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천지수 盜泉之水
[훔칠 도/샘 천/어조사 지/물 수]

☞아무리 목이 말라도 도둑 도 자(字)가 들어있는 이름의 샘물은 마시지 않는다. 아무리 형편이 어렵더라도 결코 부정한 짓은 할 수 없다는 뜻 
[원]渴不飮盜泉水(갈불음도천수)
[동]惡木盜泉

[출전]『文選』
[내용] 盜泉은 지금도 山東省(산동성) 泗水(사수)현에 있는데 설원(說苑)이란 책에도 이런 얘기가 있다.공자가 어느날 목이 몹시 말랐으나 그 샘물을 떠먹지 않았고 또 勝母(승모)라는 마을에는 날이 저물어 도착했지만 머물지 않고 곧장 떠났다.

 勝母란 자식이 어머니를 이긴다는 뜻이므로 그런 이름이 붙은 마을에서는 하룻밤도 자고 싶지 않았다는 거다. 또 晋나라 吳隱之(오은지)가 지은 貪泉(탐천)이라는 시에 나오는 '탐천'은 廣州(광주)에 있는데 그 샘물도 뜻있는 사람들은 마시면 욕심쟁이가 된다고 안마신다.

■ 도청도설 道聽塗說
[길 도/들을 청/길 도/말씀 설]

☞길거리에서 듣고 길거리에서 이야기함. 길거리의 뜬 소문.
[동]街談巷說, 流言蜚語(蜚=飛)

[출전] <논어> '양화(陽貨)'편
[내용]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해 버린다는 뜻으로 좋은 말을 듣고는 가슴 속에 간직하지 않고 그대로 길에서 흘려버리는 어리석음을 지적한 말이다. 의 말이다.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면 덕(德)을 버리는 것이다.'[子日 道廳而道說 德之]이는 비록 좋은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스스로 그 덕을 버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선인(先人)들의 훌륭한 말과 행실을 많이 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기의 덕을 기르는데 쓰지 못하고, 길에서 듣고 그것을 다시 길에서 흘려버린다면 스스로 덕을 버리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자신의 덕을 쌓는 일은 이렇게 길고 깊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라는 교훈이다.

■ 도탄지고 塗炭之苦
[진흙 도/숯 탄어조사 지/괴로울 고]

☞진흙이나 숯불에 떨어진 것과 같은 고통. 가혹한 정치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심한 고통을 겪는 것.

[출전]有夏昏德 民墜塗炭『書經

[내용]하(夏)의 걸왕(桀王)과 은(殷)의 주왕(紂王)은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은 망국(亡國)의 제왕(帝王)으로서 흔히 '걸주(桀紂)'로도 불린다.

 이 桀王의 학정에 분연히 일어나 桀王의 대군을 명조산(鳴條山)에서 대파하고 天子가 된 사람이 殷의 탕왕(湯王)이다. 湯王이 병졸을 거느려 출전하기에 앞서 출전의 서약을 선포하였다."오너라. 너희 무리여, 모두 내말을 듣거라. 내가 감히 亂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夏王의 죄가 많아 하늘이 명하사 이를 내쫓으심이니라."

  싸움에 대승하여 개선함에 이르러 湯王은 다시, "夏王이 덕을 멸하고 포악한 정치로 인하여 백성에게 원성을 야기(惹起)했다.만백성이 그 해를 입어 씀바귀의 독을 참지 못하여 허물 없음을 천지신명께 告하니, 천도(天道)는 善을 축복하옵고, 음(淫)에 재앙을 내리시니 夏에 재앙을 내리시사 그 죄를 밝히나이다." 하고 桀王의 죄를 탄핵하였다.

 桀王의 학정에 대해서는 [書經]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온다. "夏가 德에 어두워 백성이 도탄(塗炭)에 빠지거늘 하늘이 湯王에게 용지(勇智)를 주시고 온 나라에 표정(表正)하시어 우(禹)의 옛 땅을 잇게 하시니 이제 그 가르침에 따라 천명을 좆으실지이다."

[원문]有夏昏德 民墜塗炭 天乃錫王勇智 表正萬邦 纘禹舊服  率厥典 奉若天命

[예문]
▷ 도탄(塗炭)에 빠졌다
▷ 백성들은 도탄에 허덕이고 있다.
▷ 압록강 행진곡[박영만 작사,한유한 작곡]

▷1940년대 광복군의 대표적노래.도탄에 빠진 동포를 구하기 위한 결의를 다짐하는 노래.

우리는 한국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진주 우리나라 지옥이 되어 모두 도탄에서 헤매고 있다
동포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고향에

■ 독불장군 獨不將軍
[홀로 독/아니 불/장수 장/군사 군]

☞혼자서는 장군을 못한다. 저 혼자 잘난 체하며 뽑내다가 남에게 핀잔을 받고 고립된 처지에 있는 사람. 또는 가장 잘난 체 하며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 / 다른 사람에게 따돌림을 받는 외로운 사람.

[예문]
▷ 그는 독불장군이라서 충고해 줘 봐야 소용없다.
▷ 깊은 고정관념의 벽을 허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 설은 그 후 마을 공동체에서 소외된 독불장군의 설이 되고 말았다.≪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행복은 독창이 아니라 합창이다.독불장군은 고독하다.서로가 제 자리를 지킬 때 모두가 행복을 느낀다.행복은 단수(單數)가 아니라 복수(復數)다.[국민일보]

▷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의장은 29일 '정보통신부 장관은 독불장군인가'라는
제목의 정책논평을 통해 정보통신 정책의 난맥상을 조목조목 비판했다.<한국경제>

■ 독서망양 讀書亡羊
[읽을 독/책 서/잃을 맏/양 양]

☞책 읽는데 정신이 팔려 돌보던 양을 잃었다--일에는 뜻이 없고 딴 생각만 하다가 낭패를 봄

[출전]莊子』 병무편
[내용]장과 곡 두 남녀가 한 집에 살면서 양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사람 다 양을 잃어 버리게 되었다.

 장에게 "왜 양을 잃어 버렸느냐?"고 묻자 대나무 쪽을 들고 거기 쓰여진 글을 읽고 있었다고 했다. 여자 곡에게 양을 잃은 이유를 물으니 주사위 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했다. 두 사람이 한 일은 같지 않지만 양을 놓쳐버린 것만은 같다.

[원문]俱亡羊 問藏奚事 則挾莢讀書 問穀奚事 則博賽以遊 二人事業不同 其於亡羊均也

[해설]학문을 중시하는 동양적 사고방식에서 본다면 책을 읽다가 양을 잃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윗글의 경우는 다르다. 종은 양을 돌보는 일이 바로 그의 본분이다. 그런데 가당치 않게 독서를 하다가 양을 잃었다.

 여기서 독서망양이 한눈을 팔다가 자기 본분을 잊는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아직도 독서망양은 큰 일을 하다가 다른 일을 잊는다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편에서 장자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 아니다.

 그는 좋은 일을 하다가 양을 잃었건 나쁜 일을 하다가 양을 잃었건 그 결과는 같다는 데 초점을 두고, 결국은 군자니 소인이니 하는 구별이 무의미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윗글 아래 이어지는 다음 내용을 보면 장자의 의도가 확실하다.

백이(伯夷)는 그 명예 때문에 수양산(首陽山) 아래서 죽었고, 도척(盜)은 이익 때문에 동릉(東陵) 위에서 죽었다. 어째서 백이는 반드시 옳고 도척은 반드시 그르다고 하는 것일까. 인의를 따라 죽는다면 세상에서는 군자라 하고, 이익을 따라 죽는다면 세상에서는 소인이라 한다.

 목숨을 해치고 천성을 버린 점에서는 백이나 도척이 다를 바 없는데 어찌 군자와 소인이라는 차별을 그 사이에 둘 수 있겠는가. 독서망양은 또한 지엽말단에 매달려 실체를 잃는다는 뜻의 다기망양(多岐亡羊)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두산백과>

■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見
[읽을 독/일백 백/번편/뜻 의/저절로 자/나타날 현]

☞뜻이 어려운 글도 자꾸 되풀이하여 읽으면 그 뜻을 스스로 깨우쳐 알게 된다.
[출전]『魏略』/『삼국지(三國志) 』

[내용] 후한 말기에 동우(董遇)라는 사람이 있었다. 집안이 가난하여 일을 해가면서 책을 손에서 떼지 않고(手不釋卷) 부지런히 공부하여 황문시랑(黃門侍郞)이란 벼슬에 올라 임금님의 글공부의 상대가 되었으나, 조조(曺操)의 의심을 받아 한직으로 쫓겨났다.

 각처에서 동우의 학덕을 흠모하여 글공부를 하겠다는 사람들에게“나에게 배우려 하기보다 집에서 그대 혼자 책을 몇 번이고 자꾸 읽어 보게. 그러면 스스로 그 뜻을 알게 될 걸세.”하고 넌즈시 거절하였다.

