 화를 내는 것을 뜻함
[출전]『사기(史記)』 인상여전(藺相如傳)
[내용]사기열전 인상여전에는 당시 최고의 보물이던 '화씨의 구슬(和氏之璧)'에 얽힌 조나라 사람 인상여와 진나라 왕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당시 '화씨의 구슬'은 조(趙)나라에서 보관하고 있었는데, 워낙 귀한 물건이라  탐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진(秦)나라 왕은 나라가 강한 것을 믿고 구슬을  빼앗으려 작정하고 구슬을 진나라의 15개성과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사실은 구슬만 빼앗으려는 거짓 제안이었다. 조나라는 이를 간파했지만 강한 진나라의 제안을 무조건 거절할 수도 없는 곤란한 지경이었다. 이때 조나라의 인상여가 진나라에 사신으로 간다. 인상여가 진나라로 가서 왕에게 구슬을 바쳤으나 왕은 기뻐만 할 뿐 15개성과 바꿀 의향은 전혀 비추지 않았다.
 
인상여는 진왕의 본심을 파악하고 거짓으로 "구슬에 흠이 있는데 그것을 가르쳐 주겠다."
라고 하여 다시 구슬을 손에 넣었다.그리고 뒤로 물러나 기둥에 기대어 섰는데,
곤두선 머리털이 갓을 밀어 올릴 만큼 성을 내어(怒發上衝冠) 진나라 왕에게 신의가 없음을 꾸짖었다. 진왕은 인상여의 충절과 용기에 감복하여 인상여와 구슬을 돌려보냈다.결국 인상여의 기지로 조나라는 '화씨의 구슬'을 진나라에 빼앗기지 않게 되었다.

[원문] 秦王坐章臺見相如, 相如 奉璧奏秦王. 秦王大喜, 傳以示美人及左右, 左右皆呼萬歲. 相如 視秦王無意償趙城, 乃前曰: 璧有瑕, 請指示王. 王授璧,相如因持璧立, 倚柱, 怒髮上衝冠, 謂秦王曰: 大王欲得璧, 使人發書至趙王,趙王悉召 臣議, 皆曰『秦貪, 負其彊, 以空言求璧, 償城恐不可得』

[예문]동네 남자아이들이 등교길에 사과밭에서 따먹었던 몇 개의 사과 때문에 열이 받은 사과밭 주인아저씨가 학교로 찾아와 교장 선생님과 특별 면담을 가졌던 모양이다.  얼마나 노발대발 화를 내었을지 예감할 수 있던 것은 수업 시간 중간에 급박하게 스피커를 통해 지목되던 이름들 때문이었다. 그 이름들이 나에겐 너무나 익숙했던 탓에 내 가슴도 당장 교장실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2006 오마이뉴스--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진 서리의 추억>

■ 노심초사 勞心焦思 [힘쓸 로/마음 심/태울 초/생각 사]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생각을 너무 깊게 함. 애쓰면서 속을 태움.
**焦 :焦燥(초조) ,焦土化(초토화) ?憔悴(초췌) ,樵童(초동)

[출전]맹자(孟子) 등문공상/사기(史記)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내용]노심(勞心)은 '마음을 수고롭게 하다'라고 풀이되며, 맹자 등문공상에 "혹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도 있고 힘을 수고롭게 하는 자가 있는데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을 다시리고 힘을 수고롭고 하는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당한다"라 하여 이것저것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초사(焦思)는 '생각을 치열하게 하다'라고 풀이되며, 사기 월왕구천세가에 "오나라가 이미 월나라의 구천을 풀어주자 월왕 구천이 나라로 돌아와서 이에 몸을 수고롭게 하고 속을 태우면서 앉아 있는 자리 옆에 쓸개를 놓아 두고 앉거나 누으면 쓸개를 바라보았으며 먹거나 마실 때 또한 쓸개를 맛보았다.'"

