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문욕례 繁文縟禮 [번거로울 번/글월 문/번거오울 욕/예도 례]

☞문도 번거롭고 예도 번거롭다. 규칙, 예절, 절차 따위가 번거롭고 까다로움. 번거로운 관청절차를 가리키는 말. 번문욕례는 일반적으로 행정사무를 지연시키고 행정비용을 증대시키며 관료부패의 원인을 제공하는 등의 역기능을 초래한다 ≒ 繁縟, 繁忙

[예문]
▷ 민중유교는 통과의례의 이와 같이 유익한 기능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허례허식적인 기왕의 번문욕례를 삭제한 다음 고상하면서도 간결한 현대가정의례를 새롭게 연구하는 바이다. <서정기 著 『민중유교사상』중에서> 

▷ 그러나 사무직원들은 성화에 아랑곳없이 신중한 번문욕례를 거친 다음에야 문서를 건네주면서….≪신상웅, 심야의 정담≫

▷ 상례는 어디까지나 돌아가신 분을 위한 예의 절차이므로 지키기가 까다롭고, 지나친 허례 허식은 오히려 고인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상사(喪事)에 번문욕례(繁文縟禮)란 있을 수 없다. 오직 정성과 고인을 위하는 마음가짐 하나로 상사를 치러야 할 것이다. 

벌제위명 伐齊爲名 [칠 벌/나라 제/할 위/이름 명]

☞제나라를 공격하나 이름만 있다. 무엇을 하는 체하나 실상인즉 딴짓을 함

[내용]중국의 전국 시대에 연나라 장수 악의(樂毅)가 제나라를 칠 때에 제나라의 장수 전단(田單)이 악의가 제나라를 정복한 뒤에 제나라의 왕이 되려고 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리자, 연왕이 의심하여 악의를 불러들이었다는 데서 유래.

[예문]
▷ 많이 위문 옵네 하고 몰려들어서는 잔치 집 모양으로 떠들썩하니 안에서도 거기 따라서 더운 점심을 짓네 어쩌네 하고 한층 더 부산한 것은 고사하고라도 사랑에들만 몰려도 좋을 것을 무슨 종회나 가족회의 하듯이 몰려서 뒤집어 엎는데는 머리가 빠질 일이다. 그러나 당자인 병인이 그렇게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니 어찌 하는 수도 없다. 그래야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벌제위명으로 큰 일이나 보아주는 듯시피 입으로만 떠들어 대고 수군거렸지 누구하나 똑똑히 다잡아서 약 한 첩 조리 있게 쓰는 것도 아니다.[염상섭(廉想涉), 『三代』]

모두 본데없이 자라나서 불학무식하고 아무것도 모르지요. 그래서 청년회가 있대야 그저 벌제위명이지요.≪이기영, 고향≫

▷ 말씀하시기를 [연원을 많이 다는 것이 제도의 한 방법은 되나, 벌제위명으로 입교만 시키는 것은 참 제도가 아니요, 신심이 확실히 설 때까지 자주 보살펴 주어야 참 제도를 받게 되나니, 이왕에 입교의 연원이 되었거든 제도를 받도록까지 꾸준히 공을 들여 참다운 연원이 되어야 할 것이니라.<원불교 교리>

■ 법삼장 法三章 [법 법/석 삼/글귀 장]

세장의 법조목, 진의 가혹한 법을 대신한 가장 간단명료한 법을 뜻함
[동]約法三章

[출전]『사기(史記)』고조본기(高祖本紀)

[내용]한(漢)나라 원년 10월에 유방(劉邦)은 진(秦)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패왕(覇王)이 되었다.유방은 진나라의 수도 함양(함양)에 입성하여 궁궐로 들어갔다. 그 궁궐은 호화스럽기 그지없었으며, 재물은 산같이 쌓여 있고, 후궁들의 수도 천 명도 넘었다. 유방은 그곳에 계속 머물고 싶었다. 유방의 이런 마음을 눈치 챈  장수 번쾌(樊쾌)가 말했다. “밖에서 야영을 하십시오. 이러한 재물과 후궁은 모두  진나라가 멸망하게 된 원인입니다. 이곳에서 머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유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자, 이번에는 장량(張良)이 간언했다.  지금 왕께서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진나라가 무도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에 들어와서 진나라와 똑같은 즐거움을 즐긴다면 진나라의 전철을 밟는 것입니다.  충고하는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동에 이롭고,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좋다고 합니다.  번쾌의 말을 들으십시오.”

 유방은 그래서 패상(覇上)으로 돌아가 야영을 했다.  그리고 각 고을의 대표와 호걸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오랫동안  진나라의 가혹한 법에 시달렸습니다. 진나라의 법을 비방하는 사람은 온 집안 식구가 죽음을 당했고, 그것을 화제로 삼은 자도 시체가 되었습니다. 나는 먼저 관문(關門)에 들어온 사람이 왕이 된다고 약속하였으므로  관중(關中)의 왕이 될 것입니다. 나는 각 고을의 대표와 호걸들에게 약속하겠습니다.  법은 세가지만 둘 뿐입니다(法三章耳).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자와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그 정도에 따라 벌하겠습니다. 그 밖의 진나라 법은 모두 폐기 할 것입니다. 여러 관리와 백성들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생활을 하십시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여러분들을 위해 해악을 제거하려는 것이지 괴롭히려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패상으로 돌아가서 진을 치고 있는 것은 제후가 이르기를 기다려서 약속을 정하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해설]이렇듯 유방은 사람됨이 어질어 백성들을 사랑하였던 것이다. 진나라 백성들은 모두들 기뻐하며 유방이 왕이 되기를 바랐음은 말할 것도 없다.약법삼장의 해석에는 이설(異說)이 있다. 즉, 약(約)은 절약 ·생략을 뜻하며, 진나라의 법을 폐지하고 다만 3장으로 생략하였다고 하는 설도 있다. 법삼장은 간단하고 요체를 파악한 것이기는 하였으나 그것만으로는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 부족하였기 때문에 얼마되지 않아서 재상 소하(蕭何)가 구장률(九章律)을 제정하였다고 한다.

[원문]父老苦秦苛法久矣, 誹謗者族, 偶語者棄市. 吾與諸侯約,先入關者王之, 吾當王關中.與父老約, 法三章耳 : 殺人者死, 傷人及盜抵罪. 餘悉除去秦法. 諸吏人皆案堵如故. 凡吾所以來, 爲父老除害, 非有所侵暴, 無恐! 且吾所以還軍 上, 待諸侯至而定約束耳.

■ 벽창우 碧昌牛 [푸를 벽/성할 창/소 우]

☞평안북도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지방의 크고 억센 소. 미련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비유
[동]벽창호

[예문]
벽창호같은 소리 말라 / 낸들 벽창호가 아닌 담에야 그만 생각이 없겠나?≪심훈, 상록수≫ / 내 것 내가 갖는데 누가 뭐랄 것인가 하는 벽창호 같은 고집으로 일관했고….≪박완서, 미망≫

엉터리.벽창호같은 여당만 의식하지 말고 민심을 생각해 민심이 우리당으로부터 떠나기 전에 등원하자--한나라당 의원총회 중에서.

[참고1]매우 우둔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고집불통’, ‘고집쟁이’, ‘고집불통이’, ‘벽창호’, ‘목곧이’ 등으로 부른다. ‘고집(固執)’을 포함하는 단어들이 고집이 센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나, ‘벽창호’나 ‘목곧이’가 그러한 의미로 쓰이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벽창호’는 ‘벽창우’가 변한 말이다. ‘벽창우’는 ‘碧昌牛’인데, ‘碧昌’은 평안북도의 ‘碧潼(벽동)’과 ‘昌城(창성)’이라는 지명에서 한 자씩을 따와 만든 말이다. 따라서 ‘벽창우’는 “벽동과 창성에서 나는 소”가 된다. 이 두 지역에서 나는 소가 대단히 크고 억세어서 이러한 명칭이 부여된 것이라고 한다.

 단어 구조로 보면 ‘벽창우’는 지명(地名)이 선행하고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이 후행하여 그 대상의 이름이 된 예이다. ‘안주(安州)’에서 나는 ‘항라(亢羅)’라는 뜻의 ‘안주항라’가 줄어든 ‘안항라’, ‘명천(明川)’에서 나는 ‘태(太)’라는 뜻의 ‘명천태’가 줄어든 ‘명태’, ‘통영(統營)’에서 나는 ‘갓’이라는 뜻의 ‘통영갓’ 등도 지명과 그 지역 특산물을 복합하여 만든 물건 이름이다.그런데 같은 단어 구조라 하더라도 ‘벽창우’는 ‘안항라’, ‘명태’, ‘통영갓’ 등과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안항라’, ‘명태’, ‘통영갓’ 등이 그 특산물의 이름에 충실한 반면, ‘벽창우’는 그러한 기능도 가지면서 비유적으로 확대되어 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확대되어 쓰일 때는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띤다. ‘벽동’과 ‘창성’에서 나는 소가 매우 억세기 때문에 그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이러한 비유적 의미가 나온 것이다.그런데 ‘벽창우’가 비유적 의미로 쓰일 때는 ‘벽창우’보다는 ‘벽창호’로 더 많이 쓰인다. “벽창호 같다”라는 관용구의 ‘벽창호’가 바로 그것이다. ‘벽창우’가 ‘벽창호’로 변하여 그 비유적 의미 기능을 보다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벽창우’가 ‘벽창호’로 바뀐 데에는 아마 이것을 “벽에 창문 모양을 내고 벽을 친 것”이라는 의미의 ‘벽창호(壁窓戶)’와 혼동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빈틈없이 꽉 막힌 ‘벽(壁)’과 그러한 속성을 지닌 사람과의 연상이 ‘벽창우’를 ‘벽창호’로 바꾸게 하였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한편, ‘목곧이’는 ‘목 곧-’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목 곧-’은 신체 명사 ‘목’과 형용사 ‘곧-’이 결합한 구로 “억지가 세어 남에게 호락호락하게 굽히지 아니하다”의 의미이다. ‘목곧이’는 바로 그러한 속성을 지니는 사람을 뜻한다. 항상 ‘목’을 세워 ‘목’이 곧은 사람은 십중팔구 자기밖에 모르는 고집쟁이일 것이다--<충북대--조항범>

[참고2]평안 북도의 벽동과 창성 지방의 소는 유난히 크고 힘이 셌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지방의 소를 벽동과 창성의 앞자를 따서 벽창우라고 불렀다. 즉 병동과 창성 지방의 소라는 듯으로 불러 오던 것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차차 발음이 '벽창호'로 변했으나 이것은 마땅히 본디말이 벽창우로 불러야 한다. 아울러 말 뜻도 성질이 무뚝뚝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말이 생기게 된 것은 벽동과 창성 지방의 소가 성질이 억세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는 지역마다 소를 부르는 말이 달랐기 때문이다. 소를 끌면서 '이랴이랴', '워워'하는 말들이 지방에 따라 조금씩 그 억양과 어투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지방 사람이 소를 끌면 소가 제대로 그 뜻을 알아 듣지 못해서 버팅기고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남쪽 지방에 사는 사람이 와서 벽동과 창성지방의 소를 끌고 가려 하면 당연히 고생스럽고 힘들었던 것이다.

 [타인글이나 자료 인용] 우리말 유래 사전

■ 변화무쌍 變化無雙 [변할 변/화할 화/없을 무/쌍 쌍]

☞세상이 변하여 가는 것이 더할 수 없이 많고 심하다.
[예문]흥미로운 게임이었다.유럽과 아시아의 최강 팀들이 만났고 한국의 전력을 테스트할 기회였기 때문이다.전반전에는 프랑스 미드필더진의 변화무쌍한 움직임에 당황하면서 압도당했다<히딩크 감독>

■ 병가상사 兵家常事 [군사 병/집 가/항상 상/일 사]

☞병가에는 항상 있는 일. 흔히 있는 일. 또는 실패는 흔히 있는 일이니 낙심할 것 없다..
[속담]한번 실수는 병가상사
송파산대놀이[예문]
▷ 아 하하하!   옳지 알았다. 너희들이 오입쟁이 중이 아니면 땡땡이 중이로구나. 그렇다면 너희들 내 말을 명심해서 잘 들어라.  한번 실수는 병가상사라 하였으니 이제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염불공부를 시작하는데 만약 틀리는 놈이 있으면 이 곤장으로 치도곤을  놓을테다. 알겠느냐?-<송파산대놀이 >중에서

▷ 옷 로비 사건 위증 혐의 재판 결과와 관련해서도 이 사건에 전직(당시에는 현직) 검찰총장의 부인이 관련돼 있고,그녀에 대해 검찰의 입장과는 다른 판결이 나와 검찰의 입지가 궁색해진 건 사실이나 검찰의 주장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는 병가상사(兵家常事)라고 할 수도 있다.<국민일보>

■ 병문졸속 兵聞拙速 [군사 병/들을 문/졸할 졸/빠를 속] 

☞용병(用兵)할 때는 졸렬하여도 빠른 것이 좋다

[출전]『손자(孫子)』
[내용] 지금 전쟁은 전쟁용 수레 천 대, 수송차 천 대, 병사 십만 명으로 천 리나 떨어진 먼 곳까지 식량을 수송하려 하고 있다.  이처럼 큰 규모의 전쟁을 하려면 조정 안팎의 경비, 외교 사절의 접대, 군수 물자, 무기 보충 등 하루 천금이나 되는 막대한 비용이 소용된다.  이렇게 하여 싸움에서 이길지라도 장기간의 싸움은 군사들을 피폐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기 또한 저하시킨다.  이와 같이 된 이후에 당황하여 적을 공격하면 실패할 뿐이다. 그리고 병사들을 계속하여 전쟁터에 있게 하면 국가 재정은 위기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군사들이 피폐해지고 사기가 떨어지고 공격에 실패하여 국력을 소모하면, 그 틈을 타고 다른 나라가 침략해 온다. 이렇게 된 후에는 아무리 지혜로운 자가 나와도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

[해설]손자(孫子)는 싸움에 있어서는 지구전보다는 속전속결을 주장한 병법가이다.  손자가 신속한 싸움을 주장하게 된 이유는 지구전을 벌일 때의 불리한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자는 단기간에 나라의 존망을 걸고 병사들의 힘을 규합하여 싸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싸움이 된다고 보았다. 

