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물군자 博物君子
[넓을 박/만물 물/임금 군]
☞온갓 사물에 대하여 견문이 썩 넓은 사람. [유]박학다재
[博學多才] [참고]박물군자 무불간섭[
博物君子 無不干涉]무슨 일이나 참견 아니하는 일이 없다
[예문] ▷
대감께서는 연치도 높으시거니와 박물군자시니만큼 대감께 보이고 진가를
알아볼까 해서 온 길이올시다.≪박종화, 전야≫
▷ 지난 78년 허슬러의 발행인으로 잠시 일한 바있는 폴 크래스너씨는
『플린트가 항상 미국의 정치와 문화에서 한 역할을 맡기를 원했으며,
이제 그가 바랬던것을 얻었다』고 말했다. 한편 정치분석가들은 『포르노
작가, 박물군자, 사회적 폐물』로 자처하고
있는플린트가 현재 휘두르고 있는 이같은 영향력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경향신문> |
■ 박빙여리 薄氷如履
[엷을 박/얼음 빙/같을 여/밟을 리]
☞엷은 얼음을 밟듯이 세상의 처세에 조심함.아주 위태로운 상황.이
말은 봄날에 살얼음을 밟고 연못을 건너가듯 매우 위험함이나 위험을
느낀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동]如履薄氷(여리박빙)/ 風前燈火(풍전등화)/풍전등촉(風前燈燭)/풍전지등(風前之燈)/
百尺竿頭(백척간두)/ 절체절명(絶切絶命:몸도 목숨도 다 되어 살아날
길이 없게 된 막다른 처지)/낭패불감(狼狽不堪: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처지)/명재경각(命在頃刻:거의 죽게 되어 숨이 곧 넘어갈 지경)/일촉즉발(一觸卽發:금방이라도
일이 크게 터질 듯한 아슬아슬한 상태),/ 초미지급(焦眉之急:눈썹이
타들어 갈 정도로 매우 위급함),/ 진퇴양난(進退兩難: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어려운 매우 난처한 처지)·/累卵之勢(누란지세)
[준]履氷 [유]약도호미(若蹈虎尾)*밟을
도/若涉大水(약섭대수)/暴虎憑河(포호빙하)*의지할 빙/探虎穴(탐호혈)*찾을
탐/探龍頷(탐용함함)*턱 함 [속담] 강가에
나간 아이와 같다. /눈먼 말 타고 벼랑가기다. /봄 얼음 건너가는 것
같다
[출전]『詩經』『書經』 [내용]《시경(詩經)》
〈소아편(小雅篇)〉의 '소민(小旻)'이라는 시(詩)에 감히
맨손으로 범을 잡지 못하고 감히 걸어서 강을 건너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 하나는 알고 있지만 그 밖의 것은 전혀 알지 못하네 두려워서 벌벌
떨며 조심하기를 마치 깊은 연못에 임하듯 하고 살얼음을 밟고 가듯
하네
또《논어(論語)》'태백편(太伯篇)'에 보면, 증자(曾子)가
병이 중(重)해지자 제자들 을 불러서 말했다. "내 발을 펴고, 내
손을 펴라.《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매우 두려운
듯이 조심하고, 깊은 연못에 임한 것 같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 하 라.'고 했다. 지금 이후로는 나는 그것을 면(免)함을
알겠구나, 제자들아."
[원문]不敢暴虎不敢憑河人知其一莫知其他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氷<시경>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논어>
[예문] ▷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처했다.', '풍전등화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원 입대하였다
▷ 올들어 수직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는
증시가 바로 여리박빙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증시주변여건이나 기술적
분석을 고려하지 않고 외국인 매수라는 단하나의 재료에 의해 주가가
급등하고 있어서다. <한국경제>
|
■ 박이부정 博而不精
[넓을 박/말이을 이/아니 불/자세할 정]
☞여러 방면으로 널리 아나 정통하지 못함. 독서에 있어서 정독(精讀)의
중요성. [속담]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함
[예문]다독(多讀)이냐
정독(精讀)이냐가 또한 물음의 대상(對象)이 된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는 전자의 주장이나, '박이부정(博而不精)'이
그 통폐(通弊)요,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함'이
또한 그 약점(弱點)이다. 아무튼, 독서의 목적이 '모래를 헤쳐 금을
캐어 냄'에 있다면, 필경(畢竟) '다(多)'와 '정(精)'을 겸(겸)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것 역시 평범(平凡)하나마 '박이정(博而精)' 석 자를 표어(標語)로
삼아야 하겠다.-양주동 수필『면학의서』중에서 |
■ 박주산채 薄酒山菜
[엷을 박/술 주/뫼 산/나물 채]
☞맛이 변변치 않은 술과 산나물. 자기가 내는 술과 안주의 겸칭. [예문] ▷
짚 방석(方席) 내지 마라<한호> 짚 방석(方席) 내지 마라 낙엽(落葉)엔들
못 앉으랴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 온다.
아희야 박주산채(薄酒山菜)ㄹ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 가슴 청산의 향기로 가득차고 대자연이 고이 숨겨둔
잃어버린 낙원에의 기쁨을 듬뿍 맛보게 된다. 산행을 마치고 거목 밤나무
밑에 둘러앉아 그 특이한 밤꽃 향기를 듬뿍 맡아가며 서로 나누는 박주산채의
그 맛,어찌 대도시 일류식당의 값비싼 음식과 비교될 수 있으리오<한국의
산하> |
■ 박학다식 博學多識
[넓을 박/배울 학/많을 다/알
식]
☞학문이 넓고 식견이 많음. [동]
無所不知(무소부지). 無不通知(무불통지) : 무슨 일이든 모르는 것이
없음. [해설]‘교양’은
현대에 있어서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고 과거에 있어서도 요구되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 있어서 과거에‘교양’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면
인문적인 교양을 쌓은 사람, 따라서 우리 나라 또는 동양의 고전(古典)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을 의미하였으며 또 그것을 장려하였다. 그러나
그 교양은 다만 고전에 대하여 많이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사람’이
자유를 위하여 즉 자연의 세계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사회적·도덕적
발전을 위히여 쌓은 업적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자신도 그와 같이 노력함으로써
새 자유를 얻으려고 하는 자유의 정신과 신생(新生)의‘교양’이었다.
그것이 그 이후에는 정신이 빠진 형식으로서, 따라서 옛 고전을 읽으며
암송하는 데 그치고 그것이‘사람’과‘자유’의 형성에 있어서의 참된
의미를 망각(妄覺)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에 있어서도 참다운 의미에서의‘인문적
교양’은 요구된다. 그것은 자유의 정신에 의한 신생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예문] ▷ 채문희 후한의
학자이며 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채옹(蔡邕)의 딸인데, 어려서부터
박학다식하여 변설에 능하고 음악적 재능을 갖춘 재원이었다.
문희는 부친의 총애를 믿고 약간은 경박하기도 했다. 문희는 처음에
위중도(衛仲道)에게 출가했는데 얼마 안되어 남편이 죽자 친정으로 돌아왔다.
▷ 더 이상 길게 끌고 싶지 않아서 이내 말문을 닫고 말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박학다식과는 거리가 먼 필부가
분명해 보였고….≪이영치, 흐린 날 황야에서≫
▷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박학다식한 이야기꾼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 정말 살아 있는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것이다.<동아일보> |
■ 반골 反骨
[거꾸로 반/뼈 골]
☞뼈가 거꾸로 되어 있음. 모반(謀反).권세나 권위에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기골을 이르는 말.
[출전]『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위연전(魏然傳) [내용]삼국시대(三國時代)
촉(蜀)나라에 위연(魏然)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용맹하고
호탕하며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었지망, 자기 재주를 과신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유비는 그를 장수로서의 능력을
인정하여 한중(漢中 )의 태수로 임명했다. 사실 당시 사람들은 장비(張飛)가
임용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비는 위연을 임명하게 된 까닭을 밝히기 위해 그 직무를 어떻게
담당할 것인지 물었다. 이에 위연은 이렇게 대답했다. “만일
조조가 천하를 들어오려고 한다면, 대왕을 위해 그를 막기를 원합니다.
부장이 인솔하는 10만 병사를 이르게 한다면 대왕을 위해 그들을 소멸시키기를
원합니다.”
유비와 사람들은 위연의 장엄한 말에 감복했다. 그러나 제갈량(諸葛亮)에게는
위연이 달갑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 이유는 위연의 성품과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목덜미에 이상한 뼈가 거꾸로 솟아 있는 것을
보고 장래에 반드시 모반할 인물임을 짐작하였기 때문이었다.
위연 역시 제갈량을 겁쟁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음을 한탄했다. 어느 날 위연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래서
행군사마(行軍司馬) 조직(趙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젯밤에
내 머리에 뿔 두 개 거꾸로 나 있는 꿈을 꾸었소. 이것을 해몽해 주시오.”
조직은 말했다. “기린의 머리에도 뿔이 있고, 청룡의 머리에도
뿔이 나 있습니다. 변하여 하늘로 올라갈 상(相)으로 천하에 보기 드문
길몽입니다.” 조직의 해몽은 사실과 달랐다. 사실 뿔(角)은 칼
'도'자 를 사용한다. '用'자는 사용한다는 뜻이므로 꿈을 꾼 자의
목이 잘린다는 나쁜 꿈이었던 것이다.
위연은 이 꿈 해석을 믿고 모반을 꾀하려고 했다. 그런데 위연의
모반을 미리 알아본 제갈량은 자신이 죽기 전에 이런 일을 대비하여
계략을 세워 두어 마대로 하여금 거짓 위연을 따르게 한뒤 마대로 하여금
목을 치게 했다.
[예문] ▷
그는 원래 반골 성향에 바른말 잘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 올 초 삼성은 투수 임창용(25)을
트레이드 시장에 내 놨다. 임창용이 연봉협상 과정에서 보인 반골
기질이 부담스러운 데다 마무리에서 선발로 전환할 임창용의
성적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맞는 카드가 없어 결국 트레이드는
무산됐다.
▷ 특정 지역만을 겨냥한 부동산 규제, 사회
일각의 반골정서에 편승한 각종 대기업 규제,
실리보다는 낭만적인 민족화합론에 따른 동맹국과의 갈등… 이 같은
모습이 과연 나라의 부(富)와 힘을 키우는 행태라고 할 수 있을까.<2006
헤럴드경제> |
■ 반근착절 盤根錯節
[굽을
반/뿌리 근/섞일 착/마디 절]
☞구부러진 나무 뿌리와 얼크러진 나무의 마디.얼크러져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사건. [출전]『後漢書』〈虞傳〉
[내용]후한 6대 안제 때의
일이다.안제가 13세의 어린나이로 즉위하자 모후인 태후가 수렴청정을
하고 태후의 오빠인 등줄이 대장군이 되어 병권을 장악했다.그무렵 서북
변경은 유목민족인 강족의 침략이 잦았다.그러자 등즐은 국비부족을
이유로 양주를 포기하려 했다.
그러자 낭중의 벼슬에 있던
우허가 반대하고 나섰다.예로부터 양주는 많은 열사와 무인을 배출한
곳인데 강족에게 내준다는 것은 당치 않은 일입니다.중신들도 모두 우허와
뜻을 같이 했다.
