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고소양 麻姑搔痒 [삼 마/시어머니 고/긁을 파 / 가려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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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부위침 磨斧爲針[갈 마/도끼 부/만들 위/바늘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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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 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의 비유 |
■ 마생각 馬生角 [말 마/날 생/뿔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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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귀에 봄바람이다. 남의 말에 잘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냥 흘려버리거나
알아 듣지 못하는 것. 또는 어리석고 둔하여 남의 말을 알아 듣지도
못하고 사리를 깨쳐 알지도 못한다. [원문]昨夜吳中雪
子猷佳興發 萬里浮云卷碧山 靑天中道流孤月 孤月滄浪河漢淸 北斗錯落長庚明
懷余對酒夜霜白 玉床金井 嶸人生飄忽百年內 且須 暢萬古情 君不能狸膏金距學斗坐令鼻息吹虹霓
君不能學哥舒橫行靑海夜帶刀 西屠石堡取紫袍 吟詩作賦北里 萬言不直一杯水
世人聞此皆掉頭 有如東風射馬耳 魚目亦笑我 請與明月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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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순자(荀子)》〈권학(勸學)〉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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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가죽으로 시체를 싼다. 전쟁터에 나가는 용장(勇將)의 각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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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지도 죽지도 않는 신선들이 사는 선경. 북해 속의 신선이 사는
산, 무위의 도를 갖춘 자유인이 사는 곳 "막고야산에 신인이 살고 있지. 그 피부는 얼음이나 눈처럼 희고, 몸매는 처녀같이 부드러우며 곡식은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용을 몰아 천지 밖에서 노닌다네. 그가 정신을 한데로 집중하면 그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병들지 않고 곡식도 잘 익는다는 거야. 이야기가 하도 허황되서 믿어지지가 않네." 연숙이 말했다. "그렇군. 장님에게는 색깔의 아름다움이 안 보이고 귀머거리에겐 음악의 황홀한 가락이 안 들리지만, 장님이나 귀머거리는 육체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닐세. 지식에도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네. 그게 바로 지금의 자네를 말하네. 신인의 덕은 만물을 섞어 하나로 만들려는 거지. 세상 사람들은 그가 천하를 다스릴 것을 바라고 있으나, 그가 무엇때문에 애써 수고하려 하겠나?. 이러한 신인은 외계의 사물에 의해 피해를 입는 일이 없고 홍수가 나서 하늘에 닿을 지경이 돼도 빠지는 일이 없으며, 큰 가뭄으로 금속과 암석이 녹아 흘러 대지나 산자락이 타도 뜨거운 줄 모르네. 신인은 그 몸의 먼지나 때, 쭉정이와 겨로도 세상 사람들이 성인이라는 요나 순을 만들 수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천하 따위를 위해 수고하려 하겠는가." 장자가 말하고 있는 막고야산은 바로 무위의 도를 갖춘 자유인이 사는 곳을 가리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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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맞아 서로 거스리는 일이 없는, 死生을 같이할 수 있는
친밀한 벗.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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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혹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
이 두 상가는 그 후 7대 황제인 무제(武帝:B.C.141∼87) 때에 악부(樂府)
총재인 이연년(李延年)에 의해 작곡되어 해로가는 공경귀인(公卿貴人),
호리곡은 사부서인(士夫庶人)의 장례 시에 상여꾼이 부르는 '만가'로
정해졌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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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이랑의 푸른 물결. 한없이 넓고 푸른 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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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고생.
▷ <노들강변>
▷ 헌재 뒤뜰 한켠에는 600여년 동안 만고풍상을 겪은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기념물 8호 백송(白松)이다. 중국 북부가 원산지인 백송은 베이징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체수가 많지 않은 희귀수종이라고 한다.<2006 세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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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의 입이 비석을 만든다. ▷ 주꾸미에게 공덕비를 세우는 일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공덕비를 많은 사람의 말이 이루는 ‘만구성비(萬口成碑)’라고도 하지 않았는가.<2007.10 서울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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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동안 목숨을 유지하여 끝이 없음,수명이
끝이 없기를 바라는 말임 |
■ 만시지탄 晩時之歎 [늦을 만/때 시/어조사 지/탄식할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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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늦었음을 한탄한다. 기회를 잃고 지났음을 한탄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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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상처투성이. 성한데가 없을 만큼 상처투성이가 됨. 또는
사물이 쓸 만한 데가 없을 정도로 결함이 많음.일이 아주 엉망이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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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가지가 다 온전한 계책, 아주 안전하거나 완전한 계책.조금의
허술함도 없는 완전한 대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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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망치는 음악이란 뜻. 음란하고 사치한 음악. 망한 나라의
음악. 애조(哀調)를 띤 음악. [원문]因復留宿.明日而習之,
遂去之晉.晉平公觴之於施夷之臺.酒 , 靈公起曰: "有新聲, 願請以示."