■ 보우지탄 羽之嘆 [능에 보/깃 우/어조사 지/탄식할 탄 ] 

☞너새 깃의 탄식. 신하나 백성이 전역에 종사하여 부모님을 보살피지 못하는 것을 탄식함

[출전]『시경(詩經) 』보우(鴇羽)시 [동]보우지차(鴇羽之嗟)
[내용]

푸드득 너새 깃 날리며 상수리나무 떨기에 내려앉네 
나라 일로 쉴 새 없어 차기장 메기장 못 심었으니 
부모님은 무얼 믿고 사시나 
아득한 푸른 하늘이여 언제면 한 곳에 안착할 것인가! 
푸드득 너새 날개 치며 대추나무 떨기에 내려앉네 
나라 일로 쉴 새 없어 메기장 차기장 못 심었으니 
부모님은 무엇 잡숫고 사시나? 
아득한 푸른 하늘이여 언제면 끝장이 날 건가! 
푸드득 너새 줄지어 날아 뽕나무 떨기에 내려앉네 
나라 일로 쉴 새 없어 벼 수수 못 심었으니 
부모님은 무얼 잡숫고 지내시나? 
아득한 푸른 하늘이여 언제면 옛날로 되돌아갈 건가

[원문]

肅肅苞羽 集于苞苞

王事靡監 不能藝稷黍

父母何怙

悠悠蒼天 曷其有所

肅肅苞翼 集于苞棗

王事靡監 不能藝稷黍

父母何食

悠悠蒼天 曷其有極

肅肅鴇行 集于苞桑

王事靡監 不能藝稻梁

父母何嘗

悠悠蒼天 曷其有常


[참고]
너새는 날개가 60센티, 꽁지가 23센티 가량이나 되는데, 기러기와 비슷하지만 부리는 닭과 유사하고 뒷발톱은 없는 새이다


[해설]
진(晉)나라는 소공(昭公) 뒤로 오세(五世) 동안 더욱 정사가 어지러워졌다. 그리하여 전쟁터로 출정가는 일이 잦았는데, 이때 병사들이 부모님을 생각하며 부른 노래이다

■ 보원이덕 報怨以德[갚을 보/원망할 원/써 이/덕 덕]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

[출전]『노자(老子)』

[내용]인위적인 것을 하지 않고 자연적인 것을 한다. 인위적인 일을 하지 않고 자연적인 일을 한다. 인위적인 취미를 가진다. 큰 것은 작은 것에서 생기고 많은 것은 적은 것에서 일어난다.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 어려운 일은 쉬운일에서 계획된다. 큰 일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천하의 모든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된다. 

천하의 모든 큰 일은 반드시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이르므로 성인은 끝가지 크게 되려고 하지 않으므로 크게 될 수 있다. 대개 가볍게 승낙을 하는 것은 반드시 믿음성이 적고, 너무 쉬운 일은 반드시 어려운 일이 많다. 이 때문에 성인은 도리어 쉬운 것을 어렵게 여기므로 마침내는 어려운 것이 없게 된다.” 

어떤 사람과 원수 관계가 되면, 그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자가 있고, 반면에 은덕으로써 갚는 자가 있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일은 그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원한을 누그러뜨리고 은덕으로서 갚는다는 것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노자는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노자는 천하의 모든 일은 처음부터 크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작고 쉬운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보았다. 

■ 복거지계 覆車之戒[엎어질 복/수레 거/어조사 지/경계할 계]

☞앞수레의 엎어진 바퀴자국은 뒷수레의 거울을 이르는 말로, 앞사람의 실패를 뒷사람이 교훈으로 삼는다는 뜻.

[출전]『후한서(後漢書)』

[내용]《후한서(後漢書)》의 〈두무전(竇武傳)〉과 《한서(漢書)》의 〈가의전(賈誼傳)〉에 나오는 말이다. 〈두무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 품행이 방정하고 귀족의 속물적인 악습에 물들지 않은 두무의 딸이 황후가 되자 두무는 장관이 되었다. 이때 환관의 세력이 강해 그들의 횡포는 날로 더해갔다. 그러자 이응(李膺)과 두밀(杜密) 및 태학생(太學生)들은 환관들의 횡포를 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환관들은 자기들을 모함하였다는 죄로 그들을 체포한 ‘당고(黨錮)의 금’사건을 일으켰다. 두무는 이 사건을 환제에게 “만일 환관의 전횡을 이대로 방치해 두면 진나라 때의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며, 엎어진 수레의 바퀴를 다시 밟게 될 것입니다[覆車之戒]”라고 진언하였으며, 결국 체포된 관리 전원을 풀어 주었다.

〈가의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전한(前漢)의 효제(孝帝)는 제후로서 황제가 된 사람이다. 그러자 세력이 강성한 제후들은 효제를 우습게 여겼다. 이를 염려한 효제는 가의, 주발(周勃) 등의 현명한 신하를 등용하여 국정을 쇄신하고자 하였다. 그 중 가의는 “엎어진 앞수레의 바퀴자국은 뒷수레의 거울이 됩니다[前車覆 後車戒]. 하(夏), 은(殷), 주(周)시대는 태평성대를 누린 나라입니다. 이를 본받지 않는 나라는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복차지계는 이전에 실패한 전철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역으로 생각하면 이전의 좋고 훌륭한 점은 귀감으로 삼는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가의전〉에 나타났듯이 전거복 후거계(前車覆 後車戒)라고도 한다. <두산 백과>

* 전철을 밟지 마라.  복철을 밟지 마라

■ 복경호우 福輕乎羽[복 복/가벼울 경/어조사 호/깃 우]

☞복은 새털보다 가벼운 것으로, 자기의 마음 여하에 따라 행복을 찾는다는 뜻이다.

[출전]『장자(壯子)』
[원문]福輕乎羽  幕之知載  禍重乎地 幕之知避.복경호우 막지지재 화중호지 막지지피

[내용] "복은 깃털보다 가벼운데 이를 지닐 줄 아는 사람이 없고, 화(禍)는 땅덩어리보다 무거운데 이를 피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해설]깃털은 매우 가벼워서 좀 많이 지녀도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그리고 땅 덩어리는 지극히 무거워서 사람이 이를 감당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복은 쌓기가 쉬울 뿐 아니라 많이 지녀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으니 사람들은 복을 좀 많이 쌓고 지닐 법 한데 그렇게 하지를 않고, 화는 짓기가 무섭고 그 무게가 땅 덩어리처럼 무거운데 사람들은 이를 피할 줄을 모른다.사람은 누구나 복을 차지하고 싶고 화는 피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소망은 이루기가 매우 쉽다.복을 많이 쌓고 화를 적게 저지르기만 하면 된다. 가볍고 무거운 것의 차이만 가릴 줄 알면 된다. <이병한 서울대 명예교수>

■ 복룡봉추 伏龍鳳雛[엎어질 복/용 룡/봉황 봉/병아리 추]

☞엎드려 있는 용과 봉황의 새끼라는 뜻으로, 초야에 숨어 있는 훌륭한 인재를 이르는 말.
[동]와룡봉추(:누워 있는 용과 봉황의 병아리), 용구봉추(:뛰어난 말과 봉황의 병아리), [유]기린아 麒麟兒

[출전]『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傳)
[내용]《촉지(蜀志)》의 〈제갈량전(諸葛亮傳)〉주(注)에 나오는 말이다. 제갈 량(181~234)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난세 속에 숙부를 따라 형주(荊州)의 양양(襄陽:지금의 후베이성 양양현)으로 피난왔는데 숙부가 죽자 양양의 서쪽에 있는 융중(隆中)에서 정착하였다. 그는 난세를 피해 이곳에서 은거하면서 독서로 세월을 보냈다. 이때 유비(劉備)는 황건적(黃巾賊)의 난 속에서 별로 큰 전공을 세우지 못한 채 형주에 와서 유표(劉表)에게 의지하였다. 유비는 비로소 이때부터 인재를 찾으러 나섰다.

어느 날 양양에 거주하고 있는 사마 휘(司馬徽)에게 시국에 대해 넌지시 묻자 사마 휘는 “글만 읽는 저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런 것은 이곳에 계신 복룡과 봉추가 잘 알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이 글에서 복룡봉추가 유래하였고,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십팔사략(十八史略)》에도 같은 말이 나온다. 복룡은 초야에 은거하고 있는 제갈 량이고, 봉추는 방통(龐統)을 가리킨다. 비록 제갈 랑과 방통이 초야에 묻혀 살고 있지만 그들의 재주는 비상하였다.

이처럼 복룡봉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재주와 지혜가 탁월한 사람을 말한다. 보통 제갈 량을 가리켜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고도 한다. 동의어는 와룡봉추(臥龍鳳雛:누워 있는 용과 봉황의 병아리), 용구봉추(龍駒鳳雛:뛰어난 말과 봉황의 병아리), 비슷한 말은 기린아(麒麟兒:재주와 슬기가 탁월한 사람)이다. <두산백과>

■ 복소무완란 覆巢無完卵[엎어질 복/새집 소/완전할 완/알 란]

☞엎어진 새집 밑에는 온전한 알이 없다. 근본이 썩으면 그 지엽(枝葉)도 따라서 썩는다

[출전]『후한서(後漢書)』 공융전(孔融傳)
[내용]후한시대(後漢時代) 공융(孔融)은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으로 헌제(獻帝) 때 북해(北海)의 상(相)이 되어 학교를 세우고 유학을 가르친 학자이다.  그는 무너져가는 한나라 왕실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여러 번에 걸쳐 조조(曹操)에게 간언을 하다가 미움을 사서 피살된 인물이다. 

공융이 일찍이 오(吳)나라의 손권(孫權)에게 체포된 일이 있었다. 그 당시 공융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아홉 살이고, 작은 아들은 여덟 살이었다.  손권의 부하들이 공융을 체포하러 왔을 때, 두 아들은 마침 장기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조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하던 놀이를 계속하였다. 공융은 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벌은 나 혼자 몸에서 끝나게 해주시오. 두 아이는 다치지 않게 해주시오." 

이때 아들이 공융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 어찌 엎어진 새집 밑에 온전한 알이 있을 수 있습니까?"  두 아들 또한 체포되었다.  나뭇가지에 있는 새집이 땅에 떨어지면 그 안에 있던 알은 깨지고 말 것이다. 또한 뿌리가 썩은 나무에 가지가 온전할 수는 없다. 아버지가 계시기에 자신들이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체포되어 가는데 자신들도 벌을 받지 않고 어찌 집에 편안히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 복수불수 覆水不收 [엎을 복/물 수/아니 불/거둘 수]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한다. 한 번 저지른 일은 다시 어찌 할 수 없음을 이른다. 또는 다시 어떻게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일이 그릇됨.

[동]覆水不返盆(복수불반분)-엎질러진 물은 동이로 돌이킬 수 없다.**동이 분/甑已破矣(증이파의) : 시루가 이미 깨졌다. 다시 본래대로 만들 수 없음.**시루 증/복배지수(覆杯之水), 이발지시 已發之矢-이미 떠난 화살
[유]낙화불반지(落花不返枝)- 한번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로 되돌아갈 수 없다 / 파경부조(破鏡不照)-깨어진 거울은 다시 비추지 못한다 / 파경부조(破鏡不照)-깨어진 거울은 다시 비추지 못한다 / 기호지세騎虎之勢

[속담]쏘아 놓은 화살이요 엎지른 물이다. / 깨진 거울은 다시 비춰지지 않는다 / 주사위는 던져졌다

[출전]『拾遺記(습유기)』
[내용] :주(周)나라 시조인 무왕(武王:發)의 아버지 서백(西伯:文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황하의 큰 지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초라한 노인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학식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서백은 이 노인이야말로 아버지 태공(太公)이 '바라고 기다리던[待望]' 주나라를 일으켜 줄 마로 그 인물이라 믿고 스승이 되어 주기를 청했다.