이 때부터 우허를 미워하는 등즐은 때마침 조가현의
현령이 비적에게 살해되자 우허를 후임으로 정하고 비적토벌을 명했다.친구들이
모두 걱정하였으나 우허는 웃으면서 말했다."서린
뿌리와 얼크러진 마디(盤根錯節)에 부딪쳐 보지 않고서야 어찌 칼날의
예리함을 알 수 있겠는가" 현지에 도착한 우허는 갖가지
계책으로 비적을 토벌했다고 한다
[원문]志不求易
事不避難 臣之職也 不遇盤根錯節 何以別利器乎 |
■ 반면교사 反面敎師
[거꾸로 반/얼굴 면/가르칠 교/스승 사]
☞극히 나쁜 면만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란 뜻으로, 중국에서 제국주의자·반동파·수정주의자를
이르는 말. 다른사람,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음. [유]타산지석[他山之石]
[참고]靑1960년대 중국 문화혁명
때 만들어 진 말.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毛澤東]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오쩌둥은 부정적인 것을 보고 긍정적으로
개선할 때, 그 부정적인 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하였다. 즉, 이는 혁명에 위협은 되지만 그러한 반면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는 집단이나 개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제국주의자·반동파·수정주의자를
이르는 말. [예문] ▷
한국하키의 힘은 역설적으로 이같은 헝그리정신에서 나온다. 이웃 일본이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한국을 따라잡으려다 실패하자 하키를 포기했지만
한국은 그같은 사실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바로 지면 죽는다는 사실이다. <한국일보>
▷ 최근 나온
『번역과 일본의 근대』에 주목한 것은 일본의 근대 사회와 문화, 학문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번역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근대화에
실패한 우리에겐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미래지향적 군 지휘통신 체계를 효율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SPIDER
체계 개발의 교훈을 반면교사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개선해야 한다<2006 연합뉴스>
▷사실,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럽을 잘
알았기에 가능했다. 유럽, 특히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라는 채널은 북한을
설득하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고, 독일 통일의 ‘아픈’ 경험은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른바 ‘남북연합-남북연방-완전통일’이라는
3단계 통일론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만든 ‘반면교사’였다.
<2006 레이버투데이>
▷ 속초시 해양박물관 건립 계획은
전면 재검토 해야 한다. 지난 1995년부터 추진됐지만 10년이 되도록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올해 과학관과 수족관,
영상관 등을 준공해야 한다. 그러나 실체조차 불투명한 외국기업만 믿고
있으니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외국 기업이라면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사업 협정 체결부터 하는 지자체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 부처님은 항상 자신을 업론자(業論者),
행위론자(行爲論者), 정진론자(精進論者)라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업의
가르침은 중요하며 그래서 우리는 인과응보(因果應報), 업보(業報),
업력(業力), 업장(業障), 업화(業火)라는 용어를 늘 쓰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누군들 사전을 외운 듯한 반면교사의
답변에 쉽게 수긍할 리가 없다. |
■ 반목질시 反目嫉視
[거꾸로 반/눈 목/미워할 질/볼 시]
☞서로
눈을 돌리고 미워하는 것. 눈으로 흘겨 보고 노려 보다. [유]白眼視(백안시)
: 냉대하여 봄. [반]靑眼視(청안시)
애정을 가지고 대함 [예문] ▷
남자와 여자가 서로 반목질시하다가는
진실한 사랑을 얻기 힘들다. ▷ 두 집안은 오랫동안 반목질시해
왔다.
▷ 우리의 치과계는 새로운 21세기를 맞는 이 중차대한
시점에서 서로가 반목질시하지 않는,
진정으로 화합하는 치과의사로 우리 모두 다시 태어나 큰일을 이룰 수
있는 초석을 놓는 것이라고 감히 확신합니다.<치의신보> ▷
진정한 심리적 통합을 이루는 가장 빠른 길은 서로를 인정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가야 할 동반자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어느 한
편이 상대방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거나 우월감을 가지고 있을 때 그
결과는 반목과 질시만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한성렬-고려대
교수> |
■ 반문농부 班門弄斧
[나눌 반/문 문/희롱할 롱/도끼 부]
☞노반의 문앞에서 도끼를 자랑한다는 뜻으로, 실력도 없으면서 잘난
척 함
[내용] 公輸班(공수반)은
춘추시대 魯나라의 名 匠人(장인)이다. 어떤 나무토막이든 그의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國寶로 변할 만큼 손재주가 뛰어났다.워낙 技巧(기교)가
뛰어나 도끼놀림이 귀신같고 대패질은 아지랑이 춤추듯했다.
그 때 젊은 木手 하나가 있었다. 조금은 技藝(기예)를 익혔는데 도무지眼下無人(안하무인)이었다.
하루는 자신의 작품 몇 점을 가지고 나타나 한 바탕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것을 보시오. 신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작품입니다.’ 하면서 도끼를
직접 꺼내 가지고는 현장에서 시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서 있던 곳은 公輸班의 대문 앞이었다. 그러자 구경꾼 중 하나가
가련하다는 듯이 말했다.‘이봐, 젊은이. 어디 등 뒤를 한 번 돌아보시지.
그게 누구 집인 줄 아는가? 바로 천하의 名匠 公輸班의 집이라오.’
집안을 돌아보고 난 그는 망연자실했다. 귀신도 무안해 할 정도의
재주, 精巧(정교)의 極致(극치)를 다한 조각들…. 자기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技藝가 아닌가. 젊은이는 그만 홍당무가 되어 머리를
떨군 채 자리를 뜨고 말았다.明나라 말기에 梅之渙(매지환)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한 번은 천하 대시인 李太白의 무덤을 지나게 되었는데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들어왔다. 그의 墓碑(묘비) 위에다 제 딴에는 文才(문재)깨나
갖추었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함부로 싯구를 새겨 넣었던 것이다. 불쾌한
마음 반, 안타까운 마음 반으로 자신도 한 수를 적어 넣었다.
采石江邊一堆土 채석강변일퇴토 李白之名高千古
이백지명고천고 來來往往一首詩 래래왕왕일수시 魯班門前弄大斧
노반문전농대부
채석 강변의 한 무더기 흙이여 이백의 이름 천고에 드높도다 오가는 사람마다 한 수 씩 남겼으니 노반의 문전에서 큰 도끼 자랑하네. |
■ 반식재상 伴食宰相
[짝 반/밥 식/재상 재/재상 상]
☞무위도식(無爲徒食)으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대신을 비꼬아
말함. [출전]『舊唐書』盧懷愼傳
[내용] 唐의
현종(玄宗)은 양귀비(楊貴妃)를 총애하다가 나라를 망친 황제로 유명하지만,
즉위 초에는 현인(賢人)을 등용하고 문예를 장려하여「개원(開元)의
治」라 불리울 만큼 문물의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현상(賢相) 요숭(姚崇)의
공로가 지대하였다.
그런데 요숭이 병으로 정사를 돌볼 수 없게 되자
노회신(盧懷愼)이 국정을 살폈으나 역부족으로 중요한 국사 결정에는
요숭을 찾아가 상의하였다. 그때부터 노회신을 가리켜 상반대신(相伴大臣)이라는
뜻으로 반식재상(伴食宰相)이라 불렀다. 무능한 대신이라는 조롱의 뜻이다.
중국 당나라 6대 황제 현종(玄宗)은 정권 탈취의 음모를 꾸미고 있던
태평공주(太平公主:측천무후의 딸)와 그 일파를 제거하고 연호도 개원(開元)이라
바꾸었다. 개원 2년(713), 현종은 과감한 개혁을 실시하였다.
문무 백관의
호사스러운 관복을 불살라 사치를 금하고, 조세와 부역을 줄여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형벌제도를 바로잡고, 부역을 면하기 위해 승적(僧籍)에
오른 자를 환속시키는 등 민생안정에 주력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이민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변방에 절도사 10명을 배치하였다.
이와 같은 현종의 치세가 성공할 수 있던 것은 요숭(姚崇)과 송경(宋璟)의
충실한 보좌 덕분이었다. 요숭이 재상에 재임하였을 때 노회신(盧懷愼)도
함께 재상의 자리에 있었다. 노회신은 청렴결백하고 검소하며, 근면한
인물이었다. 그가 재상에 있었을 당시 재산을 늘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어 오히려 식솔들은 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어느 날 요숭이 10일 동안 휴가를 떠나 노회신이 정사를 대행하게
되었다. 노회신은 어떻게 할 줄을 몰라 쩔쩔매어 일거리는 날마다 산더미처럼
쌓여만 갔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요숭은 노회신이 처리하지 못한
정사를 신속하고 깔끔하게 처리하였다. 이때 노회신은 자신의 능력이
요숭에 미치지 못함을 알자 이후 거의 모든 일을 요숭과 일일이 상의한
다음 처리하였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상반대신(相伴大臣:재상 옆에 있는
대신)이라는 뜻으로 반식재상(伴食宰相)이라 조롱하였다. 능력이나 전문지식과는
관계없이 학연, 혈연, 지연에 따라 인사가 이루어지는, 즉 다른 사람
덕분으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게 하는 고사성어이다.
상반대신 또는 반식대신(伴食大臣)이라고도 한다.
[원문]顧謂齊澣曰 可謂救時之相,懷愼知才不及,
每事皆推崇之,時人謂之“伴食宰相 ** 伴食(반식) : 실권이나 실력이
없이 어떠한 직에 앉아서 자리만 지키고 있는 일.
|
■ 반신반의 半信半疑
[반 반/믿을 신/반 반/의심할
의]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하다 . [예문] ▷
윤 생원의 너무나 자신만만한 이야기 앞에서는 슬그머니
눌려서, 정말 그런 수도 있는가 하고 반신반의
상태가 되어 눈들만 끔벅거렸다.≪하근찬, 야호≫
▷
책장사는 맥이 풀리는 지라 항에게 책사기를 권했다. 항은 "다
외워버렸으니 안사요." 하는 것이었다. 책장사는
반신반의하며 맹자 한 질의 내용을 물으니, 그때마다 척척 알고
있었다. 책장사는 그때야 강항이 보통 아이가 아닌 신동(神童)임을 알았다.<네이버
오픈국어>
▷ 고속버스통행료 수도료 기름값등 공공성 요금인상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서민들의 가계부담이 커지고 수재민들은 아직도 한숨만
짓고 있는 가운데 저소득층 학비감면, 농어민 부채보증, 지방의원 활동비
및 공무원들의 봉급인상, 시민단체 지원 등 각종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대해 시민들은‘반신반의’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경기일보> |
■ 반의지희 斑衣之戱
[얼룰 반/옷 의/어조사 지/놀 희]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논다, 어버이에게 효도함 [출전]:
『몽구(蒙求) 』
[내용]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에 노래자(老萊子)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님을 봉양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였다. 그의 나이 70의 백발 노인이 되었지만, 그의 부모님은 정성껏
보살피는 아들의 효성 때문인지 그때까지 정정하게 살아 계셨다.
노래자는 항상 어린 아이들처럼 알록달록한 문양이 있는 옷을 입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떨었다. 그의 재롱에
부모님들 역시 자신들의 나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헤아리려고 하지 않았다.
노래자 역시 나이 많은 부모님 앞에서는 자신의 나이를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님의 식사는 손수 갖다 드렸으며, 식사를 마칠 때까지 마루에서
엎드려 있었다. 이것은 갓난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을 흉내낸 것이다. 초나라 왕실이 혼란에 빠졌을 때, 노래자는 몽산(蒙山) 남쪽에 숨어
밭을 갈아 생활하며 저술 작업을 했다. 이때부터 ‘노래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유]노래자유희(老萊子遊戱)--초(楚)나라의
노래자(老萊子)라는 사람이 칠십(七十)에 색동옷을 입고 어린애 같은
재롱을 피우며 늙으신 부모 님을 기쁘게 해드린 데서 유래. 노래자는
중국의 24효자 중의 한 사람
[참고] ▷
손순매아(孫順埋兒) : 손순이 어머니에 대한 효도를 다하기 위하여 아이를
묻었다는 설화. 이에 복을 받고 아이를 묻으려 한 데에서 훌륭한 종(鐘)을
얻게 됨. 종소리가 임금 귀에까지 들려, 임금이 사람을 시켜 사연을
알아본즉 손순의 효심이 지극했음을 알고 큰 상을 내림 --- [삼국유사]
▷
왕상득리(王祥得鯉) :효(孝) 진나라 때 선비인 왕상(王祥)이 계모를
위하여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드렸다는 고사
▷ 맹종설순 孟宗設筍--오대의 벼슬아치인 맹종(孟宗)이 한겨울에
노모를 위하여 눈물로 죽순을 돋게 했다는 고사 |
■ 반포보은 反哺報恩
[보답할 반/먹일 포/갚을 보/은혜 은]
☞자식이
부모가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는 것. [동]反哺之孝
/ 慈烏反哺 / 烏有反哺之孝 [출전]:
『금경』
[내용]까마귀는 자란 뒤에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는 속설에서 온 말.그리하여 까마귀를 반포조(反哺鳥)라
함.