 이에 그 제자가 『책을 읽고 싶어도 시간이 많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니 동우가 다시 『마땅히 삼여(三餘)로써 책을 읽어야 한다. 겨울은 한해의 나머지요, 밤은 하루의 나머지요, 비는 때의 나머지니라』며 일러주었다.

[원문]遇不肯 敎而云 必當先讀百遍 言 讀書百遍意自見 
[참고] 독서삼여 讀書三餘 : 책을 읽기에 적당한 세 가지 여가 때. 겨울, 밤, 비가 올 때를 이른다. ≒삼여(三餘).

■ 독서삼도 讀書三到
[읽을 도/책 서/서 삼/이를 도]

☞책을 읽는 데는 눈으로 보고(眼到), 입으로 읽고(口到),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心到).

[내용]책을 읽을 때는 주위 환경에 휘둘리지 말고 정신을 집중하라는 말로, 삼도란 심도(心到), 안도(眼到), 구도(口到)를 가리킨다. 마음과 눈과 입을 함께 기울여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독서삼매라고도 한다.

 본래 삼매(三昧)란 불교에 있어서의 수행법으로,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켜 감각적 자극이나 그 자극에 대한 일상적 반응을 초월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삼매에 빠지면 옆에서 벼락이 쳐도 모르는 것이다. 삼도(三到)도 그런 경지를 의미한다.

[해설]동양권에서의 교육열은 예부터 대단하여,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첫머리에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하였고, 맹자(孟子)도 진심편(盡心篇)에서 군자에게는 세 가지의 즐거움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천하의 영재를 얻어 그를 교육하는 것(得天下英才而敎育之)’이라고 하였다. 송대(宋代)의 朱子는 다음과 같은 권학가를 지어 학문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하고 있다.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은 금방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잠깐의 시간이라도 가벼이 하지 말라.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
    못가의 풀들이 봄꿈에서 깨기도 전에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마당가의 오동나무 잎이 가을 소리를 낸다.

동양권에서는 관직에 나가는 것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얻는 길이었다. 그리고 관직에 나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거쳐야 했으므로, 자연히 교육과 학문을 중시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 즉 독서하는 마음가짐을 강조한 말이 이 독서삼도이다. <두산백과>

■ 독서삼매 讀書三昧
[읽을 독/책 서/석 삼/어두울 매]

☞아무 생각없이 오직 책읽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상태.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

[예문]
▷ 독서삼매에 빠지다
▷ 나는 오랜만에 독서삼매에 젖어 책에 빠져 들었다.
▷ 인기짱은 컴퓨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아이들은 서가로 가 책을 빼들고 자리에 퍼더버리고 앉아 독서 삼매에 든다. .<2006 한겨레신문>

▷  
性 精 情 逸 성 정 정 일         眈 讀 翫 市 탐 독 완 시       
如 松 之 盛 여 송 지 성         寓 目 囊 箱 우 목 낭 상    

성품이 고요하면  감정도 편안해서 글읽기를  즐겨 책을 보니
소나무의 성함 같음이오 눈을 붙이면 주머니와 상자에 책을 담아 둔것 같음 이니라. 

[참고]三昧 : 한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梵語)--samadhi(사마디)의 音譯
삼마지(三摩地) ·삼마제(三摩提) ·삼매지(三昧地) 등과 같이 산스크리트 사마디의 음역이다. 마음을 한곳에 모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정(定)으로, 또 마음을 평정하게 유지하기 때문에 등지(等持), 또 정수(正受) ·정심행처(正心行處) 등으로 의역한다.

 일체의 자아(自我)나 사물이 공(空)임을 깨닫는 공삼매(空三昧), 공이기 때문에 차별의 특징이 없음을 관찰하는, 즉 무상삼매(無相三昧), 무상이기 때문에 원해서 구할 것이 없음을 관찰하는 무원삼매(無願三昧)의 삼매 또는 삼 해탈문(解脫門)은 이미 《아함경(阿含經)》 시대에 설파되었다. 이 삼매는 《반야경(般若經)》 등에서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만, 대승불교에서는 더 나아가 독자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삼매 즉 정신통일에는 지(止:마음의 집중)와 관(觀:관찰)이 있는데, 지일 때에만이 올바른 관찰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는 대승불교에는 소승불교와 다른 수행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여 새로운 삼매가 설정되게 되었던 것이다.

 《대품(代品)반야경》의 대승품에 108 삼매가 설명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처음의 수능엄삼매(首楞嚴三味 ·勇健三昧:번뇌를 깨뜨리는 용맹견고한 삼매)는 반야바라밀(지혜의 완성)을 실현하는 등 대승불교의 수행을 추진하는 실천력을 기르는 힘으로 《반야경》뿐만 아니라 《십지경(十地經)》 《화엄경(華嚴經)》과도 관계가 깊다.

또한 관불삼매(觀佛三昧)는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에서 말하는 반주삼매(佛立三昧라고도 함)가 유명하다. 이는 불타를 마음에 떠올리고 삼매에 들어가면, 불타가 수행자 앞에 현전(現前)하는 것이다. 당시에 불상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수행법이 불탑 앞에서 행해진 것으로, 불탑예배와 관련하여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네이버백과>

■ 독서삼여 讀書三餘
[읽을 독/책서/석 삼/남을 여]

☞독서하기에 알맞은 세 여가--겨울,밤,비올 때.

[출전]『魏略』
[내용]
후한 말기에 동우(董遇)라는 사람이 있었다. 집안이 가난하여 일을 해가면서 책을 손에서 떼지 않고(手不釋卷) 부지런히 공부하여 황문시랑(黃門侍郞)이란 벼슬에 올라 임금님의 글공부의 상대가 되었으나, 조조(曺操)의 의심을 받아 한직으로 쫓겨났다.

 각처에서 동우의 학덕을 흠모하여 글공부를 하겠다는 사람들에게“나에게 배우려 하기보다 집에서 그대 혼자 책을 몇 번이고 자꾸 읽어 보게. 그러면 스스로 그 뜻을 알게 될 걸세.”하고 넌즈시 거절하였다.

 이에 그 제자가 『책을 읽고 싶어도 시간이 많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니 동우가 다시 『마땅히 삼여(三餘)로써 책을 읽어야 한다. 겨울은 한해의 나머지요, 밤은 하루의 나머지요, 비는 때의 나머지니라』며 일러주었다.

■ 독서상우 讀書尙友
[읽을 독/책 서/높일 상/벗 우]

책을 읽어 위로 성현들과 벗을 함, 책을 읽으면 옛 현인과도 벗이 될 수 있음

[출전]『맹자』
[내용]맹자가 제자 만장에게 이르기를 "한 마을에서 제일 선한 선비라야 그만치 선한 선비를 벗할 수 있고, 한나라에서 제일 선한 선비라야 그만큼 선한 선비를 벗할 수 있으며, 천하에서 제일 선한 선비라야 그만큼 선한 선비를 벗할 수 있다.

 하지만 천하에서 제일 선한 선비를 벗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여 위로 옛 사람을 논하기도 하니, 옛 사람이 지은 시를 읊고 그 글을 읽으면서도 옛 사람을 알지 못하겠는가?

 이로써 옛 사람이 살았던 시대를 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위로 옛 사람을 벗하는 것이다."

[원문]頌其詩 讀其書 不知其人 可乎 是以 論其世也 是尙友也

■ 독수공방 讀書空房
[읽을 독/책 서/높일 상/벗 우]

홀로 빈방을 지키고 있음, 아내가 남편 없이 혼자 지내는 것 ≒ 독숙공방獨宿空房

[예문]
▷ 함께 자취하던 친구가 시골집에 가서 요즈음은 나 혼자 독수공방이다.
▷ 독수공방의 서러움
▷ 남편이 징병에 뽑혀 북지로 떠난 뒤, 이 년여 시부모를 모시고 독수공방을 살 때 떠오르던 지아비의 얼굴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김원일, 불의 제전≫
▷[속담] 독수공방에 유정 낭군 기다리듯
▷ 홀로 빈방을 지키며 사랑하는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말로,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독수공방에 정든 님 기다리듯.
▷[속담] 독수공방에 정든 님 기다리듯=독수공방에 유정 낭군 기다리듯.

■ 독안룡 獨眼龍
[홀로 독/눈 안/용 룡]

☞애꾸눈의 용이란 뜻. 애꾸눈의 영웅 또는 용맹한 장수. 애꾸눈의 고덕(高德)한 사람.
[출전]『五代史』〈唐記〉,『唐書』〈李克用傳〉,『자치통감(資治通鑑) 』

[내용]당나라 18대 황제인 희종(僖宗:873∼883)때의 일이다. 산동(山東) 출신인 황소(黃巢)는 왕선지(王仙芝) 등과 반란을 일으킨지 5년만에 10여 만의 농민군을 이끌고 마침내 도읍인 장안에 입성했다. 그리고 스스로 제제(齊帝)라 일컫고 대제국(大齊國)을 세웠다.

