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천지수 盜泉之水 [훔칠 도/샘 천/어조사 지/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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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청도설 道聽塗說 [길 도/들을 청/길 도/말씀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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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탄지고 塗炭之苦[진흙 도/숯 탄어조사 지/괴로울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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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장군을 못한다. 저 혼자 잘난 체하며
뽑내다가 남에게 핀잔을 받고 고립된 처지에 있는 사람. 또는 가장 잘난
체 하며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 / 다른 사람에게 따돌림을
받는 외로운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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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어려운 글도 자꾸 되풀이하여 읽으면 그
뜻을 스스로 깨우쳐 알게 된다. |
■ 독서삼도 讀書三到[읽을 도/책 서/서 삼/이를 도]
☞책을 읽는 데는 눈으로 보고(眼到), 입으로 읽고(口到),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心到).
동양권에서는 관직에 나가는 것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얻는 길이었다. 그리고 관직에 나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거쳐야 했으므로, 자연히 교육과 학문을 중시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 즉 독서하는 마음가짐을 강조한 말이 이 독서삼도이다. <두산백과> |
■ 독서삼매 讀書三昧[읽을 독/책 서/석 삼/어두울 매]
☞아무 생각없이 오직 책읽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상태.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 성품이 고요하면 감정도 편안해서 글읽기를 즐겨 책을
보니 삼매 즉 정신통일에는 지(止:마음의 집중)와 관(觀:관찰)이 있는데, 지일 때에만이 올바른 관찰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는 대승불교에는 소승불교와 다른 수행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여 새로운 삼매가 설정되게 되었던 것이다. 《대품(代品)반야경》의 대승품에 108 삼매가 설명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처음의 수능엄삼매(首楞嚴三味 ·勇健三昧:번뇌를 깨뜨리는 용맹견고한 삼매)는 반야바라밀(지혜의 완성)을 실현하는 등 대승불교의 수행을 추진하는 실천력을 기르는 힘으로 《반야경》뿐만 아니라 《십지경(十地經)》 《화엄경(華嚴經)》과도 관계가 깊다. 또한 관불삼매(觀佛三昧)는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에서 말하는 반주삼매(佛立三昧라고도 함)가 유명하다. 이는 불타를 마음에 떠올리고 삼매에 들어가면, 불타가 수행자 앞에 현전(現前)하는 것이다. 당시에 불상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수행법이 불탑 앞에서 행해진 것으로, 불탑예배와 관련하여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네이버백과> |
☞독서하기에 알맞은 세 여가--겨울,밤,비올 때. |
■ 독서상우 讀書尙友[읽을 독/책 서/높일 상/벗 우]
☞ 책을 읽어 위로 성현들과 벗을 함, 책을 읽으면 옛 현인과도 벗이 될 수 있음 [출전]『맹자』 [원문]頌其詩 讀其書 不知其人 可乎 是以 論其世也 是尙友也 |
■ 독수공방 讀書空房[읽을 독/책 서/높일 상/벗 우]
☞ 홀로 빈방을 지키고 있음, 아내가 남편 없이 혼자 지내는 것 ≒ 독숙공방獨宿空房 [예문] |
■ 독안룡 獨眼龍[홀로 독/눈 안/용 룡]
[내용]당나라 18대 황제인 희종(僖宗:873∼883)때의 일이다. 산동(山東) 출신인 황소(黃巢)는 왕선지(王仙芝) 등과 반란을 일으킨지 5년만에
10여 만의 농민군을 이끌고 마침내 도읍인 장안에 입성했다. 그리고 스스로 제제(齊帝)라 일컫고 대제국(大齊國)을 세웠다. [원문]克用時年二十八 於諸將最少 而破黃巢 復長安 功第一 兵勢最强
諸將皆畏之 克用一目微 時人謂之獨眼龍 |