한국이나 중국
사람들은 까마귀를 흉조(凶鳥)로 여긴다. 특히 울음 소리는 '죽음'을
象徵하기도 한다. 즉 아침에 일면 아이가, 낮에 울면 젊은이가, 오후에
울면 늙은이가 죽을 徵兆며 한밤에 울면 殺人이 날 徵兆라고 여겼다.
또 까마귀는 시체를 즐겨 먹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까마귀 밥이
되었다"고 하면 그 자체로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지금도 인도와
티베트에서는 조장(鳥葬)이 盛行하고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내다버려
까마귀에게 뜯어먹도록 하는데 그래야만 죽은이가 승천(昇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明나라 이시진(李時珍)의 [本草綱目]에
의하면 새끼가 어미를 먹여 살리는데는 까마귀만한 놈도 없다. 그래서
이름도 '자오(慈烏·인자한 까마귀)'라고 했다.곧 까마귀의
되먹이는 習性에서 '反哺'라는 말이 나왔으며 이는 '지극한 孝道'를
의미한다. '反哺之孝'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까마귀는 '효조(孝鳥)'이기도
한 셈이다. **反哺鳥,孝鳥.慈鳥(자조)--까마귀/
[참고] **안갚음과
앙갚음 ▷ 안갚음 :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줌으로써 길러 준 은혜를 갚는 일 / 자식이 어버이의 은혜를
갚는 일. 반포(反哺).
▷ 앙갚음 : 어떤 해를 입은 한을 풀기 위하여 상대편에게 그만한
해를 입힘, 또는 그런 행동. 보복(報復). 복수(復讐).
▷ 부모은중경 [父母恩重經]의 10가지 효도 *
父母恩重經 : 부모의 크고 깊은 은혜를 보답하도록 가르친 불교 경전
1)
아기를 배서 보호해 주시는 은혜 2) 아기를 낳을 때 산고(産苦)를
겪으시는 은혜 3) 자녀를 낳고 온갖 시름을 잊으시는 은혜 4)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어서 자녀에게 먹이시는 은혜 5)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는 은혜 6) 젖을 먹여서 길러 주시는 은혜 7)
옷을 세탁하여 입히시는 은혜 8) 멀리 집을 떠나 있을 때도 앓을세라
그릇될세라 염려하시는 은혜 9) 자녀를 위해서라면 온갖 고생을 하시는
은혜 10) 자라서도 끝까지 지켜 보시며 불쌍하게 여겨 주시는 은혜
[예문] ▷
박장원 '反哺鳥' 연로한 어버이 진수성찬도 대접 못해 드리네
미물(微物)도 사람을 감동시키련만 숲속의 까마귀 보면 눈물
흘리네 "
▷ 박효관 시조 '교훈가' 뉘라셔 가마귀를
검고 흉(凶)타 하돗던고. 반포보은(反哺報恩)이 긔 아니 아름다온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허하노라
▷ 박인로 '조홍시가'
盤中(반중) 早紅(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柚子(유자)ㅣ 아니라도
품엄 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기리 업슬세 글로 셜워하나이다.
▷ 이 때 제일석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물을 조금 마시고 연설을
시작한다. 내용은 [반포의 효(反哺之孝)]를 예로
들면서 인간을 비난한다. 그리고 제이석의 여우가 등단하여 기생이
시조를 부르려고 목을 가다듬는 듯한 간사한 목소리로[호가호위(狐假虎威)]를
들면서 인간의 간사함을 성토한다.
제삼석의 개구리는 [정와어해(井蛙語海)]의
예를 들어 분수를 지킬 줄 모르고 잘난 척하는 인간을, 제사석의 벌은
[구밀복검(口蜜腹劍)]의 예를 들어 인간의 이중성을, 제오석의 게는
[무장공자(無腸公子)]의 예로써 외세에 의존하려는 인간의 태도를 비난한다.<안국선
『금수회의록』> |
■ 반한 反汗
[돌이킬
반/땀 한]
☞흐르는 땀을 다시 몸속으로 되돌린다는 뜻으로, 이미 내린 명령을
취소하거나 고침을 이르는 말. 약속을 어김 [출전]『漢書』 |
■ 발본색원 拔本塞源
[뺄 발/근본 본/막을 색/근원 원]
☞근본을 뽑고 근원을 막아 버린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그 폐단을
없애 버리다. [동]剪草除根(전초제근)
: 풀을 베고 뿌리를 캐내다. 즉 미리 폐단의 근본을 없애 버리다. /削株堀根(삭주굴근)
: 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파냄. 즉 미리 화근(禍根)을 뽑아 버리다.
[출전]『春秋左氏傳』《전습록(傳習錄)》
[내용1] 나에게
큰아버지가 계심은 마치 의복에다 갓이나 면류관을 갖춘 것과 같고,
나무의 뿌리와 물의 수원이 있는 것과 같고 백성들에게 지혜로운 임금이
계신 것과 같다. 「백부께서 만약 갓을 찢고 면류관을 부수고 근본을
뽑고 근원을 막으며 오로지 지혜로운 임금을 버리신다면 비록 오랑캐일지라도
그 어찌 나 한 사람 뿐이리오.『春秋左氏傳』
[원문]我在伯父
猶衣服之有冠冕 木水之有本源 民人之有謀主 伯父若裂冠毁冕 拔本塞源
專棄謀主 雖戎狄其何有餘一人
[내용2] 명(明)나라의 왕양명(王陽明)도
그의 저서 《전습록(傳習錄)》에서 발본색원론(拔本
塞源論)을 이야기하였다. 왕양명은 '발본색원론이 천하에 밝혀지지
않는다면 세상에 성인을 흉내내는 무리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세상이
점점 어지러워져 사람들이 금수나 오랑캐같이 되어 성인의 학문을 이루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전형적인 이상 사회의 모습을 중국
고대국가인 요(堯)·순(舜)·우(禹) 나라를 예로 들었다.
그가 말하는 발본색원의 취지는 한 마디로 하늘의 이치를 알고, 사람들은
그 욕심을 버리라는 것으로, 사사로운 탐욕은 그 근원부터 없애고 근원을
철저히 차단하는 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발본색원은 부정부패
척결, 범죄 조직 소탕 등과 같은 주로 사회의 암적인 면을 뿌리째 뽑아
재발을 방지하는 데 인용된다《전습록(傳習錄)》
[예문] ▷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다 ▷ 유흥가에 기생하는 폭력 조직을 발본색원하기
위해서 수많은 경찰이 투입되었다..
▷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을 재벌이나 복부인의 땅투기, 그리고 악덕
부동산 업자들의 농간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투기를 원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투기는 억제되어야 하고 투기꾼은
'발본색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런 수사결과로는
의혹을 잠재우기는커녕 더 부풀리게 할 뿐이다. 민심은 또다시 변죽만
울리다 만 수사결과에 조롱과 비아냥을 보내게 될 것이다. 병역비리를
정말 발본색원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국일보>
|
■ 발분망식 發憤忘食
[일어날 발/분낼 분/잊을 망/먹을 식]
☞분발하여 무엇을 하는데 끼니조차 잊는다, 무엇에 열중하기를 좋아함.
[출전]『논어』 [내용]초(楚)나라
섭현(葉縣)의 장관 심제량(沈諸梁:보통 섭공이라 부름)이 하루는 공자(孔子)의
제자 자로(子路)에게 물어 보았다. "그대의 스승 공자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자로는 이 질문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공자의 인품이 너무도 위대하기 때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옳은 지, 갑자기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질문의 취지가 엉뚱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나중에 들은 공자가 자로에게 말했다. "너는
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그 사람됨은 학문에 발분하면 식사를 잊고,
도를 즐겨 근심을 잊으며, 늙음이 닥쳐오고 있는데도 모르고 있는 그런
인물이라고(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
[해설]'발분망식(發憤忘食)'은
공자가 학문을 몹시 좋아함을 말한다. 문제를 발견하여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 뜻을 두는 것이 발분(發憤)이다.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는
발분망식(發憤忘食) 앞에 "학도불권 회인부염 (學道不倦 誨人部厭)",
즉 "도를 배우되 싫증내지 않고, 사람을 깨우쳐 주되 마다하지
않는다"는 두 구가 덧붙어 있다.
[예문]이
거룩한 사업을 위해서 먹을 것을 못 먹고 입을 것을 입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발분망식하고 다닌다….≪김성한,
자유인≫ <출처 : 네이버> |
■ 발산개세 拔山蓋世
[뽑을 발/뫼 산/덮을 개/세상 세]
☞산을 뽑고, 세상을 덮을 만한 기상. 아주 뛰어난 기운. 또는 놀라운
기상. [동]力拔山氣蓋世(역발산기개세)
/ 개세지재(蓋世之才)
[출전]『史記,』
[내용]
:項羽가
劉邦에게
포위되었을 때,「항우가 밤에 일어나서 진중에서 술을 마실 때 옆에
아름다운 부인이 있는데 이름은 우(虞)라. 항상 항우를 따라다酵다.
준마(駿馬)의 이름은 추(?)라, 항상 이것을 타고 다니니라.
이에
있어서 항왕이 이에 슬픈 노래를 불러 탄식하고 스스로 시를 지으니
그 시에 말하되‘힘이 산을 뽑음이여! 기운이 온 누리를 덮을 만하도다.
때가 이롭지 아니함이여! 준마도 달리지 않도다. 준마도 닫지 아니함이여!
어떻게 할까? 우미인이여! 우미인이여! 어찌할꼬!’노래를 몇 차례 부르다가
끝나고 우미인이 화답하니, 항왕이 눈물을 줄줄 흘리니라. 옆에 있는
신하들이 다 소리를 내어 우니, 이것을 차마 볼 수 없을 지경이더라.
[원문]項王이
則夜起하여 飮帳中할새 有美人하니 名은 虞라 常行從하고 駿馬의 名은
?라 常騎之라 於是에 項王이 乃悲歌句慨하여 自爲詩하니 曰 力拔山兮여
氣蓋世로다 時不利兮여 ?不逝로다 ?不逝兮여 可奈何오 虞兮虞兮여
乃若何오 歌數?에 美人이 和之하니 項王이 泣數行下라 左右皆泣하여
莫能仰視러라.
[참고] 패왕별희 [ 覇王別姬 ]--중국의
경극 희곡(京劇戱曲). 작자 미상. 초한(楚漢)의 전쟁을 배경으로 초의
패왕(覇王) 항우(項羽)와 우미인(虞美人)과의 이별을 그린 작품으로
《서한연의(西漢演義)》에 의거하였다. 1918년 《초한의 싸움》이라는
제목으로 초연되었다. 항우는 우미인과 여러 장군의 간언(諫言)을 물리치고
한군(漢軍)에서 투항해 온 이좌거(李左車)의 권고로 출병하지만 이것은
한의 군사(軍師) 한신(韓信)의 모략이었다.
유인된 항우의 초군(楚軍)은 복병에 의하여 해하(垓下)에서 포위되어
사면(四面)에서 초가(楚歌)를 듣는다. 항우는 “초나라는 이미 망한
것인가.”라고 애마(愛馬)를 어루만지며 장탄식하고, 우미인은 작별의
시간이 왔을 때 칼을 들고 춤을 추다 자진(自盡)한다. 혼자 탈출한 항우도
오강(烏江)에서 자결하고 만다.
|
■ 발호 跋扈
[뛰어넘을
발/사나울 발/떨칠 호,통발 호]
☞통발을 뛰어넘는 큰 물고기처럼 세차고 사납게 날뜀 / 세력이 강성하여
다스리기가 매우 어려움
[출전]『後漢書』 [내용]한나라가
외척들과 환관들 때문에 멸망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외척 중에서 10대 순제(順帝)의 황후의 형인 양기(梁冀)란 자가 20년간에
걸쳐 실권을 장악하고 횡포를 부렸다.
