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가당착 自家撞着
[스스로 자/집 가/부딪칠 당/붙을 착]

☞자기의 언행이 앞뒤가 서로 어그러져 맞지 않음.
[동] 矛盾(모순). 二律背反(이율배반).
[예문]
▷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화적 국수주의자는 마치 우물 안의 갇힌 개구리와 같이 지나치게 自家撞着的이라는 비판을 모면하기 어렵다.

▷ 하지만 코미디와 서스펜스, 감동, 부성애 등 여러마리 토끼를 잡으려다보니 자가당착에 빠진 면도 없지 않다. 드라마 전개가 매끄럽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2006 스포츠조선-시네마리뷰>

▷ 작통권 환수는 안 되고, 심지어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한나라당 방미단)고 하는 것은 이만저만한 자가당착이 아니다.문제는 반대편에도 있다.전작권 환수는 물론 군사주권의 회복임에 틀림없다. <2006 기자협회보>

▷ 이성적인 존재를 가정하는 통상적인 핵 억제 전략이 통할 수 없다는 게 되는구먼. 그렇다면 핵우산 논리는 결국 자가당착인 셈이구 말이야. 현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미국에 착 달라붙고 북한과 러시아가 가까워지고 있고 남한과... <2006 한국일보>

▷ “안보리 결의는 적극 지지한다고 해놓고 PSI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고 모순이다”고 비판했다.<2006 한나라당 토론회>

▷ 이 논문은 처음의 주장을 스스로 부인하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 자강불식 自强不息
[스스로 자/힘쓸 강/아니 불/쉴 식]

☞스스로 힘써 쉬지 아니함.
** 强=彊 **息→休息--쉴 식/瞬息--숨쉴 식/子息--아이 식
[출전]『역경』
[내용]천체의 운행은 건실하다. 군자는 그것으로써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다.
[원문]天行이 建하니 君子以하여 自疆不息하니라.

[예문]
▷ 어느 글씨를 쓰든 글씨의 결론은 그것이 예술답게 아름답다는 정답을 얻어내고야 만다.시조시인 정완영은 꽃뜰의 서체에 대해 `이분은 청산 한 나절 넉넉하게 기대앉은 초가삼간처럼 한유해 보이면서도 자강불식(自强不息 )의 심락(心樂)을 누리는 그림같은 분'이라고 했다. <이세기의 인물탐구-서예가 이미경>

▷ 이미 세계 유수의 기업이 된 삼성은 이처럼 자강불식(自强不息)하는데 아직도 선진화가 요원해 보이는 정부와 정치권은 시선을 어디다 두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2006 국민일보 칼럼>

▷ 자강불식 자세로 한미 동맹 공고히 유지하는가는 별도로 고민할 문제... 경제 대국의 작통권을 외국 군대에게 주는 것은 말이 안되고, 가져가라는데 안 가져가겠다는 것은 미국으로서 어마어마한 부담이다.<2006 CBS정치부 보고>

■ 자격지심 自激之心
[스스로 자/칠 격/어조사 지/마음 심]

☞자기가 일을 해놓고 그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
[예문]
▷ 그는 자격지심으로 얼굴도 들지 못했다.
▷ 이 집에는 소용없는 존재가 되었는가 싶어서 자격지심도 나고 섭섭도 하였다.≪염상섭, 위협≫

▷ 어쩌면 자기 잘못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선수를 치느라고 그렇게 위세를 부리는지도 몰랐다.≪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저는 아직도 소설의 이야기성과 그 이야기 속에 삶을 번성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불어 넣기를 꿈꾸는 지극히 보수적인 이야기꾼입니다. 그런 저의 설 자리가 자꾸 좁아져 겨우 억지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걸 어쩔수가 없습니다. 나름대로의 진실을 만들어 내려는 고통보다는 손 끝에 익힌 재주에 의지하고 있다는 자격지심 때문입니다. <박완서 홈페이지>

■ 자두연기 煮豆燃
[삶을 자/콩 두/불탈 연/콩깍지 기]

☞콩을 삶는 데 콩깍지를 태운다. 형제끼리 서로 미워하고 들볶는 것.
[유]煎豆燃豆 (전두연두기) /骨肉相爭(골육상쟁) : 형제나 같은 민족끼리 서로다툼.( 骨肉相殘) /兄弟墻(형제혁장) : 형제가 담 안에서 서로 다툼.

[속담] 갈치가 갈치 꼬리를 문다. /망둥이 제 동무 잡아 먹는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문학편(文學篇)
--조식(曹植) 〈칠보지시(七步之詩), 칠보성시(七步成詩)〉

[내용]
콩을 삶는데 콩깍지로 불을 때니[煮豆燃豆기],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豆在釜中泣].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거늘[本是同根生],
서로 삶기를 어찌 이리 급하게 구는가[相煎何太急]

《삼국지(三國志)》의 주인공 조조(曹操)는 조비(曹丕), 조식 두 아들과 함께 이른바 삼조(三曹)라 하여 건안문학(建安文學)을 꽃피운 문사였다. 이 가운데 조식은 뛰어난 문재(文才)로 조조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조조가 맏아들 조비를 젖히고 이 조식에게 제위를 넘길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따라서 조비에게는 항상 조식을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제위는 결국 조비에게 돌아갔다.

 어느 날 조비는 조식을 불러 일곱 자국을 내딛는 동안 시를 한 수 지으라 하였다. 만약 그러지 못할 경우 국법으로 처리하겠다고 하였다. 조식은 그 즉시 위와 같은 시를 지어 읊었다. 이때 조식의 나이 열 살이었다. 이후 사람들은 형제간에 서로 다투는 것을 두고는 흔히 이 고사를 인용하였다. 그리고 아주 뛰어난 문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은 칠보지재(七步之才)라 불렀으며, 뛰어난 문학 작품을 칠보시라 하였다. 이와 유사한 말로 골육상쟁(骨肉相爭)이 있다.<두산백과>

'이웃사촌’이라 하여 옛날 같으면 다정스럽기 그지없었던 이웃도 이제는 조그마한 이익 때문에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와 자식간에, 또는 형제자매간에도 그런 경우를 보는데 이른 바 骨肉相爭(골육상쟁)이다. 遺産(유산) 때문에 형제가 갈라서는 경우는 흔하며 심지어는 부모를 살해하는 悖倫(패륜)도 가끔 보인다.

骨肉相爭은 옛날에도 있었는데 대체로 權力(권력) 때문에 빚어지곤 했다. 唐太宗(당태종) 李世民(이세민)은 아버지 高祖(고조) 李淵(이연)이 큰형 李建成(이건성)에게 帝位(제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그만 형을 죽이고 아버지를 위협하여 帝位를 차지했다.

 또 東漢(동한)말의 實勢(실세) 曹操(조조)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 曹丕(조비)는 아버지를 닮아 여러 분야에서 재능이 뛰어났다. 중국 최초로 문학비평을 썼는가 하면 역시 최초로 7언시를 짓기도 했다. 한편 둘째 아들 曹植(조식)은 어떤가. 비록 정치적인 능력은 형에 뒤졌지만 문학과 武藝(무예)에서는 형 못지 않았다. 曹操는 그런 曹植이 더 맘에 들었던지 수차 그를 太子에 冊封(책봉)하고자 했다. 曹丕의 눈에는 曹植이 눈엣가시처럼 보였다. 마침내 조조가 죽고 큰아들 曹丕가 魏나라를 세우니 이가 文帝(문제)다.

하루는 文帝가 東阿王(동아왕)으로 책봉되어 있던 동생 曹植을 불러 말했다. ‘내가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 한 수를 지어라. 그렇지 않으면 엄벌에 처하겠다.’

평소부터 고깝게 보아왔기 때문에 이 기회에 그를 해칠 생각이었던 것이다. 曹植은 난감했다. 시를 지을 수가 없어서 라기 보다는 어쩌다 형제 사이가 이렇게 되고 말았는가 하는 점이 더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콩을 삶음에 콩깍지를 태우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콩은 가마솥에서 울고 있네.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본디 같은 뿌리에서 나왔거늘,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왜 이리도 다급하게 지져대는고.

형제라면 서로 돕고 위로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있으니 이 보다 더한 슬픔이 어디 있으랴. 曹植의 유명한 ‘七步詩’(칠보시)다. 그의 뛰어난 文才(문재)와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내용에 文帝도 그만 얼굴을 붉히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고 한다. 煮豆燃기는 형제간의 骨肉相爭을 뜻한다.
<鄭錫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


[예문]
자두연기한 세상을 만나 가지고 그 사람들도 붉은 물이 들어 휩쓸리던 짓이야 어쩔 수 없지마는….≪김원일, 노을≫≫  

■ 자로부미 子路負米
[아들 자/길 로/짐질 부/쌀 미]

☞백리나 떨어진 먼 곳으로 쌀을 진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효성이 지극하여 갖은 고생을 하며 부모의 봉양을 잘함.[동] 백리부미 百里負米

[출전]『공자가어(孔子家語) 』
[내용]춘추시대(春秋時代) 공자(孔子)의 제자 자로(子路)는 효성이 지극하기로 이름이 나 있었다. 하루는 자로가 공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거운 물건을 지고 먼 곳으로 갈 때에는 땅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쉬게 되고, 집이 가난하여 부모님을 모실 때에는 봉록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관리가 됩니다.