■ 독야청청 獨也靑靑[홀로 독/어조사 야/푸를 청]
☞홀로 푸르고 푸름, 남들이 모두 절개를 꺾는 상황
속에서도 홀로 절개를 굳세게 지키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예문] **봉래산(蓬萊山): 신이 산다고 하는 三神山(삼신산)의 하나. / 삼신산 = 영주산 / 방장산 / 봉래산( 한라산 / 지리산 / 금강산 ) / 백설(白雪): 진실을 외면하는 세력 / 만건곤(滿乾坤): 천지에 가득할 (세조의 세력이 등등할 제) |
"어제 신이 동쪽에서 오던 중에 길가에서 풍작을 비는 자를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돼지 발 하나와 술 한 잔을 손에 들고 빌기를, '높은 밭에서는 그릇에 가득, 낮은 밭에서는 수레에 가득, 오곡이여 풍성하게 우리 집에 넘쳐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그 손에 든 것은 그처럼 작으면서 원하는 바가 사치스러운 것을 보았기 때문에 웃는 것입니다." 이에 위왕은 황금 천 일, 백벽 열 쌍, 거마 백 대를 예물로 늘려 주었다. 순우곤이 이것을 가지고 조나라에 도착하자, 조나라 왕은 정예병사 10만 명과 혁거 천승을 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초나라는 그 밤으로 군대를 철수하고 말았다. |
☞정처 없으며 의식주가 곤란하다./ 두가지 좋은
일을 아울러 가지려함. |
☞남의 진가를 알지 못함,사람보는 눈이 없음. |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같은 조건이라면 좀 더
낫고 편리한 것을 택함. |
☞시문을 짓는 기교는 똑같으나 그 곡조(취향)는 다름. 겉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다 선생이 학생들에게 훈계한다. "설령 세상에서 벼슬자리를 얻지 못하더라도 관직의 불공평을 말하는 것은 좋지 않으며 자신의 학업 닦지 못한 것을 반성하여 책망하고 한층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바람직한 자세인 것이다." 그러자 한 학생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선생님은 모든 학문을 닦으시고 옛날의 대문장가 못지않은 글을 지으시고 인격에 있어서도 전혀 나무랄 데가 없으신데도 사람들의 신임을 못 받으시고 친구분들의 도움도 없고 자칫하면 죄까지 뒤집어 쓸 형편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저희들에게 처세의 도리를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공자나 맹자도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불행한 생애를 보냈다. 나는 이분들 같은 大聖人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벼슬해 녹봉 받아 처자 부양하며 편히 살고 있잖느냐. 그러니 사람들로부터 헐뜯음을 당한다 해도 이상할 것 없고 지금의 형편도 과분하지." '진학해'에는 또 학생이 선생(한유)의 문장을 칭찬하는 대목도 있다. "장자(莊子) 굴원(屈原) 사마천(司馬遷) 양운(楊雲)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문장이 '다같이 교묘하지만 취향은 달리한다(同工異曲)' 선생의 글도 그와 같다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동공이곡(同工異曲)이 당초와는 달리 겉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다는 의미로 경멸의 뜻을 담아 쓰이고 있다. |
☞동곽의 신발, 매우 가난함을 비유. 위청이 궁궐을 나서자, 그 당시 공거(조정의 공문과 신하나 백성들의 상소문을 처리하는 부서)에서 조서를 기다리고 있던 동방삭이 수레를 가로막고는 절을 하며 말했다. "왕부인께서는 새로이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지만 집이 가난합니다. 장군께서 지금 받으신 황금 천 근 중 절반을 왕부인의 부모에게 준다면 황제께서는 이를 듣고 기뻐할 것입니다. 이것이 기이하고도 편리한 계책입니다." 위청은 감사의 말을 하고는 동방삭의 말대로 황금 오백 근을 왕부인의 부모에게 주었다. 며칠 후, 이 소식을 들은 왕부인은 위청의 행동에 감사하며 무제에게 말했다. 그러자 무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대장군은 이러한 일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오." 그리고는 위청을 불러 이런 계책을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 물었다. 위청은 말했다. "지금 조서를 기다리고 있는 동곽 선생에게서 받았습니다." 이에 황제는 조서를 내려 동곽 선생을 부르고 군도위로 임명하였다. 동곽 선생은 오랫동안 공거에서 조서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빈곤하여 굶주리고 추위에 떨었으며, 옷은 해지고 신도 온전치 못하였다. 눈 속을 가면 신이 위는 있어도 밑이 없어서 발이 그대로 땅에 닿았다. 길을 걷던 사람들은 동곽 선생의 이런 모습을 보고 배를 쥐고 웃었다. 이에 동곽 선생은 말했다. "누가 신을 신고 눈 속을 가면서 위는 신이고 아래는 사람의 발임을 알 수 있게 하겠는가?" '동곽리'는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운 동곽 선생의 신이 닳고 달아 신의 윗면만 있고 밑면은 없어 발이 그대로 땅에 닿았다는 데서 나온 것으로 가난의 정도가 어떠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