 한편 성도(成都)로 몽진(蒙塵)한 희종은 돌궐족(突厥族) 출신인 맹장 이극용(李克用:856∼908)을 기용하여 황소 토벌을 명했다. 당시 4만 여에 이르는 이극용의 군사는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사정없이 맹공을 가했기 때문에 반란군은 '갈가마귀의 군사[鴉軍]가 왔다 !'며 심히 두려워했다고 한다.

 19대 황제인 소종(昭宗:883∼903)이 즉위한 그 이듬해 마침내 반란군은 토멸되었고 황소도 패사(敗死)하고 말았다. 이극용은 그 공에 의해서 농서[ 西:감숙성(甘肅省)] 군왕(郡王)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극용은 숙적 주전충[朱全忠:852∼912, 반란군에 가담했다가 귀순한 뒤 황소 토멸에 공을 세워 동평군왕(東平郡王)이 됨]과 정권을 다투다가 패하고 실의 속에 세상을 떠났다.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주전충은 20대 황제인 애종(哀宗:903∼907)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후량(後梁:907∼923)을 세웠으나 16년 후 이극용의 아들 이존욱[李存 :후당(後唐)의 초대 황제인 장종(莊宗)]에게 멸망했다.

 맹장 이극용에 대해 《오대사(五代史)》〈당기(唐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극용은 젊고 효용(驍勇:사납고 날쌤)했는데 군중(軍中)에서는 이아아(李鴉兒)라고 일컬었다. 그의 눈은 애꾸눈이었다. 그가 귀한 자리에 오르자 일컬어 '독안룡'이라고 했다.

[원문]克用時年二十八 於諸將最少 而破黃巢 復長安 功第一 兵勢最强 諸將皆畏之 克用一目微 時人謂之獨眼龍

■ 독야청청 獨也靑靑
[홀로 독/어조사 야/푸를 청]

☞홀로 푸르고 푸름, 남들이 모두 절개를 꺾는 상황 속에서도 홀로 절개를 굳세게 지키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예문]
▷ 자신만은 아직도 지조를 잃지 않고 아직도 순결하며 아직도 독야청청이라고….≪이제하, 유자약전≫
▷ 그는 모두 숨죽여 살던 암울한 시대에도 자신의 의지를 굳게 지킨 독야청청했던 사람이다.

▷이 몸이 주거 가서 무어시 될고 하니  봉래산(蓬萊山) 제일봉(第一峯)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야 이셔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 하리라. <성삼문>

**봉래산(蓬萊山): 신이 산다고 하는 三神山(삼신산)의 하나.  / 삼신산 = 영주산 / 방장산 / 봉래산( 한라산 / 지리산 / 금강산  )  / 백설(白雪): 진실을 외면하는 세력 / 만건곤(滿乾坤): 천지에 가득할 (세조의 세력이 등등할 제)

■ 돈제일주 豚蹄一酒
[돼지 돈/발굽 제/한 일/술 주]

☞돼지 발굽과 술 한 잔이라는 말로, 작은 물건으로도 많은 물건을 구하려고 하는 것을 비유  
[출전]『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

[내용]제나라 위왕 8년, 초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를 침입하였다. 제의 위왕은 순우곤을 시켜 조나라로 가서 구원병을 청하게 하였는데, 황금 백 근과 거마 열 대를 예물로 가지고 가게 하였다. 

 순우곤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크게 웃자, 관의 끈이 모두 떨어졌다. 왕이 말하였다.  "선생은 이것을 적다고 생각하시오?"  순우곤이 말하였다.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가?"  왕이 말하였다.  "웃는 데에 어찌 까닭이 있지 않겠소?"  순우곤이 말했다. 

"어제 신이 동쪽에서 오던 중에 길가에서 풍작을 비는 자를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돼지 발 하나와 술 한 잔을 손에 들고 빌기를, '높은 밭에서는 그릇에 가득, 낮은 밭에서는 수레에 가득, 오곡이여 풍성하게 우리 집에 넘쳐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그 손에 든 것은 그처럼 작으면서 원하는 바가 사치스러운 것을 보았기 때문에 웃는 것입니다."  이에 위왕은 황금 천 일, 백벽 열 쌍, 거마 백 대를 예물로 늘려 주었다. 순우곤이 이것을 가지고 조나라에 도착하자, 조나라 왕은 정예병사 10만 명과 혁거 천승을 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초나라는 그 밤으로 군대를 철수하고 말았다. 

■ 동가식서가숙 東家食西家宿
[동녘 동/집 가/먹을 식/서쪽 서/잠잘 숙]

☞정처 없으며 의식주가 곤란하다./ 두가지 좋은 일을 아울러 가지려함.
(유)男負女戴 남부여대/ 遊離乞食 유리걸식

[내용] : 옛날 齊 나라 사람이 혼기에 찬 딸 하나를 두고 있었는데, 두 곳에서 동시에 혼담이 들어왔다.

 동쪽에 사는 남자는 집안이 넉넉하지만 얼굴이 못생겼고, 서쪽에 사는 남자는 얼굴은 잘 생겼으나 집안이 가난 했다. 그 부모가 딸에게 말하기를“네가 동쪽에 가고 싶으면 왼손을 들고, 서쪽으로 가고 싶으면 오른 손을 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딸은 두 손을 다 들었다. 이에 부모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밥은 동쪽에 가 먹고, 잠은 서쪽에서 자면 되잖아요.”하였다.

[예문]
▷ 초등학교 문앞에도 못가본 사람이 임시정부의 주석이 된 입지전, 낮에는 자신의 그림자를 벗하고 밤에는 자신의 허벅지를 끌어안고 자야했던 민족지도자의 고독, 동가숙서가식 (東家宿西家食) 의 방랑 속에서도 독립운동을 추진한 불굴의 의지, 백정범부 (白丁凡夫) 를 뜻하는 그의 아호와 한국적 풍모에서 풍기는 서민친화력 등등. 그 중에서도 우리가 진정 되새겨야 할 백범 생애의 요체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민족을 위한 적과의 화해' 라고 생각한다.

▷ 용병들은 보급물자도 없이 끝도 보이지 않는 전투, 동가숙 서가식의 생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다급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권광영-너만의 성공인프라를 만들어라≫

▷ 저축해 둔 최소한의 자금마저 없다면 바로 천덕꾸러기다. 자식들마저 거천하기를 서로 꺼리며 동가숙 서가식하는 신세가 되든지 노부모 팽개쳐두고 외국으로 훌쩍 이민이라도 가버렸다면 영락없는 거지다 ≪진실된 말은 꾸밈이 없다≫

■ 동가지구 東家之丘
[동녘 동/집 가/어조사 지/언덕 구]

☞남의 진가를 알지 못함,사람보는 눈이 없음.
[내용]공자의 이웃 중에 어리석은 어떤 사람이 이웃에 사는 공자를 몰라보고 "동쪽 집 구씨"라고 불렀다 *丘--공자의 이름

■ 동가홍상 同價紅裳
[같을 동/값 가/붉을 홍/치마 상]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같은 조건이라면 좀 더 낫고 편리한 것을 택함.
[예문]
▷ 마누라와는 다시는 제대로 들어설 수 없고 그렇다고 마누라가 죽을 때만 바라고 언제까지 홀아비 생활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무어나 하나 얻고야 말테니 동가홍상이면 이 계집을 다시 붙드는 것이 상책이요 그렇게 되면 아이 문제도 원만히 해결되는 것이다.≪廉想涉, 三代

▷ 동가홍상이라고 했습니다요. 이왕이면 저는 계집 노비 쪽이 좋겠습니다.≪유현종, 들불≫

■ 동공이곡 同工異曲
[같을 동/장인 공/다를 이/가락 곡]

☞시문을 짓는 기교는 똑같으나 그 곡조(취향)는 다름. 겉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다 

[출전]『進學解』
[내용] 이 글은 선생과 학생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한유의 자문자답(自問自答)으로 내용은 이런 식으로 되어 있다. 

선생이 학생들에게 훈계한다.  "설령 세상에서 벼슬자리를 얻지 못하더라도 관직의 불공평을 말하는 것은 좋지 않으며 자신의 학업 닦지 못한 것을 반성하여 책망하고 한층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바람직한 자세인 것이다." 

그러자 한 학생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선생님은 모든 학문을 닦으시고 옛날의 대문장가 못지않은 글을 지으시고 인격에 있어서도 전혀 나무랄 데가 없으신데도 사람들의 신임을 못 받으시고 친구분들의 도움도 없고 자칫하면 죄까지 뒤집어 쓸 형편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저희들에게 처세의 도리를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공자나 맹자도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불행한 생애를 보냈다. 나는 이분들 같은 大聖人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벼슬해 녹봉 받아 처자 부양하며 편히 살고 있잖느냐. 그러니 사람들로부터 헐뜯음을 당한다 해도 이상할 것 없고 지금의 형편도 과분하지." 