옛날 제가 두 부모님을 섬길때는 항상 명아주잎과 콩잎과 같은 나쁜 음식을 대접하여, 직접 쌀을 백 리 밖에서 져 오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남쪽의 초(楚)나라에서 관리가 되었을 때는 수레는 백 대나 되었고, 창고에 쌓아 놓은 쌀이 만 종(鍾;1종은 6석 2두)이나 되었으며, 깔개를 포개 놓고 앉아 솥을 늘어놓고 먹었는데, 명아주잎과 콩잎을 먹고 직접 쌀을 지고 가기를 원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마른 물고기를 묶어 놓은 것이 어찌하여 썩지 않겠습니까? 두 양친의 수명은 흰 말이 달려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순간일 뿐입니다.”

공자가 감탄하며 말했다.“자로가 부모님을 섬기는 것은 살아 계실 때는 힘을 다해 섬기고 죽은 후에는 그리움을 다하는구나.”

■ 자린고비 吝考
[훌륭할 자/아낄 린/죽은 아비 고/죽은 어미 비]

☞다라울이만큼(아니꼬울 정도로) 인색하고 비정한 사람을 꼬집어 이르는말.

[내용] 전해 내려오는 말로는 충북 충주에 사는 고비란 사람은 조선조 중엽에 실제 인물이라고 한다. 선조(先祖)의 제삿날마다

 
'지방'을 다시 쓰는 종이가 아까워서 한번 썼던 것은 기름에 절여서 두고두고 다시 썼다 하여 '절인 고비'로 불렸는데 이 말이 변해서 '자린고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하도 반찬을 사 먹지 않으므로 이웃 사람들이 '자린고비'의 마음을 떠 보려고 몰래 새우젖 한단지를 울안에 들여 놓았겠다.

 이를 본 '자린고비' 하는 말이 "어어 밥 도둑놈이 들어왔네. 이 놈의 새우젖이 있으면 밥이 헤퍼서 못 써"하고 다시 집 밖으로 내 보냈다고 한다.

 하루는 '자린고비'가 '국'을 떠 먹어보니 맛이 구뜨럼한게 좋다. 하여 며느리에게 국맛이 좋은 까닭을 물으니 며느리 대답하기를 "오늘 반찬장수가 왔길래 사는척 하고 이것저것 만져만 보다가 그냥 보내고 '손'을 '국솥'에다 씻었더니 아버님 국 맛이 이렇게 좋네요" 하며 자랑삼아 얘기를 했겠다.

 그러자 자린고비 노발대발 한다. 칭찬을 들을 줄 알았던 며느리 머쓱해졌다. "살림을 그렇게 헤프게 하면 못 써. '손'을 우물에다 씻어 넣었으면 두고두고 맛있게 먹을게 아니냐"하며 아쉬워했다 .

 또 한 번은 자린고비가 장에 갔다가 큰 맘먹고 굴비를 한마리 사 왔는데 소금적이 덕지덕지 앉은 보기만 해도 짠 굴비였다.이것을 반찬으로 먹는 것이 아니고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 매달아 놓은 굴비 한 번 쳐다보고 하는 것이다.

 겸상으로 아들과 밥을 먹는데 아들이 두 번 쳐다보니 아들에게 호통을 친다. 밤에 자다가 물 켜려고 두번씩이나 쳐다 보느냐고 나무라는 것이다.

 경기도 이천에도 자린고비 못지 않은 '천지곱재기(달랑곱재기)'란 사람이 있었는데 하루는 된장항아리에 파리가 앉았다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파리' 다리에 묻은(사실은 묻지도 않았지만) 된장이 아까워서 바가지에 물을 담아 가지고 '파리'를 붙잡아 그 다리를 씻으려고 쫓아가다가 용인땅 어느 개울가에서 그만 파리를 놓쳐 버렸는데 이 놈의 파리가 이리갔나 저리갔나 하고 어정거렸다고 해서 이곳 지명을 '어정개'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자린고비'에 대하여는 일설에는 충북 음성인이라고도 한다.

그리하여 충북 음성군에서는 '98년도부터 '자린고비賞'을 제정하여 자린고비처럼 근검절약 검소한 삶을 사는 군민에게 대상과 금·은·동 賞을 수여한다고 한다.

[참고] 설화유형의 하나. 인색한 사람의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과장하여 다룬 이야기. 자린곱이 자린꼽쟁이 꼬곱쟁이 꼽재기 자리꼼쟁이라고도 불린다. 구전자료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지역적으로는 청주의 자린고비가 가장 유명하다. 가장 흔한 이야기로는,

 지독한 구두쇠인 어떤 영감이 며느리에게 지키도록 한 장이 자꾸 줄어드는 것을 이상히 여겨 스스로 지키고 있노라니 파리가 앉았다 날아가는 양을 보고 어느 만큼인가를 쫓아가 결국 파리를 잡아 뒷자리에 묻은 장을 빨아먹고 왔다는 내용이 있다. 도망가던 파리가 어정대던 곳이라서 '어정개',자린고비 영감이 파리를 놓치고"아차 이제 놓쳤구나!"하였다고 해서 '아차지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등의 지명전설과 연결되기도 한다.

 구전자료에서는 위와 같은 유형이 많이 보이지만 세간에 더 알려진 것은 자반고등어에 얽힌 이야기이다.

 구두쇠영감이 자반생선을 한 마리 사서 천장에 매달아 놓고 식구들에게 밥 한 숟가락 떠먹고는 자반을 한번씩 쳐다보게 하였는데, 아들이 어쩌다가 자반을 두 번 쳐다보니 구두쇠 영감이 "얼마나 물을 켤려고 그러느냐."하고 아들을 야단쳤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더 발전되어 어떤 사람이 구두쇠 영감이 어쩌나 보려고 담밖에서 자반생선을 한 마리 던져넣자 마당을 쓸고 있던 영감이 "아이쿠 밥도둑놈."하고 질겁을 하면서 생선을 담밖으로 던져버렸다는 내용으로 변하기도 한다.

 보통 과장담을 과장행위가 일회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립내지 점층을 이루어 중첩되는 예가 많은 데, 자린고비 설화도 두 명의 구두쇠가 등장하여 경쟁담 형식을 띠는 예화가 많이 있다.

점층되는 형식에서 주인공 구두쇠와 대비되는 인물은 동네사람 ·친구·아들사돈 등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인물은 며느리이다.

 며느리 역시 구두쇠로 생선장수가 오자 짐짓 사는 척 한참 주물럭거리다가 고기는 사지 않은 채 생선장수는 돌려보내고 생선을 주물럭거리던 손을 씻어 그 물로 국을 끓였더니, 자린고비 시아버지는 며느리더러 그 손을 물독에 넣어 씻었더라면 두고두고 고깃국을 먹을 것을 아깝다고 나무랐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자린고비 설화는 두 명의 구두쇠가 등장해서 누가 더 지독한가를 겨루는 본격적인 경쟁담 형식을 띠기도 한다. 가령, 주인공은 부채를 아끼느라 살을 두 개만 펴서 부치는데, 또 한 구두쇠는 부채를 편 채 고개만 할랑할랑 흔들더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는 예로부터 전승되어오던 것으로서 문헌 설화에도 종종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화로 <태평한화골계전>의 이야기를 보면 청주의 구두쇠와 충주의 구두쇠가 만나 전자가 후자에게 문종이를 주었다 돌려 받았는데 후자는 그 창호지에 묻은 자기네 밥풀을 돌려달라고 하였다는 것이 있다.

 `자린고비`라는 말의 어원은 어느 지독한 구두쇠 양반이 부모제사 때 쓸 제문의 종이를 아껴 태우지 않고 접어두었다가 두고두고 써서 제문 속의 아비 고(考) 어미 비자가 절었다는 말로부터 저린고비 자린고비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전한다.