[예문] |
☞동쪽을 묻는데 서쪽을 대답한다. 묻는 말에 대하여
전혀 엉뚱한 대답 |
☞부인의 방(寢房)에 촛불이 아름답게 비침. 婚禮. |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 서로 불쌍히 여긴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서로 더 잘 이해하고 동정한다. ** 寡(과부
과) 驚(놀랠 경) 翔(날 상) 隨(따를 수) 瀨(여울 뢰) 俱(함께 구) ▷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 리 얄라 (청산별곡) |
그러나 조정에서는 사안의 인물됨을 익히 알고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 줄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사안은 그때마다 자신이 있을 곳은 조정이 아니라 바로 이 동산이라며 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활하던 어느 날, 사안은 동산을 나와 환선무의 사마가 되었다. 사안이 당시 진나라의 수도로 저명 인사들이 노닐던 신정을 출발하려고 하자, 조정의 관리자들은 모두 나와 전송을 했다. 당시 중승의 직에 있던 고령이라는 자가 특별히 송별연을 열어 주었다. 그 자리에서 고령은 이러한 농담을 했다. "당신은 자주 조정의 뜻을 어기고 동산에서 높이 누워 있었소. 이때 사람들은 '안석이 세상으로 나올 수 없다면 장차 백성들의 고통은
어찌하리.' 라고 했소. 오늘 백성들은 '장차 당신의 고통을 어찌하리.'라고 말할 것이오."
사안은 웃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한 자리에 자면서 다른 꿈을 꾼다.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그 가지는 생각이 서로 다름. [유]동상각몽(同床各夢)--『陳亮
書』 |
☞(소인은) 부화뇌동하되 화합하지 못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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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냄새, 동전 냄새라는 말로, 재산을 써서 관직을 얻는 사람이나 재물을 탐하는 사람. [예문]영제 때는 홍도문을 열어 관직과 작위를 입찰을 통해 매매했다. 최열은 유모를 통해 돈 5백 만을 들여 사도라는 관직을 샀다. 최열은 아들 조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나는 삼공의 자리에 있게 되었는데, 논의하는 자들은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느냐?" 조가 말했다. "아버지는 젊어서는 영민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대신과 태수를 역임했습니다. 사람들은 삼공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그러나 이번에 아버지께서 그 지위에 오르자 천하 사람들은 실망을 했습니다." 최열이 물었다. "어찌하여 그러느냐?" 조가 말했다. "논의하는 자들은 동전 냄새를 싫어합니다." |
☞동호의 직필(直筆)'이라는 뜻. 정직한 기록. 기록을 맡은
이가
직필하여 조금도 거리낌이 없음을 이름.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적어 역사에 남기는 일. [출전]『春秋左氏傳』〈宣公二年條〉 |
☞짐승의 머리에 있는 뿔. 머리 끝. '두각을 나타내다(見頭角·견두각)하면 많은 사람중에서 학업이나 기예 등이 유달리 뛰어나게
나타난다는 말 한유와 유종원은 서로 깊이 이해하면서 교유(交遊)했는데 고문(古文)의 부흥에도 힘쓰는 등 문학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젊어서부터 필명(筆名)을 드날리면서 관운(官運)도 좋아 사람들의 선망을 받아온 유종원은 생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지방으로 좌천되는 등 불운 끝에 47세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러나 후반부의 불행이 문장에 깊이와 무게를 더해줌으로써 그의 명문장은 그의 불행과 교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새 임지(任地)로 부임해 가는 도중에 유종원의 죽음 소식을 들은 한유는 임지에 도착하자마자 묘지명을 지었다. 유종원의 생애를 살펴보는
대목은 이렇게 되어 있다.