[원문] 故曰 或勞心 或勞力 勞心者 治人 勞力者 治於人<맹자>
  吳旣赦越, 越王句踐反國,乃苦身焦思, 置膽於坐, 坐臥卽仰膽, 飮食亦嘗膽也.<사기>

[예문]감정적으로야 북한의 잘못된 정책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그에 상응하는 제재가 필요하다 하겠으나 제살 도려내기식으로 북한을 몰아붙이게 되면 우리나라의 국가신뢰도 추락은 물론이고 기하급수적인 통일비용 증가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통일 한국의 평화적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많은 국민에게 UN의 이성적 결단은 마땅히 수용할 좋은 지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나치게 ‘퍼주기식’ 대북지원도 문제가 되겠지만 민족적 동질성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경협마저 무시한다면 통일 한국을 바라는 모든 국민의 마음에 사형선고를 내리는 격이 될 것은 불을 보듯 하기 때문이다.<2006 전자신문--대북제재 신중한 적용 필요>

■ 노이무공 勞而無功 [수고로울 로/말이을 이/없을 무/공 공]

'수고는 하나 공이 없다'라고 풀이되며 애는 썼으나 애를 쓴 보람이 없음. 수고만 하고 아무런 공이 없음을 뜻함
[동]도로무익(徒勞無益)

[출전]『관자(管子)』/『순자(荀子)』 /『장자(莊子)』

[내용]<관자(管子)>의 "형세편"에 "옳지 못한 것에 편들지 말라.할 수 없는 것을 강제하지 말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르지 말라.이 같은 것을 가리켜, 수고롭기만 하고 공은 없다고 하는 것(謂之勞而無功)이다."라고 하고 있다.

  또 <순자(荀子)>의 "정명편"에도 "어리석은 사람의 말은 막연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고,번잡하고 통일이 되어있지 않으며, 시끌시끌 떠들어대기만 한다. 또한 명목에 이끌리고 말에만 현혹되어 참 뜻을 알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열심히 말은 하지만 핵심이 없고 몹시 애는 쓰지만 공이 없다 (故窮藉而無極 甚勞而無功)." 라고 했다.

  또 <장자(莊子)> "천운편"에도, 공자가 위나라에 갔을 때 위나라 "사금(師金)"이란 사람이 공자의 제자 "안연"을 보고 공자를 평한 말에도 나온다. 즉 "주나라와 노나라는 배와 수레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지금 주나라 때에 행해지던  도를 노나라에서 행하려 하고 있으니, 이는 배를 육지에서 밀고 있는 것과 같다. 애만 쓰고 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몸에 반드시 화가 미칠 것이다 (勞而無功 身必有殃)." 라고 하고 있다.

[원문] 使于人之所不能爲, 則令廢; 告狂惑之人, 則身害. 故曰“與不可, 强不能, 告不知, 謂之勞而無功. <관자(管子)>

故窮藉而無極,甚勞而無功,貪而無名.故知者之言也,慮之易知也,<순자(荀子)>
 
"천운편"[夫水行莫如用舟,而陸行莫如用車. 以舟之可行於水也而求推之於陸,則沒世不行尋常. 古今非水陸與? 周魯非舟車與? 今기行周於魯,是猶推舟於陸也,勞而无功,身必有殃. 彼未知夫无方之傳,應物而不窮者也.<장자(莊子)>

■ 녹림 綠林[푸르를 록/수풀 림]

☞푸른 숲이란 뜻으로, 도둑 떼의 소굴을 일컫는 말.
[동] 녹림호객(綠林豪客)[유] 백랑(白浪). 백파(白波). 야객(夜客).
[출전]漢書』王莽傳.『後漢書』劉 傳
[내용]전한(前漢:B.C. 202∼A.D. 8) 말, 왕실의 외척인 대사마(大司馬) 왕망(王莽)은 한 왕조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신(新:8∼24)이라 일컬었다.왕망은 농지, 노예, 경제 제도 등을 개혁하고 새로운 정책을 폈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복잡한 제도에 걸려 농지를 잃고 노예로 전락하는 농민들이 점점 늘어났다.