이 설화는 지독하게 인색한 사람을 풍자하는 과장담이지만, 화자들은 단지 우스갯소리로 여기는 것만이 아니라 "그만큼 아꼈다." "부자인데도 일을 손에 놓지 않았다." 등의 설명을 첨부하면서 근검한 생활의 모범을 보인다는 면에서 교훈적인 내용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자료 출처 : 한국사전연구사간. 국어국문학자료사전)

[예문]
▷ 올들어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53%) 1위 자리를 견고히 지키며 상반기 총매출7,400억원에 당기순이익 358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고의 판매기록을 올리고도 ‘자린고비 경영’의 고삐를 조금도 늦추지 않는 박경복(朴敬福·78) 회장 때문이다.<한국일보> 

▷ 노인인데 부동산이 수월찮게 많나 봅디다. 있는 놈이 자린고비 노릇은 더 한다니까.≪한수산, 부초≫ 

▷ 로또가 판치는 세상이지만 ‘티끌모아 태산’은 여전히 소중한 금언 입니다. 비록 지금 자린고비 소리를 듣더라도 오늘 아낀 100원짜리 하나가 5년내지 10년 후 내 인생을 지켜줄 수 있기 때문 입니다.<2006 쿠키뉴스>

■ 자성제인 子誠齊人
[그대 자/진실로 성/나라 제/사람 인]

☞견문이 아주 좁아 하나밖에 모르고 고루한 사람.

[출전]맹자
[내용]맹자의 제자중에 공손추라는 제나라 사람이 있었다.그가 제나라의 명재상이었던 관중,안영만을 장한 줄 알고 말끝마다 그를 들먹이자 이에 식상한 맹자가 "자네는 실로 제나라 사람이로다"라고 말했다.
[원문]孟子曰 子誠齊人也로다. 知管仲晏子而已矣온여.  

■ 자수성가 自手成家
[스스로 자/손 수/이룰 성/집 가]

☞물려 받은 재산없이 제 손으로 재산을 모아 한 살림을 이룸.
[예문]
▷ 사업에서 독자적으로 이룩한 자수성가의 경력이 모든 이에게 그런 신뢰감을 주었다.≪박완서, 미망≫
▷ 그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하여 대기업의 사장이 되었다.
▷ 크게 못할 노릇 한 건 없어도 맨주먹으로 지수성가하려니 동기간이나 처가붙이 돌볼 겨를이 어디 있었겠나?≪박완서, 오만과 몽상≫
▷ 나는 열아홉 살부터 서울로 과거 보러 다니고 그리고 내 손으로 자수성가했다.≪한설야, 탑≫

■ 자승자박 自繩自縛
[스스로 자/줄 승/스스로 자/얽을 박]

☞자기의 줄로 자기를 묶다. 즉 자기의 언행으로 인하여 자신이 꼼짝 못하게 되는 일.
[동]作法自斃(작법자폐)*넘어질 폐. 자기가 만든 법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다 / 欺人自欺 (사인사기) 남을 속이려다 스스로 속는다

[예문]
▷ 무수한 여자 가운데의 하나를 골라서 아내로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그렇게 속박하겠다고 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 이를테면 자승자박이다.≪이병주, 행복어 사전≫

▷ 왜 무사히 넘어가는 사건에 대해 자승자박하는가?≪김용성, 리빠똥 장군≫

▷ 인간애에 바탕을 둔 민주화를 추구하지 않는 근대화는 개인을 군주적이며 가부장적 권위에서 해방을 시키는 동시에 산업 사회의 관료적 권위주의로 다시 구속시키게 된다. 이렇게 될 때,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관료 국가의 차원으로 확대되어 시민 사회를 지향하는 주체적 세력의 형성을 가로막게 된다.

▷ 진보를 목표로 과학과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너무 늦기 전에 좀더 단순한 '자연적인' 생활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우리가 이미 과학을 수없이 맹신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 미국의 끈질긴 통상 압력과 엔고에도 불구하고 엔고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일본의 무역 흑자는 축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수입은 막고 수출만을 진작하도록 설계해 온 경제 구조가 이제는 스스로의 목을 죄고 있는 것이다. 무역 흑자가 줄어들지 않는 가운데도 경기 침체로 인해 일본의 해외 투자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 한 때 특유의 입담과 외모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혁재는 자신이 놓은 덫에 자신이 걸리게 됐다 <2010.1 매일경제>

■ 자아도취 自我陶醉
[스스로 자/나 아/기뻐할 도/취할 취]

☞자기가 어떤 것에 끌려 취하다시피 함.
[예문]
▷ 자아도취에 빠지다
▷ 지금 그는 자기가 천재라는 자아도취 상태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 팔 인이 다리 위에 앉아 물을 굽어보니 여러 골 물이 교하(橋下)에 모여 넓은 징담(澄潭)이 되어 차고 맑음이 광릉 땅에 보배의 거울을 새로 닦은 듯하니 푸른 눈썹과 붉은 단장이 물 속에 떨어져 마치 한 폭 주방(周肪)의 미인도 같더라. 팔 인이 그림자를 희롱하며 스스로 사랑하여 능히 떠나지 못하여 메 날이 장차 저무는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 자업자득 自業自得
[스스로 자/일 업/스스로 자/얻을 득]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果報)를 자기가 받음.
[동] 자업자박自業自縛[유]인과응보因果應報 / 출이반이出爾反爾

[예문]
▷애초에 잘못은 자기에게 있었으니 자업자득이지요.
▷이런 꼴로 사는 것도 자업자득, 너 자신이 원한 길, 별수 없지.≪박경리, 토지≫
자업자득이다 싶으면서도 일순 가슴이 찡하도록 수희 언니가 불쌍해졌다.≪박완서, 도시의 흉년≫

▷ 전체 어획량이 거의 대부분이 일본의 할당량에서 줄어든 것이다. 이는 일본의 자업자득이다. 일본이 지난해 할당량을 1800t이나 초과해 참치를 남획한 사실이 적발된 데 대한 처벌이기 때문이다.<2006 한겨레>

▷ 북한 제재를 둘러싸고 외교전이 숨가쁘게 벌어지고 있는데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등 현상황에서 도움이 안 되는 말을 거침없이 했다. 최근 끝난 한미안보협의회(SCM)가 전례 없는 진통을 겪고 국민에게 불안을 안겨준 것도 다 자업자득인 셈이다.<2006 서울경제>

■ 자중지란 自中之亂
[스스로 자/가운 데 중/어조사 지/어지러울 란]

☞자기네 한 동아리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
[동] 蕭墻之變(소장지변)/蕭墻之憂 **소장--君臣이 회경하는 곳에 쌓은 담./ 四分五裂

[예문]
▷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국가생존 차원에서 성숙한 노사문화를 마련해야 한다극단적인 노사대립은 글로벌 경쟁시대의 자중지란이며 노사공멸의 지름길이다.<국민일보>
▷ 자중지란으로 일을 망치다
▷ 돈이 좀 생기면 그것을 서로 먹으려고 눈이 붉어서 자중지란을 일으키니, 그것들을 데리고 무슨 일을 한단 말요.≪한용운, 흑풍≫

▷ 북한 핵의 상황이 갈수록 꼬인다. 미국이나 중국 등 한 다리 건넌 관련국의 입장은 명확하지만 우리 안에서의 자중지란이 심각하다. 외교 라인은 북 김정일의 발언 하나를 두고 혼선을 빚는가 하면, 고위 안보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 닿지 않는 발언으로 동맹인 미국을 자극하고 나선다.<2006 중앙일보 칼럼>

▷ 핵실험 이후 한국은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진 상황이다. 이른바 ‘남남 갈등’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앞으로 이같은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2006 파이낸셜뉴스-공병호칼럼>

■ 자포자기 自暴自棄
[스스로 자/사나울 포/스스로 자/ 버릴 기]

☞자기 자신을 스스로 버리고(학대하고) 돌보지 않음.
[출전]맹자』, 離婁上篇
[내용]스스로를 해치는 자와는 더불어 진리를 말할 수 없고, 스스로를 버리는 자와는 더불어 진리를 행할 수 없다. 말하자면 예의(禮義)를 비방하는 것을 스스로를 해치는 것[自暴]이라 하고, 내 몸이 인(仁)에 살고 의(義)를 좇지 않는 것을 스스로를 버리는 것[自棄]이라 한다.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고, 의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 편안한 집을 비워 두고 살지 않으며, 바른 길을 버리고 행하지 않으니, 슬프다.자포는 예의를 헐뜯기만 하는 무리이고, 자기는 인의(仁義)에 따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과는 어떤 말이나 행동을 같이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이것은 인간의 도리를 망각한 자와는 상종을 말라는 경고이다. 본래 맹자가 인의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철학적 성격을 띤 말이니 지금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현재의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체념과는 그 뜻이 많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네이버백과>

[원문]自暴者 不可與有言也 自棄者 不可與有爲也 言非禮義 謂之自暴也 吾身不能居仁由義 謂之自棄也 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 曠安宅而弗居 舍正路而不由 哀哉

[예문]
▷ 자포자기에 빠지다
▷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자포자기의 감정에 그는 이 일을 포기했다.
▷ 그는 부역자로 붙잡히는 몸이 되었고 그 자신도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졌다.≪박태순, 어느 사학도의 젊은 시절≫
▷ 우리에겐 시간이 있어요. 돌이킬 수 없다는 건 너무나 앞지른 자포자기예요. 그처럼 쉽게 포기하지 말아요.≪이병주, 지리산≫
▷ 자포자기하다
▷ 그는 자포자기하듯 술을 마구 퍼마시고 있다.
▷ 아무리 힘든 시련이 닥쳐도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네이버국어사전>