'진학해'에는 또 학생이 선생(한유)의 문장을 칭찬하는 대목도 있다.  "장자(莊子) 굴원(屈原) 사마천(司馬遷) 양운(楊雲)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문장이 '다같이 교묘하지만 취향은 달리한다(同工異曲)' 선생의 글도 그와 같다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동공이곡(同工異曲)이 당초와는 달리 겉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다는 의미로 경멸의 뜻을 담아 쓰이고 있다. 

■ 동곽리 東郭履
[동녘 동/성곽 곽/신발 리]

☞동곽의 신발, 매우 가난함을 비유 

[출전]『'사기(史記)』골계열전(滑稽列傳)
[내용] 무제 때 제나라 사람으로 동방삭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옛날부터 서적과 경술을 사랑하여 견문이 넓고 사물을 판단하는 데 밝았다. 그 당시 대장군 위청은 흉노를 무찌르고 포로들을 잡아 공을 세웠다. 그가 돌아오자 황제는 조서를 내려 황금 천 근을 내렸다. 

위청이 궁궐을 나서자, 그 당시 공거(조정의 공문과 신하나 백성들의 상소문을 처리하는 부서)에서 조서를 기다리고 있던 동방삭이 수레를 가로막고는 절을 하며 말했다. 

 "왕부인께서는 새로이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지만 집이 가난합니다. 장군께서 지금 받으신 황금 천 근 중 절반을 왕부인의 부모에게 준다면 황제께서는 이를 듣고 기뻐할 것입니다. 이것이 기이하고도 편리한 계책입니다." 

위청은 감사의 말을 하고는 동방삭의 말대로 황금 오백 근을 왕부인의 부모에게 주었다. 며칠 후, 이 소식을 들은 왕부인은 위청의 행동에 감사하며 무제에게 말했다. 그러자 무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대장군은 이러한 일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오."  그리고는 위청을 불러 이런 계책을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 물었다. 위청은 말했다.  "지금 조서를 기다리고 있는 동곽 선생에게서 받았습니다." 

이에 황제는 조서를 내려 동곽 선생을 부르고 군도위로 임명하였다. 동곽 선생은 오랫동안 공거에서 조서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빈곤하여 굶주리고 추위에 떨었으며, 옷은 해지고 신도 온전치 못하였다. 눈 속을 가면 신이 위는 있어도 밑이 없어서 발이 그대로 땅에 닿았다. 길을 걷던 사람들은 동곽 선생의 이런 모습을 보고 배를 쥐고 웃었다. 이에 동곽 선생은 말했다.  "누가 신을 신고 눈 속을 가면서 위는 신이고 아래는 사람의 발임을 알 수 있게 하겠는가?" 

'동곽리'는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운 동곽 선생의 신이 닳고 달아 신의 윗면만 있고 밑면은 없어 발이 그대로 땅에 닿았다는 데서 나온 것으로 가난의 정도가 어떠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 동량지재 棟梁之材
[마룻대 동/들보 량/어조사 지/인재 재]

☞집의 들보가 될 나무와 같이 한 사회, 한 나라의 중심인물이 될 사람.
[동]柱石之臣(주석지신) **梁 : =樑 ?粱 , 間世之材 [ 간세지재 ]여러 세대를 통하여 드물게 나는 뛰어난 인재(人材)

[출전]오월춘추구천입신외전

[내용] "부인 예용(曳庸)이 말하기를'대부 문종은 나라의 동량(棟梁)이요, 임금의 조아(爪牙)이다'라고 했다."여기서 조아란 범의 날카로운 발톱과 어금니 처럼 임금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신하란 뜻이고 동량은 집의 마룻대와 들보처럼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신하를 뜻한다.

 마룻대는 서까래를 지탱하며 집의 중앙을 횡으로 버텨주는 가로 막대이다.산마루에서 알 수 있듯이 마루는 정상을 뜻하는데, 마룻대란 집의 정상에 해당하는 중요한 대이다.이 마룻대가 옆으로 뻗어 올라 집의 풍채를 한껏 웅장하게 해 주는 것이 용마루이다.들보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얹히는 굵은 막대로서 집의 상단부를 받쳐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러 개의 들보 중에서도 가장 굵고 힘을 쓰는 것을 대들보라고 한다.

[예문]
▷ 후에도 지속적으로 살아남아 세계적인 기업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기업이 되기 위해 기업의 기둥과 들보가 될 동량지재(棟梁之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육성하려는 노력과 경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2006 서울경제칼럼>

▷ 향토발전의 주역이 될 후학양성은 물론 배움의 장을 마련해주고 창조적 인재를 발굴,육성하여 장차 국가 동량지재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국가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함<서암 문화 장학회 취지문>

▷ 오리 이원익, 그는 실로 청렴 강직한 사람으로서 중망을 한 몸에 지니고, 명종 때부터 선조, 광해군, 인조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위하여 충정을 다한 동량지재(棟樑之材)이었다. ≪한권으로 정리한 이야기조선왕조사≫ 

▷ 그러니 제도를 재정비하고 개혁을 실시해야 하옵니다. 개혁을 실시하는게 백성을 편안케하고 나라의 동량지재를 굳게 매김질하는 것이옵니다. 또한 개혁을 실시하되 백성의 생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 합니다.≪정약용 주론≫中

■ 동문서답 東問西答
[동녘 동/물을 문/서쪽 서/대답할 답]

☞동쪽을 묻는데 서쪽을 대답한다. 묻는 말에 대하여 전혀 엉뚱한 대답

[예문]
▷ 동문서답도 유분수지, 너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 그는 엉뚱하게 동문서답하면서 딴청을 피웠다.
▷ 보통 때는 정상인데요. 왜들 그렇게 가끔씩 동문서답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인도자의 눈꼬리가 점점 처지더니 박장대소를 했다. ≪한상복-배려≫

■ 동방화촉 洞房花燭
[
골 동/방 방/꽃 화/촛불 촉]

☞부인의 방(寢房)에 촛불이 아름답게 비침. 婚禮.

[내용] 남녀간의 부부됨을 일러 結婚이라 하지만 우리 전통으로는 婚姻이다. 婚은 원래 昏, 즉 해가 진 후에 예를 치른다는 뜻이고 姻은‘여자가 사람으로 말미암아 성례한다’는 뜻이다.

 結婚이란 저녁에 맺어진다 하여 생긴 말이다. 고구려 때는 혼인식을 저녁에 베풀었다. 사위가 될 신랑이 저녁 무렵 신부집 문밖에 꿇어앉아 큰절을 하며 신부와 동침케 해줄 것을 애걸하면, 고자세가 된 장인 장모가 밤 늦게야 미리 마련한 사위방에 들인다. 결혼하는 것을 장인 장모집에 든다 하여‘장가든다’고 한 것은 이 같은 풍습에서 연유된 것이다.

[예문]
▷ 좋을 좋을 좋을시고. 어사 서방이 좋을시고. 세상 사람들 다 듣거라. 청춘 금방 괘명하니 소년등과 즐거운 일 동방화촉 노도령이 숙녀 만나 즐거운 일 천리 타향 고인 만나 반가워서 즐거운 일 삼춘고한 가물 적에 감우 오니 즐거운 일 칠십 노인 구대 독자 생남하여 즐거운 일 즐거운 일 많것마는 이런 일도 또 있는가.≪古本春香傳≫
*동방화촉(洞房花觸) 노(老)도령이 숙녀(淑女) 만나 즐거운 일-- 매우 즐거운 일.

▷ 유성룡은 ‘새벽에 술 거르는 소리’를 꼽았다. 이에 이항복이 껄껄 웃으며 “제일 듣기 좋기에는 뭐니뭐니해도 동방화촉 좋은 밤에 신부가 치마끈 푸는 소리가 좋지.”라고 했다고 한다.≪한권으로 읽는 한국의 笑談≫  

▷ 여러가지 잘하기로 일시재동 일컫더니 오매구지 요조숙녀 전전반측 생각하니
동방화촉 늦어간다 이십년에 유실이라 유폐정정 법을 받아 삼종지의 알았으니
내조에 어진 처는 성가할 징조로다 유인유덕 우리 백부 구세동거 효측하여
일가지내 한데 있어 감고우락 같이 하니 의식분별 뉘 아던가 세간구처 내 몰래라
만언사 (萬言詞)≫中에서-정조때 안조환이 지은 유배가사

■ 동병상련 同病相憐  
[같을 동/병 병/서로 상/불쌍히 여길 련]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 서로 불쌍히 여긴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서로 더 잘 이해하고 동정한다.