 또한 화폐가 8년 동안에 네 차례나 바뀌는 등 경제정책 역시 실패로 끝나는 바람에 백성들의 생활은 날로 어려워졌다. 그래서, 왕망은 백성들은 물론 귀족들로부터도 심한 반감을 샀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서북 변경의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이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의 반란이 잇달아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지금의 호북성 당양현(湖北省當陽縣) 내의 녹림산에 근거지를 둔 8000여의 한 무리는 스스로를 '녹림지병(綠林之兵)'이라 일컫고 지주의 창고와 관고(官庫)를 닥치는 대로 털었다. 그 후 이 녹림지병은 5만을 헤아리는 대세력으로 부상했는데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25∼57) 유수(劉秀)는 그들을 십분 이용하여 왕망의 신 나라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원문]王莽末, 南方飢饉,人庶 入野澤, 掘鳧 而食之, 更相侵奪. 新市人王匡,王鳳爲平理諍訟,  遂推爲渠帥, 衆數百人. 於是諸亡命馬武,王常,成丹等往從之;共攻離鄕聚,  臧於綠林中, 數月閒至七八千人. 地皇二年, 荊州牧某發奔命二萬人攻之,  匡等相率迎擊於雲杜, 大破牧軍, 殺數千人, 盡獲輜重, 遂攻拔竟陵. 轉擊雲杜. 安陸, 多略婦女, 還入綠林中, 至有五萬餘口, 州郡不能制 

[예문]임걸령은 옛날 녹림호걸들의 은거지가 되었던 곳으로 의적 두목인 임걸령의 본거지였다 하여 “임걸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임걸령의 샘은 사계절 마르지 않아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에게 늘 시원한 샘물을 안겨줍니다.<2006 오마이뉴스>  

■ 녹음방초 綠陰芳草[푸를 록/그늘 음/꽃다울 방/풀 초]

☞나무가 푸르게 우거진 그늘과 꽃다운 풀. 여름의 아름다운 경치.
[동]綠楊芳草(푸르른 버들가지와 꽃다운 풀) *綠:草綠(초록),因緣(인연), 記錄 (기록), 祿俸(녹봉)
[예문]
▷ 그때의 심봉사는 출천대효 딸만잃고 모진 목숨 죽지도 못허고 근근부지로 지낼적에 봄이 가고 여름이되니 녹음방초 시절이로고나 산천은 적적헌듸 물소리만 처량허네 딸과 같이 놀던 처녀들은 종종와서 인사를 허니 딸 생각이 더욱 간절허구나 심봉사 마음이 산란허여 지팽막대를 검처잡고 망사때를 찾어가서 비석을 안고 울음운다 .아가 청아 인간의 부모를 잘못만나 생죽엄을 당하였구나 아비 나를 생각커든 어서나를 다려가거라 눈뜨기도 나는 싫고 세상살기도 귀찮허다.타루비 앞에가 꺽꾸러저서 치둥굴 내리둥굴 머리도 직근 가삼 쾅쾅 두발을 굴러 망지소지로 울음을 운다 - ≪판소리 심청가≫中에서

▷ 병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유학산과 가산의 산비탈에 묻힌 주검들은 이제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으련만, 그 위를 무심한 녹음방초가 뒤덮고 있다. 어쩌다 모습을 드러내는 주검의 흔적을 쓰다듬는 산 자의 진혼은 애달프다<2006 뉴스메이커--낙동강은 흐르는가>

■ 녹의홍상 綠衣紅裳[푸를 록/옷,저고리 의/붉을 홍/치마 상]

☞푸른 저고리와 붉은 치마. 젊은 여인의 고운 옷차림.
[참고]丹脣皓齒(단순호치) : 불은 입술과 흰 이. 미인의 얼굴. 雪膚花容(설부화용) : 흰 살결에 고운 얼굴.柳尾蜂腰(유미봉요) : 버들같은 눈섭에 개미같은 허리.綠衣黃裳(녹의황상) : 귀천이 뒤바뀜 綠衣使者(녹의사자) : 鸚鵡(앵무)의 별칭