"유종원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모든 것에 통달해 있었다. 부친의 생존시에는 소년이었지만 이미 완성의 경지에 달해 있었다. 과거의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여 '단연 출중하게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見頭角)'. 사람들은 모두 유씨
가문에 자식다운 자식이 났다고 말했다." |
☞문을 닫고 나가지 않는다. 집안에만 들어앉아
외출을 하지 않다. |
☞충신이 죄없이 죽음을 당함. 이때 무안군 백기는 이렇게 탄식했다. "진나라 왕은 나의 계책을 듣지 않더니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진나라 소왕은 이 말을 듣고 노하여 무안군에게 출정을 명했다. 그러나 무안군은 질병이 심하다며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왕은 무안군을 면직시켜 사졸의 신분으로 음밀로 옮겨가도록 했다. 그렇지만 그는 병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석 달이나 체류하게 되었다. 이때 제후의 공격이 치열해지고 진나라 군대는 거듭 퇴각하였다. 급보를 알리는 사자들이 연일 함양에 이르렀다. 진나라 소왕은 화가 나서 백기를 몰아냈다. 무안군이 함양 서문에서 10리쯤 떨어진 두우에 이르렀을때, 소왕은 응후를 비롯한 군신들과 백기에 관해서 상의했는데,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백기가 떠날 때 불만에 가득 차 원망하는 기색으로 말을 하였다." 그리고는 사자에게 검을 내려 무안군에게 자결하게 하였다. 무안군은 검으로 자결을 하려고 하면서 이렇게 탄식했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가 있어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그리고 이어 말했다. "나는 진실로 죽어 마땅하다. 장평의 전투에서 조나라 병졸 수십만이 항복 하였거늘 내가 속여서 구덩이에 묻어 버렸으니, 내가 죽지 않는다면 누가 죽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안군이 죽었을 때는 진소왕 50년 11월이었다. 비록 그가 죽었으나 그의 죄가 아니었기 때문에 진나라 사람들은 그를 불쌍히 여겼고, 향읍에서는 모두 그를 제사지냈다. |
☞말술도 사양하지 아니한다. 곧 주량이 매우 크다 한말들이 술잔이 그에게 주어졌다. 번쾌는 선 채로 단숨에 들이켰다. "이 자에게 생돼지 다리를 하나 갖다 주어라"
번쾌는 방패위에다 생돼지고기를 놓고 썰어 먹었다. 이를 본 천하의 항우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굉장한 장사로군. 한잔 더 하겠나"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 제가 어찌 술 몇말을 사양하겠습니까(斗酒不辭)" 항우는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리하여 번쾌는 유방을 구해낼 수 있었다. |
☞저술(著述)에 전거(典據)나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문자를 쓰거나 오류가 많음. 틀린 곳이 많은 작품 통속편(通俗篇)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불교의 장경(藏經) 5,000여 권은 《도덕경(道德經)》 두 권만 진본이고 나머지는 모두 당말 오대(五代) 때 촉의 도사(道士) 두광정(杜光庭)이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후부터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본뜬 위작(僞作)을 두찬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 명(明)나라 서위(徐渭)의 시화 《청등산인로사(靑藤山人路史)》에 '두(杜)라는 글자의 본시 음은 토(土)와 같은데, 후에 토 대신 두를 쓰게 되었다. 지금은 오직 하나만 알고 전체적인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토기(土氣)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두(杜)이다.' 위의 글들에서 보다시피, 두찬이란 격에 맞지 않거나 오류가 많고 남의 저작을 베낀 시작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그 말 자체의 전거는 확실하지 않다. 오늘날 이 말의 사용이 적절한 것인가를 놓고 논의가 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네이버백과> |
☞욕심은 한이 없음. 롱을 얻고 또 촉을 바란다 [동]지강급미( 砥糠及米 )겨를 핥다가 쌀을 먹는다./
차청차규( 借廳借閨
)마루를 빌리면 안방을 빌리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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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을 올라가려면 낮은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일의 진행에는 차례가 있음. 또는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스스로
겸손해야 한다. [예문]모든 일은 첫술에 배부를 수가 없다. 그 방면의 서적 중에서 우선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내용과 차례 등에 의하여 선책해서 읽어 볼 일이다 (독서와
인생) |
■ 등용문 登龍門[오를 등/용 룡/문 문]
☞용문에 오르다. 立身出世의 관문. 또는 출세의
계기를 잡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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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가까이하여 책 읽기에 좋다. 가을 밤은
심신이 상쾌하므로 등불을 가까이 하여 글 읽기가 좋음.
[참고]
가을--天高馬肥(천고마비) :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찜/ 정안홍엽(征雁紅葉)(기러기
날고 단풍이 물 듦)/ 국오수벽(菊傲水碧)(국화가 뽐내고 물이 비취처럼
푸름)의 계절(季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