  이리하여 이 노인, 태공망(太公望:태공이 대망하던 인물이란 뜻) 여상[呂尙:성은 강(姜) 씨, 속칭 강태공]은 서백의 스승이 되었다가 무왕의 태부(太傅:태자의 스승) 재상을 역임한 뒤 제(齊)나라의 제후로 봉해졌다. 태공망 여상은 이처럼 입신 출세했지만 서백을 만나기 전까지는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던 가난한 서생이었다. 그래서 결혼 초부터 굶기를 부자 밥 먹듯 하던 아내 마(馬)씨는 그만 친정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마씨가 여상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전엔 끼니를 잇지 못해 떠났지만 이젠 그런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아 돌아왔어요." 그러자 여상은 잠자코 곁에 있는 물그룻을 들어 마당에 엎지른 다음 마씨에게 말했다.  "저 물을 주워서 그릇에 담으시오." 그러자 이미 땅 속으로 스며든 물을 어찌 주워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마씨는 진흙만 약간 주워 담았을 뿐이었다. 그러자 여상은 조용히 말했다.

 그대는 이별했다가 다시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다 (若能離更合이나 覆水定難水라.)라 하고 마씨를 아내로 맞아 들이지 않았다.


■ 본말전도 本末顚倒
[근본 본/끝 말/넘어질 전/넘어질 도]

☞일이 처음과 나중이 뒤바뀜. 일의 근본 줄기는 잊고 사소한 부분에만 사로잡힘.

[예문]
▷ 이상호 기자 소환은 본말 전도
▷ 교원평가제 반대론 본말전도나 눈속임
▷ 출판사에 의해 '본말전도'된 박지성 기자회견
▷ 순환출자 규제 도입 추진… 기업"투자위축등 본말전도 행태

▷ 외교부에서 사관 검토에 대해서는 신중하자는 의견을 냈다. 사관의 문제로 흘러갈 경우 불필요한 학문 외적 논쟁이 유발되는 등 본말이 전도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결국 사관을 문제삼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것을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수정하라’는 식으로 자구(字句)만 문제삼은 것도 아니다. 전체적인 서술 방식을 중시했다--[日왜곡교과서 재수정 요구]이무성 국사편찬위원장 인터뷰

■ 본연지성 本然之性 [근본 본/그럴 연/어조사 지/성품 성]

☞사람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심성. 지극히 착하고 조금도 사리사욕이 없는 천부자연의 심성. 성리학의 심성론에서 유래

[내용]천명지성(天命之性) 또는 천지지성(天地之性)이라고도 한다. 성리학에서는 사람의 성(性)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눈다. 주자에 따르면, 본연지성은 천부자연의 심성으로 지선(至善)이다. 기질지성은 타고난 기질과 성품을 가리키는데, 타고난 기질의 청탁(淸濁)과 편색(偏塞:편벽되고 막힘)에 따라 선하게도 나타나고 악하게도 나타난다

이기론으로 말하면, 본연지성은 이()에 해당되고, 기질지성은 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기질지성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수양에 따라 탁한 것[]을 맑은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유가()에서는 기질을 정화시켜 지선의 본연지성을 회복하여 발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유가에서 이상으로 삼는 성인()과 범인()의 차이점은, 성인은 기질이 맑아서 본연지성이 잘 발현되는 반면에 범인은 기질이 탁하여 본연지성이 잘 발현되지 않는 데 있다.

[예문]
그는 인간의 본연지성이 선하다고 주장하였다.

현대 사회는 과학과 기술에 바탕한 지식·정보가 모든 인간적 가치관에 우선하는 感性的·主氣的 사회라 할 수 있다. 때문에 현대인이 비인간화, 객체화, 물질화의 激浪 속에서 표류하고 있음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탈출은 아주 시급한 문제이며, 그 방법은 '명상'과 '지경'을 통하여 '본연지성'을 깨닫는 것이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의 '중용의 도'--김명하>


■ 본제입납 本第入納
[근본 본/집 제/들 입/들일 납]

☞자기 집에 편지할 때에 겉봉 표면에 자기 이름을 쓰고 그 밑에 쓰는 말
[참고]--편지 봉투를 쓸 때 이름 아래 붙이는 칭호
氏(시) : 나이나 지위가 비슷한 사람에게 존경의 뜻으로 쓸 때.
貴中(귀중) : 단체에 쓸 때.
님께 : 순 한글식으로 쓸 때.
女史(여사) : 일반 부인에게 쓸 때.
大兄(대형), 人兄(인형), 雅兄(아형) : 남자끼리 친하고 정다운 벗을 높여 쓸 때.
座下(좌하) : 마땅히 공경해야 할 어른〔조부모(祖父母), 부모(父母),선배(先輩), 선생(先生)〕 에게 쓸 때.
先生(선생) : 은사(恩師)나 사회적으로 이름난 분에게 쓸 때.
畵伯(화백) : 화가를 높여 쓸 때.
貴下(귀하) : 상대방을 높여 쓸 때.
君(군), 兄(형) : 친한 친구에게 쓸 때.
孃(양) : 처녀로서 동년배(同年輩) 혹은 아랫사람에게 쓸 때.
展(전) : 손아랫사람에게 쓸 때.

▷봉투의 글씨
받는 사람의 성명은 정자로 쓴다.
받는 사람의 이름은 주소의 글씨보다 좀 크게 하여 중앙에 쓴다.
보내는 사람의 주소와 성명은 조금 작게 쓴다.
보내는 사람의 주소는 생략하지 않고 정확하게 쓴다.

[봉투의유래]--미국 작가 A. 비어스는『악미의 사전』에서 봉투를“서류를 매장하는 관, 연애편지를 넣는 옷”이라고 정의하였다. 프랑스 작가 플로베르도 봉투를“이루지 못한 연문의 관통(관통)이요, 사랑을 거절하는 답장의 칼집”이라 했다. 봉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바빌로니아의 흙봉투에 다다른다. 당시 제왕 또는 권력자만이 보아야 하는 문서는 여느 사람이 볼 수 없게끔 해야 했는데, 그 시절 점토판에 글을 냵기로 그 점토판을 포개어 양끝을 이겨서 봉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낙랑시대 유물로 이 흙봉투가 출토되어 있다. 봉니(封泥)가 그것이다. 봉투란 단어는‘구부려 덮어 봉한’데서 유래했다.

■ 봉고파직 封庫罷職 [봉할 봉/곳집 고/파할 파,내칠 파/맡을 직]

☞부정을 저지른 관리를 파면(罷免)시키고 관고(官庫)를 봉하여 잠그는 일

[동]봉고파출(), 봉고(庫)

[내용]어사()나 감사()가 부정한 관리를 파면하고, 그 창고를 봉하여 잠그는 것을 가리킨다. 관가의 창고를 봉하여 잠근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관리의 업무 수행을 정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

왕의 밀명으로 파견되었던 어사는 지방을 다니면서 관리들의 잘잘못을 살핀 뒤, 어진 관리는 청백리()라고 하여 상을 주고, 탐관오리()는 봉고파직을 시켰다.

어사가 출도하면 사열문박, 반열창고, 심리원옥, 유치죄인 등으로 수령의 업무에 대한 적정여부를 확인하였다. 불법사실이 발견되면 불법문서의 현착⇒ 봉고⇒ 서계⇒ 파직의 4단계를 거쳐서 처리하였다.<네이버백과>


[예문]
▷ 이 때 수의 사또 분부하되 "이 골은 대감이 좌정하시던 골이라, 훤화(喧譁)를 금하고 객사(客舍)로 사처(徙處)하라." 좌정(座定) 후에 "본관은 봉고 파직(封庫罷職)하라." 분부하니...<춘향전>중에서,

▷ 마땅히 벌책이 내려 봉고파직을 당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최동진은 여전히 다른 골 현감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유현종, 들불≫  / 봉고파직이나 진배없이 망신당한 이상규는 새 목사가 도임하여 인신을 넘겨주기까지는 오도가도 못하고 동헌에 엉거주춤 머물러 있어야 했다.≪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부마 駙馬[곁말 부/말 마]  

☞임금의 사위/공주의 부군(夫君)
[출전]搜神記(수신기[원]駙馬都尉

[내용]
옛날 농서 땅에 신도탁이란 젊은이가 있었다.그는 이름 높은 스승을 찾아 옹주로 가던 중 날이 저물자 어느 큰 기와집의 솟을 대문을 두드렸다.

하녀가 나오자"옹주로 가는 길인데 하룻밤 재워줄 수 없겠습니까?"하녀는 그를 안방으로 안내하여 식사까지 대접하였다. 식사가 끝나자 안주인이 들어왔다."저는 진나라 민왕의 딸이온데 조나라로 시집갔다가 남편과 사별하고 이제까지 혼자 살고 있습니다.그런데 오늘 이처럼 찾아주셨으니 저와 부부의 연을 맺어 주세요"

 신도탁은 사양을 하다가 결국 3일을 같이 지내게 되었다.여인은 슬픈 얼굴로 말햇다.더이상 같이 있으면 화를 당하게 됩니다."하며 정표로 금베게를 주었다.대문을 나선 신도탁이 뒤돌아보니 기와집은 간데 없고 무덤만 있을 뿐이었다.

 신도탁은 금베게를 팔아 음식을 사 먹었다.그후 왕비가 금베게를 저자거리에서 발견하고 신도탁을 잡아다가 경위를 알아본 다음 공주의 관을 열어보니 금베게만 없었다.모든 사실이 신도탁의 말과 부합하자 왕비는 신도탁에게 내 사위라 하며 駙馬都尉(부마도위)라는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원문]乃遣人發  啓柩視之 原葬悉在 唯不見枕 解體看之 交情宛若 秦妃始信之 歎曰 我女大聖 死經二十三年 猶能與生人交往  此是我眞女 也 遂封度爲駙馬都尉 賜金帛車馬 令還本國 

[예문]
▷ 부마로 삼다
▷ 부마를 뽑다
▷ 임금의 부마가 되다.

■ 부언시용 婦言是用 [지어미 부/말씀 언/이 시/쓸 용]

☞여자의 말을 무조건 옳게 쓴다. 줏대없이 여자의 말을 잘 듣다.

[출전]書經』, 周書篇
[내용] : 殷나라의 주왕(紂王)은 달기라는 요부(妖婦)에게 빠져 그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었고 주색(酒色)을 즐겨 매일같이 주연(酒宴)을 베풀면서 어진 신하들을 멀리하고 일족(一族)들 마저도 돌보지 않았다.

 그런 까닭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피폐해지고 세상은 혼란하여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났다. 그 때 「무왕이 말하기를 옛 사람의 말에‘암탉은 새벽에 울지 아니하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오직 집안이 망할 뿐이다.

’(王曰 古人有言曰 牝鷄無晨이니 牝鷄之晨이면 惟家之索이라.)’.이제 상(은)나라의 왕 수(주왕)는 오직 부녀자의 말만 옳다고 여겨서 따른다( 用)"라고 하였다( ** 牝(암놈 빈) 索(쓸쓸할 삭)

[해설]이 구절에 나오는 암탉과 부녀자는 주왕의 애첩 달기를 가리키는데, 주왕은 어질고 현명한 신하의 말을 듣지 않고 달기의 말만 들었다. 부언시용은 줏대없이 여자의 말을 잘 듣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 부중지어 釜中之魚 [솥 부/가운데 중/어조사 지/물고기 어]

☞솥안의 물고기, 삶아지는 것도 모르고 솥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 눈앞에 닥칠 위험도 모른 채 쾌락에 빠져 있는 사람을 뜻함

[동]유어부중 游於釜中:솥 속에서 놀다/ 轍?之急(철부지급) : 수레바퀴 자국의 괸 물 속에 사는 붕어. /不免鼎俎(불면정조) : 솥에 삶아지고 도마에 오르는 것을 면치 못함. / 조상지육(:도마 위에 오른 고기)

[출전]자치통감(自治通鑑) 』, 한기(漢記)

[내용]後漢(후한)말께 20여년간 황제의 외척인 梁翼(양익)형제는 권력을 멋대로 휘둘렀다.양익이 대장군이 되고 그의 아우 不疑(불의)가 하남 태수가 되었을 때 그들은 여덟 명의 使者(사자)를 각 고을에 파견, 순찰하도록 했다.