[예문]
▷ 경북 영양 일월산 기슭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보라. 혼인잔치 직후 신랑에게 버림받은 신부가 첫날밤의 녹의홍상 차림 그대로 앉아 죽었다는 이 이야기를 세 사람의 시인이 조금씩 다르게 변주해 놓았다.<2006 한겨레>

▷ 붉은색은 마르크시즘과 볼셰비키혁명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것에서 녹의홍상(綠衣紅裳)과 벽사(벽邪)에서 나타나듯 축제 또는 잔칫날 본연의 상징색으로 자리잡았다.<2006 경향신문>

논공행상 論功行賞 [따질 론/공 공/행할 행/상줄 상]

☞공을 다 따져 각각 알맞은 상을 주는 일.세운 공을 평가하고 의논하여 표창을 하거나 상을 줌

[출전]史記숙상국세가(蕭相國世家)
[내용]고담(顧譚)은, 삼국시대 오나라의 명상 고옹(顧雍)의 손자로, 어릴 때부터 수재로 알려져 일을 척척 잘 처리했고, 더우기 사물을 보는 방법이 독창적이어서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았다. 그는 꾸밈없는 성품으로 솔직한 생각을 말했다. 군주 손권(孫權)에게도 생각을 말한 일이 있다. 손권은 식사 중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 관심을 가져, 그 후에 때때로 불러서 이야기를 했다. 어느 때, 노나라 왕 손패가, 같은 어머니 형제인 오나라의 태자 손화와 대우를 같이 받고 싶다고 손권에게 요구해 왔다.

 고담은 역사상의 형제의 싸움을 인용해서 손패의 요구를 물리치라고 손권에게 진언했다. 그 이후, 손패는 고담을 미워했다. 그 때, 같은 시기에 고담과 교제하려다가 거절당한 사람 중에, 위장군 전종의 아들 전기가 있었다. 손패와 전기는 손을 잡고 고담의 실각을 꾀했다. 기원 241년, 손권은 전종(全琮)을 대장으로 삼아 위의 회남으로 출병하여, 위의 장수 왕릉과 작파(芍파)에서 격전했지만, 오군은 대패하여 중랑장 진광 등 십여 명의 장군이 전사했다. 당시, 고담의 동생 고승과 장휴 두 장수는 수춘에서 작전 중이었다. 작파의 패전을 듣고 곧 구원을 떠나 위의 왕릉군을 저지했다. 전종의 두 사람의 조카 전세와 전서도 오군의 부장으로 종군했지만, 위군의 추격이 저지당했다고 알고 공격으로 옮겼다. 위군은 그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흩어져 모두 패주하였다.

 전투가 끝나자 오의 수도 건업에서 논공행상이 행해졌다. 많은 사람이 위를 저지한 공을 세웠고 반격한 공도 있었기 때문에, 손권은 고승과 장휴에게 정장군(正將軍), 전제와 전서에 게 편장군(偏將軍)의 칭호를 수여했다. 그래서, 전종·전기 부자는 고담형제에게 더욱 원한 이 깊어졌다. 그래서, 손패를 통해 손권에게 진언했다. "고승과 장휴는 전군(典軍)진순과 친했기 때문에 공을 거짓 전달하여 주군을 속였습니다." 손권은 조사를 하지 않고, 이 말을 믿어 장휴를 포박하고, 고승의 처분은 보류하였다. 그리고, 뒷날 고담에게 사죄시키려 했다. 어느 날, 고담에게 말했다. "동생을 어떻게 할까? 담은 사죄할까?" 오히려 나쁜 말을 믿은 손권을 책망했다. 손권은 화가 나서 형제를 지방으로 좌천시켰다. 고담은 비분의 정을 <신언(新言)>20편에 이어 썼지만, 2년 후 지방에서 병사했다.