▷ 미래 세대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이런 분위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자포자기한다는 것이다.<2006 오마이뉴스>

▷ 구조적인 비리와 로비의 흔적이 역력하다는 사실 등을 접할 때는 정부 등 관련 집단을 책망하려는 마음보다는 거의 자포자기 심정이 먼저 드는 것이 일반 국민의 생각일 것이다.<2006 대전일보>

에라, 한 번 죽제 두 번 죽것냐? 에라 내 지팡이나 주시오.' 심봉사를 별궁으로 모시고 들어 가서 '심맹인 대령하엿소' 심황후 부친을 살펴볼 적, 백수풍신(白首風神) 늙은 형용 슬픈 근심 가득한 것이 부친 얼굴이 은은하나 또한 산호 주렴이 앞을 가려 자세히 보이지 아니하니 '그 봉사 거주를 묻고 처자가 있나 물어보아라' 심봉사 처자란 말을 듣더니마는 먼 눈에서 눈물을 뚝뚝 떨치면서……. (‘심청가’에서)  

■ 자화자찬 自畵自讚
[스스로 자/그림 화/스스로 자/칭찬할 찬]

☞자기가 그린 그림을 자기가 칭찬하다. 자기가 한 일을 자기 스스로 칭찬하다.
[예문]
▷ 자화자찬을 늘어놓다
▷ 이 말이 자화자찬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내가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 자화자찬하다
▷ 그는 자신이 한 일을 자화자찬했다.
▷ 그는 자신이 세계 최고의 요리사임을 자화자찬하고 있다.
▷ 그는 자신의 논문을 매우 훌륭하다고 자화자찬하고 다닌다.

▷ 나의 생애는 감각의 노예였다’는 제목의 회고록 머리말에서 카사노바는 자화자찬을 멈추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다<2006 내일신문-쾌락의 노예로 살고자 했던 카사노바>

▷ 금년 4월 6일 미 상원 세출위원회 소위원회에 출석한 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차관도 "미국이 북한에 가한 심각한 타격 때문에 전 세계적 범위에서 파급 효과가 생기고 있다"는 자화자찬까지 늘어놓았다. <2006 오마이뉴스>  

■ 작사도방 作舍道傍
[지을 작/집 사/길 도/곁 방]

☞여러사람의 의견에 일일이 귀를 기울이면 결국 일을 이루지 못한다
[원문] 作舍道傍 三年不成--길가에 집을 지으면 삼년이 되어도 완성하지 못한다

[속담]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 작수성례 酌水成禮
[술 따를 작/물 수/이룰 성/예도 례]

☞물을 떠 놓고 혼례를 행한다. 형세가 가난하여 혼례를 간략하게 지냄.

[예문]
▷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아름다운 인연을 맺게 됐지만 박 좌수의 살림도 넉넉한 편이 아니었고 또 고유도 머슴살이 처지였던지라 혼례식이랬자 물 한 그릇 떠놓고 올리는 작수성례에 지나지 않았다.<월간 양돈진흥>

▷ 남술이는 열 살 맏이나 되기 때문에 그들은 더 기다리지 못하고 그가 열세 살 때에 작수성례로 냉수를 떠 놓고 예를 갖추었다.≪이기영, 봄≫  

▷ 난정은 그 내용을 글로 적어달라고 요구하고 윤원형은 종이 위에 ‘일편단심''이라고 적는다. 난정이 일편단심이라는 네 글자를 가슴속에 묻고 살겠다고 하자 윤원형은 오늘밤에 머리를 올려주겠다고 말한다. 난정은 부부지연을 맺는 일이라 작수성례라도 치르고 싶다고 말한다.<2001 SBS드라마 여인천하 줄거리 中>

■ 작심삼일 作心三日
[지을 작/마음 심/석 삼/날 일]

☞마음 먹은 지 삼일이 못간다. 결심이 얼마 되지 않아 흐지부지 되다.
[동] 高麗公事三日(고려공사삼일). 朝令暮改(조령모개). 朝變夕改(조변석개).
[속담]첫 술에 배 부를까?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열 두 번.

[해설]‘굳게 먹은 마음이 사흘을 못 간다’라는 우리말 속담과 같은 한자성어(漢字成語)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쉽게 변하는 것이고, 바위 같은 굳은 결심도 끝까지 지켜내기란 어려운 것이다라는 교훈이 담긴 말이다.

‘마음처럼 간사한 건 없다’라는 속담이 암시하다시피 사람의 마음이란 조석으로 변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한번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로 작심하였으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의지로 끝까지 처음 마음 먹었던 바를 굽히지 않고 밀고나가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 인간으로서 옳고 떳떳하다는 말이다.<네이버백과>

[예문]
▷ 올해는 일년의 시작이자 세기의 시작이고 새 천년의 시작이니 더 거창한 계획을 하고 마음을 챙겨보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로 계획이 흐려지고 마음이 해이해져 안타까워하고 자신을 자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000 한울안 신문>

▷ 굳은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나다
▷ 금연 선언을 하였으나 작심삼일이었다.

■ 장경오훼 長頸烏喙
[길 장/목 경/까마귀 오/입 훼]

☞긴 목과 뾰족이 나온 입  

[출전]『사기』 越王句踐世家(월왕구천세가)
[내용]범려가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평한 말로, 환난(患難)은 같이 할 수 있으나 안락은 같이 누릴 수 없는 인상(人相)을 이른 말이다. 

 인물됨이 좁고 의심이 많아서, 성취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고 나면 협력자나 동지에게 등을 돌릴 인상을 일컫는다. 관상에서, 목이 길고 입이 뾰족한 상(相). 참을성이 많아 고생을 이겨 내지만 잔인하고 욕심이 많으며 남을 의심하는 마음이 강하여 안락을 누리기 어렵다고 한다.

 

■ 장삼이사 張三李四
[성씨 장/석 삼/성씨 리/넉 사]

☞장씨네 셋째아들과 이씨네 넷째아들. 지극히 평범한 사람./ (佛)사람에게 성리(性理)가 있는 줄은 아나, 그 모양이나 이름을 지어 말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동] 甲男乙女(갑남을녀).匹夫匹婦(필부필부).樵童汲婦(필부필부).善男善女

[예문]
▷또 다시 합당을 넘은 신당 창당이 들끓고 있다. 무한 정계개편이라고도 하고 `2여+α'라고도 한다. 장삼이사(張三李四)들로서는 구경할 도리밖에 없다. <2001 www.therob.co.kr>

▷ 우리 목숨을 주무르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모든 사람이 장삼이사, 그놈이 그놈이다.≪최인훈, 광장≫

▷ 영웅호걸이라는 게 별것들이 아니었다. 평화로운 시대에 안온하게 태어났더라면 장삼이사로 조용하게 살다가 죽을 인간들이 괴상한 시대에 잘못 태어나….≪박태순, 어느 사학도의 젊은 시절≫  

▷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보불감증'이라고 비판했지만, 국민들은 '안보불안증' 야기하지 말라고 맞섰다. 2006년 늦가을, 한반도 남단에서 벌어진 재미있는 풍광이다. 장삼이사들만 그런 게 아니다. 유명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였다.<2006 오마인뉴스>

장수선무다전선고
[길 장/소매 수/잘할 선/춤출 무/돈 전/장사 고]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한다, 무슨 일이든지 조건이 나은 사람이 큰 성과를 거둔다.

[출전]『한비자韓非子』

[내용]한비는, 당시의 정세를 논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보존하기 위해 합종(合從)또는 연횡(連衡)을 택하거나 다른 나라의 힘을 비는 것, 이 모두가 틀린 방법임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왕은 다른 나라를 공격할 수 있지만, 그 나라가 안정되면 공격할 수 없다. 강자는 다른 사람을 공격할 수 있지만, 다스려지면 공격할 수 없다. 다스려 강력하게 하는 것은 나라 밖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 안에 있다. 지금 안으로 법술(法術)을 시행하지 않으면서 바깥의 지혜를 섬긴다면, 강력하게 다스리는 것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

속담에,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자질이 많으면 교묘함을 쉽게 이룬다는 말이다. 따라서 다스려져서 강하게 된 나라는 일을 도모하기 쉽고, 약하고 혼란스러운 나라는 어렵다. 그러므로 진(秦)나라에서는 책사가 열 번 바뀌어도 목적한 바를 잃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연(燕)나라는 한 번 바꾸어도 목적한 것을 얻지 못했다.

 이것은 사용되고 있는 것이 지혜로운가 아닌가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고 있는가 있지 않은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周)나라는 진나라를 떠나 합종한 지 1년 만에 멸망하였고, 위(衛)나라는 위(魏)나라를 떠나 연횡한 지 반년 만에 망하였다.