 그 여덟 명의 사자 중에는 張綱(장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烙陽(낙양) 숙소에다 수레바퀴를 묻어버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산개와 이리같은 양익 형제가 요직을 차지하고 설쳐대는데 여우나 살쾡이 같은 지방 관리들을 조사하며 돌아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면서 장강은 도처에 양익 형제를 탄핵하는 15개 조항의 상소문을 올렸다. 이 때문에 장강은 양익 형제의 미움을 사서 광릉군의 태수로 쫓겨났다. 더구나 광릉군은 양주와 서주 지방을 10여년간 휩쓸고 다니는 장영이 이끄는 도적떼의 근거지다.

광릉군에 부임한 장강은 곧바로 혼자서 도적떼의 소굴을 찾아가 장영에게 간곡히 귀순을 권했다. 장영은 장강의 설득에 깊은 감명을 받고 울면서 말했다. "벼슬아치들의 가혹한 처사에 배기다 못해 모두가 모여서 도적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목숨이 붙어있지만 마치 솥 안에서 물고기(釜中之魚)가 헤엄치는 것과 같아 결코 오래 갈 수는 없겠지요." 이리하여 만여 명의 도적들은 모두 항복했고 장강은 그들에게 큰 잔치를 베푼 뒤 모두 풀어주었다.

[원문] 網 單車 徑詣 壘門 請與相見 譬曉之 曰 汝等若是 相取久存命 其如釜中之魚 必不久之 等萬餘人 降

■ 부창부수 夫唱婦隨 [지아비 부/부를 창/지어미 부/따를 수]

☞남편이 부르면 아내가 따른다. 남편의 주장에 아내가 따름. 부부의 화합.

[예문]
▷ 도서관 하는 남편에 소나무가 되자는 아내. '부창부수'란 말이 딱 맞는 듯했다. / 김지호도 현재 EBS 요리프로그램 '최고의 요리비결'의 MC로 출연하는 등 요리에 관한한 부창부수를 자랑한다.

▷ 아내를 향해 ‘손님에게 연잎 차 좀 내드리라’고 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그의 아내는 ‘연밥이 품은 씨앗은 천년을 가도 싹이 나지 않는대유. 그래서 상처를 내서 심어야 싹이 나쥬’ 해가며 ‘남편이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 이사 왔쥬’라고 했다.<2006.세계일보>

부창부수 수잔 서랜든 부부가 비슷한 시기 에 각자 의미있는 상을 받아 화제. 아내 수잔이 미국 인권 센터에서 수여하는 명예상을 받은 데 이어 남편 팀 로빈스가 [내셔널 보드 오 브 리뷰 영화상]에서 특별업적상을 받은 것. <채널아이 월간스크린>

▷ 사극은 대사가 워낙 많아 연기자들 사이에 사극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화하기 어렵지만 두 사람은 부창부수(夫唱婦隨)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다.<중앙일보>

▷ 간나희 가는 길흘 사나희 에도듯이   
    사나희 녜는 길흘 계집이 치도듯이  
    제 남진 제 계집이 아니어든 일홈 묻지 마오려.

■ 부화뇌동 附和雷同 [붙을 부/화할 화/우뢰 뢰/같을 동]

☞소신없이 남의 의견을 그대로 좇아 따르거나 같이 행동하다.
[유]追友江南(추우강남) : 친구따라 강남간다. 남의 피리에 춤춘다.

[출전]
『예기(禮記)』곡례(曲禮) 상(上)

[내용].“다른 사람의 말을 자기 말처럼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지 말라. 옛날 성현을 모범으로 삼고, 선왕의 가르침에 따라 이야기를 하라.” 이것은 아랫사람이 손윗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절을 설명한 것이다.

 또 <논어(論語)>“자로(子路)”편에도 이런 말이 보인다.“공자가 말하기를,‘군자는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부화뇌동하되 화합하지 않는다(子曰, 君子和而下同, 小人同而不和).”공자의 말은 이러한 뜻이다. 군자는 남을 자기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남과 조화를 이루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므로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이이기을 좇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익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행동하지만 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부화뇌동’이란 결국 우뢰가 한번 치면 천지 만물이 이에 응하여 소리를 내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의 말이 옳고 그른지를 헤아리지 않고 무조건 따르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공명정대한 명분이나 사리 판단보다는 이해 관계에 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문]正爾容 聽必恭 毋 說 毋雷同 必則古昔 稱先王 附和之謂雷同 如雷之發聲而物同應之也

[예문]
▷ 사또는 교자를 탄 채 그 앞을 호기 있게 지나치면서, 장차 대정민에게 부화뇌동한 자는 엄벌에 처하겠노라고 큰소리로 으름장 놓곤 했다.≪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이 군은 일본놈들 또는 그들에게 추종하는 놈들과 부화뇌동하지 않고 우리와 같은 운명의 길을 걷기로 작정하였으니 진심으로 환영해야 될 줄 압니다.≪이병주, 지리산≫ / 평소에는 친하지 않던 그들이 갑자기 서로 부화뇌동하여 일을 꾸미기로 한 것이다./ 배후의 책동에 부화뇌동하다

▷ 자연 사실(fact)보다는 허구(fiction)가 판친다.주가, 환율 등 가격변수 움직임도 기복이 심해진다.부화뇌동(附和雷同) 심리와 각종 동조화 현상도 재현된다.<한국경제>

■ 북당 北堂 [북녘 북/집 당]

☞남의 어머니의 별칭.
[참고]‘남의 어머니를’높이어 이르는 말 : 母堂, 慈堂,(자당) 令堂(영당), 萱堂(훤당).大夫人 /남에게‘자기의 어머니’를 이르는 말 : 慈親(자친), 慈浬(자리), 家母, 家慈. /남의 아버지’를 높이어 이르는 말 : 椿府丈(춘부장), 椿府, 椿丈, 椿府大人, 椿庭(춘정), 椿堂(춘당), 家尊, 令尊(영존). / 남에게‘자기의 아버지’를 이르는 말 : 家父, 家君, 家嚴, 家大人, 家親, 嚴君.嚴親(엄친)

[예문] 세월이 여류하니 백발이 절로 난다
          뽑고 또 뽑아 젊고자 하는 뜻은
          북당에 친재하시니 그를 두려함이라 --김진태

[참고]堂은 18세기 초 중국 베이징[]에 건립된 프랑스 예수회 전교() 본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 북산지감 北山之感[북녘 북/뫼 산/어조사 지/느낄 감]

☞북산의 감개함. 나라 일로 인해 부모님을 제대로 봉양하지 못함

[출전]『시경(詩經)』 소아(小雅)편 북산(北山)
[동]보우지차(?羽之嗟),보우지탄(?羽之嘆)

[내용]

북산에 올라가 구기자를 따네 
튼튼한 관리가 아침 저녁으로 일을 하지만 
나라 일 끊임없어 부모님이 걱정이네 

모든 하늘 밑이 임금님의 땅이며 
모든 땅의 물가가지 임금님의 신하이거늘 
대부들을 고루 쓰지 않으시어 나만 일하느라 홀로 수고하네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 장대하나 나라 일 많기도 하네 
다행히도 나는 늙지 않았고 기쁘게도 나는 한창때라 
정력이 왕성하여 온 나라를 보살피네 

어떤 이는 편히 쉬고 
어떤 이는 온갖 고생 다하며 나라 섬기고 
 
어던 이는 침대에 누워 쉬고 
어떤 이는 쉬지 않고 돌아다니네 
 
어떤 이는 부르짖음도 알지 못하고 
어떤 이는 처참히 고생하고 
 
어떤 이는 뒹굴뒹굴 편히 놀고 
어떤 이는 나라 일로 급히 돌아치네 
 
어떤 이는 즐기고 술 마시기에 빠져 있거늘 
어떤 이는 처참히 허물 두려워하며 일하고 
 
어떤 이는 들락날락하며 큰 소리 치고 있거늘 
어떤 이는 안하는 일 없이 수고하네

[원문]

陟彼北山 言採其杞

偕偕士子 朝夕從事

王事靡 憂我父母

或湛樂飮酒 或慘慘畏咎

或出入風議 或靡不事爲

[해설] 주(周)나라 유왕(幽王)이 무도(無道)하여 힘없는 백성들만을 끝없는 부역으로 내몰아 부모님을 제대로 봉양할 수 없음을 풍자하여 노래한 시이다.  고대에 성품이 포학했던 군주들은 자신들의 영토 확장을 위해 가난한 민초들까지 전쟁터로 내모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기약 없는 싸움을 하는 백성들은 전사하는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과 처자식 걱정에 눈물 마를 날이 없다

■ 북창삼우 北窓三友 [북녘 북/창 창골/석 삼/벗 우]

북쪽 창의 세가지 벗, 거문고(琴), 술(酒), 시(詩)를 뜻함

[내용]오늘 북창아래에서 무엇 하느냐고 자문하네
아! 세 친구를 얻었으니 세 친구는 누구인가?
거문고를 뜯다가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다 문득 시를 읊으니 세 친구가 번갈아 서로를 끌어주어
돌고 돎이 끝이 없구나


[원문]今日北窓下 自問何所爲 欣然得三友 三友者爲誰 琴罷輒擧酒 酒 輒吟詩 三友遞相引 循環無已時

[참고]歲寒三友[세한삼우]--松,竹,梅[소나무,대나무,매화]/ 문방사우 文房四友--글을 쓰는 네가지 벗. 종이, 붓, 벼루, 먹.(紙筆墨硯)

■ 분골쇄신 粉骨碎身 [가루 분/뼈 골/부술 쇄/몸 신]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진다.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다. 또는 남을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음.

[유]犬馬之勞(견마지로) : 임금이나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노력. /盡忠竭力(진충갈력) : 충성을 다하고 힘을 다함. /驅馳(구치) : 말이나 수레를 몰아 빨리 달림. 또는 남의 일을 위하여 힘을 다함.

[예문]무투표당선과 3선의 영예를 안겨준 주민들에게 분골쇄신의 자세로 보답하겠습니다. 침체된 관광지 활성화를 위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각계 요로에 전달하고 해결책을 이끌어냄은 물론 낙후된 청정 자연을 자랑하는 속리산을 전국에 알릴 수 있는 각종 행사와 이벤트, 아이디어 개발, 민자유치등을 위해 발로 뛰는 의원이 되겠습니다.--당선사례

■ 분서갱유 焚書坑儒 [불사를 분/책 서/묻을 갱/선비 유]

☞책을 불사르고 선비를 구덩이에 파묻어 죽임/학자,학문이 정치적 박해,탄압을 받음
진시황제[출전]史記』/『십팔사략(十八史略)』

[내용]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는 주왕조의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의 군현제도를 채택했다.8년후 함양궁의 찬치에서 순우월이 당시 군현제도를 봉건제도로 개체할 것을 진언했다.

 시황제가 신하들에게 가부를 묻자 군현제의 입안자인 승상 이사는 옛책을 배운 사람들 중에는 그것만을 옳게 여겨 새로운 법령이나 정책에 대해서 비난하는 자가 있으니 차제에 그러한 선비들을 엄단하고 아울러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책과 진나라 역사서이외에는 모두 수거하여 불태워 버릴 것을 진언한다.이 진언이 받아들여져 관청에 제출된 희귀한 책들이 모두 불태워 졌다.

 이듬해 아방궁이 완성되고 시황제는 불로장수의 신선술법을 닦는 方士들을 불러 후대했다.그들 중 노생과 후생이 재물을 사취한뒤 시황제의 부덕을 비난하며 종적을 감추자 시황제는 매우 진노했는데 그 때 시황제를 비방하는 선비들을 잡아 가뒀다는 보고를 받고 460명이나 되는 많은 선비들을 모두 산채로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다.

[원문]臣請史官非秦記皆燒之. 非博士官所職, 天下敢有藏詩.書.百家語者, 悉詣守.尉雜燒之...諸生傳相告引, 乃自除犯禁者四百六十餘人, 皆之咸陽, 使天下知之, 以懲後. 

■ 불가사의 不可思議 [아니 불/옳을 가/생각 사/의논할 의]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이 이상 야릇함.
[유]微妙(미묘) : 야릇해서 잘 알 수 없음. /神秘(신비) : 보통 이론과 인식(認識)을 초월(超越)한 일. /不可知解(불가지해) : 알 수가 없음.

[예문]
▷ 불가사의하게 전개되는 운명
▷ 인간의 생명력은 불가사의하다|
▷ 선우 중위는 그 양주호가 마치 어떤 커다랗고 불가사의한 괴물처럼 느껴지고 있었다.≪이청준, 이어도≫
▷ 형사들과 노인은 불가사의한 종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눈초리로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었다.≪최인호, 지구인≫

■ 불가항력 不可抗力 [아니 불/옳을 가/막을 항/힘 력]

☞힘으로 대항할 수 없음 / 외부의 사건에서 거래 관념상의 가능한 주의와 예방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

[예문]
▷ 불가항력의 자연재해
▷ 어떻게 생각해 보면 우리 쪽이 이렇게 된 건 불가항력이었는지도 모르지.≪한수산, 부초≫
▷ 여러 차례 항쟁하여 봤지만 목숨만 무수히 잃을 뿐 도무지 불가항력인지라 본조에 들어서는 순순히 복종하여….≪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무단횡단자를 피하기 위하여 불가항력으로 중앙선을 침범했을 경우 중앙선 침범으로 인정되기보다는 안전운전 의무위반으로 적용된다.