[예문]
▷ 때는 바야흐로 국정감사의 계절이다. 감사대상기관의 장(長)들은 연일 다그치는 선량들의 질책에 혼쭐이 나고 있다. 국정감사가 의원들의 정치적 입지를 조명하는 자기과시의 자리라기 보다는 공직자들의 공과와 업 적을 가리는 논공행상의 자리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올 감사 또한 예년과 같이 소리만 무성하고 알맹이는 없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제발 이젠 말잔치와 소모성 논쟁만으로 끝나는 국감은 아니어야 할텐데.--이응수<고사산책>

▷ 우파 성향의 국가관을 가진 정치인들을 대거 총리실에 끌어들여 복층적 지도체제를 구성했다. 이 때문에 각료 인사는 자민당 총재선거 때의 논공행상으로 진행해 당을 다독이면서, 힘의 원천을 총리실로 옮기는 이른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을 구사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2006 경향신문>

농가성진 弄假成眞 [희롱할 롱/거짓 가/이룰 성/참 진]

☞장난삼아 한 것이 진심으로 한 것 같이 되었다는 뜻 =假弄成眞(가롱성진)

[예문]북남장관급회담,적십자회담에 무단히 참석하지 않았고,세계대회에 나갈 단일탁구팀구성도 거부한 것이다. 이런 시위는 좋으나,요즘 대남비방이 늘어나고 "우리식대로 살자"는 구호가 다시 등장한다고 한다. 바쁘게 닦은 개방항로가 혹시 농가성진하여 반전하는 것이 아닌가 기우하지 않을 수 없다.<2001 한국경제>

■ 농단 壟斷(언덕 롱/끊을 단)

☞깎아 세운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언덕이란 뜻. 곧 ① 재물을 독차지함. ② 이익을 독점함.
[출전]孟子』公孫추篇(공손추편)

[내용]전국시대, 제(齊)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이다.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실현을 위해 제국을 순방 중이던 맹자는 제나라에서도 수년간 머물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하려 했다. 그러자 선왕은 맹자에게 높은 봉록을 줄 테니 제나라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제의했다. 그러나 맹자는 거절했다."전하,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데도 봉록에 달라붙어서 '재물을 독차지[壟斷]'할 생각은 없나이다."이렇게 말한 맹자는 '농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농단'은 '깎아 세운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언덕'이란 뜻인데, 전하여 '재물을 독차지한다', '이익을 독점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데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먼 옛날에는 시장에서 물물 교환을 했었다. 그런데 한 교활한 사나이가 나타나 시장의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는 '높은 언덕[壟斷]'에 올라가 좌우를 살펴서 장사함으로써 '이익을 독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이 사나이의 비열(卑劣)한 수법을 증오(憎惡)하고 그에게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 때부터 장사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가 생겼다고 한다.

[원문]孟子致爲臣而歸하실새 王이就見孟子曰 前日에 願見而不可得이라가 得侍하야는 同朝甚喜러니 今又棄寡人而歸하시니 不識케이다 可以繼此而得見乎잇가 對曰 不敢請耳언정 固所願也니이다 他日에 王이 謂時子曰 我欲中國而授孟子室하고 養弟子以萬鍾하야 使諸大夫國人으로 皆有所矜式하노니 子爲我言之오 時子 因陳子而以告孟子어늘 陳子 以時子之言으로 告孟子한대 孟子曰 然하다 夫時子 惡知其不可也리오 如使予欲富인댄 辭十萬而受萬이 是爲欲富乎아 季孫이曰 異哉라 子叔疑여 使己爲政호되 不用則亦已矣늘 又使其子弟爲卿하니 人亦孰不欲富貴리오마는 而獨於富貴之中에 有私龍斷焉이라 하니라 古之爲市者 以其所有로 易其所無者어든 有司者治之耳러니 有賤丈夫焉하니 必求龍斷而登之하야 以左右望而罔市利어늘 人皆以爲賤故로 從而征之하니 征商이 自此賤丈夫始矣니라