그는 순제가 죽자, 겨우
두 살짜리 조카를 충제(沖帝)에 즉위시켰고, 1년 후에 여덟 살자리 질제(質帝)를
즉위시켰다. 그런데 질제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양기의 횡포가 이만저만
눈에 거슬렸던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질제는 신하들과 마주한 자리에서 양기에게 눈을 고정시키고
말했다. “이분이 발호장군(跋扈將軍)이로군.”
이것은 양호가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통발을 뛰어넘어 도망친 큼 물고기처럼
방자함을 비유한 것이다.
양기는 이 말을 듣고는 화가 치밀어
올라 측근에 있는 자에게 명 하여 질제를 독살시켰다. 또 수(隋)나라
양제(煬帝)가 배를 타고 항해하는 중에 폭풍을 만나 당황하여, “이
바람은 발호장군이라고 말할 만하다.”라고 한 말에서 ‘장군(將軍)’
두 글자를 붙여서 폭풍을 뜻하기도 한다.
[원문]八歲
卽位 少聰慧 嘗因朝會 目梁冀曰 此 跋扈將軍也 冀深惡之 使左右 於餠中
進毒 遂崩
[예문] ▷
군벌과 외척의 발호 과다한 진상물 마련과 탐관오리
발호에 시달릴 대로 시달려 온 이 섬 백성들인데….≪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이곳에 고려말 탐라에서
발호하던 원의 호목들을 토벌하기 위해 제주를 향하던 최영장군이
한때 잠시 머물다 갔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 추자도 어항 뒤쪽
산 중턱엔 최영장군의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제주 관광 안내> |
■ 방기곡경旁岐曲徑
[곁
방/갈림길 기/굽을 곡/길 경]
☞곁길(샛길)과 굽은 길, 일을 순서대로
정당하게 하지 아니하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함. 바른 길을 좇아
정당하게 일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일=반계곡경
盤溪曲徑(서려 있는 계곡과 구불구불한 길) |
■ 방방곡곡坊坊曲曲
[동네 방/골짜기 곡]
☞어느 한 군데도 빼놓지 않은 모든 곳. 도처(到處). [예문] ▷
삼천리 방방곡곡 ▷ 방방곡곡 안 다닌 데 없이 다녔어도 이처럼
좋은 곳은 보지 못했다. ▷ 권길은 산속 촌락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이튿날 아침까지 수백 명 장정들을 몰아 가지고
돌아왔다.≪박종화, 임진왜란≫ <출처 : 네이버> ▷ 물맛을
따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간장, 고추장, 술 등 각 생산업체들의 물경쟁도
치열하다. 방방곡곡의 소문난 물들을 찾는 국토여행을
따라가본다<인터넷 한겨레> |
■ 방약무인 傍若無人
[곁 방/같을 약]
☞곁에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함.
또는 무엇을 하거나 말할 때 조금도 꺼리낌 없고 조심성없게 한다. [동]眼下無人(안하무인)
: 눈 아래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교만하게 행동함..
[유]輕擧妄動(경거망동) : 경솔하고 망령되게 행동하다.
/傲慢無禮(오만무례) : 행동이 교만하고 예의없이 행동하다./ 놓아 먹인
말이다. /선머슴이라
[출전]『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
[내용]
전국시대 말기에 衛나라 사람 형가(荊軻)는 술과 글을 좋아하고 검술에
뛰어난 비범한 인물이었지만 위나라에서 자신이 등용되지 않자 燕나라로
가 개잡는 사람들과 거리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고 또한 축(筑:대나무로
만든 악기로거문고와 비슷함)의 명인인 고점리(高漸離)와 사귀었다.
술을 마시고 취하면「고점리가 축을 치며 곁에 사람이 없는 것 같이
행동하였다.(漸離擊筑하며 傍若無人하다.)」그 후 秦나라로부터 치욕을
받은 연나라 태자 단(丹)의 부탁으로 秦始皇을 암살하기 위하여 진나라로
들어 갔으나 피살당하고 말았다.(『史記,』 刺客列傳)
[원문]荊軻旣至燕,
愛燕之狗屠及善擊筑者高漸離.荊軻嗜酒, 日與狗屠及高漸離飮於燕市, 酒以往,
高漸離擊筑, 荊軻和而歌於市中, 相樂也, 已而相泣, 旁若無人者. 荊軻雖游於酒人乎,
然其爲人沈深好書;其所游諸侯, 盡與其賢豪長者相結. 其之燕, 燕之處士
田光先生亦善待之, 知其非庸人也
[예문] ▷ 제 지각이 날 만한
장성한 처녀의 몸으로 학교를 마치고도 근친을 가지 않고 일 없이 서울에
머물러 있으며 놓아 먹인 말 모양으로
갈 데 못 갈데 없이 싸질러 돌아 다니는 것이 천부당 만부당한 일인
데다가…(沈熏, 탈춤)
▷
이백은 그를 ‘적선인(謫仙人)’이라 평한 하지장(賀知章) 등과 술에
빠져 ‘술 속의 팔선(八仙)’으로 불렸고, 방약무인한
태도 때문에 현종의 총신 고력사(高力士)의 미움을 받아 마침내
궁정을 쫓겨나 창안을 떠났다<두산백과>
▷ 남이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방약무인으로 떠들어 댄다.
▷ 방약무인한 행동 ▷ 그들은 술에
취해 방약무인하게 굴었다. ▷ 왕은 방약무인한
그의 태도에 몹시 노했다.
▷ 본시부터 신경질적인 성격은
차츰 잔인하게 변하였으며 방약무인의 젊은이로
성장했다.≪박경리, 토지≫
▷ 적병들은 평양서 다 죽었던 기운이
다시 소생이 되어 방약무인으로 교만할 터이니….≪박종화,
임진왜란≫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
■ 방휼지쟁 蚌鷸之爭
[조개 방/황새 휼/어조사 지/다툴 쟁]
☞조개와
도요새의 다툼. 서로 버티고 물러서지 않고 싸움 . [동]漁父之利(어부지리)
: 제 삼자가 이익을 봄. /犬兎之爭(견토지쟁) : 한로(韓盧)라 하는 개가
동곽준(東郭逡)이란 토끼를 쫓아서 산에 오르 기를 다섯 번, 산을 돌기를
세 번 하다가 마침내는 둘이 다 기운이 빠 져 죽어버리므로 둘 다 지나가던
사람이 얻어 가지게 되었다는 옛일에 서 나온 말로 둘의 싸움 끝에 아무
관계 없는 제삼자가 이익을 봄. [내용]
전국시대 제나라에 많은 군사를 파병한 연나라에 기근이
들자 조나라 혜문왕은 침랴을 준비하였다.연나라 소왕은 종횡가
소대에게 혜문와을 설득해주도록 부탁하였다.소대는 세치의 혀로 합종책을
펴 6국의 재상을 지냈던 소진의 동생답게 거침없이 혜문왕을 설득하였다."
오늘
귀국에 들어오는 길에 역수를 지나다 문득 강변을 바라보니 조개가 조가비를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이 때 갑자기 도요새가 날아와 부리로
조갯살을 쪼았습니다.깜짝 놀란 조개는 조가비를 굳게 닫고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도요새는 '이대로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 죽을 것이다'라고 하고 조개는 '내가 놓아주지
않으면 너는 굶어죽을 것이다' 맞서다가 지나가던 어부에게 둘 다 잡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전하는 지금 연나라를 치려 하십니다.
연나라가 조개라면 조나라는 도요새입니다.두나라가 싸워 백성들을
피폐하게 한다면 저 강력한 진나라가 어부가 되어 맛있는 국물을 다
마셔 버릴 것입니다."과연 옳은 말이요" 이리하여 혜문왕은
당장 침공 계획을 철회했다. |
■ 배수지진 背水之陣
[등질 배/물 수/어조사 지/떼 진]
☞강이나 바다를 등지고 치는 진.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더이상
물러설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동]捨量沈舟(사량침주)
: 식량을 버리고 배를 침몰시키다. /濟河焚舟(제하분주) : 물을 건너고
나서 그 배를 불사르다. /釜釜沈舟(파부침주) : 솥을 깨뜨리고 타고
간 배를 침몰시키다. [속담] 칼 물고 뜀 뛰기.
[내용]
: 한(漢)나라의 한신(韓信)이 조(趙)나라를 치려고 나섰다.
조나라를 공격하려면 정형(井?)의 좁은 굴을 빠져 나가야 했는데, 조나라는
쳐들어 올 것을 예상하고 그곳에 20만명의 병력을 집결시켜 놓았다.
한신은「군리에게 일러 가로되 조군이 이미 먼저 유리한
땅을 차지하여 성에 의거했으니 저들은 우리의 대장기와 북을 보지 못하면
먼저 공격하는 것을 옳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한신이 곧 1만의 군사에게
먼저 가게 하여 배수진을 치니 조군이 바라보고 크게 웃었다.
날이
밝자 한신은 대장기를 앞세우고 정형의 입구에서 나왔다. 조나라 군사가
성문을 열고 일제히 공격하였다. 한군이 패배를 가장하여 후퇴하니 조군은
성을 비운 채 추격해 왔다. 이 사이에 매복시켜 놓았던 한군이 성을
정복하고 강을 등지고 진을 친 군사는 목숨을 걸고 싸워 큰 승리를 거두었다.
[원문]謂軍吏曰 趙已先據便地爲壁하니
此彼未見吾大將旗鼓면 未肯擊前行하리라. 信乃使萬人으로 先出하여 背水陣하니
趙軍이 望見而大笑하더라. ** ?(지레목 형) 吏(아전 리) 據(웅거할
거) 壁(바람박 벽) 旗(깃발 기) 肯(즐길 긍)
[예문] ▷
이번 경기에서 지면 탈락이 확정되기 때문에 두 팀 모두
배수진을 치고 시종일관 공격적인 경기를 펼쳤다.
▷
강제 철거라도 불사한다는 방침이 배수진인 이상
쉽사리 풀리리란 전망을 가져선 방정맞지 않겠나 싶기도 했다.≪이문구,
장한몽≫
▷ 바루 이 산 너머 큰 골에 광산이 있다. 광부를
삼백여명이나 부리는 노다지 판인데 매일 소출되는 금이 칠십냥을 넘는다.
돈으로 치면 칠천원, 그 줄맥이 큰 산허리를 뚫고 나왔다는 것이다.
둘이서 파면 불과 열흘 안에 줄을 잡을 게고 적어도 하루 서돈씩은 되리라
우선 삼만원만 해도 얼마냐, 소를 산대도 반필이 아니냐고, 그러나 영식이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금점이란 칼 물고 뜀 뛰기다. 잘 되면 이어니와
못 되면 신세만 좁힌다. [참고]
▷ 堡壘(보루) : 적군을 막거나 공격하기 위해 흙이나 돌로 튼튼하게
쌓아놓은 진지. 즉, 가장 튼튼한 발판.
▷ 마지노선(Maginot
line) : 프랑스 육군 장관 앙드레 마지노의 이름을 땀. 방어선을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에만 건설하여, 독일군이 벨기에로 우회해서 침공.‘마지노선이
무너졌다’는 말이 생김. |
■ 배은망덕 背恩忘德
[등질 배/은혜 은/잊을 망/덕
덕]
☞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덕을 잊다.