[예문]
▷ 삼성은 2005시즌을 위해 '국보 투수' 출신 선동열 감독을 5년간 총액 15억원에 계약하며 사령탑에 앉혔다. 뿐만 아니라 '선수 몸값을 부풀린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심정수 박진만 등 FA 대어들을 잇따라 영입하는 등 확실히 부잣집다운 큰 씀씀이를 과시했다. 삼성이 전력보강을 위해 쏟아부은 돈은 무려 200억원에 가까웠다.<2006 스포츠신문>

장유유서 長幼有序
[어른 장/아이 유/있을 유/차례 서]

☞장유유서(長幼有序) : 어른과 젊은이 사이에는 순서가 있음. 오륜(五倫)의 하나.

[예문]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먼저 먹게 하여라."
--- <허생전(許生傳)>에서(섬을 떠나면서 허생이 부탁한 말)

■ 장중보옥 掌中寶玉
[손바닥 장/가운 데 중/보배 보/옥돌 옥]

☞손에 쥔 옥. 사랑하는 자식이나 매우 귀중한 물건.≒장중주掌中珠
[예문]
▷ 부인이 좌수를 향하여 꿈 이야기를 하며 괴이하게 여겼다. 좌수가 이 말을 듣고, "우리의 무자함을 하늘이 불쌍히 여기사 귀자를 점지하심이오." 하며,서로 기뻐하였다. 과연 그 날부터 태기가 있어 십 삭이 차매, 하루는 밤중에 향기가 진동하더니 순산하여 옥녀를 낳았다. 아기의 용모와 기질이 특이하여 좌수 부부는 크게 사랑하며 이름을 장화라 짓고 장중 보옥같이 길렀다.<장화홍련전>

▷ 김삿갓 <훈장>

    <訓長>
    세상에서 누가 훈장이 좋다고 했나.
    연기없는 심화가 저절로 나네.
    하늘 천 따 지 하다가 청춘이 지나가고
    시와 문장을 논하다가 백발이 되었네.
    지성껏 가르쳐도 칭찬 듣기 어려운데
    잠시라도 자리를 뜨면 시비를 듣기 쉽네.
    장중보옥 천금 같은 자식을 맡겨 놓고
    매질해서 가르쳐 달라는 게 부모의 참마음일세.

    世上誰云訓長好 세상수운훈장호
    無烟心火自然生 무연심화자연생
    曰天曰地靑春去 왈천왈지청춘거
    云賦云詩白髮成 운부운시백발성
    雖誠難聞稱道賢 수성난문칭도현
    暫離易得是非聲 잠리이득시비성
    掌中寶玉千金子 장중보옥천금자
    請囑撻刑是眞情 청촉달형시진정

 

▷ 장중보옥처럼 여기다

▷ 남매를 장중보옥처럼 아껴 가며 기를 때 소원하던,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어려울 때 의지하길 바란 소망 때문에….≪박완서, 미망≫

■ 재도지기 載道之器
[낮을 저/머리 수/아래 하/마음 심]

☞도(道)를 담는 그릇으로서 '문학'을 보는 관점-- 유교 문화권의 문학관

[해설]"대체로 작은 낚싯대로 개울에서 붕어새끼나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큰 고기를 낚기 어렵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설(小說)을 꾸며서 그걸 가지고 현(縣)의 수령(守令)의 마음에 들려 하는 자는 크게 되기 어렵다."장자는 상대방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 아래 꾸며낸 재담의 뜻으로 사용<[장자(莊子)] 외물편>

공자의 '소도(小道)' 개념과 도청도설(道聽塗說)--"소도에는 볼 만한 것이 있기는 하나 원대한 일을 당해 이를 인용하면 통하지 않을 염려가 많다. 따라서 군자는 이런 것을 하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얻어 들은 말은 곧 도덕을 쌓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다."--공자는 문학을 학문의 연장선상에 올려 놓고, 결국 재도지기(載道之器)로 봄

■ 재자가인 才子佳人 [재주 재/아들 자/아름다울 가/사람 인]

☞재주 있는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

[예문]
▷ 현 정부는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이 외국의 호걸과 재자가인의 사례나 이론을 즐겨 인용한다. 대통령은 미국 링컨 대통령을 정치적 사부로 삼으면서 프랑스 대혁명을 노래한다<2005 세계일보>
▷ 고전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재주 있고,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재자가인(才子佳人)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주위를 둘러보면 평범한 사람들 일색이다. 이럴 때도 예술은 현실을 배반한다고 할 수 있다. <2005 서울신문>

■ 저수하심 低首下心
[낮을 저/머리 수/아래 하/마음 심]

☞머리를 낮추고 마음을 아래로 향하게 한다는 뜻으로, 머리 숙여 복종함을 비유한 말.

[내용]당(唐)나라 중기, 유종원(柳宗元) 등과 고문(古文) 운동을 창도했던 한유(韓愈)는 비단 문장가일 뿐만 아니라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정치가이기도 하다.

 한유는 불교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유학자로, 당시의 헌종(獻宗)이 부처의 사리를 조정에 들이려 하자 〈논불골표(論佛骨表)〉로 이를 비판하였다. 이로 인해 헌종의 노여움을 사 사형에 처해질 뻔하였으나, 주위의 도움으로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는 데에 그쳤다.

한유가 임지에 도착하자 백성들이 그들의 문제를 상소하였는데, 그 하나가 악어(鰐魚)에 관한 것이었다. 악어가 골짜기에 모여 있다가 불시에 가축을 잡아먹고 인명까지 해한다는 것이었다. 한유는 〈제악어문(祭鰐魚文)〉이라는 글을 썼다.

 글의 내용은, "악어들에게 1주일간의 여유를 줄테니 남쪽의 바다에 가 살도록 하라. 만약 어기면 포수를 시켜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것이다. 문장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자사가 비록 어리석고 약하나, 또한 어찌 악어를 위하여 머리를 낮추고 마음을 아래로 향하겠는가[刺史雖駑若, 亦安鰐魚 低首下心]?"<두산백과>

■ 적반하장 賊反荷杖
[도적 적/도리어 반/멜 하/지팡이 장]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상대방을 윽박지르다.

[동]주객전도(主客顚倒) / 객반위주(客反爲主) / 아가사창(我歌査唱-내가 부를 노래를 사돈이 부른다, 나에게 책망을 들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나를 책망할 때)

[속담] 방귀 뀌고 성낸다. / 물에 빠진 놈 건저 놓으니까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 문비(門裨)를 거꾸로 붙이고 환쟁이만 나무란다 /소경이 개천 나무란다
*門裨 : 정월 초하룻날에 악귀를 쫓는 뜻으로 대문에 붙이는 신장(神將)의 그림.

[출전]《순오지(旬五志)》
[내용] "적반하장은 도리를 어긴 사람이 오히려 스스로 성내면서 업신여기는 것을 비유한 말"로 풀이되어 있다. 이처럼 적반하장은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빌거나 미안해 하기는커녕 오히려 성을 내면서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어처구니없는 경우에 기가 차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말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누구한테 큰소리냐?", "사람을 때린 놈이 되레 맞았다고 큰소리니 적반하장도 정도가 있지." 등의 꼴로 쓰인다.

[원문]賊反荷杖以比理屈者反自陵轢

[예문]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 아무리 관장이 백성의 어버이라고 하나, 호구지책을 빼앗고서 인륜을 지키라니, 적반하장이 아니고 무엇이랴.≪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당신네들 치안이 물샐틈없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소? 적반하장이라더니 피해자를 보고 뭐 어째요?≪박경리, 토지≫

▷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는 물론 보험업계 사장단까지 나서 민영의보 말살 정책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민영 의료보험 말살 저지 투쟁위원회'를 구성해 대응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건의료시민단체 등은 적반하장이라는 반응이다. . <2006 연합뉴스>

▷ “그동안 민노당은 좌익 활동을 공공연히 펼쳐 오면서도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 ‘인권유린’, ‘공안정국 조성’, ‘국보법 해체’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적반하장격으로 대응해왔다”며 “민노당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민노당 내에 간첩이 다수 포진해 활동해왔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2006 데일리안 뉴스>  

■ 적소성대 積小成大
[샇을 적/작을 소/이룰 성/클 대]

☞작은 것을 모아서 큰 것을 이룸
[속담]띠끌 모아 태산(塵積爲山-진적위산).[동] 적토성산積土成山/적소성대積小成大/수적성연水積成淵 --물이모여 못을 이룬다

[예문]
▷ 그래서인지 요즘 황금돼지저금통을 판매하는 노점상들이 눈에 띕니다. 로또가 판치는 세상이지만 ‘티끌모아 태산’은 여전히 소중한 금언 입니다.<2006 쿠키뉴스>
 