[동]兩寡分悲(양과분비) : 두 과부가 슬픔을 함께 나눈다. 虎死兎泣(호사토읍) : 여우가 죽으니 토끼가 운다. 같은 것 끼리의 불행을 슬퍼함. /類類相從(유유상종) : 같은 무리끼리 서로 내왕하며 사귐. /草綠同色(초록동색) : 풀빛과 녹색은 한 빛깔. 같은 처지의 사람과 어울리거나 기우는 것. [속담]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 / 가재는 게편

[출전]吳越春秋
[내용]
: 합려(闔閭)는 자객(刺客)인 전저(專諸)를 시켜 吳나라의 왕 요(僚)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오자서(伍子胥)는 전저를 천거한 공로로 대부(大夫)가 되었고 또한 楚나라에서 망명한 백비(伯?)를 천거하여 함께 정치를 하게 되었다.

 그 때 같은 대부 피리(被離)가 “백비를 한 번 보고 왜 그렇게 신용합니까?”라고 물으니“그것은 그와 내가 같은 원한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상가(河上歌)에「같은 병에는 서로 불쌍히 여겨 한 가지로 걱정하고 서로 구하네.(同病相憐 同憂相救) 놀라서 나는 새는 서로 따르며 날아가고,(驚翔之鳥 相隨而飛) 여울로 흐르는 물은 그로 인하여 다시 함께 흐르네.(瀨下之水 因復俱流)」라고 대답하였다. 결국 오자서는 백비를 경계하는 피리의 충고를 듣지 않다가 越나라에 매수된 백비의 참언으로 분사(焚死)하였다.

** 寡(과부 과) 驚(놀랠 경) 翔(날 상) 隨(따를 수) 瀨(여울 뢰) 俱(함께 구)

[원문]同病相憐 同憂相救 驚翔之鳥 相隨抒而飛 瀨下之水 因復俱流 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

[예문]내가 한(恨)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러한지는 모르지만은, 내가 그 달을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만, 그 달은 한(恨) 있는 사람만 보아 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보는 것이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情) 있는 사람이 보는 중에, 또는 가장 한(恨) 있는 사람이 보아 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보아 준다. 내가 만일 여자(女子)로 태어날 수 있다 하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나도향의 수필 그믐달>에서

▷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 리 얄라 (청산별곡)
▷ 저 두 사람은 같은 병을 앓다 보니까 동병상련이라고 형제보다 그 우애가 더하다.
▷ 동병상련이라고 어려운 처지를 당해 보아야 남을 생각할 줄도 알게 되는 법이다.
▷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그 당시엔 그와 동병상련할 처지가 아니었다.
▷ 그들은 전쟁터에서 동병상련한 사이다. 

■ 동산고와 同山高臥
[같을 동/뫼 산/높을 고/누울 와]

☞동산의 높은 곳에 누워 있다는 말로, 동산에 은거하며 자유로운 생활을 함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 편
[내용]진나라의 사안이라는 자가 세속적인 권력이나 부귀를 등지고 동산으로 들어와 은둔 지사가 되었다. 그의 이곳 생활은 자연 그대로의 삶이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사안의 인물됨을 익히 알고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 줄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사안은 그때마다 자신이 있을 곳은 조정이 아니라 바로 이 동산이라며 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활하던 어느 날, 사안은 동산을 나와 환선무의 사마가 되었다. 사안이 당시 진나라의 수도로 저명 인사들이 노닐던 신정을 출발하려고 하자, 조정의 관리자들은 모두 나와 전송을 했다.  당시 중승의 직에 있던 고령이라는 자가 특별히 송별연을 열어 주었다. 그 자리에서 고령은 이러한 농담을 했다. 

"당신은 자주 조정의 뜻을 어기고 동산에서 높이 누워 있었소. 이때 사람들은 '안석이 세상으로 나올 수 없다면 장차 백성들의 고통은 어찌하리.' 라고 했소. 오늘 백성들은 '장차 당신의 고통을 어찌하리.'라고 말할 것이오."  사안은 웃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동상이몽 同床異夢
[같을 동/침상 상/다를 이/꿈 몽]

☞한 자리에 자면서 다른 꿈을 꾼다.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그 가지는 생각이 서로 다름.

[풀이]같은 침상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①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각기 딴 생각을 함을 이르는 말 ②비유적으로, 같은 입장·일인데도 목표가 저마다 다름을 일컫는 말 ③기거(起居)를 함께 하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함  

**
상(床)은 평상 또는 잠자리를 가리킨다. 예로부터 침대를 써왔던 중국에서는 나무로 다리를 세우고 그 위에 널빤지를 대어 잠자리로 이용하였는데 이를 상(床)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처럼 온돌방 문화가 자리잡은 경우에는 방바닥 잠자리를 상(床)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기상(起床)이라 하고, 병자가 앓아 누운 자리를 가리켜 병상(病床)이라고 한다. 동상(同床)이란 '잠자리를 같이 하다'라는 뜻이다.<두산백과>

[유]동상각몽(同床各夢)--『陳亮 書』

[예문]
▷ 이처럼 이해 당사국들이 농업 사정에 따라 기본 입장 내지 요구 사항들이 제각기 다르고, 비슷한 입장을 취하는 국가들끼리 연합하여 그룹을 만들고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쏟고 있다. 분명한 것은 모든 국가가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필요한 논리와 힘을 펴고 있다는 사실이다, 협상이 거듭됨에 따라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국제 사회의 냉정함이다. <허신행, '동상이몽의 협상- 한국 농업의 21세기 전략'> 中에서

▷ 저들이 지금은 함께 고생하고 있지만 각자 꿍꿍이속들이 있어 서로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 ▷ 이 청년단들이란 것이 지도부에 동상이몽을 하는 파벌들이 숨어 들어가 있으니까 단결이 될 게 무언가.≪415 문학창작단, 혁명의 려명≫  

▷ 경찰은 “주말 도심 집회 때문에 시민의 기본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밝혔고, 집회 주최측 역시 “기본권 침해”라며 맞섰다. 동상이몽(同床異夢)식 기본권 침해 논란은 이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집회ㆍ시위 금지통고 문제점과 개선 방안’ 토론회에서도 계속됐다 <2006 한국일보>

특히, 같은 단어인데 의미가 다른 경우,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이 대화를 나누더라도 각각 다른 뜻으로 이해하거나 심지어는 오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이는 원만한 의사 소통을 위해서는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 동이불화 同而不和
[을 동/말이을 이/아니 불/화할 화]

☞(소인은) 부화뇌동하되 화합하지 못함.
[출전]논어

[내용]君子는 和而不同하고 小人은 同而不和이며. 君子는 泰而不驕하고 小人은 驕而不泰이다." (군자 화이부동 소인 동이불화, 군자 태이불교 소인 교이불태)
-"군자는 어울리나 똑같진 않고, 소인은 똑같은 짓을 하면서도 어울릴 줄 모른다. 군자는 태연하나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나 태연하지 못하다."  

[예문]
▷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 즉 같아지면서도 화합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가을은 군자의 계절이요 소인배의 계절은 아닌 듯하다. 여름은 제각각의 잎새들이 나무의 종류나 생김새가 어떠하든... ≪유안진-옛날 옛날에 오늘 노늘에≫

▷ 산속에 살던 시인은 현직 활동가들에게 "이론이나 실천경험을 얘기할 처지는 못된다"면서도 사회는 신영복선생이 말하는 "和而不同"의 논리로 채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동족방뇨 凍足放尿
[얼 동/발 족/놓을 방/오줌뇨]

☞언 발에 오줌 누기. 잠시의 효력이 있을 뿐. 그 효력은 없어지고 마침내는 더 나쁘게 될 일을 한다. 앞을 내다 보지 못하는 姑息之計를 비웃는 말.
**尿 뇨 : 尸+水 /屎 시 : 尸+米

[유]눈 가리고 아웅하기/아랫돌 빼어서 윗돌 괴기[下石上臺]/임기변통(臨時變通 )/고식지계(姑息之計)/미봉책(彌縫策)

[예문]
▷ 민주사는 드디어 병석에 눕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 약국 집 주인 영감이 분명히 그를 위하여 일표를 던져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샘터 주인 김첨지가 즐겨서 쓰는 문자마따나 언 발에 오줌누기로, 그까짓 것이 별 효과가 있을 턱 없이 민주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예상을 그대로 좇아, 가엾게도 낙선을 하고야 말앗던 것이다.『川邊風景』

▷ 물론 황선홍-홍명보 코치 정도라면 당장은 국민적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는 여지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축구의 큰 진전을 향한 작은 발걸음이 아닌 당장의 위기를 피하려는 동족방뇨의 계책일 뿐이다. 물론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황선홍-홍명보 카드가 실패할 경우 한국 축구의 영웅은 없어진다.<2005 오마이뉴스>

▷ 세금으로 이제 공무원을 늘려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한다라는 그 방식 자체에 대해서도 이거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일자리 문제 해결되지도 않고 언발에 오줌누기식이고요. 그리고 오히려 이렇게 되면 공공이 비대화돼서 민간경제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2017 노컷뉴스>

■ 동취 銅臭
[구리 동/냄새 취]

☞구리 냄새, 동전 냄새라는 말로, 재산을 써서 관직을 얻는 사람이나 재물을 탐하는 사람.  