맹자치위신이귀하실새 왕이취견맹자왈 전일에 원견이불가득이라가 득시하야는 동조심희러니 금우기과인이귀하시니 불식케이다 가이계차이득견호잇가 대왈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야니이다 타일에 왕이 위시자왈 아욕중국이수맹자실하고 양제자이만종하야 사제대부국인으로 개유소긍식하노니 자합위아언지오 시자 인진자이이고맹자어늘 진자 이시자지언으로 고맹자한대 맹자왈 연하다 부시자 오지기불가야리오 여사여욕부인댄 사십만이수만이 시위욕부호아 계손이왈 이재라 자숙의여 사기위정호되 불용즉역이의늘 우사기자제위경하니 인역숙불욕부귀리오마는 이독어부귀지중에 유사농단언이라 하니라 고지위시자 이기소유로 역기소무자어든 유사자치지이러니 유천장부언하니 필구농단이등지하야 이좌우망이망시리어늘 인개이위천고로 종이정지하니 정상이 자차천장부시의니라

맹자가 신하 노릇하기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자, 왕이 맹자를 만나보고 말하였다.

"전날에 만나보기를 원했으나 만나볼 수가 없었는데, 그 뒤에 조정에서 모실 수 있어서 대단히 기뻤습니다.  지금 나를 버리고 돌아가니, 이 후에도 계속 만나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감히 그렇게 하시라고 청할 수는 없습니다만, 진실로 그리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날에 왕이 시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맹자를 위해서 나라 한가운데다가 집을 마련해주고 만종의 녹을 지급해 주고서 제자를 기르게 하여. 맹자로 하여금 여러 대부들과 모든 백성들의 사표가 되도록 하고 싶은데, 나를 위해서 그대가 이런 말을 맹자에게 하지 않겠는가?"

시자는 진자를 통해서 그 이야기를 맹자에게 전해 주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러한가?  시자로서 그것이 잘못된 줄을 어찌 알겠는가?  내가 만일 부자가 되고 싶다면 10만 종을 사양하고 1만 종을 받겠는가?  이러한 것이 과연 부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겠는가?  계손은 말하기를 ' 자숙의는 이상하다.  자신이 정치를 하다가 일이 안 되면 그만일 것이지 자지 자제를 재상으로 삼았다.  사람으로서 누가 부귀를 원하지 않으리요.  그런데, 그는 부귀 가운데 있으면서도 혼자 이익을 독점한다'라고 말했다.  옛날의 시장이란 것은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서로 바꾸는 것이었고, 유사는 이를 다스릴 따름이었다.  그런데, 못난 사나이가 있어서 반드시 높은 언덕 위에 올라가서는 좌우를 둘러보아 시장의 이익을 독점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천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유사는 그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하게 되었다.  장사꾼에게 세금을 징수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천한 사나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출처>   http://blog.daum.net/vlfska/10263996

[예문]
▷ 오즈의 마법사 성이 있는 에메랄드시티는 푸른색 달러 지폐를 발행하는 연방정부를, 오즈의 성을 연결하는 ‘노란벽돌길’은 금을 풍자한다. 당시 잦은 공황의 한 요인이던 화폐 부족을 일으키던 금본위제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연방정부를 농단하던 현실을 야유한 것이다. 소원은, 오즈의 마법사가 아니라 제 자신의 긍정적 사고와 힘으로만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도로시와 친구들은 각성하는 미국 민중들을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다.<2006 한겨레--오즈의 북한 핵실험>  

▷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국정농단의 '정점' 박근혜 전 대통령(65)을 뇌물 등 혐의로 기소해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남은 국정농단 관련 의혹 사건 수사의 마무리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의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2017.07.20 뉴스1>

■ 농와지경 弄瓦之慶[희롱할 롱/실패 와/어조사 지/경사 경]

☞딸을 낳은 기쁨.
[출전]詩經
[내용] : 옛날 중국에서 딸을 낳으면 실패(瓦)를 장난감으로 준데서 유래.
「乃生好載寢之地 載衣之旺 載弄之瓦」

■ 농장지희(경) 弄璋之喜(慶) [가지고 놀 롱/옥구슬  장/어조사 지/기쁠희]

☞아들을 낳은 기쁨.
[출전]詩經
[내용] : 옛날 중국에서 아들을 낳으면 구슬(璋)을 장난감으로 준 고사.
(詩經에「乃生男子 載寢之狀 載衣之裳 載弄之璋」)