▷ 국내시장 포화로 업체들 매출확대에 사활 '상호접속료 산정' 싸고 錢단위에도 신경전  ‘티끌 모아 태산…’ 국내 통신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면서 업체들이 매출 확대를 위해 요금이나 상호접속료 등을 놓고 ‘원 단위‘에도 사활을 거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2006 서울경제>  

▷ 건전한 투자란 곧 작은 것을 쌓아 큰 재산을 만드는 적소성대(積小成大)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적소성대 정신을 갖게 하는 것은 인격이라고 그는 정의했다.<2006 경향신문>  

■ 적수공권 赤手空拳
[벌거벗을 적/손 수/빌 공/주먹 권]

☞맨손, 맨주먹.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음.≒척수공권 隻手空拳
[예문]
▷ 그는 적수공권으로 외국에 나가 큰돈을 모았다.
▷ 나리께서는 지금 몸에 고의적삼만 입으셨습니다.…칼도 아니 드신 적수공권인 빈주먹이십니다.≪박종화, 임진왜란≫

화병이  울고 난다. “수인씨 교인화식, 나 혼자 맡었을까? 녹록허다 이 내 신세,  취관화기 걸머지고 뭇군사 밥짓기와, 양식마자 떨어지고 호로 한 박뿐이로다.  표자나 꿰여차고 우리 집을 가고지고.” 애고, 애고, 울고 나니 범군이  울고 난다. “환도는 집만 남고 군복 조차 불에 타지고, 적수공권  외상투에 절룩 절룩 이 내 다리로 위국 고향을 어이 가리?  다만 내 몸에 남은 것은 가죽 방망이 밖에 또 있느냐?”<판소리  다섯마당>중에서

▷‘오호 애재라. 오호 통재라. 그 당시의 가해자는 이민족이 아니었으며 우리 동포의 손에 의한 것이고, 그 수난 장소가 고국산천 정든 고향이었으며, 총이나 칼 무기는 말할 것도 없이 곤봉이나 젓가락 가지지도 않은 적수공권의 양같이 순한 인사들이었고, 수난 중에 한사람이라도 반항하는 이나 거역하는 이가 없었고….’ <망치일보 칼럼>강동춘

▷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경상도 문경 땅에서 적수공권으로 기어 올라와서 그나마 성내까진 들어가지 못하고 송파장 윗머리에서 팔자에 없는 거사 노릇으로 연명은 하옵지만, 가게 하나 장만할 때까진 도리없이 이짓을 해야 합지요.≪김주영,객주≫

■ 전거가감 前車可鑑
[앞 전/수레 거/가할 가/거울 감]

☞앞수레는 뒷수레의 거울이 될 수 있다. 앞수레가 엎어진 것을 보고 뒷수레가 경계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 전인(前人)의 실패를 보고 후인(後人)은 이를 경계로 삼아야 한다.  ≒ 전거복 후거계(前車覆 後車誡), 복거지계覆車之戒, 전복 후계(前覆後戒),
 
[출전]《한서()》 〈가의전()〉
[내용1] 속담에 말하기를, 관리로서 직무를 익히지 못할 때에는 마음을 다하여 지난 예를 조사해 보라는 말이 있다. 또 앞의 수레가 엎어지면 뒤의 수레에 경계가 된다고 하였다.

 하, 은, 주의 삼대는 오래도록 번영하였는데, 그 이유는 지난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번영을 배워서 얻지 못하는 사람은 성인의 지혜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다

 전한(前漢)의 문제(文帝) 때 뤄양[洛陽]에 가의라는 사람이 있었다. 대단한 수재로 18세 때부터 그 재능이 알려졌다. 20세에 박사가 되었고, 다음 해에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었다. 가의는 문제를 도와 자주 정사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위의 글은 그런 글 가운데 하나이다. 위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또 진(秦)나라는 몹시 빨리 멸망하였다. 어떻게 하여 멸망하였는지는 그 수레바퀴의 자국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그 바퀴 자국을 피하지 않는다면, 뒤에서 오는 수레는 곧 엎어질 것이다. 무릇, 나라의 존망과 다스림과 혼란의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네이버백과>

[내용2]한나라 문제(文帝) 때에 가의(賈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총명하고 문학적 재능이 탁월한 작가로서 약관의 나이에 문제의 부름을 받아 박사가 되었다. 

그 당시는 안으로는 제왕(諸王)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았고, 밖으로는 흉노의 침입이 잦았다. 이 일로 항상 고심하던 문제는 가의에게 좋은 방책이 없는지 물었고, 가의는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렸다. 

“진(秦)나라의 환관 조고가 진시황제의 둘째 아들 호해(胡亥)에게 죄인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쳤는데, 호해는 죄인을 죽이거나 그의 가족들을 전부 멸하는 것만을 배웠습니다. 

후에 진시황제가 사구(沙丘)에서 죽고, 호해가 황제가 되자, 그는 다음날부터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보던 어떤 이가 충심으로 간언하였지만 자기를 비방한다고 여겼고, 나라를 다스리는 계책을 올렸지만 간사한 말이라고 여기고 여전히 사람을 풀을 베듯이 죽였습니다. 

그의 행동이 이러하다고 하여 본성이 흉악하고 잔인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가르친 사람이 그를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속담에‘누가 관리가 되어야 마땅하지는 모르지만, 그가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고, 또한 앞의 수레가 뒤집힌 것은 뒷수레의 거울이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夏), 은(殷), 주(周)가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망국의 전례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앞의 수레를 보고 그 안에서 국가 존망의 대계와 치안책을 찾아야만 합니다.” 

[원문] 也..  

■ 전거후공 前倨後恭
[앞 전/ 오만할 거/ 뒤 후/ 공손할 공]

☞이전에는 거만하다가 나중에는 공손하다, 상대편의 입지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상반됨

[출전]『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
[내용] 소진(蘇秦)은 뤄양[洛陽] 사람이다. 동쪽으로 제(齊)나라에 가서 스승을 찾아, 귀곡자(鬼谷子)한테서 학문을 배웠다. 유학하는 수 년 동안 많은 곤궁을 겪고 돌아왔다.

 이때 형제, 형수, 누이, 아내, 첩조차 모두 그를 은근히 비웃으며 말했다. “주(周)나라의 풍속은 농업을 주로 하고, 상공업에 진력하여 2할의 이익을 올리기에 힘쓴다.

 그런데 당신은 본업을 버리고 혀를 놀리는 일에만 몰두했으니 곤궁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소진이 이 말을 듣고 부끄럽고 한심스런 생각이 들어 방문을 닫고 틀어박혔다.

그러던 중 주서(周書)의 음부(陰符)를 손에 넣어 탐독하였다. 1년이 지나니 남의 마음 속을 알아내는 술법을 생각해내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는 오늘의 군주를 설득할 수 있다.” 소진은 연(燕)과 조(趙)로 가서 제(齊), 초(楚), 위(魏), 한(韓)의 여섯 나라가 연합하여 진에 대항하는 ‘합종책(合從策)’을 건의했다.

 그래서 여섯 나라는 합종의 맹약을 하고 힘을 합치게 되었다. 소진은 합종의 맹약의 장(長)이 되어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했다. 북쪽의 조왕에게 경위를 보고하기 위하여 가는 도중 낙양을 통과했다. 소진을 따르는 일행의 행렬이 임금에 비길 만하게 성대했다.

 주나라의 현왕(顯王)은 이 소식을 듣고 도로를 청소하고 사자를 교외에까지 보내 위로하게 했다. 소진의 형제, 처, 형수는 곁눈으로 볼 뿐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소진이 웃으며 형수에게 말했다.

 “전에는 그렇게 거만하더니 지금은 이렇게도 공손하니 웬일입니까?” 형수는 넙죽 엎드려서 얼굴을 땅에 대고 사과하며 말했다. “계자의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기 때문입니다.” 소진은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한 사람의 동일한 몸인데 부귀하면 일가친척도 두려워하며 공경하고, 빈천하면 가볍게 보고 업신여기니 하물며 세상 사람들이야 더할 것이 없겠구나. 또 만약 내가 낙양성 부근의 비옥한 옥토 2백 묘만 가졌더라도 어찌 여섯 나라 재상의 인수(印綏)를 찾았겠는가.” 그리고 나서 1천금을 뿌려 일족과 벗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네이버백과>

■ 전광석화 電光石火
[번개 전/ 빛 광/ 돌 석/ 불 화]

☞번갯불이나 부싯돌의 불이 번쩍거리는 것과 같이 매우 짧은 시간이나 매우 재빠른 움직임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예문]
▷ 편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정보 기기는 우리의 경험 세계를 시간의 제약, 공간의 제약, 사회의 제약에서도 벗어나게 해 준다. 미국에 가 있는 아들에게 거는 장거리전화는 태평양이라는 공간을 초월하게 해 주고, 그것은 배 또는 비행기를 타고 건너가야 할 시간을 초월하게 해 준다. 컴퓨터는, 수 년 걸릴 계산을 그야말로 전광 석화(電光石火)의 속도로 해치운다.
--- 정범모 <정보사회와 인간생활>(국어 하) 

▷ 그의 뇌리에 한 가닥 불길한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 그는 전광석화처럼 재빠르게 일을 처리했다.
▷ 그 격투는 전광석화로 짧게 벌어져 대번에 눈두덩이 붓거나 입술이 터지거나 하며….≪이호철, 문≫.