[출전]『'후한서(後漢書)』최열전(催列傳)

[예문]영제 때는 홍도문을 열어 관직과 작위를 입찰을 통해 매매했다. 최열은 유모를 통해 돈 5백 만을 들여 사도라는 관직을 샀다. 

최열은 아들 조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나는 삼공의 자리에 있게 되었는데, 논의하는 자들은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느냐?" 

조가 말했다.  "아버지는 젊어서는 영민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대신과 태수를 역임했습니다. 사람들은 삼공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그러나 이번에 아버지께서 그 지위에 오르자 천하 사람들은 실망을 했습니다." 

최열이 물었다.  "어찌하여 그러느냐?"  조가 말했다.  "논의하는 자들은 동전 냄새를 싫어합니다." 

■ 동호지필 董狐之筆
[동독할 동/여우 호/곳 처/어조사 지/붓 필]

☞동호의 직필(直筆)'이라는 뜻. 정직한 기록. 기록을 맡은 이가 직필하여 조금도 거리낌이 없음을 이름.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적어 역사에 남기는 일.
[유] 태사지간(太史之簡), 董狐直筆

[출전]『春秋左氏傳』〈宣公二年條〉
[내용] 춘추 시대, 진(晉)나라에 있었던 일이다. 대신인 조천(趙穿)이 무도한 영공(靈公)을 시해했다. 당시 재상격인 정경(正卿) 조순(趙盾)은 영공이 시해되기 며칠 전에 그의 해학을 피해 망명 길에 올랐으나 국경을 넘기 직전에 이 소식을 듣고 도읍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사관(史官)인 동호(董狐)가 공식 기록에 이렇게 적었다.

'조순, 그 군주를 시해하다.'조순이 이 기록을 보고 항의하자 동고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대감이 분명히 하수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감은 당시 국내에 있었고, 또 도읍으로 돌아와서도 범인을 처벌하거나 처벌하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감은 공식적으로는 시해자(弑害者)가 되는 것입니다." 조순은 그것을 도리라 생각하고 그대로 뒤집어쓰고 말았다. 훗날 공자는 이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호는 훌륭한 사관이었다. 법을 지켜 올곧게 직필했다. 조선자(趙宣子:조순)도 훌륭한 대신이었다. 법을 바로잡기 위해 오명을 감수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국경을 넘어 외국에 있었더라면 책임은 면했을 텐데……."

[원문]宣子曰 嗚呼 我之懷矣 自 伊  其我之謂矣. 孔子曰 董狐 古之退史也 書法不隱 

■ 두각 頭角
[동독할 동/여우 호/곳 처/어조사 지/붓 필]

☞짐승의 머리에 있는 뿔. 머리 끝. '두각을 나타내다(見頭角·견두각)하면 많은 사람중에서 학업이나 기예 등이 유달리 뛰어나게 나타난다는 말

[출전]『柳子厚墓誌銘』
[내용] 현두각(見頭角)은 한유(韓愈)의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에 나오는 말인데 자후(子厚)는 유종원(柳宗元)의 자(字). 한유와 유종원은 당(唐)나라를 대표하는 문장가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들어가는 인물이다.  유종원은 한유보다 다섯 살 적었지만 5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유종원은 26세 때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합격했으나 한유는 이 시험에 세번이나 도전하고도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한유와 유종원은 서로 깊이 이해하면서 교유(交遊)했는데 고문(古文)의 부흥에도 힘쓰는 등 문학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젊어서부터 필명(筆名)을 드날리면서 관운(官運)도 좋아 사람들의 선망을 받아온 유종원은 생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지방으로 좌천되는 등 불운 끝에 47세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러나 후반부의 불행이 문장에 깊이와 무게를 더해줌으로써 그의 명문장은 그의 불행과 교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새 임지(任地)로 부임해 가는 도중에 유종원의 죽음 소식을 들은 한유는 임지에 도착하자마자 묘지명을 지었다. 유종원의 생애를 살펴보는 대목은 이렇게 되어 있다.  "유종원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모든 것에 통달해 있었다. 부친의 생존시에는 소년이었지만 이미 완성의 경지에 달해 있었다. 과거의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여 '단연 출중하게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見頭角)'. 사람들은 모두 유씨 가문에 자식다운 자식이 났다고 말했다." 

[예문]
▷ 두각을 드러내다
▷ 강태는…학업에도 그만큼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다.≪최명희, 혼불≫

■ 두문불출 杜門不出
[막을 두/문 문/아니 불/날 출]

☞문을 닫고 나가지 않는다. 집안에만 들어앉아 외출을 하지 않다.

[참고]杜門洞 :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것에 반대한 고려 유신이 모여 살던 곳.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에 있다.

*杜鵑 : 杜宇(촉 망제의 이름,그 넋이 화하여 되었다는 전설) 杜魄-두백,不如歸-불여귀,蜀鳥촉조,子規-자규,소쩍새 . 杜鵑花--진달래

[유]蟄居 *蟄 숨을칩

[유래]개성은 고려왕국의 도읍지 송도로서 고려를 패망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조선왕조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최영 장군을 처형하던 날 항의 표시로 동맹철시를 했던 게 송도인이다. 고려에 충성하던 유력인사들에게 조선 조정에 충성하면 직책을 주고 신분을 보장해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혁명세력은 나오면 살려준다는 최후통첩과 함께 이들이 은거하고 있던 광덕산 두문동 골짜기에 불을 질렀다. 하지만 이들은 불타는 화염에서 나오지 않았다. 개성인의 최후의 보루 자존심을 지킨 것 이다. 이때 희생된 사람이 72명이나 된다. 이렇게 참혹한 사건이 있은 후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겼다. 이후, 개성인들은 벼슬과 담을 쌓고 상인의 길로 나섰다. 물산이 풍부하지 않은 개성은 중개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문]
▷ 아버지는 문을 굳게 닫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은 채 두문불출이시다.
▷ 그는 거의 한 달 동안 두문불출하다시피 집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 며칠 동안 두문불출하고 있는데 주막으로 칠복이 영감이 찾아왔다.≪문순태, 타오르는 강≫

▷ 죽마고우인 영식(가명)은 힘든 노동을 하며 두 아이를 가르치고 있다. 근데 최근엔 일을 하다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그 마저도 못 하고 두문불출하고 있다 하여 마음이 무겁다.<2006 국정브리핑-이 땅의 아버지>  

■ 두우륙 杜郵戮
[막을 두/역참 우/죽일 륙]

☞충신이 죄없이 죽음을 당함.

[출전]『史記』백기열전(白起列傳)

[내용]진나라는 9개월여에 걸쳐 한단을 포위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했다. 조나라는 춘신군에게 위나라의 신릉군과 함께 수십만의 병력으로 진나라 군대를 공격하게 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때 무안군 백기는 이렇게 탄식했다.  "진나라 왕은 나의 계책을 듣지 않더니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진나라 소왕은 이 말을 듣고 노하여 무안군에게 출정을 명했다. 그러나 무안군은 질병이 심하다며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왕은 무안군을 면직시켜 사졸의 신분으로 음밀로 옮겨가도록 했다. 그렇지만 그는 병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석 달이나 체류하게 되었다. 

이때 제후의 공격이 치열해지고 진나라 군대는 거듭 퇴각하였다. 급보를 알리는 사자들이 연일 함양에 이르렀다. 진나라 소왕은 화가 나서 백기를 몰아냈다. 무안군이 함양 서문에서 10리쯤 떨어진 두우에 이르렀을때, 소왕은 응후를 비롯한 군신들과 백기에 관해서 상의했는데,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백기가 떠날 때 불만에 가득 차 원망하는 기색으로 말을 하였다."  그리고는 사자에게 검을 내려 무안군에게 자결하게 하였다. 무안군은 검으로 자결을 하려고 하면서 이렇게 탄식했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가 있어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그리고 이어 말했다.  "나는 진실로 죽어 마땅하다. 장평의 전투에서 조나라 병졸 수십만이 항복 하였거늘 내가 속여서 구덩이에 묻어 버렸으니, 내가 죽지 않는다면 누가 죽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안군이 죽었을 때는 진소왕 50년 11월이었다. 비록 그가 죽었으나 그의 죄가 아니었기 때문에 진나라 사람들은 그를 불쌍히 여겼고, 향읍에서는 모두 그를 제사지냈다. 

■ 두주불사 斗酒不辭
[말 두/술 주/아니 불/말씀 사]

☞말술도 사양하지 아니한다. 곧 주량이 매우 크다 

[출전]『史記』
[내용]유방(劉邦)이 진(秦)나라 수도 함양을 함락시키고 진나라 왕 자영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항우(項羽)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유방을 칠 각오를 다졌다. 