■ 누란지위 累卵之危 [쌓을 루/알 란/어조사 지/위태로울 위]

☞알을 쌓은 듯한 위태로움. 쌓아 놓은 알과 같이 매우 위태로운 형세.
[동]危如累卵(위여누란). 累卵之勢(누란지세). 累碁(누기) : 바둑 돌을 쌓아 올린 듯하다.如履薄氷(여리박빙) : 엷은 얼음을 밟는 것과 같다. 百尺竿頭(백척간두) : 백 척이나 되는 장대 위에 매달려 있다. 風前燈火(풍전등화) : 바람 앞의 등불. 焦眉之急(초미지급) : 눈썹에 불이 붙음. 일각의 여유도 둘 사이없이 다급함.

[속담] 강가에 나간 아이와 같다. /눈먼 말 타고 벼랑가기다. /봄 얼음 건너가는 것 같다.

[출전] 史記』, (范雎傳)

출처 : 한자뱅크

[내용] 전국시대, 세 치의 혀[舌] 하나로 제후를 찾아 유세(遊說)하는 세객(說客)들은 거의 무두 책사(策士) . 모사(謀士)였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 나라를 종횡으로 합쳐서 경륜하려던 책사. 모사를 종횡가(縱橫家)라고 일컬었다. 위(魏)나라의 한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범저(范雎)도 종횡가를 지향하는 사람이었으나 이름도 연줄도 없는 그에게 그런 기회가 쉽사리 잡힐 리 없었다. 그래서 우선 제(齊)나 라에 사신으로 가는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종자(從者)가 되어 그를 수행했다. 그런데 제나라에서 수가보다 범저의 인기가 더 좋았다. 그래서 기분이 몹시 상한 수가(須賈)는 귀국 즉시 재상에게 '범저는 齊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참언(讒言)했다.

 범저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거적에 말려 변소에 버려졌다. 그러나 그는 모사(謀士)답게 옥졸을 설득, 탈옥한 뒤 후원자인 정안평(鄭安平)의 집에 은거하며 이름을 장록(張祿) 이라 바꾸었다. 그리고 망명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중 때마침 진(秦)나라에서 사신이 왔 다. 정안평은 숙소로 은밀히 사신 왕계(王稽)를 찾아가 장록을 추천했다. 어렵사리 장록을 진나라에 데려온 왕계는 소양왕(昭襄王)에게 이렇게 소개했다."전하, 위나라의 장록 선생은 천하의 외교가이옵니다. 선생은 진나라의 정치를 평하여 '알을 쌓아 놓은 것보다 위태롭다.(危於累卵)'며 선생을 기용하면 국태민안(國泰民安)할 것 [秦王之國 危於累卵 得臣則安])이라고 하였사옵니다."소양왕은 이 불손한 손님을 당장 내치고 싶었지만 인재가 아쉬운 전국시대이므로 일단 그를 말석에 앉혔다. 그후 范雎[張祿]은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으로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원문]已報使, 因言曰: 魏有張祿先生,天下辯士也. 曰『秦王之國危於累卵, 得臣則安. 然不可以書傳也』. 臣故載來. 秦王弗信, 使舍食草具. 待命歲餘.

[예문]떨리는 글씨로 편지 한 장을 썼다.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에게 이양한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의 운명이 누란지위에 처한 순간 국가주권의 주요한 구성요소인 군작전지휘권이 그렇게 미군에게 주어졌다.<2006 한겨레>  