[예문] ▷ 그 같은 배은망덕을 저지르고서
다시 나를 찾아오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네가 어찌 나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배은망덕도 이럴 수가 있느냐. 저도 사람이면
인사를 해도 열백 번은 해야 할 처지인데….≪한수산, 부초≫ ▷
배은망덕한 짓 ▷ 키워 준 은공도 모르고 제 부모에게 배은망덕하니
하늘이 그에게 벌을 내리신 거야. ▷ 그놈이 온갖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고 다니더니 결국은 제 발등을 찍고 말았군.<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 사정이 딱한 동포에게 도움을 준 멕시코에
사는 30대 교포가 배은망덕한 도둑 때문에
수년간 하던 사업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 <인터넷한겨레> |
■ 배암투명 背暗投明
[등질 배/어두울 암/던질 투/밝을 명]
☞어두운 곳을 등지고 밝은 곳으로 나오다. 그른 길을 버리고 바른
길로 나아가다. |
■ 배중사영 杯中蛇影
[잔
배/가운데 중/뱀 사/그림자 영]
☞잔 속에 비친 뱀의 그림자.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의심을 품고 지나치게
근심을 하다. [유]杞憂(기우)
: 중국의 기(杞)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봐 침식(寢食)을 잊고 근심
걱정하였 다는 고사(故事).의심암귀(疑心暗鬼), 반신반의(半信半疑).사영배궁(蛇影杯弓)
[속담] 땅이 꺼질까봐 발 끝으로
다닌다. /달걀지고 성 밑으로 못 지나가겠다.
[출전]『풍속통의風俗通義』와
『진서晉書』악광전(樂廣傳) [내용]
후한 말 학자 응소(應?)의 조부 응침(應?)이 급현(汲縣)의 장관으로
있을 때 주부(主簿)인 두선(杜宣)과 술을 마셨다. 그런데 두선은 그의
술잔에 비친 활 그림자를 뱀으로 오인하여 마시기 싫었으나 마지 못해
마셨다.
그 후로 몸이 아파 백방으로 치료해 보았으나 병세는 오히려
악화될 뿐이었다. 응침이「그 변고를 물으니 이르되“두려운 것은 이
뱀이 배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응침이 돌아와 그 일을 듣고
생각하다가 한참 후에 활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옛 그 자리에 두선을
실어오게 하여 술자리를 마련하고 잔 속에 옛날 같이 뱀을 뜨게 한 다음
두선에게 이르기를“이 벽 위에 있는 활 그림자 일 뿐 다른 이상한 것이
있지 않다.”두선이 마침내 고민을 풀고 이로 말미암아 병이 나았다.
[원문]問其變故하니
云하되 畏此蛇入腹中이니다. ?還聽事하고 思惟良久顧見懸弩하다. 載宣於故處하여
設酒하고 杯中故復有蛇因謂宣 此壁上弩影耳나 非有他怪 宣遂解 由是發平하다.
** 還(돌아올 환) 顧(돌아볼 고) 弩(큰활 노) 他(다를 타) 宣(베풀 선)
解(풀 해) 發(니을 추) |
■ 배회고면 徘徊顧眄
[어정거릴 배/어정거릴 회/돌아볼 고/곁눈질할 면]
☞목적없이 이리저리 거닐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
■ 백가쟁명 百家爭鳴
[일백 백/집 가/다툴 쟁 /울릴 명]
☞많은 학자나 논객(論客)들이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논쟁하는 일.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학문이 융성했던
현상을 일컫는 말
[참고] 백화제방백가쟁명
[百花齊放百家爭鳴]
'온갖 꽃이 같이 피고 많은 사람들이 각기 주장을 편다'-- 1956년에
중국 공산당이 정치 투쟁을 위하여 내세운 슬로건. 마르크스주의는 다른
사상과 경쟁하면서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여야 하며, 처음부터 절대적
유일사상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문화 혁명 기간 중에는 이 운동이 사라졌다가,
1976년에 문화 혁명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예·학술
분야에서 장려되기도 했다.
[예문]
▷ 백두산, 부활, 시나위 등이 백가쟁명하던
80년대 후반 한국 헤비메탈의 황금기 한복판에 김종서가 있었다.
▷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세우자는 판국인데도 일의 선후조차 가리지 못하는 정치
집단들은 백가쟁명의 한심한 작태를 연출하였고...<신봉승의
역사에세이>
▷ 한때 한국 민주화 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며 진보와 좌파의 산실 역할을 해온 대학 사회.
탈정치에 뉴라이트, 심지어 뉴레프트까지
등장하면서 수많은 목소리가 경쟁하는 백가쟁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2005
YTN> |
■ 백구과극 白駒過隙
[흴 백/망아지 구/틈 극/지날 과/틈 극]
☞흰 망아지가 빨리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본다 .인생과 세월의 덧없고
짧음
[출전]『莊子』
知北遊篇 『史記』유후세가(留侯世家)
[내용1]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는 것은, '흰 말이 달려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 로 보는 것[白駒之過隙]'처럼 순간일 뿐이다.
모든 사물들은 물이 솟아나듯이 문득 생겨났다가 물이 흐르듯 아득하게
사라져가는 것이다. 변화로써 태어났 다가 또한 변화로써 죽을 뿐이다. 생물들은 이를 슬퍼하고, 사람들도 이를 슬퍼한다.
죽음이란 화살이 살통을 빠져나가고, 칼이 칼집을 빠져나감과 같이
혼백이 육신에서 빠져나가고 이에 몸이 따라 무(無)로
돌아가는 것을 말함이니, 이야말로 위대한 복귀(復歸)가 아닌가!
사람이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이처럼 허무한 일이다.(장자)
[내용2]여태후(呂太后)가 유후(留侯)에
대하여 한 말이 다음 과 같이 실려 있다.
인생의 한 세상 사이는 '흰 말이 틈을 지나가는 것[白駒過隙]'과
같다. 어찌 스스로 괴로워하기가 이와 같음에 이르겠는가? [人生一世間
如白駒過隙 何至自若如此乎](사기)
|
■ 백년가약 百年佳約
[일백 백/해 년/아름다울 가/맺을
약]
☞젊은 남녀가 결혼하여 한평생을 함께 하자는 언약. [예문]몽룡은
춘향 어미 월매에게 춘향과의 백년가약을 원한다는
뜻을 밝히고 불망기를 써서 자신의 마음이 영원히 변치않을
것임을 맹세한다. 그 밤으로 이루어진 몽룡과 춘향은 꿈결같은 세월을
보낸다. 하지만 몽룡의 아버지 이사또가 동부승지로 가게되니 몽룡도
부모따라 한양으로 가게된다<춘향전>. |
■ 백년대계 百年大計
[일 백 백/해 년/클 대/꾀할
계]
☞먼 장래를 내다보고 세우는 계획. 일생의 큰 계획. [예문]특정
장관 교체의 타당성 여부를 논하자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른 부처도
단명장관 문제는 자주 거론된다. 그러나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는 관용적 표현에 담긴 깊은 뜻을 진지하게
유념해볼 필요가 있다.<한국일보> |
■ 백년하청 百年河淸
[일백 백/해 년/강 하/맑을 청]
☞백년에 한 번 황하의 물이 맑아진다. 아무리 기다려도 일이 이루어질
가망이 없음.
[동]千年一淸(천년일청)
: 물이 천년에 한 번 맑아진다는 뜻. / 如俟河淸(여사하청) :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俟河淸(사하청) : 언제나 흐리어 누런 황하의
물이 맑기를 기다린다./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
[속담]곯은
달걀이 꼬끼오 하거든. /대천 바다가 육지될 때를 기다려라. [출전]『春秋左氏傳』襄公八年條 [내용]
楚나라의 영윤(令尹) 자양(子襄)이 鄭나라를 공격 하였을 때 정나라의
경대부 여섯 명이 회의를 열어, 자사(子駟)·자국(子國)·자이(子耳)는
항복하자 하고, 자공(子孔)·자교(子?)·자전(子展)은 晉나라에
구원을 청하자고 주장하였다.
자사가「주나라의 시에 이것이 있어 말하기를
황하의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면 사람의 수명이 얼마나 되겠는가?(周詩有之하여
曰 俟河之淸이면 人壽幾何오) 점을 쳐 일하는 사람이 많으면 어수선해지고
그물에 거려 움직일 수가 없게 된다.」라는 시를 인용하고,“대책을
세우는 사람이 많으면 일을 이루지 못하니 예물을 갖추어 초나라와 진나라
국경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강한 쪽에 붙어 백성을 지키는 것이 좋지
아니한가?”라고 말했다.
그 후에 결국 초나라와 화친하였다. 이
말은 믿을 수 없는 진나라의 구원병을 기다린다는 것은 황허강의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는 이야기와 같은 뜻이다. 결국 자사의 주장이 수용되어
초나라에 항복하여 화친을 맺고 위기를 현실적으로 모면하였다. 백년하청은
보통 불가능한 일의 상징으로 비유된다
[원문]周詩有之曰
待河之淸 人壽幾何 非云詢多 職競作羅
[참고]고대
문명은 모두 강 연안에서 발달해 하천 문명으로 일컬어진다.‘楊子江’과‘황하’는
똑 같이 큰강이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데 달리 불리는가? 즉 같은
물 수(水) 변에 붙은 (工)과 가(可)의 차이로, 工은 곧고 반듯하다는
뜻이로, 項은 반듯하고 곧은 목을 뜻하고, 功은 일에 임해서 곧바로
힘쓰는 것을 뜻하고, 攻은 곧바로 쳐들어간다는 뜻한다.
또한 可는 굽는다.
굴절한다는 뜻으로, 何는 사람이 짐을 지고 허리를 굽힌다는 형상이요,
柯는 굽은 나무가지이며, 歌는 굴곡이 있는 목소리를, 奇는 반듯하지
못하고 굽어 있어 비정상적인 상태를 뜻한다. 그러므로 江은‘直’이요
河는‘曲’이다.
[예문] ▷
밤낮 부두에만 매달려 보았자 백년하청이고
뭐니 뭐니 장삿길밖에 없을 것 같다.≪이호철, 소시민≫
▷
이 같은 제도적 장치를 또 다시 대법원이나 검찰 등 법조계에 맡겨서는
백년하청이다. 사법개혁을 시작한지 10년이 더 지났는데도 여전히 흐지부지
한다면 이제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나서야 한다<2006 데일리안>
▷
입시공부가 최우선인데 무슨 존댓말 교육?이라고 항변할 수 있겠으나
그렇게 치면 올바른 경어 사용은 백년하청이다.
경어가 한국어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인정한다면 경어 교육은 결코 소홀히
할 문제가 아니다 <2006 국민일보>
▷ “당신은 메칠 안 남었다고 하지만 특공댄지 정신댄지 고 악지 센 것들이 끝까지 일인일함(一人一艦)으로 뻣댄다면 아무리 물자 많은 미국이라도
일본 병정 수효만치야 군함을 만들 수 없을 거요. 일본이 망하기란 하늘에 별따기 같은 걸 기다리나 보오!” ≪이태준, ‘해방전후’≫ |
■ 백년해로 百年偕老
[일백 백/해 년/다 해/늙을
로]
☞부부가 되어 서로 사이좋고 화목하게 함께 늙다.
[출전]『시경(詩經)』의
격고(擊鼓)/『위풍(衛風)』 맹(氓)
[내용]시경(詩經)의
격고(擊鼓)는 아내를 그리는 한 전사(戰士)의 애달픈 심정(心情)을 읊고
있다.