 유방 또한 항우가 이를 갈고 있다는 걸 알고 항우의 진중에 나아가 해명했다. 이를 역사책에서는 [홍문의 만남(鴻門之會)]이라고 한다. 
 
유방의 변명에 항우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항우의 모신(謀臣) 범증(范增)은 이를 호기(好機)로 항우의 사촌동생으로 하여금 칼춤을 추게 하여 유방의 목숨을 노렸다. 

 유방이 위급한 처지에 있는 걸 알게 된 심복 번쾌가 방패와 칼을 들고 연회장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위병이 가로 막았다. 일개 위병이 어찌 번쾌를 막을 수 있으랴. 
 
위병을 쓰러뜨린 번쾌가 연회장에 뛰어들어 항우를 쏘아보았다. 항우는 저도 모르게 칼자루를 만지며 소리쳤다.  "누군가"  "패공 유방의 수행부하 번쾌입니다."  유방의 측근 장량(張良)이 대답해 주었다.  "장사로군. 이 자에게 술을 주도록 하라" 

한말들이 술잔이 그에게 주어졌다. 번쾌는 선 채로 단숨에 들이켰다.  "이 자에게 생돼지 다리를 하나 갖다 주어라"  번쾌는 방패위에다 생돼지고기를 놓고 썰어 먹었다. 이를 본 천하의 항우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굉장한 장사로군. 한잔 더 하겠나"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 제가 어찌 술 몇말을 사양하겠습니까(斗酒不辭)"  항우는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리하여 번쾌는 유방을 구해낼 수 있었다. 

[예문]
▷ 두주불사의 주량을 자랑하다.
▷ 두주불사하는 술 실력
▷ 그는 두주불사하는 폭음가로 알려져 있다.

▷ 조병옥은 조선일보에서 나온 후 잠시 광산을 경영하게 되었는데 이때에 술을 배우게 되어 두주불사의 술꾼이 되었다. 조병옥은 일제 말기에 신간회 사건과 연관시켜 일제의 예비 검속에 걸려들어 2년간의 옥살이를 한 후 해방을 맞게 되었다.<2006 주간조선>

■ 두찬 杜撰
[막을 두/지을 찬]

☞저술(著述)에 전거(典據)나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문자를 쓰거나 오류가 많음. 틀린 곳이 많은 작품

[출전]『野客叢書』-송(宋)나라 왕무(王楙)
[내용] 두묵(杜默)이라는 사람이 시를 짓는데 율(律)에 맞지 않는 것이 많아, 그 때문에 일이 격에 맞지 않는 것을 두찬이라 한다.
[원문]杜默爲詩 多不合律 故言事不合格者 爲杜撰  *撰=著作

[해설]송대에 구양수(毆陽修) 등과 시작 활동을 하던 두묵이란 사람의 시가 율과 격에 맞지 않는 것이 많아, 그후로 무엇이든 격에 맞지 않는 것을 두찬이라 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왕무는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있다.

 '두(杜)라는 자는 두전(杜田), 두원(杜園)의 예에서처럼 고래로 나쁘다든가 덜 좋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집에서 빚은 맛없는 술을 두주(杜酒)라고 하는데, 임시 대용품이나 엉터리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왕무 자신도 두찬이란 말 자체의 전거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 때문이다.

통속편(通俗篇)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불교의 장경(藏經) 5,000여 권은 《도덕경(道德經)》 두 권만 진본이고 나머지는 모두 당말 오대(五代) 때 촉의 도사(道士) 두광정(杜光庭)이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후부터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본뜬 위작(僞作)을 두찬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 명(明)나라 서위(徐渭)의 시화 《청등산인로사(靑藤山人路史)》에 '두(杜)라는 글자의 본시 음은 토(土)와 같은데, 후에 토 대신 두를 쓰게 되었다. 지금은 오직 하나만 알고 전체적인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토기(土氣)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두(杜)이다.'

위의 글들에서 보다시피, 두찬이란 격에 맞지 않거나 오류가 많고 남의 저작을 베낀 시작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그 말 자체의 전거는 확실하지 않다. 오늘날 이 말의 사용이 적절한 것인가를 놓고 논의가 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네이버백과>

■ 득롱망촉 得望蜀
[얻을 득/나라 롱/바랄 망/나라 촉]

☞욕심은 한이 없음. 롱을 얻고 또 촉을 바란다

[동]지강급미( 砥糠及米 )겨를 핥다가 쌀을 먹는다./ 차청차규( 借廳借閨 )마루를 빌리면 안방을 빌리고자 한다.

[출전]後漢書』, 光武記
[내용] 後漢 광무제(光武帝)때 나라 안은 군웅이 할거하고 있었는데, 장안의 적미(赤眉), 농서(隴西)에 외효(??), 하서(河西)에 공손술(公孫述), 수양(紙陽)에 유영(劉永), 노강(盧江)에 이헌(李憲), 임치(臨淄)에는 장보(張步) 등이었다.

 이 중에 장안의 적미, 수양의 유영, 노강의 이헌, 촉의 공손술 등은 제호(帝號)를 붙이고 있었다.

 광무제는 유영, 이헌, 장보 등을 모두 토벌하였다. 두융은 모반하지 않겠노라 하였으니 문제 없고, 이제 농서의 외효와 촉의 공손술이 문제였다.

 외효는 광무제에게서 서주 상장군(上將軍)의 칭호를 받은바 있었으나, 공손술과 제휴하여 대항하려 하였으나, 공손술이 응하지 앉자 광무제와의 맹약을 더욱 두터이 하였다.

 한편 외효도 항거하다 병으로 죽고 그 아들 구순(寇恂)이 항복함으로써 농서는 광무제의 손에 평정되었다. 광무제가 말하기를“인생은 만족함을 모른다. 이미 농()을 얻고 또다시 촉(蜀)을 바란다.”고 하고서는 대군을 거느리고 촉을 쳐 천하를 평정하였다.

[원문]彭書曰: 兩城若下,便可將兵南擊蜀虜. 人苦不知足, 旣平 , 復望蜀. 每一發兵, 頭鬚爲白.

■ 득어망전 得魚忘筌
[얻을 득/고기 어/잊을 망/가리 전]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 목적을 이루면 그 때까지 수단으로 삼았던 사물은 무용지물이 됨[유] 筌蹄(전제)/ 兎死狗烹(토사구팽)

[출전]『壯子(장자)』, 外物篇.

[내용] :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목적을 이루면 그 때까지 수단으로 삼았던 사물은 무용지물이 됨을 이르는 말로

"전(筌)은 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나 고기를 잡고 나면 전은 잊어버리게 된다. 제(蹄 : 덫,올가미)는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나 토끼를 잡고 나면 제는 잊어버린다. 이처럼 말이란 마음속에 가진 뜻을 상대편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므로 뜻을 얻으면 말은 잊어버리고 만다. 뜻을 얻고 말을 잊어버린 사람과 말하고 싶구나."

[해설]여기서 망전(忘筌), 망제(忘蹄), 망언(忘言)은 어느 것이나 시비와 선악 같은 것을 초월한 절대의 경지를 말하고 있다. 상대를 초월하여 이 세상의 만물은 한몸이라 고 생각하는 절대적인 경지에 서면,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으며, 선한 것도 악함도 없으며,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없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장자가 보는 그 당연한 일면을 보통 사람들은 인간의 기회주의적인 모순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원문]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吾安得夫忘言之人 而與之言哉

■ 등고자비 登高自卑
[오를 등/높을 고/스스로 자/낮을 비]

☞높은 곳을 올라가려면 낮은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일의 진행에는 차례가 있음. 또는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스스로 겸손해야 한다.

[출전]중용』,『맹자(孟子) 진심편(盡心篇)』,『불경』
[속담]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千里之行始於足下

[참고] ≪노자-道德經≫
合抱之木生於毫末 九層之臺起於累土 千里之行始於足下아름드리 큰 나무도 터럭 끝만 한 씨앗에서 싹이 트고, 아홉 층 높은 집도 낮은 바탕이 있은 다음에 세워지며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天下難事必作於易 天下大事必作於細 아무리 복잡한 일이라도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고, 그지없이 큰 일도 지극히 작은 일 때문에 일어난다

[내용1] 군자의 도는 비유컨대 먼 곳을 감에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함과 같고, 높은 곳에 오름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출발함과 같다. 시경에 ‘처자의 어울림이 거문고를 타듯하고, 형제는 뜻이 맞아 화합하며 즐거웁고나. 너의 집안 화목케 하며, 너의 처자 즐거우리라.’는 글이 있다.

 공자는 이 시를 읽고서 “부모는 참 안락하시겠다.”고 하였다().’ 공자가 그 집 부모는 참 안락하시겠다고 한 것은 가족간의 화목이 이루어져 집안의 근본이 되었기 때문이니, 바로 행원자이(行遠自邇)나 등고자비의 뜻에 맞는다는 말이다.