■ 능서불택필 能書不擇筆 [능할 능/글 서/아니 불/가릴 택/붓 필]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 곧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데 종이나 붓 따위의 재료 또는 도구를 가리는 사람이라면 서화의 달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
[출전]唐書』(歐陽詢傳)
[고사] : 당나라는 중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나라의 하나였다. 당시 서예의 달인으로는 당초 사대가(唐初四大家)로 꼽혔던 우세남(虞世南) 저수량(저遂良) 유공권(柳公權) 구양순(歐陽詢) 등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서체를 배워 독특하고 힘찬 솔경체(率更體)를 이룬 구양순이 유명한데 그는 글씨를 쓸 때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았다.그러나 저수량은 붓이나 먹이 좋지 않으면 글씨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그 저수량이 우세남에게 물었다."내 글씨와 구양순의 글씨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낫소?"우세남은 이렇게 대답했다."구양순은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으면서도[不擇筆紙]' 마음대로 글씨를 쓸 수 있었다[能書]고 하오. 그러니 그대는 아무래도 구양순을 따르지 못할 것 같소."이 말에는 저수량도 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또 '능서불택필'은 『왕긍당필진(王肯堂筆塵)』과 주현종(周顯宗)의 『논서(論書)』에 각각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속설은 구양순까지이고, 그 이후의 사람들은 붓이나 종이를 문젯거리로 삼게 되었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니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통설이라고 할 수 없다. 행서(行書)와 초서(草書)를 제외한 해서(楷書) 전서(篆書) 예서(隸書)를 쓰는 경우는 붓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붓을 가리지 않을 수 없다."

■ 능소능대 能小能大[능할 능/작을 소/능할 능/클 대]

☞모든 일을 임기웅변으로 잘 처리함.
[예문]
▷ 명랑, 쾌활하고 이지적 사고방식에 융통성이 풍부하고 결단성이 있으며, 다정다감한면이 많다.모든 면에 능소능대(能小能大)하여 목적한 바를 달성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어 출세의 길운(吉運)이 유도되며, 만인의 존경과 헌신적인 협조를 얻어 명망이 높게된다.<성명풀이>

세요 각시 가는 허리 구붓기며 날랜 부리 두루혀 이르되,"양우의 말이 불가하다. 진주 열그릇이나 껜 후에 구슬이라 할 것이니 재단(裁斷)에 능소능대 (能小能大)하다 하나 나 곧 아니면 작의(作衣)를 어찌 하리오. 세누비 미누비 저른 솔 긴 옷을 이루미 나의 날래고 빠름이 아니면 잘게 뜨며 굵게 박아 마음대로 하리오. 척부인의 자혀 내고 교두 각시 버혀 내다 하나 내 아니면 공이 없으려든 두 벗이 무삼 공 자랑하나뇨<규중칠우쟁론기>

■ 니취 泥醉[진흙 니/취할 취]

 

☞술에 취해 진흙처럼 흐느적거림. 몹시 술에 취한 상태 
[출전] 이백의 『襄陽歌』
[내용]니취(泥醉)라는 것은 일설에 '술 벌레'라고 한다. 뼈가 없는 이 벌레는 물을 만나면 활발히 움직인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 점에서 사람이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것을 술벌레가 몸에 들어가 작용한 것으로 나타낸다.  장경성(長庚星)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아들을 얻었기 때문에 아명을 태백(太白)이라 부른 이백. 물론 그는 훗날에도 그 이름을 계속 써 왔다. 

그는 태어나면서 용모가 수려했고 문학과 역사에 심취했다. 우연히 이백의 문재(文才)를 알게 된 당(唐) 현종은 그에게만은 궁안 법도를 따르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며 한림학사에 임명했다. 그는 항상 술에 취해 있었다. 

석 잔을 마시면 크게 깨우치고 
다섯 말을 마시면 자연과 합하네 
술 세계 제호의 맛은 
취해 보지 않은 자 모르리라 

만년에 이르러 이백은 관직이 번거러워 유람을 하였는데 동정호의 악양루에서 놀고, 다시 배를 채석강(采石江) 위에 머무르게 하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유랑한 풍악소리가 들려 왔다. 물론 이 소리는 다른 이에게는 전연 들리지 않고 이백에게만 들여 왔다.  그때 강위에는 큰 물고기가 뛰놀며 큰 고래가 수염을 휘날리며 솟구쳤다. 두 선동(仙童)이 사신의 기를 가지고 이백에게 다가왔다. 

"상제께서 장경성(이백)이 귀환하시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뱃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그들이 쓰러져 잠이 든 때에 이백은 풍악에 인도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물론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