죽거나 살거나 함께 고생하자던 당신과 굳고 굳은 언약 있었지 섬섬옥수 고운 손 힘주어 잡고 단둘이 오순도순 백년해로하자고 같은 책, 위풍(衛風)
맹(氓)에는
그대와 함께 늙자 했더니 늙어서는 나를 원망하게
만드는 구나 강에도 언덕이 있고 못에도 둔덕이 있는데 총각
시절의 즐거움은 말과 웃음이 평화로웠네 마음놓고 믿고 맹세하여
이렇게
뒤집힐 줄은 생각지 못했네 뒤집히리라 생각지 않았으면 역시
하는 수 없네 라고 하여 해로하자고 약속했던 남편이 도리어
아내를 난폭하게 대하고 첩을 끌어 들여 괴롭히자 아내가 이를
참지 못하고 우물가에서 동네 아낙들에게 신세 타령을 하는 내용이다
[원문]生死契闊
與子成說 執子之手 與子偕老<시경(詩經) > 及爾偕老,老使我怨.淇則有岸,則有泮.總角之宴,言笑晏晏.信誓旦旦,不思其反.反是不思,亦已焉哉!<위풍(衛風)
맹(氓)>
[참고]부부와
관련한 성어--조강지처(糟糠之妻)
백년가약(百年佳約) 거안제미(擧案齊眉) 부창부수(夫唱婦隨) 금슬상화(琴瑟相和)
부위부강(夫爲婦綱) 비익연리(比翼連理) 원앙지계(鴛鴦之契)
[예문] ▷
신랑이 기럭아비와 함께 신부집에 도착하여, 신부의 어머니에게 기러기를
드리는 예이다. 옛날에는 산 기러기로 예를 행하였으나, 근래에 와서는
나무기러기를 대신 사용하고 있다. 기러기는 한번 연(緣)을 맺으면 생명이
끝날 때까지 짝의 연분을 지킨다 하여, 신랑이 백년해로(百年偕老)
서약의 징표로서 신부의 어머니에게 기러기를 드린다. <奠雁禮>
▷
백년해로를 언약하다. / 그와 백년해로하기로
결심했다. /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
■ 백두여신 白頭如新
[흴
백/머리 두/같을 여/새로울 신]
☞머리가 파뿌리처럼 되기까지 교제하더라도 서로 마음이 안통하면
새로 사귀기 시작한 사람과 같다
[출전]『史記』鄒陽列傳
[내용]추양(鄒陽)은
전한(前漢) 초기의 사람이다. 그는 양(梁)나라에서 무고한 죄로 사형을
선고 받았는데, 옥중에서 양나라의 왕에게 글월을 올려 사람을 아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말했다. "형가(荊軻)는 연(燕)나라 태자 단(丹)의 의협심을 존경하여,
그를 위해 진(秦)나라 시황제를 암살하러 갔었다.
그러나 태자 단도
형가를 겁쟁이라고 의심한 일이 한 번 있었다. 또 변화(卞和)는 보옥의 원석을 발견하여 초나라 왕에게 바쳤는데,
왕이 신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임금을 기만하는 자라 하여 옥에 가두었을
뿐만 아니라 발을 베는 형에 처했다.
이사(李斯)는 전력을 기우려 진나라 시황제를 위해 활동하고 진나라를
부강하게 했으나 마지막에 2세 황제로부터 극형에 처해졌다. 정말 백두여신(白頭如新)
말대로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제하더라도 서로 이해하지 못함은 새로
사귄 벗과 같다." 양나라 왕은 이 글을 읽고 감동하여 그를 석방했을 뿐만 아니라,
상객으로 맞이해 후히 대접했다 |
■ 백락일고 伯樂一顧
[맏
백/즐길 락/한 일/돌아볼 고]
☞명마가 백락을 만나 세상에 알려진다는 뜻으로 자기재능을 남이
알아주어 잘 대우함. 준마를 백락이 한번 돌아보자 갑이 10배로 뛰었다,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능력을 발휘함 [동]馬價十倍 마가십배
[출전]『전국책(戰國策)』
[내용](周)나라
때 어느 날 말 장수가 백락에게 찾아와 자기에게 훌륭한 말 한 필이
있어 이를 팔려고 시장에 내놓았지만 사흘이 지나도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으니 사례는 충분히 하겠으니 감정해 달라고 신신당부하였다.
백락은
시장에 가서 말의 주위를 여러 차례 돌면서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다리,
허리, 엉덩이, 목덜미, 털의 색깔 등을 감탄하는 눈길로 그냥 쳐다보기만
하였다. 그리고 나서 아무 말없이 갔다가는 다시 돌아와서 세상에 이런
명마는 처음 본다는 듯이 또 보곤 하였다.
당시 최고의 말 감정가가 찬찬히 살피는 것을 보자 이를 지켜 본
사람들은 구하기 힘든 준마(駿馬)라고 여겨 앞다투어 서로 사려고 하여
말의 값은 순식간에 10배로 껑충 뛰었다. 결국 이 준마는 백락이 있기 때문에
그 진가가 나타난 것이었다.
또 백락의 친구 가운데 역시 말에 대해
안목이 있는 구방고(九方皐)가 있었다. 진(秦)나라의 목공(穆公)이 구방고에게
준마 한 필을 구해 오라고 하였다. 얼마 후 명마 한 필을 목공에게 데리고
왔는데 목공은 평범한 말이라고 생각하여 구방고를 내쫓으려고 하였지만
백락이 이를 말리고 “정말 훌륭한 말입니다”라고 하였다. 목공이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명마 중의 명마였다.
이는 여포(呂布)의 적토마(赤兎馬)처럼 아무리 뛰어난 준마가 있어도
이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야만 그 능력이 발휘된다는 말이자 지혜로운
신하가 있어도 이를 알아 보는 현명한 군주가 있어야만 그 재능이 발휘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제갈 량(諸葛亮)도 유비를 만나고 나서 그의 지혜가
발휘된 것이었다.
백락의 본명은 손양(孫陽)이며 주나라 사람이다. 원래 백락은 전설에
나오는 천마(天馬)를 주관하는 별자리인데 손양이 말에 대한 지식이
워낙 탁월하여 그렇게 불린 것이다. 난세일수록 아부만 하는 신하가
아닌, 영웅호걸과 지혜로운 신하를 알아보는 명군(名君)의 혜안(慧眼)이
필요하다. <네이버 백과>
소대(蘇代)가 연나라를 위하여 제왕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는 제왕을 알현하기에 아퍼 우선 제나라의 유명한 실력자
순우곤을 찾아가서 말했다.
"준마를 파는 자가 있었습니다. 3일동안 아침마다 저자에 세워 놓았으나 누구 한사람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는 수없이 백락(伯樂:말 감정의 명인)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저는 준마를 팔려고 내놓았으나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도 물어 보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원컨데 선생께서 제 말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고 돌아가면서 다시 한번만 더 돌아봐 주십시오. 다행히
말이 팔리면 크게 사례를 하겠습니다.'하고 청했습니다.백락이 그의 청대로 말의 주위를 한 바퀴 돈 다음 돌아가면서 다시 한번 더
돌아봤습니다. 그러자 당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말값은 열배로 뛰었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준마로서 제왕을 배알하고 싶습니다만,
이끌어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오니 선생께서 저의 백락이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백옥 한쌍과 황금 천냥을 사례로
드리겠습니다." 순우곤은 이를 승낙하고 어전으로 나아가 제왕에게 소대를 소개했다. 소대가 제왕의 마음에 들어 뜻을
이루었다.
|
■ 백룡어복 白龍魚服
[흴 백/용 룡/고기 어/옷 복]
☞흰
용이 물고기의 옷을 입는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서민의 허름한 차림으로
미행함
[출전]『史記』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내용]오나라
왕이 백성들을 따라 술을 마시려고 했다. 이때 오자서(伍子胥)가 간언하여
말했다.
마셔서는 안 됩니다. 옛날에 흰 용이 차가운 연못으로
내려와 물고기로 변한 일이 있습니다. 어부 예저는 그 눈을 쏘아 맞추었습니다.
흰 용은 하늘 위로 올라가 하느님에게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이에 하느님은,
‘그 당시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느냐? ’ 라고 물었습니다.
흰 용은 대답하기를, ‘저는 차가운 연못으로 내려가 물고기로
변해 있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이 말하기를,
‘물고기는 진실로 사람들이 쏘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다면
예저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 라고 했습니다.
무릇 흰 용은 하느님의 귀한 가축이고, 예저는 송나라의 미천한 신하입니다.
흰 용이 모습을 바꾸지 않았다면 예저 또한 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만승(萬乘)의 지위를 버리고 포의(布衣)의 선비들을 따라 술을
마시려고 하십니까? 신은 예저의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왕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
■ 백마비마 白馬非馬
[흴
백/말 마]
☞是를 非라하고 非를 是라하는 것과 같은 억지논리.말은 형태를
가리키고 백(白)은색깔을 가리키므로 백마는 말이 아니라는 논리. [유]견강부회[牽强附會]
[출전]『史記』
[내용]춘추시대
조나라의 궤변학자 공손룡이 "말은 말이고 백마는 백마니까 말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이것은 백마라는 개념과 말이라는 일반개념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백마란 말 일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백색에 한정된 말이다. 그러나 말이라는 것은 빛깔이 나
모습이나 능력 등으로 한정되지 않은 말 일반을 뜻한다.
그러므로
백마라는 개념과 말이라는 개념 사이에는 광협(廣狹)의 차이가 있으며,
백마와 말의 개념이 일치하지 않으므로, 백마를 말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명제는 얼핏 보아 궤변처럼 보이나, 논리학에서 특칭 부정(特稱否定)의
판단형식을 나타내기 위한 하나의 예라고 볼 수 있다. |
■ 백면서생 白面書生
[흴 백/얼굴 면/글 서/선생 생]
☞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 세상 일에 조금도 경험이 없는
사람. [동]白面郞(백면랑). 白面書郞(백면서랑).
[출전]『송서(宋書)』,
沈慶之傳 [내용] : 남북조(南北朝)
시대, 남조인 송(宋)나라 3대 황제인 문제(文帝:424∼453) 때 오(吳:절강성)
땅에 심경지(沈慶之)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힘써 무예를
닦아 그 기량이 뛰어났다. 전(前)왕조인 동진(東晉:317∼420)의 유신(遺臣)
손은(孫恩) 장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는 불과 10세의 어린 나이로
일단(一團)의 사병(私兵)을 이끌고 반란군과 싸워 번번이 승리하여 무명(武名)을
떨쳤다. 그의 나이 40세 때 이민족(異民族)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장군에 임명되었다. 문제에 이어 즉위한 효무제(孝武帝:453∼464)
때는 도읍인 건강(建康:南京)을 지키는 방위 책임자로 승진했다. 그
후 또 많은 공을 세워 건무장군(建武將軍)에 임명되어 변경 수비군의
총수(總帥)로 부임했다.
어느 날 효무제는 심경지가 배석한
자리에 문신들을 불러 놓고 숙적인 북위(北魏:386∼534)를 치기 위한
출병을 논의했다. 먼저 심경지는 북벌(北伐) 실패의 전례를 들어 출병을
반대하고 이렇게 말했다. "폐하, 밭갈이는 농부에게
맡기고 바느질은 아낙에게 맡겨야 하옵니다. 하온데 폐하께서는 어찌
북벌 출병을 '백면서생'과 논의하려 하시나이까?" 그러나 효무제는
심경지의 의견을 듣지 않고 문신들의 읜견을 받아들여 출병했다가 크게
패하고 말았다
[원]耕當問奴하고
織當問婢니이다. 欲伐國한대 而與白面書生으로 謀之하시면 事何由濟리오.
[예문] ▷ 나는 글만 읽고
있는 백면서생인데, 별안간 돈을 어떻게 벌어들인단 말이오?≪박종화,
임진왜란≫
▷ 그는 백면서생의 선비풍으로
얼핏 심약하게까지 보였으나 말소리가 대쪽같이 날이 서 있었다.≪송기숙,
녹두 장군≫
▷ "당신은 평생 과거를 보지 않으니 글을
읽어 무엇합니 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고."(중략)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
으로 글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소리만 배웠단 말 씀이요? 장인바치
일도 못한다, 장사도 못한다면, 도둑질이 라도 못하시나요?"≪허생전≫ |
■ 백문불여일견
百聞不如一見
[일백 백/들을 문/아니 불/같을 여/한 일/볼 견]
☞백 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 경험의 중요성.
[속담]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 물은 건너 보아야
알고, 사람은 사귀어 보아야 안다.
[내용]
전한(前漢)의 제9대 황제 선제(宣帝:BC 74~BC 49) 때 서북 변방에 사는
티베트 계통의 유목민족 강족이 쳐들어 와서 한의 군대는 크게 패하고
말았다.그래서 선제는 토벌군의 장수로 누가 적임자인지 조충국이라는
노장에게 물어보게 하였다.