■ 불구대천 不俱戴天 [아니 불/함께 구/머리에 일 대/하늘 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 죽여 없애야 할 원수
[동]不共戴天之讐(불공대천지수) ,不共戴天

[출전]禮記
[내용] : 예기(禮記)는 오경의 하나로 周 나라 말부터 秦漢시대에 유학자의 고례(古禮)에 관한 설을 적은 책이다. 그 중 곡례(曲禮)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아버지의 원수는 더불어 하늘을 같이 할 수 없다. 따라서 세상에 살려둘 수는 없고 반드시 죽여야 한다. 형제의 원수는 집에 무기를 가지고 올 사이가 없다. 항상 무기를 지니고 다니다가 원수를 만나면 당장 죽여 버려야 한다. 친구의 원수는 나라를 같이 하여 살 수 없다. 마찬가지로 죽여 없애야 한다

[원문]父之讐弗與共戴天.兄弟之讐不反兵.交友之讐不同國.”

[참고] 내 이제야 남의 아비를 죽이는 것이 중한 줄을 알겠노라.남의 아비를 죽이면 남이 또한 그 아비를 죽이고 남의 형을 죽이면 남이 또한 그 형을 죽일 것이다.그러면 스스로 제 아비나 형을 죽이지는 않겟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이니라(『孟子』)

[예문]그놈 우리나라로 보아선 불구대천의 원수지만 자기 나라에선 일등 공신이다.≪박해준, 밀항기≫

■ 불립문자 不立文字 [아니 불/설 립/글월 문/글자 자]

☞문자로써 교(敎)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선종(禪宗)의 입장을 표명한 표어
[동]以心傳心(이심전심) 敎外別傳(교외별전) 華微笑(염화미소,점화미소) 華示衆(염화시중)

[내용] 교가(敎家)의 사람들이 경론(經論)의 문자와 교설만을 주로 하고 불교의 참 정신은 잃고 있다고 보고, 선가(禪家)에서는 참된 불법으로서의 정법(正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以心傳心]이라 하고, 체험을 중요시하여 불립문자·교외별전(敎外別傳) 또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 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선종을 중국에 전한 달마(達磨)에서 이미 나타났었다. 그러나 특별히 강조되었던 것은 당나라 때로서 선종 제6조 혜능(慧能) 아래의 남종선(南宗禪)에서였다.

[참고1]불립문자는 문자를 세우지 말라는, 그러니까 문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뜻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문자를 세우지 말라고 했다면 팔만대장경의 그 무수한 문자는 또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불립문자는 어디까지나 '문자에만' 의지하지 말라 또는 '문자에만' 머무르지 말라는 의미이다.

[예문]

햇살공부

햇살은 어떤 색으로 어떻게 떨어질까

구름과 구름 사이에서 한달음에 내려앉는 선연한 모습.

서쪽 하늘 해 빠지는 절망의 벼랑에서

불끈 솟는 대작대기 빛의 높고 큰 힘처럼,그것은

한여름 뙤약볕에 등줄기 까맣게 끄슬러 생채기를 남긴

그림자를 따뜻하게 덥혀주는 언어의 무늬들,

해의 외길 앞에 서서 구름이 가리게 되어 숨길 때

부끄럼으로 제 빛 뽑아내는 햇살.

쓰러지고 꺾일지언정 끊어지지 않는 빛의 절개는

공전과 자전에서 터득한 신비로운 발색 반응.

그 빛 따라가는 물 속의 불립문자 같은 고기떼

옆구리의 눈부신 비늘을 반짝인다.<전성호>

▷ 내가 또 묻기를, 솔개는 날아서 하늘을 지나가고, 고기는 못에서 뛰는 것이 색이냐 공이냐? 하니, 공이 말하기를, 색도 아니고 공이 아닌 것이 진여(眞如)의 본체이니 어찌 이 따위 시를 가지고 비길 수 있느냐 했다.

내가 웃으며 말하기를, 벌써 말이 있으면 곧 경계(境界)가 되는 것인데 어떻게 본체라 할 수 있겠느냐? 만약 그렇다고 하면, 유가의 묘한 것은 말로 전할 수 없는 곳이고, 부처님의 도는 글자 밖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중이 깜짝 놀라서 나의 손을 잡으며, 당신은 시속(時俗)의 선비가 아니로구려.

[참고2]不立文字 敎外別傳說의 由來 우리나라 禪家의 전설은 대개 중국 선종의 설을 그대로 계승하여 오는 것으로 '禪宗系譜說'이 그러하고 '東土初祖說'이 그러하며 이제 이 '不立文字 敎外別傳說'도 그러하다. 다른 문제는 且置하고 이 不立文字의 문제, 곧 선종에도 所依經이 있었던가 하는 문제의 발단이 된 此說의 유래를 잠시 더듬어 보기로 한다.

 불교라 하는 것은 교주 釋迦牟尼佛의 敎說췱iddot;敎訓?iddot;敎示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 교설 등이라 함은 言語와 文字로 된 經과 律 外에는 따로 없는 것이며, 이러한 것 중의 어느 것을 신봉하는 것이 다름 아닌 불교의 諸宗이므로, 만약 이것들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불교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선종에서는 經?iddot;律‥論 三藏을 所依로 하지 않고서 무엇으로써 어떠한 근거에서 自宗을 불교라 주장하는가. 선종의 견지에서는 釋迦牟尼佛이 자기의 사상을 전하는 방법에는 二種이 있으니, 그 하나는 言說에 의하는 것으로 이 방법은 鈍根劣機에 대한 방법이요, 그 둘째는 言說文字에 의하지 않고 師資가 직접 以心傳心하는 방법으로서, 이 방법은 殊勝한 근기에게 전하는 방법이다. 前者는 곧, 종교이요 후자가 곧, 선종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以心傳心 敎外別傳說의 근거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拈華微笑 敎外別傳說이다. 선종의 宗旨는 경론 等이나 기타 언설에 의하여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언설이외에 師資가 相接하여 以心傳心의 방법으로써 불타의 正法眼藏을 상전한다는 것인 바 이 기원은 벌써 교주 석존으로부터 시작되어 석존이 摩訶迦葉에게 拈華微笑의 방법으로써 정법안장을 전하신 것을, 그 후 27祖가 모두 以心傳心의 방식으로, 代代 전법을 하였다 하여, 그 純一無雜性을 敎家에 대하여 자랑한다. 그러면 이 以心傳心說을 전하는 문헌은 과연 무엇인가. 중국 宋代 道原의 作인(서기 1004년 作) '景德傳燈錄'에는 아직, 이 설의 기록이 없다.k 此書는 구체적인 선종사로서 가장 중요한 문헌이다. 중국 선종의 初祖라 하는 達磨大師가 東來한 것은 서기 478년으로 추정되는 바, 이보다도 526년이나 後世에 저작된 이 '傳燈錄'에도 선종 別立의 근거인 拈華微笑, 以心傳心說의 記載가 없다. 이 '傳燈錄'에 의하여 저작된 宋 契嵩의 '正宗記'(1060년 이전 作)에는,

혹 말하기를 여래께서 靈山會中에서 捻華示之하시니 迦葉이 微笑하였는지라, 곧 이에 付法하셨다. 또 가로대 여래는 법을 多子塔 앞에서 대가섭에게 付하셨다 라고 하니 世는 모두 이로써 전수의 實이라 하나, 그러나 이는 아직 그 출처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稱取하나 또한 果敢히 써 審詳하지 않노나.(同書 卷1末)

라고 하여 오히려 그 설을 전적으로는 取信하지 않았다. 이에 의하여 본다면 宋代에 들어와서 비로소 이러한 전설이 점차 떠돌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40년 후에 著作된 '建中靖國續燈錄' 卷1에 의하면(1101년 作), "四十九年 三乘顯著, 拈花普示 微笑傳"이라 있고 또 그 후(1183년)에 저작된 '聯燈會要' 卷1에 의하면 비로소

세존이 在靈山會上하사 拈花示衆하시니 衆皆默然이나 唯迦葉이 破顔微笑하니 세존이 云하사되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 微妙法門하니 不立文字하고 敎外別傳하노라 하시고 付囑摩訶迦葉하시다.

라고 하여, 점차 공공연하게 나타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 拈花微笑 敎外別傳說의 근원적인 근거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宋代 智胎의 著 '人天眼目'(1188년 作) 제5 宗門雜錄에,

王荊公 (王安石)이 佛慧泉禪師에게 問云, 禪家에 所謂 拈華는 出在何典이닛가. 泉云 藏經에도, 亦不載로다. 云曰 余頃在翰林苑하여 '大梵天王問佛決疑經' 三卷을 보고 因閱之하니 經文所載가 甚詳하더이다. 梵王이 至靈山하여 金色波羅花를 佛께 드리고 몸을 버려 床坐를 삼아 佛께 請하여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시게 하니 세존은 登坐하사 拈花示衆하시니 人天百萬이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홀로 金色頭陀가 있어 破顔微笑하니 세존이 云하되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하니 分付摩訶迦葉하노라"라고 이 經은 帝王이 事佛하여 請問하는 것을 多談하였는지라 所以로 秘藏되어 世에 듣는 자가 없었다.

라고 되어 있다. 곧 王安石 時代에는 이 '大梵天王問佛決疑經'이라는 經이 翰林苑에 있었다 하나 그러나, 이 경이 대장경 중에 편입되어 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아무 經錄上에도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로써 미루어 보면 이 경은 위경임이 명백하고 또 따라서 拈花微笑 敎外別傳說도 후세인들에 의해  造된 일종의 망설임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전설이  造되게 된 동기는 宋에 이르러 선종의 宗勢가 隆盛하여지니 다른 敎宗佛敎에 그 독특성을 誇張할 필요에 의하였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뿐 아니라, 선종의 28祖의 系譜說도 역시 후세에  造된 것으로 (이에 詳論의 餘裕가 없어 省略하나) 선종으로서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이러한 전설들을  造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은 達磨에 의해 禪法이 初傳된 이래 300여년간에 선이 一宗으로서 堅固한 지반을 닦아서 日就月盛하여 가는 途上에 있으므로 自宗의 系譜를 확실히 해 두어야 할 필요가 28祖說과 또 自宗의 純粹佛敎性을 표시해야 할 必要上 敎外別傳說을 구상해 내었던 것이 아닐까한다. 특히 중국 唐代에까지 융성하였던 모든 교종들은 다 각각 그 所依의 경론이 분명하여 불교로서 행세하는데 유력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선종만이 그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 이류를 밝히기 위하는 同時에 타종의 所依經論보다도 오히려 더 유력한 근거설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扶宗的 운동은 中唐 이후 宋代의 일이었고 禪法을 初傳한 達磨大師로부터 神秀?iddot;慧能에 이르는 禪宗成立時代에 있어서는 그러한 전설이란 전연 없었던 것임에 주의해야 한다.

不立文字의 意義 중국의 圭峯 宗密의 (780-841) '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에 "然達磨西來唯傳心法 故自云我法 以心傳心 不立文字"라 하여 있고, 또 '景德傳燈錄' 楊億의 序에도 "首從於達磨 不立文字 直指心源 그러나 이러한 扶?이라 하여 문자를 不立하였다는 점에 강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들릴는지 모르나, 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以心傳心'한다는데, 그 진정한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대개의 禪客들은 不立文字에 禪宗의 주안점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지 않는가 한다. 그 증거가 대개의 禪客들이 三藏을 무시해 온 것이며 문자를 경시하는 標本으로 六祖 慧能大師의 無識을들고 있다. 그러나 六祖가 경을 중시한 증거는 있을지언정 무시한 증거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이 선종의 宗旨인 바 이 三句 중 "直指人心 見性成佛"이 목적이요 不立文字는 그 목적 달성을 위한 한 수단방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宋代 睦庵 善鄕의 編, '祖庭事苑' 제5 單傳에

傳法祖師는 初以三藏敎로 兼行이러니 後에 達磨祖師는 單傳心印하여 破執顯宗하였나니 所謂 敎外別傳하여 不立文字하고 直指人心하여 見性成佛케 하였나니라. 然이나 不立文字의 失意者多하여 往往謂하되 屛去文字하고 以默坐로 爲禪하니 斯實吾門啞羊耳요 且萬法紛然하니 何止不立文字리오. 殊不知道猶如通하고 豈拘執一隅아. 故로 卽 文字하면 而文字不可得이니라 文字旣爾하니 餘法도 亦然하리니 見性成佛의 所以也니라.