■ 전전긍긍 戰戰兢兢
[싸울 전/조심할 긍]

☞두려워서 매우 조심함.
[준] 전긍(戰兢) [동] 전전공공(戰戰恐恐) [유] 소심익익 (小心翼翼)

[출전]시경(詩經)』, 小雅小旻篇『논어(論語)』, 태백편(太伯篇)
[내용] 감히 맨손으로 범을 잡지 못하고 [不敢暴虎(불감포호)] 감히 걸어서 강을 건너지 못한다 [不敢憑河(불감빙하)] 사람들은 그 하나는 알고 있지만 [人知其一(인지기일)] 그 밖의 것은 전혀 알지 못하네 [莫知其他(막지기타)] 두려워서 벌벌 떨며 조심하기를 [戰戰兢兢(전전긍긍)] 마치 깊은 연못에 임하듯 하고 [如臨深淵(여림심연)] 살얼음을 밟고 가듯 하네 [如履薄氷(여리박빙)]

 또《논어(論語)》'태백편(太伯篇)'에 보면, 증자(曾子)가 병이 중(重)해지자 제자들 을 불러서 말했다. "내 발을 펴고, 내 손을 펴라.《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매우 두려운 듯이 조심하고, 깊은 연못에 임한 것 같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 하 라.'고 했다. 지금 이후로는 나는 그것을 면(免)함을 알겠구나, 제자들아."

[원문]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예문]
▷ 몇몇 별정통신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제기된 자동호변환장치(ACR) 무단사용 파문이 전 별정통신사업자로 확대되자 관련업체들이 전전긍긍. 별정통신사업자들은 지난달 말 한국통신이 4개 별정통신사업자들에 대해 ACR을 사용, 일반인들의 서비스 선택권을 제한했다고 통신위원회에 신고한데 이어...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홈페이지>

▷ 다시 한 번 난리를 겪게 될까 두려운 주성 사람들은 집 안팎을 들락거리며 곡식과 세간을 감추느라고 전전긍긍이었다.≪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이틀이면 군산에서 전주성까지 당도할 수 있는데도 도중에 기습이라도 받을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나흘 만에야 전주성에 입성했다.≪유현종, 들불≫  

▷ 1990년대 초 북한은 남한에 흡수통일 될까봐 전전긍긍하면서 해결책으로 북-미 수교를 주장했다. 경제력 차이 때문에 흡수통일 된다면 이를 막아줄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고 역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2006 프레시안>

그렇게 하여 임용한 사람마다 모두 임무를 맡기기에 적당하였고, 임용당한 사람들도 각자가 지닌 재능을 펼쳤었다. 나라는 복(福)을 받았고 다스림이 날로 융성하였음은 이러한 도(道)를 써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천하를 다스리는 큰 나라로서도 혹시라도 그러한 이재를 놓칠세라 오히려 염려하여, 근심은 많은 듯 앉거나 누워서도 생각하고 밥상머리에 앉아서도 탄식했었다.  

■ 전전반측 輾轉反側
[돌아누울 전/구를 전/뒤척일 반/옆 측]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동] 輾轉不寐(전전불매).寤寐不忘(오매불망)

[출전]시경(詩經) 국풍(國風)편-- 관관저구(關關雎鳩)
[내용] 이 시는 성인으로 이름높은 周 文王과 그의 아내 태사를 높이 칭송한 것이라 한다. 내용은 강기슭에서 울고 있는 저구(雎鳩)라는 물새를 아름다운 숙녀에 비유하여 노래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參差荇菜를 左右流之로다.    참치행채 좌우유지
    窈窕淑女를 寤寐求之로다.    요조숙녀 오매구지
    求之不得하니 寤寐思服이라. 구지부득 오매불망
    悠哉悠哉라 輾轉反側하도다. 유재유재 전전반츧

    들쭉날쭉한 마름 풀을 이리저리 헤치면서
    요조숙녀를 자나깨나 찾는도다.
    이를 구하여 얻을 수 없어 늘 마음에 그리고 생각한 지. 
    오래고 오랜지라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도다

즉 강가에서 마름을 따고 있는 아름다운 처녀, 물새는 그 주변에서 또한 맑은 소리로 울고 있고 그런 정황 가운데서 요조숙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예문]
▷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루고 전전반측하다

▷ 연천 장군의 후보가 걱정되고 칠중성의 백성의 수난이 자기가 몸소 당하는 것 같아서 한밤을 전전반측하다가 동창이 밝으므로 일찍이 일어났다.≪홍효민, 신라 통일≫

▷ 사상 최초의 본토 피침(被侵)이라는 전대미문의 9·11사태 이후 시도했던 대(對)테러전쟁을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마감하고 사담 후세인을 다음 희생양으로 삼아 본때를 보여주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중에, 느닷없이 김정일이라는 ‘말썽꾼’이 “나도 만만치 않아”하면서 고개를 내밀고 있으니 말이다.

 놔두자니 자존심 상하고, 두들기자니 이곳저곳에 무작정 좌판을 벌일 수도 없고. 좌고우면(左顧右眄)이요 전전반측(輾轉反側)이다. <국민일보>

▷ 이런 주민들이 또다시 황망하게 집을 떠나 대피를 하다니. 간밤의 비소식이 야속하고 걱정스러워 전전반측했다. 하추리 주민들은 어떨까. 안녕하실까. 과학문명이 발달한 21세기 대명천지에도 삶의 터전을 찾아 이리저리 부유하는 유민들이 되어버린 그들이 애처롭다.

■ 전차복철 前車覆轍
[앞 전/수레 차, 거/엎어질 복/바퀴자국 철]

☞앞 수레가 엎어진 바퀴 자국이란 뜻. 곧 앞사람의 실패. 실패의 전례,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주의하라는 교훈.     
[동]전복 후계(前覆後戒), 후차지계, 복거지계(覆車之戒). 전거가감 前車可鑑
[유]답복철(踏覆轍), 답복차지철(踏覆車之轍), 전철(前轍).  [준]복철(覆轍).

[출전]『漢書 賈誼專』 / 『說苑 善說』 / 『後漢書』 竇武專(두무전)
[내용1]전한 5대 황제인 문제(文帝)때 가의(賈誼:B.C. 168∼210)라는 명신이 있었다.  그는 문제가 여러 제도를 개혁하고 어진 정치를 베풀어 역사에 인군(仁君)으로 이름을 남기는 데 크게 기여한 공신인데, 당시 그가 상주한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속담에 '앞 수레의 엎어진 바퀴 자국[前車覆轍]'은 뒷수레를 위한 교훈[後車之戒]이란 말이 있사옵니다. 전 왕조인 진(秦)나라가 일찍 멸망한 까닭은 잘 알려진 일이 온데, 만약 진나라가 범한 과오를 피하지 않는다면 그 전철(前轍) 을 밟게 될 뿐이옵니다. 국가 존망, 치란(治亂)의 열쇠가 실로 여기에 있사오니 통촉하시오소서."  문제는 이후 국정 쇄신(國政刷新)에 힘써 마침내 태평 성대를 이룩했다고 한다. 
 

[내용2]전국 시대, 위(魏)나라 문후(文侯)가 어느 날 중신들을 불러 주연을 베풀었다. 취흥(醉興)이 도도한 문후가 말했다.  "술맛을 보지 않고 그냥 마시는 사람에게는 벌주를 한 잔 안기는 것이 어떻겠소?"  모두들 찬동했다. 그런데 문후가 맨 먼저 그 규약을 어겼다. 

그러자 주연을 주관하는 관리인 공손불인(公孫不仁)이 술을 가득 채운 큰잔을 문후에게 바쳤다.  문후가 계속 그 잔을 받지 않자 공손불인은 이렇게 말했다. 

"전차 복철은 후차지계'란 속담이 있사온데, 이는 전례를 거울삼아 주의하라는 교훈이옵니다. 지금 전하께서 규약을 만들어 놓으시고 그 규약을 지키지 않는 전례를 남기신다면 누가 그 규약을 지키려 하겠나이까? 하오니, 이 잔을 받으시오소서." 

문후는 곧 수긍하고 그 잔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그 후 공손불인을 중용했다고 한다. 

■ 전호후랑 前虎後狼
[앞 전/범 호/뒤 후/이리 랑]

☞앞문의 호랑이를 막으니 뒷문의 이리가 나옴. 하나의 재난을 피하자 또다른 재난이 나타남.  