그러자 조충국은 서슴없이
대답했다."어디 노신을 능가할 사람이 있겠소?"선제는 조충국을
불러 강족 토벌에 대해 물었다."강족을 토벌하는데 계책이 있으면
말해보시오"조충국은 대답했다."폐하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원컨대 신을 금성군으로 보내주십시오. 계책은
한번 살펴본 뒤에 아뢰겠나이다.현지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조충국은
기병보다 둔전병을 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여 그뜻이 받아들여져서
강족의 반란도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백문불여일견은 조충국의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 번 보는 것이 백 번 듣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계획, 집행할 때 현지를 한 번도 답사하지 않고 탁상공론에
매달린 경우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고사성어이다.
[예문]“남들은 강원도 정선을
카지노 하러 가지만 우리는 탄광 보러 간다”는 취재팀의 우스갯소리처럼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었다.<2006 이코노믹 리뷰> |
■ 백미 白眉
[흴 백/눈썹 미]
☞여러 사람 중에 가장 뛰어남. [동]群鷄一鶴(군계일학),
壓卷(압권), 出衆(출중), 拔群(발군), 錚錚(쟁쟁)
[출전]『삼국지(三國志)』
[내용]
촉한(촉한) 때「마량(馬良)의 字는 계상(季常)이니 형제 5인이 다
常자를 사용하여 자를 만들었으며, 5형제가 다 재명(才名)이 있어서
동네 사람이 이를 위하여 퍼뜨린 속담에 이르되「마씨(馬氏)의
5형제 가운데 흰 눈썹이 난 사람이 가장 뛰어나다.」하니, 마량은
눈썹 가운데 흰 터럭이 있음이라. 그런 까닭으로써 그렇게 칭하였다
[원문]
蜀漢馬良의 字는 季常이니 兄弟五人이 皆用常爲字하고 幷有才名이라.
鄕里爲之諺曰「馬氏五常에 白眉最長이라」하니 良은 眉中에 有白眉라
故로 以稱之니라.
[예문] ▷
백미로 꼽다 ▷ 춘향전은 한국 고전 문학의 백미이다. ▷ 이번
연주회의 백미는 단연 바이올린 독주였다. ▷ 예술의전당측은 "이번
전시는 명.청시대 중국미술의 백미를 한눈에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조선회화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가늠해볼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한국경제신문> |
■ 백발삼천장 白髮三千丈
[흴 백/터럭 발/석 삼/일천 천/길 장]
☞흰 머리털이 삼천길이나 자람, 매우 늙었음을
탄식하는 말.근심이 이어져 끊임이 없음을 비유한 말.
[출전]이백(李白)의
시 '추포가(秋浦歌)' [내용]'백발
삼천장'이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 추포가(秋浦歌) 17수 중 한
수인 오언절구(五言絶句)에서 나온 말이다.
이 시는 만년에 귀양에서 풀려난
이백이 추포(秋浦:안휘성 내)에 와서 거울을 보고 이미 늙어버린 자기
모습에 놀라서 지은 연작(連作) 중 한 수로 늙은이의 고독, 쓸쓸함,
서글픔 등을 그 특유의 해학적 표현으로 읊고 있다.
이 유명한 '백발의 길이가 삼천 길'이란 표현은 중국 문항의 과장적
표현으로 널리 인용되는 문구인데 요즈음에는 '과장된 것을 비웃는
말'로 흔히 쓰이고 있다.
[원문]
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백발삼천장
연수사개장 부지명경리 하처득수상
|
■ 백수건달 白手乾達
[흴 백/손 수/마를 건/이를 달]
☞아무 것도 없이 난봉을 부리고 돌아 다니는 사람. [동]白手,
乾達
[참고]불교 문헌에서는
음악을 맡은 천신(天神)을‘건달박(乾達縛)’또는‘건달바(乾達婆)’라고
부르는데, 식향(食香), 심향행(尋香行), 향음(香陰), 향신(香神)으로
의역되기도 한다. 의역의 경우 향(香)자가 모두 들어간 이유는 그 천신이
향만을 먹으며 유유히 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건달바는
술과 고기를 먹지 않으며 오직 향기만을 먹고 산다고 한다.
이들은
원래 브라만교에서 숭배하던 여러 신 가운데 하나로서, 불교경전에서는
동방을 수호하는 신으로 간주하며, 또 욕계(欲界)의 중음신(中陰神)을
가리키기도 한다. 욕계의 중생이 죽고 나서 아직 새로운 육체를 얻기
이전인 중음신 상태에서는 오직 향기만을 먹으므로 이렇게 브른다. 이
가운데 복이 적은 자는 나쁜 향기를 먹으며, 복이 많은 자는 좋은 향기를
먹는다. 절에 다니는 신도들이 향을 피우는 것은 건달박에게 봉양하는
행위에서 비롯된 풍습이다. 이 건달바에 빗대어‘하는 일 없이 빈둥대는
사람’을 건달이라 부르게 되었다.
[예문] ▷
그 사람은 부모에게서 받은 유산을 도박으로 다 날리고 하루아침에 백수건달이
되었다. ▷ 그는 대학을 졸업한 지 오 년이 지나도록 백수건달로
지내고 있다. ▷ 단골손님 중에 전과자가 하나 있었다. 그는 일정한
직업도 없는 백수건달이었다. ≪황석영, 어둠의 자식들≫ |
■ 백아절현 伯牙絶絃
[맏 백/어금니 아/자를 현/악기줄 현]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 친한 친구의 죽음을 슬퍼함. [동]知音(지음) :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안다. 자기의 속마음까지 알아 주는 사람.高山流水(고산유수),知己之友(지기지우)
[출전]『여씨춘추(呂氏春秋)』 [내용]
春秋시대에 거문고의 명인(名人)인 백아(伯牙)와 그의
거문고를 잘 알아 주었던 친구 종자기(鍾子期)의 이야기다.「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그것을 들었다.
거문고를 타는 뜻이 큰 산에
있으면 산이 우뚝하구나 하고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출렁출렁하도다
라고 말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세상에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이 없음을 슬퍼하였다.
[참고]중국
춘추전국시대 원래 초(楚)나라 사람이지만 진(晉)나라에서 고관을 지낸
거문고의 달인 백아가 있었다. 백아에게는 자신의 음악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절친한 친구 종자기(種子期)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로 높은 산들을
표현하면 종자기는 “하늘 높이 우뚝 솟는 느낌은 마치 태산처럼 웅장하구나”라고
하고, 큰 강을 나타내면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의 흐름이 마치 황허강
같구나”라고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였다.
또 두 사람이 놀러 갔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 이를 피하기 위해
동굴로 들어갔다. 백아는 동굴에서 빗소리에 맞추어 거문고를 당겼다.
처음에는 비가 내리는 곡조인 임우지곡(霖雨之曲)을, 다음에는 산이
무너지는 곡조인 붕산지곡(崩山之曲)을 연주하였다. 종자기는 그때마다
그 곡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조금도 틀리지 않게 정확하게 알아
맞혔다.
이렇듯 종자기는 백아가 무엇을 표현하려는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백아와는 거문고를 매개로 서로 마음이
통하는, 음악 세계가 일치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종자기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등지자 너무나도 슬픈 나머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거문고 줄을 스스로 끊어 버리고[伯牙絶絃]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켜지 않았다고 한다. 백아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 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거문고
줄을 끊은 것이다. <네이버백과>
[원문]伯牙鼓琴이면 鍾子期聽之하다.
知在太山이면 則巍巍로다하고 志在流水면 則曰湯湯하도다하다. 子期가
死하니 伯牙絶鉉하고 痛世無知音者하다. ** 琴(거문고 금) 鐘(쇠북 종)
聽(들을 청) 巍(높을 외) 湯(끓을 탕) 痛(아플 통) [참고 秋夜雨中-
최치원(崔致遠)
秋風唯苦吟 추풍유고음 細路少知音 세로소지음 窓外參更雨
창외삼경우 燈前萬里心 등전만리심
가을
바람에 애써 시를 읊조리니. 창
밖엔 삼경에 비가 내리는데 세상에 알아주는
이 없구나. 등잔불 앞에서
마음은 만리를 달리네. |
■ 백안시 白眼視
[흴 백/눈 안/볼 시]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봄 [반]靑眼視청안시-애정을
가지고 대함
[출전]『晉書』〈阮籍傳〉
[내용]위진때의 일이다.노장의
철학에 심취하여 대나무숲속에 은거하던 죽림칠현
중에 완적이 있었다. 그는 예의범절에 얽매인 지식인을 보면 속물이라
하여 백안시했다고 한다. 역시 죽림칠현의 한사람인 혜강의 형 혜희가
찾아왔다.
완적이 냉대하여 흘겨보자 혜강이 이 이야기를 듣고 술과 거문고를
가지고 찾아가자 완적은 크게 기뻐하며 청안으로 맞이했다. 이처럼 상대가
친구의 형일지라도 완적은 그가 속세의 지식인인 이상 청안시하지 않고
백안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지식인들은 완적을 마치 원수대하듯
몹시 미워했다고 한다.
[원문]阮籍不拘禮敎
能爲靑白眼 見俗禮之士 以白眼對之 及 喜來 卽籍爲白眼 喜不 而退
喜弟康聞之 乃齊酒挾琴造焉 籍大悅 乃見靑眼 由是禮法之士疾之若讐
[예문] ▷
남들의 이런 백안시나 숙덕공론 때문에 괴로워하고 기를 못 펴는 건
누구보다도 종상이 내외였다.≪박완서, 미망≫
▷ 고향에 돌아와
사람들로부터 받은 백안시, 그리고 수모가 그녀의 가슴에 적개심으로
남아 있었다.≪최일남, 거룩한 응달≫
▷ 그 말에 다른 사람들도
지금껏 그 남자를 백안시하던 눈에 웃음을
띠게 되었다.≪최명익, 장삼이사≫<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
백인들이 판을 치던 골프계에 유색인이 처음으로 정상에 군림하고 있다.이런
우즈를 통해 골프를 다소 백안시하던 사람들조차도
대리만족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골프 코리아> |
■ 백전노장 百戰老將
[일백 백/사울 전/늙을 로/장수
장]
☞많은 싸움을 치른 노련한 장수.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어 여러
가지로 능란한 사람.
[예문]
▷ 유신 말기인 1978년부터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해고·수배·지하조직
등 산전수전 다 겪은 '역사'속의 백전노장!
사회주의 혁명을 목적으로 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91년 3월 10일 안기부에 검거되었다.
▷ 전문가들은
“패트릭이 얻어맞더라도 좀더 마운드에 놔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백전노장인 김응룡 감독은 나름대로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승부에
집착한 나머지 너무 조급하게 패트릭을 교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스포츠투데이> |
■ 백절백승 百戰百勝
[일백 백/싸울 전/일백 백/이길
승]
☞백번 싸워 백번 이김, 싸울 때마다 이김 [유]百戰不敗,
連戰連勝,百發百中,百步穿楊(백 보 떨어진 곳에서 버드나무 잎을 맞힌다)百無一失(무슨
일이든지 하나도 실패가 없다) [반]百戰百敗
[내용]승리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적과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요,
둘째는 적과 싸운 끝에 승리하는 것이다. 전자가 가장 좋고 현명한 방법이고,
후자가 차선책이다.
비록 백 번 싸워 백 번 모두 이겼을지라도[百戰百勝]
그것은 최상의 승리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의 의표를 간파하여 미리
방어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좋은 방법은 적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와의 관계를 단절하여 고립시키는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은 적과
결전을 치르는 것이고,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공격하는 것이다.손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승리이지만 백전백승이 반드시
좋은 방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원문]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故, 上兵伐謀, 其次伐交,
其次伐兵, 其下攻城 <孫子兵法>
[예문] ▷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하고 나를 모르고 적만 알거나 나만 알고
적을 모르면승패는 언제나 반반이라 했다.≪유현종, 들불≫
▷
평단(評壇)에서 남을 공격하여 백전백승하는 실력파 교수 한 분의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그분의 얘기는 전제(前提)투성이였다.≪김승옥, 환상
수첩≫ |
■ 백절불굴 百折不屈
[일백 백/꺾일 절/아니 불/굽을
굴]
☞백 번 꺾어도 굴하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에도 굽히지 않다.후한시대
교현(橋玄)의
강직함을 칭송하여 지은 채옹의 글에서 유래
[동]百折不撓(백절불요)
/ 백절불회(百折不回:백 번 꺾일지언정 돌아서지 않음) / 불요불굴(不撓不屈:휘어지지도
굽히지도 않음) / 위무불굴(威武不屈:어떠한 무력에도 굽히지 않음)
[내용]한나라
때 교현이라는 사람은 청렴하고 강직하며,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였다.