라고 하여 있는 바와 같이 不立文字의 眞意는 破執顯宗하는데 있는 것이다.(이상의 모든 문헌에 모두 達磨大師부터가 不立文字를 주장한 것같이 말하고 있지만 이하에도 논증하는 바와 같이 달마는 결코 그런 문구를 사용한 일도 없을 뿐 아니라 또 문자를 경시하는 태도를 취한 일도 없었다.) 곧 불교의 근본 목적은 어떠한 宗임을 막론하고 見性成佛에 있지 아니한 宗이 없다. 경론상에도 이러한 취지가 명론되어 있는 것이지마는 중생들은 경론의 이와 같은 근본 취지는 망각하고 도리어 경론의 言說文字에만 집착하므로 이것을 破하기 위하여 不立文字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를 屛去하고 默坐하는 것만이 선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啞羊에 불과하다. 만약 문자에 局執하는 자를 위하여 不立文字를 주장한 것이라 하면 어찌 默坐 禪의 局執은 파하지 않을 수가 있으리오. 要는 見性成佛에 있는 것이지 문자를 세우고 좌선을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일본 曹洞宗 螢山紹瑾의 語 '十種勅問奏對集'에

 問三曰, 禪家所謂不立文字 敎外別傳矣라 하나 雖然이나 一大藏經이 皆是文字요 禪家語錄도 亦是文字이어늘 若無文字하면 佛祖의 言敎가 依何하여 流布末世耶아.

師曰 文字는 是魚兎筌蹄也니 若得魚兎하면 則筌蹄는 渾是無所用也니다. 修多羅敎는 標月之指也라 若觀月하면 則指亦無所用也나 然이나 人皆認筌蹄하여 不得魚兎하고 認指頭하여 不觀月하니 故로 曰, 不立文字也니다.

라고 奏答하고 있다. 經律論이 言語文字인 것은 사실이다. 문자가 魚兎를 잡는 筌蹄와 같은 것이요, 명월을 가리키는 手指와 같은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魚兎를 잡고 명월을 보기까지에는 그 筌蹄와 手指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魚兎를 이미 잡아 마처고 명월을 이미 보아 마친 후에는 筌蹄와 手指가 무용지물로 되어 버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종교적 실천이 선이나 佛에게는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이 魚兎를 已獲하고 명월을 已觀한 사람에게는 筌蹄와 手指는 필요가 없는 것이지마는 아직 魚兎를 잡지 못하고 명월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緊要不可缺의 도구인 것이다. 단 筌蹄와 手指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알고, 魚兎와 明月을 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不立文字의 경구가 또한 절대 필요한 것이다. 곧 이러한 의미에서 不立文字를 본다면 선과 敎問에 아무런 問隔도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 나라 禪客 중에는 무식이나 다름이 없는 상식으로써 이상에 논증한 禪宗의 역사적인 사실을 무시하고 不立文字라 하여 불교의 교학을 만약 등한시한다면 교주 釋尊 49년간 苦口 寧의 설법에 대한 죄인이 될 뿐 아니라, 자기의 智見 啓發에도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禪宗의 所依經에 대하여(金東華)>

[참고3]도올 『碧巖錄』 講話 제1화 양무제가 달마를 만났을 때

■ 불문가지 不問可知 [아니 불/물을 문/옳을 가/알 지]

☞묻지 않아도 가히 알 수 있다. /물을 것 없이 뻔함

[예문]
▷ 이번 7·4 지방선거에 전국적으로 6만 8천명의 교원이 투개표 요원으로 차출. 특히 밤샘작업을 해야하는 개표요원의 경우 해당교사의 담당 학급은 이튿날 수업결손이 불문가지. 이와관련 일선학교는 교장 교감은 물론 교과전담교사까지 보강에 참가하는 등 선거후유증을 겪기도..<교육신문>

▷ 그는 또 "'6.15 남북정상회담'이 김정일의 결단에 의한 성과물이라고 주장하면서 민간차원이라는 미명 하에 주한미군 철수주장을 강화할 것도 불문가지"라며 "북한의 제의에 대해 정부측의 단호한 대처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매일경제--야,6.15 민족 대토론회 반대>

■ 불문곡직 不問曲直 [아니 불/물을 문/굽을 곡/곧을 직]

☞굽고 곧음을 묻지 않음. 잘잘못을 따지지 아니하고 다짜고짜 행동함.

[출전]『사기(史記)』 열전(列傳) 이사전(李斯傳)
[내용]초나라사람 이사(李斯)는 진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종실 사람들과 대신들이  진나라 사람을 제외한 다른 제후국의 신하들은 믿을 수가 없으니 쫓아내야 한다는  '축객(逐客)'의 상소를 진시황에게 올렸다. 이사는 자신도 그 명단에 포함된  사실을 알고 진시황에게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지금 폐하께서는 곤륜산의 옥(玉)과 수(隨)와 화(和)의 보배를 갖고 계시며, 명월주(明月珠)를 드리우고, 태아검(太阿劍)을 차시며, 섬리마(纖離馬)를   타시며 취봉기(翠鳳旗)를 세우시며, 영타고(靈타鼓)를 세우시니 이런 좋은 것 중에  진나라에서 생산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도 폐하께서 그것을 좋아하시는 것은  어찌해서입니까?

 반드시 진나라에서 생산된 것만 좋다하신다면,  야광벽으로 조정을 꾸미지 못하며, 서상기(犀象器)를 애호하지 못하며,  정나라 위나라의 여인들로 후궁을 채우지 못하며, 준마로 마구간을 채우지 못하며,  강남의 금석(金錫)을 사용하지 못하며, 서촉의 단청으로 꾸미지 못합니다.  또한 후궁을 꾸미고 진열하며 마음을 즐겁게 하고 이목을 기쁘게 하는 것들이  반드시 진나라에서 생산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면, 완주(宛珠)의 비녀와 부기(傅璣)의  귀걸이, 아호(阿縞)의 옷, 금수의 장식을 주상께 드릴 수 없으며 아름다운   조나라 여인을 곁에 세울 수 없습니다.

 저 옹(甕)을 치고 부(缶)를 두드리며 쟁(箏)을  타고 허벅지를 두드리며 노래하여 이목을 즐겁게 하는 것만이 본래 진나라의 음악이요,  정위의 음악과 소우(昭虞)와 상무(象武)는 다른 나라의 음악이거늘 버리지 않고, 연주하게 하는 것은 어찌해서입니까? 뜻을 흔쾌하게 하는 것을 앞에 놓고 보시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을 쓰는 것은 그렇지 않아서,
가부를 묻거나 곡직을 가리지도  않고서 진나라 사람이 아닌 자는 떠나가게 하고 손님들은 내 쫓으시려 하시니, 그렇다면 중시하는 것은 여색과 음악과 주옥이요, 경시하는 것은 인민에 있는 것이니,  이는 천하를 통치하고 제후를 다스리는 방책이 아닙니다.'

[원문]今陛下致 昆山之玉, 有隨 和之寶, 垂明月之珠, 服太阿之劍, 乘纖離之馬, 建翠鳳之旗, 樹靈 之鼓. 此數寶者, 秦不生一焉, 而陛下說之, 何也? 必秦國之所生然後可, 則是夜光之璧不飾朝廷,  犀象之器不爲玩好, 鄭衛之女不充後宮, 而駿良  不實外廐, 江南金錫不爲用,  西蜀丹靑不爲采. 所以飾後宮充下陳娛心意說耳目者, 必出於秦然後可,  則是宛珠之簪, 傅璣之珥, 阿縞之衣, 錦繡之飾不進於前, 而隨俗雅化佳冶窈窕趙  女不立於側也. 夫擊甕叩缶彈箏搏 , 而歌呼嗚嗚快耳(目)者, 眞秦之聲也;  {鄭}={衛}={桑閒}={昭}={虞}={武}={象}者, 異國之樂也. 今 擊甕叩缶而就{鄭衛},  退彈箏而取{昭}{虞}, 若是者何也? 快意當前, 適觀而已矣. 今取人則不然. 不問可否,  不論曲直, 非秦者去, 爲客者逐. 然則是所重者在乎色樂珠玉, 而所輕者在乎人民也.  此非所以跨海內制諸侯之術也.

[예문]
▷ 죄 없는 그들을 불문곡직 잡아다가 어쩌겠다는 거요?
▷ 그들은 유배지에 도착하자마자 불문곡직 옥에 갇혀 일 년 가까이 구류 살고 있으니….≪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그는 전후 상황을 불문곡직하고 나를 보자마자 대뜸 멱살을 잡았다.
▷ 사실 여부를 불문곡직하고 화부터 내면 어떻게 합니까?
▷ 앞선 여삼은 불문곡직하고 부하들과 함께 노송리 숲 속에 자리 잡은 김치원의 저택, 솟을대문을 차고 들어가….≪유현종, 들불≫

■ 불비불명 不蜚不鳴 [날 비/ 울명]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큰 일을 하기 위해 오랫동안 조용히 때를 기다림. 
 
[동]복룡봉추(伏龍鳳雛:엎드려 있는 용과 봉황의 새), 와룡봉추(臥龍鳳雛:누워 있는 용과 봉황의 병아리),용구봉추(龍駒鳳雛:뛰어난 말과 봉황의 병아리)

[출전1]『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 
[내용1]제 위왕(薺威王) 때의 일이다. 왕은 수수께끼와, 음탕하게 놀면서 밤새워 술 마시기를 즐겨 정사(政事)는 경(卿)이나 대부(大夫)에게 맡겼다.  그렇게 되자 백관들 간에는 위계 질서가 서지 않게 되었고, 제후들의 침입으로 나라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측근의 신하들은 왕에게 충성스런 간언을 감히 못하였다. 이때 순우곤(淳于곤)이 왕에게 이런 수수께끼를 냈다.  "나라 안의 큰 새가 대궐 뜰에 멈추어 있습니다. 3년이 지나도록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왕께서는 이것이 무슨 새인 줄 아십니까?" 

왕이 대답했다.  "이 새는 날지 않으면 그뿐이나 한 번 날면 하늘에 오르며, 울지 않으면 그뿐이나 한 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그 후 왕은 여러 현(懸)의 영장(令長) 72명을 조정으로 불러 그 중 한 사람은 상을 주고, 한 사람은 벌을 주었다. 그리고는 군사를 일으켜 출정하였다.  제후들이 크게 놀라서 그 동안 침략하여 차지한 제나라 땅을 모두 돌려 주었으며, 이로써 제나라의 위엄이 36년간에 걸쳐 떨쳐졌다. 

[출전2]『여씨춘추(呂氏春秋)』 중언(重言)편 
[내용2]초(楚)나라 목왕(穆王)이 죽고 아들 장왕(莊王)이 즉위하였다.  장왕은 황하 남쪽까지 세력권을 확장한 목왕과는 달리, 밤낮으로 주색에 파묻혀 있으면서 간언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했다. 왕의 이런 생활은 어느덧 3년 세월이 흘렀다. 

충신 오거(五擧)가 연회석 자리에 나와 이렇게 말하였다.  “언덕 위에 새 한 마리가 있는데,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이는 어떤 새입니까?”  장왕은 매서운 눈초리로 오거를 보더니 말했다.  “3년 동안 날지 않았으니 한 번 날면 하늘까지 이를 것이고, 3년동안 울지 않았으니 한 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오. 알았으면 물러가시오.” 

장왕은 오거의 질문의 의미를 모르는 듯 여전히 음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자 대부(大夫) 소종(蘇從)이 다시 간언을 했다. 장왕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가?”  소종은 머리를 조아린 채 말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눈을 뜨시기를 간언하는 것입니다.” 

그 후 장왕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조정으로 나와 정사를 돌보았다. 
장왕은 수많은 인물을 다시 등용하는가 하면, 부패와 부정을 일삼는 관리들을 벌주었다. 

■ 불요불굴 不撓不屈 [아닐 불/흔들 요/아닐 불/굽힐 굴]

☞뜻이나 결심이 꺾이거나 휘어지지 않는다는 뜻

[출전]『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내용]후한(後漢) 초기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지은, 기년체 역사서 《한서(漢書)》에 나오는 말로, 반고가 《한서》에서 왕상(王商)에 대해 “왕상의 사람 됨됨이는 질박하고 성격은 불요불굴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주위 사람들로부터 원한을 사게 되었다.”에서 유래한다.