[출전]『조설항평사(趙雪航評史)』
[내용]장제의 황후였던 두태후(竇太后)와 그녀의 오빠 두현(竇玄)이 정권을 잡게 되자, 나이 어린 10살의 화제는 명목상의 임금에 불과하게 되었다.  얼마후 권력의 맛을 알게 된 두현은 한 걸음 나아가 화제를 시해하고 자신이 직접 제위에 오르기 위해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화제에 의해 발각되었고, 화제는 당시 실력을 갖고 있던 환관 정중을 시켜 두씨 일족을 제거 하도록 했다.  뜻을 이루지 못한 두현은 체포 직전에 자살을 한다. 두씨 일족의 횡포가 사라졌다고 해서 황제의 지위가 공고해진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두씨 일족을 대신하여 환관 정중(鄭衆)이 권력을 쥐고 정사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후한은 결국 자멸하게 된다.  명(明)나라 때 조설항(趙雪航)이라는 자가 이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두씨가 제거되자 환관의 세력이 일어나게 되었다. 앞문의 호랑이를 막으니 뒷문의 이리가 나온다는 속담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인 것 같다."[前門据虎 後門進狼]

[예문]
▷ "앞문의 호랑이를 막으니, 뒷문의 승냥이가 나온다(前門据虎後門進狼)"고 적고 있다. 여기서 따온 전호후랑(前虎後狼)은 '겉으론 공명정대한 체하나 뒷구멍으로 온갖 나쁜 짓을 다 하는 사람'을 일컫게 됐다. <2006 중앙일보>

■ 전화위복 轉禍爲福
[구를 전/재화 화/할,위할 위/복 복]

☞화가 바뀌어 복이 되다.

[원]轉禍爲福 因敗爲功 [동] 인화위복(因禍爲福).[유] 塞翁之馬(새옹지마) ,흑우생백독·黑牛生白犢

[출전]戰國策』 燕策
[내용] 전국시대 합종책(合從策)으로 6국, 곧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의 재상을 겸임했던 종횡가(縱橫家:모사) 소진(蘇秦)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옛날에 일을 잘 처리했던 사람은  화를 바꾸어 복을 만들었고  실패한 것을 바꾸어 공(功)으로 만들었다 "(轉禍爲福 因敗爲功)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예문]
▷ WTO 시대에 예상되는 기업간, 국가간의 무한 경쟁도 우리 경제가 능동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이는 시장 문턱을 낮춘 것이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이기 ?문이다. 농산물만 하더라도 우리 시장이 개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시장도 개방된다. 연간 600억 달러에 달하는 일본의 농산물 수입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수가 있다면, 우리 농업의 향후 전망도 밝아질 수 있는 것이다.

무구정광 대다라니경▷ 1996년 10월 13일 석가탑의 보수 공사를 위해 복개석 하나를 들어올리다가 받침목으로 쓰던 나무기둥이 부러지면서 그 복개석을 떨어뜨려 한쪽이 깨지는 큰 사고가 발생했다.

 실로 엄청난 사고였다. 그러나 다음 날 석가탑 파손 현활을 조사하기 위해 그 곳에 간 두 명의 교수에 의해 사리함 속에 있는「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으니 우연치고는 대단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세로 6.5 cm, 가로 약 52cm 가량 되는 인쇄 지면을 14개의 폭으로 이어서 만든 이 다라니경의 출현으로, 우리 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인쇄술의 시작에 대한 새로운 고증이 시작되었다. 한국의 목판 인쇄술 발달이 세계에서 가장 빨랐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인 것이다.

▷ 수해를 겪으면서 인제군민의 단합된 힘과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며 “사상 최대의 수해로 인한 위기상황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인제군이 한단계 더 발전하도록 연구하고 발로 뛰도록 하겠다”고 했다.<2006 강원일보>

■ 절각 折角
[꺾을 절/뿔 각]

☞뿔을 부러뜨린다는 말로, 기세를 누르거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듦

[출전]『한서(漢書)』 주운전(朱雲傳)
[내용]한(漢)나라 때는 유학이 크게 흥성하였던 시기로 그 어느 시대보다 학자들의 학문적 토론이 활발했다.  그 당시는 역(易)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그 파(波)만 해도 여러 갈래 였는데, 특히 양구하(梁丘賀)라는 학자가 세운 양구역(梁丘易)이 가장 유명했다. 

이 학문을 좋아했던 원제(元帝)는 이 학설이 다른 학설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로 뛰어난 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양구역의 대가로 언변이 좋은 오록충종(五鹿充宗)에게 다른 학파와 논쟁을 하도록 명령했다.  다른 학파들은 이 논쟁에 이길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나서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주운(朱雲)이라는 자가 오록충종과 대결하기로 했다. 

주운은 본래 학문보다는 협객들과 교제하기를 좋아했던 인물인데, 40이 넘어서야 학문에 뜻을 두어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오록충종과 주운의 논쟁은 원제와 많은 학자들이 보는 앞에서 진행되었다. 이 논쟁은 주운의 승리로 돌아갔고, 그 결과 박사(博士)로 임명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오록충종의 이름에 사슴 록(鹿)자가 들어 있으므로 이 논쟁을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칭찬했다.  “오록이 드세고 뿔이 길지만, 주운이 그 뿔을 부러뜨렸구나.(折角)” 

■ 절대가인 絶代佳人
[빼어날 절/세상 대/아름다울 가/사람 인]

☞이 세상에 비할 데 없는 미인.
[동] 絶世佳人/絶世美人/絶代美人 /傾國之色(경국지색)/ 羞花閉月(수화폐월)./ 國香(국향)./ 國色(국색). /花容月態.(화용월태)/ 雪膚花容(설부화용)/.丹脣皓齒(단순호치)./明眸皓齒(명모호치)**눈동자 모,흴 호/침어낙안 沈魚落雁

▷ 절세가인이었던 어머니 김씨 부인을 찍어 낸 것처럼 닮은 매아는 오이씨 같은 버선발마저 앙증스럽고 예뻤다.≪한무숙, 만남≫ 절세가인

▷ 절세가인은 아니지만 어딘지 투박해 뵈는, 미모에 가까운 얼굴이다.≪박경리, 토지≫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 모양이 될 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여"<성주풀이>

■ 절발역주 截髮易酒
[끊을 절/터럭 발/바꿀 역/술 주]

☞머리를 잘라서 술을 바꾼다는 뜻으로 자식에 대한 지극한 모정의 비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손님 접대에 지극한 것을 일컫는 말
[출전]晉書 도간전
[내용] 동진때 도간이라는 가난한 선비집에 친구가 찾아 왔으나 차려낼 음식이 아무것도 없었다.그래서 도간의 어마니는 자신의 머리를 판 돈으로 술을 사서 아들친구를 대접했다는 고사.

■ 절영지회 絶纓之會
[끊을 절/갓끈 영/어조사 지/모일 회]

☞갓의 끈을 끊고 노는 잔치라는 뜻으로, 남에게 너그러운 덕(德)을 베푸는 것을 비유함.
[동]절영 絶纓
[출전]『說苑』
[내용] 초장왕(楚莊王)이 밤에 신하들과 연회를 베풀며 놀다가 촛불이 꺼졌는데, 어떤 신하가 그 틈을 타 장공이 총애하는 미인을 끌어안고 희롱하였다.

 미인은 그 신하의 갓끈을 끊은 다음 왕에게 촛불을 밝혀 그 사람을 색출해 벌할 것을 청했다. 그러나 장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모든 신하들에게 갓끈을 끊게 한 후 불을 밝히라고 명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도록 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지 3년 후 초나라는 진(晉)나라와 싸우게 되었는데 죽을 힘을 다해 싸운 장수가 있어 승리했는데, 물어보니 바로 3년 전 왕이 구해 준 그 사람이었다.

[원문]楚莊王賜群臣酒 日暮酒감 燈燭滅 有人引美人之衣 美人援絶其冠纓 告王曰 今者燭滅 有引妾衣者 妾援得其冠纓 持之 趣火來上 視絶纓者 王曰 賜人酒使醉失禮 奈何欲顯婦人之節而辱士乎 乃命左右曰 今日與寡人飮 不絶冠纓者 不歡 君臣百有餘人 皆絶去其冠纓而上火 卒盡歡而罷 後三年 晉與楚戰 有一臣常在前 五合五獲首 却敵 卒得勝之 莊王怪而問曰……對曰 臣當死 往者醉失禮 王隱忍不暴而誅也 臣終不敢以陰蔽之德 而不顯報王也…… 

[예문]중국 초나라 장왕 시절 연회를 벌이던 중 불이 꺼진 어둠을 틈타 왕의 애첩에게 장난을 친 신하 이야기인 절영 지회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이란 누구나 남이 자신을 알아볼 수 없는 익명 상태가 되면 본심과 달리 엉뚱한 행동을 하기 마련인 가.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자신을 속이고 자아를 부정하는 극히 비 도덕적 행태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2002 문화일보-사이버 탈법선거의 해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