관직에 있을 때 부하가 법을 어기자 즉각 사형에 처하였다. 또 태중대부
개승(蓋升)이 황제와 가깝다는 것을 믿고 백성들을 착취한 사실을 적발하여
처벌하도록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병을 핑계로 사직하였다.
나중에 황제가 태위(太尉) 벼슬을 내렸으나 응하지 않았다.어느 날 교현의
어린 아들이 강도들에게 붙잡혀 가자, 양구(陽球)라는 장수가 즉시 관병을
데리고 구출하러 갔다. 그러나 관병은 교현의 아들이 다칠까봐 강도들을
포위하고만 있을 뿐 감히 더 이상 손을 쓰지 못하였다. 이 사실을 안
교현은 "강도는 법을 무시하고 날뛰는 무리들인데, 어찌 내 아들을
위하느라 그들을 놓아준다는 말인가"라고 하며 몹시 화를 내면서
빨리 강도들을 잡으라고 관병을 다그쳤다.
결국 강도들은 모두 붙잡혔으나, 교현의 어린 아들은 강도들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와 같이 몸을 던져 악에 대항하는 교현을
존경하였다. 나중에 채옹이 교현을 위하여 〈태위교공비(太尉喬玄碑)>라는
비문을 지어 "백 번 꺾일지언정 휘어지지 않았고, 큰 절개에 임하여서는
빼앗을 수 없는 풍모를 지녔다(有百折不撓, 臨大節而不可奪之風)"라고
칭송하였다. 여기서 유래하여 백절불요는 어떠한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뜻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채옹의 글>
[예문] ▷ 홀로 박진만은 백절불굴하는
정신을 가지고 외로운 군사들을 격려하면서 동에 번뜻, 서에
번뜻, 적병을 괴롭히면서 의주에 있는 정부에 자주자주 연락을 취했다.≪박종화,
임진왜란≫
▷ 헨델의 음악은 감정적이고 멜로디를 바탕으로
하여 세속과 대중을 상대로 웅장하고 상쾌한 음악을 창조했다.헨델은
참으로 백절불굴의 투지와 정력적이고
활동적이며 강하나 인정미가 넘치는 인간이었다.
|
■ 백주지조 栢舟之操
[잣나무 백/배 주/어조사 지/절개 조]
☞백주시의 절개, 남편을 일찍 잃은 아내가 굳은 절개를 지킴
[출전]『시경(詩經)』
용풍 [내용] 두둥실 저 잣나무 배 강 가운데
떠 있네. 두 갈래 다발머리 진실로 내
배필이었으니 죽어도 딴 마음 갖지 않으리.
어머니는 곧 하늘이신데 어찌 내 마음 몰라주십니까 위(衛)나라의 제후의 공자 공백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내 공강은
굳은 절개를 지키고 부모의 재가 권유를 끝까지 뿌리쳤다. 그러면서 그녀는
백주라는 시를 지어 자신의 굳은 지조를 나타내었다. [원문] 泛彼柏舟,在彼中河,
彼兩 ,實維我儀.之死矢靡 .母也天只!不諒人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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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중숙계 伯仲叔季
[맏
백/버금 중/셋재 숙/끝 계]
☞형제의 차례. 伯은 맏이, 仲은 둘째, 叔은 셋째, 季는 막내.
[출전]『예기(禮記)』 단궁상편(檀弓上篇)
[내용]
어린애가 태어나면 3개월만에 이름을 짓고 20세가 되면 자를 짓는다.
50세가 되면 자 위에 백 중 등 형제의 순서를 나타내고, 죽으면 시호를
내린다.
이것이 주나라의 법도이다." 보통 백(伯)은
사람(人)중에서 머리가 하얀(白), 즉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을 일컫고,
중(仲)은 사람(人)중에서 가운데(中)을 뜻하며, 숙(叔)은 '손(又)으로
콩을 줍는다' 라는 뜻에서 '작다'라고 풀이되어 셋째를 의미하고,
계(季)는 여러 자식(子)중에서 가장 어린(禾) 아이를 뜻한다
[참고]또 백중숙계(伯仲叔季)란 말은
원래 네 형제의 차례를 이르는 말이지만, 여기서 백중만 따로 떼어내면
형제간 서로 비슷하게 닮았기 때문에 결국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힘이나 능력이 비슷한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 된다.
[원문]幼名
冠字. 五十以伯仲 死諡 周道也
|
■ 백중지세 伯仲之勢
[맏 백/버금 중/어조사 지/기세 세]
☞낫고 못함이 거의 없음/우열을 가리기 힘듬. [동]難兄難弟(난형난제)
互角之勢(호각지세) 莫上莫下(막상막하) 春蘭秋菊(춘란추국)
[출전]『예기(禮記)』
단궁상편(檀弓上篇) [내용]백중은
곧 형과 아우라는 뜻이다. 위나라의 조비는 전론에서 '문인들이 서로
가볍게 여기는 것은 옛날부터 그러했다.
부의(傅儀)와 반고(班固)에
있어서는 백중지간일 뿐이다. '라고 하여 서로의 문재(文才)가
엇비슷해 누구를 재주가 있는 형이라 하고 누구를 재주가 좀 처지는
아우라 할 수 없는 경우에 백중지간이란 말을 썼다.
[원문]文人相輕
自古而然 傅儀之於班固 伯仲之間耳
[예문] ▷
조용하의 초대를 받아 서희가 그 집에서 저녁을 함께 했을 적에 두 여인의
아름다움은 실로 백중지세였었다.≪박경리, 토지≫
▷ 군함의 영해통항에 관한 문제는 권리로서의 무해통항을 인정하는
긍정설과 이를 부정하는 부정설이 백중지세로 학자들 사이에 논의되어
왔다<김영구교수의 해양법포럼>에서
▷ 이지적(理智的)이요, 이론적(理論的)이기는 둘이
더하고 덜할 것이 없지마는, 다만 덕기는 잇는 집 자식이요,
해사하게 생긴 그 얼굴 모습과 같이 명쾌한 가운데도 안존하고 순편한
편이요, 병화는 거무튀튀하고 유들유들한 맛이 있으니만큼 남에게 좀처럼
머리를 숙이지 않는 고집이 있어 보인다(삼대)
|
■ 백척간두 百尺竿頭
[일백 백/자 척/장대 간/머리 두]
☞백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 선 위태로운 상황 [동]如履薄氷(여리박빙)
風前燈火(풍전등화) 명재경각(命在頃刻) 累卵之勢(누란지세)
[내용]백척간두에서
걸어나가면 시방세계가 바로 온 몸이다.'라고 하였다. 이말은 백척간두와
같은 위태로운 지경을 벗어나게 되면 온세상이 바로나와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백척간두란 배척이나
되는 긴 장대의 끝을 말하는 것으로 매우 위태로운 상태나 위험에 빠진
경우를 말한다
[원문]百尺竿頭進一步
十方世界現全身
[예문] ▷
방문을 열어 보면 마치 미역감는 냇가 같이 아이 어른이 벗고들 있는지라
흥부가 기가 막히어 옷 해 입힐 생각하니 백척간두에 사흘에 한 때도
먹어 갈 수가 없거든 의복을 어찌 생의 하리오.<興夫傳>
▷ 집안은 폐족이 되어 팔대 옥당의 명문이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이 원통하고 억울하다.≪한무숙, 만남≫ ▷ 지금은
국가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선 절박한 시기라는
것을 잊지 마라.≪홍성원, 육이오≫
[참고]백척간두진일보
伯尺竿頭進一步 :백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다달은 것은 이미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것인데 또 한 걸음 나아간다 함은 더욱 노력하여 위로
향한다. |
■ 백팔번뇌 百八煩惱
[일백 백/여덟 팔/괴로워할 번/괴로워 할 뇌]
☞불교에서 나온 말로 인간의 과거(過去), 현재(現在),미래(未來)에
걸친 108가지 번뇌(煩惱) [참고].
육관〔(六官 : 耳(소리), 目(색깔), 口(맛), 鼻(냄새), 心(뜻), 體(감각)〕이
서로 작용해 일어나는 갖가지 번뇌가 좋고(好), 나쁘고(惡), 좋지도
싫지도 않은(不好不惡) 평등(平等)의 3가지 인식 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3×6=18가지의 번뇌가 된다.
거기에 탐(貪), 불탐(不貪)이
있어 18×2=36가지가 되고, 이것을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
즉 전생(前生), 금생(今生), 내생(來生)의 3世에 36×3=108이 되어
백팔번뇌(百八煩惱)라 한다.
만(卍)은
불보살(불보살)의 가슴, 손, 발 등에 나타나는 길상(吉祥) 만덕의 상으로
불교를 상징하는 표지, 태양, 움직이는 사방위, 흐르는 물, 둥글게 선회하는
빛의 상징이라 하는데, 태양의 신 비슈누(VISHNU) 신의 가슴팍에 자란
털 모양을 나타낸다는 길상의 증표라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유래는『화엄경(華嚴經)』에“여래의
가슴에는 훌륭한 분의 특징인 만(卍)자 모양이 있다. 이것을 길상해운(吉祥海雲)이라고
부르는데, 온통 세계를 진리의 바다처럼 넘실거리게 한다.”에 나온다.
만(卍)자가 불교의 상징 마크가 된 것은 부처님의 백호(白毫:눈썹
사이에 난 흰터럭)가 오른쪽으로 도는 것을 우선(右旋)이라 하여 신성시하여
길상의 기호로 형상이 만(卍)이 된 것이다. 卍은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비쳐서 볼 수 있는 초월적 능력이 있다.
(하켄크로이츠)마크는
유럽 백인의 원조인 아리안족 최고의 상징이었다. 나치가 당의 상징으로
도입한 것은 독일 민족이 아리안족의 적자(嫡子)라는 것을 강조함과
동시에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었다. (하켄크로이츠)마크가
독일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피의 순수성이라든가, 살인이나 파괴와
같은 원시 본능을 칭송함으로써 집단 무의식의 가장 어두운 부분에 깊이
뿌리를 박고서 다른 한편으로는 오로지 군중을 바로 눈 앞의 것만 내다보는
근시안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켄크로이츠)마크가
독일인들의 호응을 얻은 것은‘과거 영광에의 열망’이라는 민족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성(性) 이미지 때문이라는 재미있는 해석도 있다. 즉
정신과 의사 라이히에 따르면, 갈고리 모양의 (하켄크로이츠)마크는
남녀가 휘감긴 체위를 상징하고 있어서 독일인의 강렬한 섹스에 대한
욕망을 은연중 강조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여자가 엎드려서 왼발을 치켜
올리고, 남자가 무릎을 굽혀 뒤에서 관계를 갖는 형상이 곧 (하켄크로이츠)마크이기
때문에 그것이 심리적으로 높은 호소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
■ 백해무익 百害無益
[일백 백/해로울 해/없을 무/이로울
익]
☞조금도 이로운 것이 없고 해롭기만 하다.
[예문] ▷
담배는 건강에 백해무익하다고 한다. ▷ 이러한 것은 인민의 전위에
서서 일하겠다는 역군에 있어선 백해무익한 관념의 함정이다.≪이병주,
지리산≫ ▷ 술의 해독은 잘 압니다만 백해무익이란 말씀은 좀 지나친
말씀 같습니다.≪홍성원, 무사와 악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