불요불굴이 나오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전한(前漢)시대 성제(成帝) 때 장안(長安)에 홍수가 들 것이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대혼란이 일어났다. 성제는 대책을 세우기 위해 중신들을 소집하여 의견을 물었다. 성제의 장인인 왕봉(王鳳)은 조사도 해보지 않고 시급히 피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왕상만은 헛소문이라고 왕봉의 의견에 조금도 굽히거나 꺾이지 않고 끝까지 반대하였다. 이후 왕상의 의견이 정확하다는 것이 사실로 판명되었다. 이에 성제는 왕상을 신임하게 되었고, 왕봉을 불신하게 되었는데 왕봉은 왕상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또 왕봉의 일족인 양융이 실정(失政)하여 백성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 이를 문제삼아 왕봉의 선처에도 불구하고 왕상은 그를 처벌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아 양융은 파면되었다. 객관적이고 공명정대한 뜻을 절대로 굽히지 않는 왕상의 성품을 말한 데서 불요불굴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하였다. 보통 불요불굴을 말하기는 좋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공적인 위치에 있을 경우 불요불굴이라는 고사성어를 더욱 절실히 새겨 두어야 한다. 불요불굴은 대쪽같이 곧고 올바른 성품과 일맥상통하다.<두산백과>

[예문]
불요불굴의 정신

그들은 한결같이 불요불굴의 의지를 갖고 확신에 차 있는 사람들이었다.

독립 운동을 하면서 어떠한 난관에도 불요불굴했던 선인들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불원천리 不遠千里 [아니 불/멀 원/일천 천/마을 리]

천리를 멀다하지 않다, 먼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옴을 뜻함

[출전]『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내용]맹자가 양혜왕을 찾아 갔는데 양혜왕이 말하였다.'선생님께서는 천리를 멀다하지 않으시고 오셨으니 앞으로 우리 나라를 이롭게 할 방법이 있으신 것입니까?'
'왕은 하필이면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하시면 대부들은 어떻게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 하며, 선비나 백성들도 어떻게 내 몸을 이롭게 할 까 하고 생각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들이 서로  이로움만 취하게 되어 나라가 곧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왕께서는 인의를 말씀하셔야지 어찌  이로움만을 생각하십니까?'


[원문]孟子見梁惠王 王曰 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王曰何以利吾國 大夫曰何以利吾家 士庶人曰何以利吾身

[예문]
▷ 안전께옵서 여러분의 억울한 사정을 들으러 불원천리하고 오셨는데 이리 길을 막고 패악스러운 언사를 쓰다니!≪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나랏일을 그르치는 사람들과 싸우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불원천리하고 내려가는데 이를 빼앗기니 충애하려던 목적이 실로 낭패로다.≪문순태, 타오르는 강≫

▷ 할머니뿐 아니라 엄마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점치기를 좋아하는 버릇들이 있어서 어디 용한 점쟁이만 났다 하면 우르르 불원천리 달려갔다.≪박완서, 도시의 흉년≫

▷ 도대체 이 어인 행패요? 안전께옵서 여러분의 억울한 사정을 들으러 불원천리하고 오셨는데 이리 길을 막고 패악스러운 언사를 쓰다니!≪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불철주야 不撤晝夜 [아니 불/거둘 철/낮 주/ 밤 야]

☞밤낮을 가리지 않음. 조금도 쉴사이 없이 일에 힘씀.

[예문]
▷ 불철주야 학업에 정진하다
▷ 불철주야 연구에 몰두하다
▷ 그녀는 불철주야로 자식 잘되기만을 바랐다.
▷ 농부들은 새가 날아와 작황에 손실을 일으키지 않게 불철주야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 불철주야하는 노고
▷ 서울 올라가면 당장 출판에 걸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오륙 종의 자전을 놓고 불철주야하고 편찬에 노력한 것이다.≪염상섭, 짖지 않는 개≫

■ 불초 不肖[아니 불/닮을 초]

☞자기의 아버지를 닮지 않음. 매우 어리석고 못남. 자식이 부모에게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어버이의 덕망이나 유업을 이어받지 못함.

[출전]『맹자(孟子) 』 만장(萬章)편 상(上)/『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 /『중용(中庸)』

[내용1]“요(堯)임금의 아들 단주(丹朱)가 불초(不肖)했던 것처럼, 순(舜)의 아들도 또한 불초했다.  순이 요임금을 도운 것과 우(禹)가 순임금을 도운 것은 해를 거듭한 것이 많아서 백성들에게 혜택을 베푼것이 오래되었고, 계(啓)는 착해서 공경스럽게 우왕의 도를 계승할 수 있었으며, 익(益)이 우왕을 도운 것은 해를 거듭한 것이 적어서 백성들에게 혜택을 베푼 것이 오래되지 않았다. 

순과 우와 익 사이에 시간적 거리의 길고 짧은 것과 그 자식들의 불초함은 모두 하늘이 시킨 것이요, 사람의 힘으로는 할 바가 아니다.  특별히 하는 것이 없지만 저절로 되는 것은 하늘이요, 사람의 힘으로 달성하려 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것은 천명이다.”  요임금은 아들 단주가 불초해서 천하를 이어받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권력을 순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순에게 제위를 넘겨주는 것은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얻고 단주만 손해를 보지만, 단주에게 제위를 넘겨주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단주만 이익을 얻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요가 붕어하고 삼년상을 마쳤을 때, 순은 요임금의 뜻에 따라 천자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다.  그래서 단주에게 천하를 양보하고 자신은 남하(南下)의 남쪽으로 피했지만, 제후들이 봄과 가을에 천자를 알현하는 조근(朝覲) 때마다 단주에게로 가지 않고 순에게 왔고, 소송을 거는 사람들도 단주가 아니라 순에게로 해결해 달라고 왔으며, 송덕을 구가하는 자들은 단주가 아닌 순의 공덕을 구하였다.  그러자 순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뜻이로다!”  그리고서 도성으로 가서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맹자> 

[내용2]불초란 닮지 않은 것이고, 재능이 없는 것이며, 어질지 못한 것이고, 바르지 못한 것이며,재주가 없는 것이다<장자>
[내용3]도가 밝혀지지 않은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어질다고 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고, 못난 사람은   미치지 못한다.<중용>

[원문]丹朱之不肖 舜之子亦不肖 舜之相堯 禹之相舜也 歷年多 施澤於民久<맹자>/不肖 不似也 不 也 不正也 不才也<장자>/道之不明也 我知之矣 賢者過之 不肖者 不及也<중용>

[예문]
▷ 불초 소생 어머니께 인사 올립니다.

▷ 가문을 보존하라는 엄명이 계신지라, 아버님께서 의병장으로 산에 가셨을 때나 만주로 떠나실 적에도 이 불초, 아버님을 모시고 동행하지 못했음이 한이거늘….≪박경리, 토지≫

▷ 제가 불초하와 시부모님께 효성을 드리지 못하옵는 건 어떠한 꾸중을 들어도 당해야 싼 줄 아오나….≪이기영, 신개지≫

▷ 하나밖에 없는 아들 혁승이 불초하여 아버지의 덕으로 겨우 봉상사(奉常寺) 참봉 자리 하나 얻어….≪한무숙, 어둠에 갇힌 불꽃들≫ 


■ 불치하문 不恥下問
[아니 불/부끄러울 치/아래 하/물을 문]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출전]『논어(論語) 』공야장편(公冶長) [동]공자천주 [孔子穿珠]
[내용]춘추시대 위나라에 공어(孔圄)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의 시호는 문(文)이라하여  사람들은 그를 공문자(孔文子)라고 하였다. 논어 공야장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어느날 공자에게 물었다. "공문자는 왜 시호를 문이라고 한 것입니까?"  "그는 머리가 명민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문(文)이라고 한 것이다."

[원문]子貢 問曰 孔文子 何以謂之文也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

[예문]
▷ 그는 자존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지만 모르는 것이 있을 때에는 불치하문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 " 지난 25일 서울 종합전시관(COEX)에서 팬사인회를 가진 이상훈은 후배 조진호(24)를 이렇게 불렀다. "미국야구에 관한한 나보다 선배잖아요. 후배지만 배울 건 배워야지요."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 말라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옛말처럼 눈높이를 최대한 낮추겠다는 겸손한 자세다.--스포츠조선

■ 불편부당 不偏不黨 [아니 불/치우칠 편/아니 불/무리 당]

☞어느 편으로나 치우치지 않는 공평한 태도.

[예문]
▷ 불편부당한 태도
▷ 난 문학을 할 작정이오. 어느 정도 객관성을 지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불편부당한 입장을 견지하는 문학을 할 작정이오.≪이병주, 지리산≫

▷ 우리는 현 정부의 임기가 끝나면 선거를 치르는 90일 동안 불편부당한 과도기 정부가 권력을 잡게 돼 있다. 현재 내가 과도기 정부를 이끌 가능성이 크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2006 연합뉴스>

▷ 아울러 바른 언론이라는 원대한 이상을 향해 불편부당의 공정한 보도로 지역사회 발전의 견인차가 될 것도 당부하고 싶다<동부신문>

■ 붕우책선 朋友責善 [벗 붕/봇 우/구짖을 책/착할 선]

☞친구는 서로 착한 일을 권함. 참다운 친구라면 서로 나뿐 짓을 못 하도록 권하고 좋은 길로 이끌어야 한다.

■ 붕정만리 鵬程萬里 [붕새 붕/길 정/일만 만/거리 리])

☞붕새가 날아갈 길이 만리. 머나먼 노정. 또는 사람의 앞날이 매우 양양하다.
[동]산천만리 (山川萬里) 前途洋洋(전도양양)**길 도前程萬里(전정만리)蒼蒼少年(창창소년)**푸를 창

[출전]『장자(莊子』소요유편(逍遙遊篇)
[내용] 장자는 전설적인 새 중에서 가장 큰 붕(鵬)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북쪽 바다에 곤(鯤)이라는 큰 물고기가 있었는데 얼마나 큰지 몇 천리나 되는지 모를 정도이다. 이 물고기가 변해서 붕이 되었다. 날개 길이도 몇 천리인지 모른다. 한번 날면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같았고[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날개 짓을 3천 리를 하고 9만 리를 올라가서는 여섯 달을 날고 나서야 비로소 한번 쉬었다.”

붕정만리는 말 그대로 붕이 날아 가는 만 리를 가리키는데, 거대한 붕이 만리나 나니 그 거리는 상상을 뛰어 넘는다. 원대한 사업이나 계획을 비유할 때,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멀리 여행하거나 앞 날이 양양한 것을 비유할 때 사용된다. 반면에 작은 새들이 붕이 날아 가는 것을 보고“도대체 저 붕은 어디까지 날아가는 것일까. 우리는 비록 숲 위를 날 정도로 멀리 날지는 못해도 나는 재미가 그만인데”라고 빈정대며 말하는 것을 상식적인 세계에 만족하고 하찮은 지혜를 자랑하는 소인배에 비교하였다. 즉 소인이 대인의 웅대한 뜻을 모르는 것과 같으며, 한국 속담에도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겠느냐’가 있다.

장자의 사상에서 ‘붕’에 비유하는 말이 종종 나오는데, 대부분 웅장하거나 원대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 또는 물체를 비유할 때 등장한다. 예를 들어 붕곤(鵬鯤)·붕배(鵬背)·붕비(鵬飛)·붕도(鵬圖)는 각각 상상을 초월한 사물이나 현대적인 의미로 거대한 항공기, 분발해 큰 일을 성취하려는 것,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원대한 사업을 각각 비유할 때 사용된다.

‘도남(圖南)’은 고사성어 붕정만리에서 유래하였다. 도남은 한 번에 9만 리를 날아 6개월 동안 날아 남쪽으로 가는 것을 말하는데, 다른 곳으로 가서 거대한 사업을 벌이려는 것을 뜻한다. 장자는, 소요유란 절대적인 자유로운 세상에서 노니는 것을 말하며, 권력이나 신분·재산·권위를 초월한 완전하고 대자연의 크나큰 품인 자유 속에서 비로소 행복다운 행복, 즉 참다운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두산백과>

■ 비견계종 比肩繼踵 [가지런할 비/ 어깨 견/ 이을 계/ 발꿈치 종]

☞어깨가 맞닿고 다리가 부딪칠 정도로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리고 있는 모양. 뒤이어 연달아 끊어진 곳이 없음 

[출전]『晏子春秋』
[내용]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대부(大夫) 안영은 몸집이 작고 미남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뼈가 가루가 될 정도로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안영이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초나라 영왕(靈王)은 자국의 강대함을 교만하게 뻐겼다. 그는 대신들과 상의해 안영에게 모욕을 주려고 계략을 세웠다.  안영이 탄 수레가 초나라 도성의 동문에 접근하자, 성문이 철컥 닫혀 버렸다. 그는 성루에 있는 문지기더러 문을 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성문 옆의 조그만 문이 열렸다. 안영이 말했다. 

"이건 개나 드나드는 문이 아닌가. 나는 군자의 나라에서 온 사람인데, 그러고 보니 이 나라는 개의 나라인가 보군."  보고를 받은 영왕이 몹시 놀라며 말했다.  "그를 우롱해 주려고 생각했었는데 거꾸로 우롱을 당했군."  그리고 사람을 보내어 성문을 열게 했다. 이튿날 오전에 안영은 왕궁으로 갔다. 궁전에는 문무 고관들이 쭉 늘어 앉아 있었다. 그 중에는 안영에게 도발적이고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자도 있었으나, 그는 그것들을 가볍게 받아 넘겼다. 