등고자비란 이와 같이 모든 일은 순서에 맞게 기본이 되는 것부터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우리 속담과 뜻이 통한다고 하겠다.(중용)

[원문]君子之道 如行遠必自邇 如登高必自卑 詩曰 妻子好合 如鼓瑟琴 兄弟旣翕 和樂且眈 宣爾室家 樂爾妻 子曰 父母其順矣乎

[내용2] 군자는 아래서부터 수양을 쌓아야 한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바닷물을 관찰하는 데는 방법이 있다. 반드시 그 움직이는 물결을 보아야 한다. 마치 해와 달을 관찰할 때 그 밝은 빛을 보아야 하는 것과 같다.

 해와 달은 그 밝은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그만 틈만 있어도 반드시 비추어 준다. 흐르는 물은 그 성질이 낮은 웅덩이를 먼저 채워 놓지 않고서는 앞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군자도 이와 같이 도에 뜻을 둘 때 아래서부터 수양을 쌓지 않고서는 높은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君子志於道也 不成章不達).’(맹자)

[내용3] 어떤 사람이 남의 삼층 정자를 보고 샘이 나서 목수를 불러 정자를 짓게 하는데, 일층과 이층은 짓지 말고 아름다운 삼층만 지으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좋은 업은 쌓으려 하지 않고 허황된 결과만 바란다는 이야기다. 학문이나 진리의 높은 경지를 아무리 이해한다 한들 자기가 아래서부터 시작하지 않고서는 그 경지의 참 맛을 알 수 없는 것이다.(불경)

[예문]모든 일은 첫술에 배부를 수가 없다. 그 방면의 서적 중에서 우선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내용과 차례 등에 의하여 선책해서 읽어 볼 일이다 (독서와 인생)

 

■ 등용문 登龍門
[오를 등/용 룡/문 문]

☞용문에 오르다. 立身出世의 관문. 또는 출세의 계기를 잡다.

[출전]後漢書李膺傳
[내용]후한(後漢) 말 환제(桓帝)때의 일이다. '발호장군(跋扈將軍)'이란 횡포한 외척 양기(梁冀)가 제거되고 대신 선초(禪超)등 소위 [오 사(五邪)]의 환관이 포학을 자행하기 시작했을 때, 일부 정의파 관료들은 이에 대해 과감한 항쟁을 전개해서 소위 '당고(黨錮)의 화'라는 대규모적인 탄압을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이 항 쟁의 선봉장 격의 정의파 관료 중 영수로 지목되는 인물로서 이응(李膺)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응은 원례(元禮)라고 하며 영천 양성(潁川襄城)태생이다.   궁정은 환관의 발호로 강기 퇴폐가 심했으나, 이응은 홀로 명교(名敎)의 호지자(護持者)로 자처하고 절조를 지켰으므로 명 성이 더욱 높아져 태학의 청년 학생들은 그를 가리켜 '천하의 모범은 이원례'라 일컬었거니 와 신진 관료사인(官僚士人)들도 그와 친분을 갖거나 추천을 받는 것을 대단한 명예로 삼아 이것을 '등용문(登龍門)'이라 칭했다.(士有被其容接者 名爲登龍門

선비로서 그의 용접을 받는 사람을 이름하여 등용문이라 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등용문은, <이응전>의 주해(註解)에 따르면 황하(黃河) 상류에 용문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그 근처에 흐름이 매우 빠른 폭포가 있어 그 밑으로 큰 고기들이 수없이 모여들었으나 오르지 못하였으며, 만일 오르기만 하면 용이 된다고 하였다. 그 후 이 말은 과거에 급제(及第)하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출세의 문턱에 서는 일을 말하게 되었다

[원문]河津 一名龍門, 水險不通 魚鼈之屬莫能上. 江海大魚 薄集龍門下數千 不得上, 上則爲龍

[참고] 용문(龍門)은 황하 상류의 협곡 이름이다. 이 근처는 매우 급히 흐르는 여울이 있어 급류를 차오르는 큰 고기도 여간해서는 여기에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한 번 오르기만 하면 물고기는 용으로 화한다는전설이 있다. 이에 연유하여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입신출세의 가도에 오르게 되는 것을‘용문에 오르다’고 하였다.

 중국에서는 진사(進士)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출세의 제일보라 하여「登龍門」이라 하였다. 등용문에 반대되는 말은「점액(點額)」이라 한다. 點은 상처를 입는다는 뜻이고 額은 이마. 용문에 오르려고 급류에 도전하다가 바위에 부딪쳐 이마를 깨고 피를 흘리며 떠내려가는 물고기를 말한다. 낙방자(落榜者), 生存競爭의 패배자를 뜻한다.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백의 시 〈삼주기(三奏記)〉에 나오는 말이다.

[예문]
▷ 현재 세계 팝계를 브리트니 스피어스(21)와 양분하고 있는 아길레라는 스피어스와 함께 하이틴 스타의 등용문인 TV 프로그램 '미키마우스 클럽'출신이다.<일간스포츠>

▷ 각 일간지의 신춘문예 공모는 젊은 소설가들의 등용문이다. 

▷ 당시 '현대문학' 은 문학 지망생의 가장 높은 등용문이었고 시는 3회 추천을 받아야 비로소 등단이 되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짧아도 2, 3년을 걸리는 것을 미당은 오직 한 사람 고씨만을 한꺼번에 3편을 실어 추천완료를 시키는 파격적인 편애를 주었었다. <중앙일보--고은,미당비판에 대한 이근배씨 반론>

■ 등하불명 燈下不明
[등잔 등/아래 하/아니 불/밝을 명]

 ☞등잔 밑이 어둡다.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도리어 잘 모른다. 또는 남의 일은 잘 알 수 있으나 제 일은 잘 모른다.가까이에 있는 물건이나 사람을 잘 찾지 못함

[속담]도회 소식 들으려면 시골로 가거라 / 두메 앉은 이방(吏房)이 조정(朝廷) 일 알 듯. / 法 밑에 法 모른다.

[예문]
▷「그야 헛소문이 난게지. 자식 속이야 제 애비만큼 알 수가 없는 법이오.」「그야 지자는 막역부(知者는 莫逆父)란 말이 없잖아 있지마는…등잔 밑이 어둡다는 격으로 어버이 아는 것이 외문만 못한 수도 더 많으니까」≪玄鎭健,無影塔≫

▷ 2년 전 가정사역문화원을 꾸린 두장로 부부는 매주 한차례씩 일반 성도,공무원,회사원에게 성경이 가르친 가정의 화목과 사랑을 설파해와 대표적인 가정사역부부로 꼽힌다.하지만 전문가들이 저지르기 쉬운 맹점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국민일보>

▷ 등잔 밑이 어둡다고 바로 황 진사 댁에 참한 규수가 있더구나.  <이문열, 황제를 위하여>  

■ 등화가친 燈火可親
[등잔 등/불 화/옳을 가/가까이 할 친]

☞등불을 가까이하여 책 읽기에 좋다. 가을 밤은 심신이 상쾌하므로 등불을 가까이 하여 글 읽기가 좋음.
[동]新凉燈火(신량등화):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처음 생길 무렵에 등불 밑에서 글 읽기가 좋다.
[출전]『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한유(韓愈)

[내용]당(唐)나라의 위대한 문학가 한유(韓愈)에게는 아들 창(昶-字는 符)이 있었다.
그는 아들의 독서(讀書)를 권장(勸奬)하기 위해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이라는 시(詩)를 썼다.



      時秋積雨霽 시추적우제
      新凉入郊墟 신량입교허
      燈火稍可親 등화초가친
      簡編可舒卷 간편가서권

      바야흐로 가을, 장마도 걷히고
      마을과 들판에 서늘한 바람
      이제 등불을 가까이 할 수 있으니
       

[참고]
가을--天高馬肥(천고마비) :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찜/ 정안홍엽(征雁紅葉)(기러기 날고 단풍이 물 듦)/ 국오수벽(菊傲水碧)(국화가 뽐내고 물이 비취처럼 푸름)의 계절(季節).

[예문]

▷ 그러나 아무러면 어떤가. 지금 우리가 '고전' 이라 부르는 많은 문학작품들, 예컨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도 당시엔 '점잖지 못한 젊은 애들을 위한 작품' 이란 평가를 받지 않았던가. 젊은이들이 책을 읽는 사회엔 미래가 있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 우리 출판계와 젊은이들을 생각해 본다.<중앙일보--다시 책읽는 독일청소년中>


▷ 등화가친(燈火可親), 서늘한 가을밤은 등불을 가까이하며 글을 읽기에 좋다지만 출판계는 가을이면 울상이 된다. 소풍이나 야유회, 단풍놀이가 몰려 있어 놀러가기에 바빠 책 읽을 겨를이 없다.<2006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