이윽고 많은 시녀들을 거느리고 나타난 영왕은 안영을 보고 놀란 듯이 말했다.  "제나라에는 어지간히 인물이 없는가 보군. 그대와 같은 자를 보내다니."  "거 무슨 말씀이오. 제나라 도성은  3만호. 소매를 뻗치면 하늘을 가리고, 땀을 뿌리면 비를 이루오. 어깨가 맞닿고 다리가 서로 부딪칠 정도로 사람이 많소. 그런데 어째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영왕은 말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대 같은 소인물(小人物)을 보낸 거요?"  안영은 미소지었다.  "제나라에는 사자를 보내는 기준이 있소이다. 대인물은 현군이 있는 나라로, 소인물은 암군(暗君)이 있는 나라로 보내기로 되어 있소. 나는 무능한 소인물이므로 그에 알맞는 나라에 보내진 것이요."  영왕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리고 안영을 새삼스레 재인식하고 예우를 갖춰 대접했다

■ 비류직하삼천척 飛流直下三千尺 [날 비/흐를 류/곧을 직 /석 삼/일천 척/자 척]

물줄기가 날아 흘러 곧바로 삼천 척이나 떨어짐, 웅장하고 멋진 폭포의 모습을 뜻함
[출전] 이백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

[내용]

해가 향로봉을 비추니 자줏빛 안개가 일어나고 
멀리 폭포를 바라보니 마치 긴 냇물을 걸어 놓은 듯하네  
날 듯이 흘러 삼천척이니 
이는 아마도 은하수가 구천에서 떨어지는 듯하구나. 

[원문]

日照香爐生紫煙  일조향로생자연

遙看瀑布快長川  요간폭포쾌장천

飛流直下三千尺  비류직하삼천척

疑是銀河落九天  의시은하락구천

■ 비몽사몽 非夢似夢 [아닐 비/꿈 몽/비슷할 사/꿈 몽]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는 어렴풋한 상태.

[예문1]
새벽녘이 될 때까지 이진악은 비몽사몽 중에 오한과 열기에 떨며 누워 있었다.≪유현종, 들불≫

공연히 마음이 들쑤셔서 하릴없이 잠자리에서 비몽사몽의 경지를 헤맸다. ≪최일남, 거룩한 응달≫

[예문2]얼마전 KIGL2001 대회에 참가 했을 땐 밀린 리포트 쓰랴 밤새워 연습하랴 몇주간 하루 2시간 이상 자본적이 없다. 비몽사몽간에 시험도 치르고 대회에도 참가 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모두 놓쳐버리지는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다.
 대회에서 한 게임 지면 "공부를 포기할까" 생각하다가 반대로 시험을 못 본 날은 "게이머를 그만 둘까"로 고민한다.<서울경제--프로게이머>

■ 비육지탄 髀肉之歎 [넙적다리 비/고기 육/어조사 지/탄식할 탄]

☞넓적다리에 살이 붙음을 탄식함. 자기의 뜻을 펴지 못하고 허송세월하는 것을 한탄하다.

[출전]三國志, 蜀志
[내용] : 後漢 말 유비(劉備)는 황건적(黃巾賊)의 난을 평정하고, 조조(曹操)와 협력하여 여포(呂布)를 하비(下?)에서 격파하고 그 후 헌제(獻帝)에게 부름을 받아 좌장군(左將軍)에 임명되었으나 조조의 휘하에 있는 것이 싫어 고사(固辭)하고 형주(荊州)에 사는 유표(劉表)에게 의지했다.

 어느 날 유표에게 초대받았을 때 변소에 갔다가 넓적다리에 살이 많이 붙은 것을 보고 놀랐다. 자리로 돌아온 유표가 그의 눈물을 보고 까닭을 묻자,「유비가 말하기를 “항상 몸이 안장에서 떨어지지 않아 넓적다리에 살이 모두 없었는데 지금은 다시 말을 탈 수 없으니 넓적다리 속으로 살이 생기고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늙음이 이르는데도 공업을 세우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슬플 뿐입니다.”

[원문]備曰 常時身不離鞍하여 髀肉皆消한대 今不復騎하니 脾裏肉生하고 日月이 如流하여 老將至한대 功業不建하니 是以悲耳니라.

** 鞍(안장 안) (없앨 소) 騎(말탈 기) 裏(속 리) 業(일 업) 建(세울 건) 悲(슬플 비)

[참고]: 晩時之歎(만시지탄) 亡羊之歎(망양지탄) 望洋之嘆(망양지탄) 麥秀之嘆(맥수지탄) 風樹之嘆(풍수지탄)

■ 비일비재 非一非再 [아닐 비/한 일/아닐 비/두 재]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님. 수두룩하게 많음.

[예문1]
그가 당한 것보다 더 심한 일이 도처에 비일비재로 있었으나 누구 하나 반항할 수 없었다.

의료 사고가 많은 그 동네에서는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타지방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모여들고 또 마을 사람들이 일자리를 따라 떠나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이동하, 우울한 귀향≫

[예문2] 소비자들은 정작 자신이 사야 할 아파트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 분위기에 휩쓸려 청약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일부 아파트는 청약 전날까지 분양가조차 알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매일경제--주상복합 청약열기 문제없나>

[예문3] 영어를 배우고 외국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이면에는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귀국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다 기대했던 문화체험 역시 수박 겉핥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2006 한경비지니스>

■ 비조 鼻祖 [코 비/할아버지 조]

☞한 겨레나 가계의 맨 처음이 되는 조상. 어떤 학문이나 기술 따위를 처음으로 연 사람. 나중 것의 바탕이 된 맨 처음의 것.   [동]시조始祖

[출전]『晏子春秋』
[내용] 옛날 중국 사람들은 인간의 신체기관 중에서 제일 먼저 형성되는 것이 코라고 여겼다. 그래서 코(鼻)라면 '사람의 시초(始初)'라는 뜻이 되어, 중국 사람들은 '맨 처음' 이라는 생각을 떠 올린다. 그들은 처음 낳는 아들을 비자(鼻子)라고 한다. 우리의 장자(長子) · 차남(長男)에 해당된다.  뿐만 아니라, 옛날 중국 화가들은 초상화(肖像畵)를 그릴 때에도 코부터 그렸다. 그것이 사람의 '처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 빈계지신 牝鷄之晨 [암컷 빈/닭 계/어조사 지/새벽 신]

☞암탉이 새벽을 알린다. 여자가 남편을 업신여겨 집안 일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함
 
[속담]암탉이 물면 집안이 망한다

[출전]書經
[내용] :   주 무왕이 은(殷)나라의 주왕과 싸움을 앞두고 주왕의 죄상을 주나라 장병들에게 알리는 가운데 나온 말인데 주왕이 달기의 치마폭에서 달기의 말만 듣고 국정을 망친 사실을 하나 하나 밝히고 있다. 

"옛 사람이 말하길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법은 없다.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것은 집안이 망한다'고 했다.  그런데 은나라 왕은 여인의 말만 듣고 있다. 조상의 제사를 팽개쳐버리고 같은 조상을 모시는 백이와 숙제의 후손들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많은 죄를 짓고 곳곳에서 도망쳐 온 자들을 높이고 기르며 믿고 썼다. 이런 자들에게 높은 벼슬을 주어 백성들에게 포악한 일을 저지르게 하여 은나라를 범죄로 문란해지게 했다." 

[원문]古人有言曰 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

■ 빈자일등 貧者一燈 [가난할 빈/놈 자/한 일/등불 등]

☞원래 가난한 자의 등불 하나,물질의 다과()보다는 정신이 더 소중하다는 말.

[내용]불경()인 《현우경()》의 빈녀난타품()에서 비롯된 말이다.

석가()께서 사위국()의 어느 정사()에 머물고 있을 때 그곳 국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각각 신분에 걸맞는 공양을 하였다. 그 모습을 본 어느 가난한 여인이 "모처럼 스님을 뵙게 되었는데도 아무런 공양도 할 수 없다니 정말 슬픈 일이다"라고 한탄하였다.

그리고는 온종일 구걸하여 얻은 돈 한 푼을 가지고 기름집으로 갔다. 한 푼어치 기름으로는 아무런 소용도 되지 않았으나 그 여인의 말을 들은 기름집 주인은 갸륵하게 생각하여 한 푼의 몇 배나 되는 기름을 주었다.

난타()라고 하는 이 여인은 그 기름으로 등을 하나 만들어 석가에게 바쳤다. 그런데 그 수많은 등불 속에서 이상하게도 난타가 바친 등불만이 새벽까지 남아서 밝게 타고 있었다. 손으로 바람을 보내거나 옷자락으로 흔들어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나중에 석가는 난타의 그 정성을 알고 그녀를 비구니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

■ 빈천지교 貧賤之交 [가난할 빈/천할 천/어조사 지/사귈 교]

☞내가 가난하고 천할 때 나를 친구로 대해준 벗은 내가 부귀하게 된 뒤에도 언제까지나 잊어서는 안된다.

[내용]중국 후한(後漢) 때 광무제(光武帝)의 신하 중 송홍(宋弘)이란 사람이 있었다. 청렴 결백하고 유능하여 광무제의 신임을 받았다. 호양(湖陽) 공주가 과부가 되어, 광무제는 공주를 개가시킬 일이 걱정이었다. 공주의 의중을 물으니, 은근히 송홍이 마음에 있음을 알렸다.

 하지만 송홍은 엄연히 처자가 있는 몸, 그래서 황제는 공주더러 병풍 뒤에 숨어서 보게 하고, 송홍을 불러 넌지시 물어보았다. "속담에 듣자 하니 고귀한 사람은 남을 사귀기가 쉽고, 부유한 여자는 누구든 데려가려는 법이라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송홍은 "
貧賤之交를 잊어서는 안되고 조강지처를 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옵니다."라고 대답했다. 황제는 더 이상 물을 것도 없음을 깨닫고, 공주를 불러 송홍은 절대 조강지처를 버릴 사람이 아니므로 그를 포기하게 했다.

■ 빙공영사 憑公營私 [기댈 빙/공변될 공/경영할 영/사사로울 사]

☞공적인 일을 빌어서 사리사욕을 채움.

[예문]
▷오늘날에 나라로부터 급여를 받는 공직자가 백만도 넘는 수이지만 참다운 공인이 몇 사람이나 될 지 모르겠다. 이름만 공직자요 공무원이지 빙공영사憑公營私하는 사람이 있어 정권마다 개혁을 부르짖고 사정司正을 단행하였던 것이 아닌가?<박영호--다석강좌>

▷ 그의 개혁정치에는 일종의 미학이 있어요. 그것은 방법론의 문제라기 보다 빙공영사 (공적인 일을 빙자해 개인의 이익을 꾀함)하지 않은 그의 인간성에서 우러난 것이지요" 작가가 대원군의 개혁정책 성패보다 존재양식에 매력을 느낀 것도 이 때문이라고.<2006 한국경제 한경초대석--광화문 작가 서기원>

■ 빙탄지간 氷炭之間 [얼음 빙/숯 탄/어조사 지/사이 간]

☞얼음과 숯은 성질이 반대여서 만나면 서로 없어진다. 군자와 소인은 서로 화합하지 못함. 또는 상반되는 사물.[동]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

[내용] 漢나라 무제의 신하 동방삭은 예전 초나라의 굴원이 간신들의 모함을 받고 고향을 떠나 귀양을 갔는데 굴원의  심정으로 이 시를 지었다. 나라를 생각하는 굴원과 굴원을 모함한 간신을 얼음과 숯불에  비유하여 굴원의 절개를 부각시킨 것이다.

 
그는 박학다식하여 무제의 좋은 이야기 상대가 되었다. 언제나 어전에서 먹고 지냈는데 남은 음식이 있으면 품에 넣어 집으로 가지고 갔으며 하사받은 의복은 어깨에 걸머메고 퇴거하는 묘한 행동을 하였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미친 놈이라 하였으나 본인은 태연하였다. 동방삭의 글에 칠갑전(七諫傳)이 있는데 여기에,“얼음과 숯은 서로 나란히 할 수가 없다(氷炭不可以相竝兮).”란 말이 보인다. 곧 충성스러움과 아첨함은 같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의 비유이다.


氷炭不可以相幷兮 얼음과 숯이 서로 같이할 수 없음이여
吾固知乎命之不長 내 처음부터 목숨이 길지 못한 것을 알았노라.
哀獨苦死之無樂兮 홀로 고생하다 죽어 낙이 없음이여
惜子年之未央
       내 나이를 다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노라.

빙호지심 氷壺之心 [얼음 빙/항아리 호/어조사 지/마음 심]

☞백옥으로 만든 항아리에 얼음 한 조각을 넣은 것 같은 마음--지극히 청렴결백한 마음
[유]빙호추월[氷壺秋月]/빙설지심[氷雪之心][출전]唐詩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