平公曰: "善."乃召師涓, 令坐師曠之旁, 援琴鼓之.未終,
師曠撫止之, 曰: "此亡國之聲, 不可遂也.<『韓非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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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조조가 누군인가. 지모(智謀)에 뛰어난 난세(亂世)의 간웅(奸雄)이 아니던가. 선두에 섰던 조조는 문득 절묘한 계책을 생각해내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들 힘을 내라. 조금만 더 참아라. 여기서 가까운 곳에 매화나무 숲이 있다. 거기엔 가지가 휘도록 매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고 한다. 거기 가서 우리 모두 갈증을 풀어보자." 매실이란 말을 듣자마자 모든 장병들의 입안은 침으로 흥건해졌다. 그 시디신 매실을 연상하고도 침이 나오지 않을 장사는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기운을 되찾은 장병들은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질서정연하게 진군을 할 수 있었다.≪世說新語≫ [내용2]유비가 허창에 있던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조조는 유비를 승상부로 오도록 하고는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금 전 후원의 매실이 파랗게 익은 것을 보고 작년 장수를 정벌하기 위해 행군했을 때 물이 떨어져 병사들이 고통을 겪던 일이 생각났소. 나는 그때 한 가지 묘안이 떠올라 말채찍으로 앞을 가리키며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햇소. '저 앞에는 광활한 매실나무 숲이 있는데, 그 매실은 아주 시고도 달아 우리들이 목을 축이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말을 들은 병사들은 매실의 신맛을 생각하고는 입 안에 침이
돌아 갈증을 느끼지 않게 되었소. 그리고 오래지 않아 물 있는 곳을
찾았소. 오늘 정원의 매실을 보니 그때의 일이 떠올라 그대와
함께 담소하며 술을 마시고 싶어 불렀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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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잃고서 그 우리를 고친다. 실패한 후에 일을 대비한다. 이미
때가 늦었다. [원문]莊辛去之趙. 留五月, 秦果擧 ,巫,上蔡,陳之地.襄王流 于城陽. 于是使人發騶, 徵莊辛于趙. 莊辛曰: "諾." 莊辛至, 襄王曰 "寡人不能用先生之言, 今事至于此, 爲之奈何?" 莊辛對曰: "臣聞鄙語曰 '見 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 臣聞昔湯, 武以百里昌, 桀 紂以天下亡. 今楚國雖小, 絶長續短, 猶以數千里, 豈特百里哉? [예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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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바다를 보고 감탄한다는 뜻. 곧 남의 위대함에 감탄하면서
자신의 힘이 닿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탄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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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를 생각함. 멀리 떠나온 자식이 어버이를
사모하여 그리는 정. |
■ 망자계치 亡子計齒[죽을 망/아들 자/헤아릴 계/이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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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식 나이 세기. 이미 지나간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며
애석하게 여기다. 이미 그릇된 일은 생각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음 |
■ 망자재배 芒刺在背 [ 가끄라기 망/ 가시 자/ 있을 재/ 등질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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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한서(漢書)』 곽광전 곽광의 권력이 하늘을 뚫을 정도였으므로 선제는 내심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곽광과 함께 가는 것이 마치 가시를 등에 진것과 같이 불편하였다. 이 당시 그의 표정은 마치 무엇엔가 위협을 받는 듯 불안해 하며 굳어 있었다. 그 후 거기장군 장안세가 곽광을 대신하여 선제를 모신 적이 있었는데, 이때는 편안하고도 조용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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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가운데에서도 한가로운 때. |
■ 망진막급 望塵莫及 [바랄 망/ 티끌 진/ 말 막/ 미칠 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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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를 바라보고 미치지 못한다. 손에 넣지 못하는 것. [출전]『남사(南史)』 그런데 훗날 왕의공이 업무상의 과실로 인해 처형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때 오경지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을 보좌할 만한 능력이 없다며 관직을 버리려고 하였다. 그런데 오흥태수로 임명된 왕곤이 오경지에게 공조자리를 맡아달라고 했다. 오경지는 왕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지난번 왕의공 태수가 저를 존중해 주어 바쁘게 뛰어다녔지만 한 일이 없습니다. 이런 저에게 관직을 맡아달라고 하는 것은 물고기를 나무 위에서 기르고, 새를 물 속에서 기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인사도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왕곤이 황급히 그를 뒤 따라갔으나 흙먼지만 보일 뿐 따라갈 수가 없었다. . |
■ 매사마골 買死馬骨 [ 살 매/ 죽을 사/ 말 마/ 뼈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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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말의 뼈를 산다. 귀중한 것을 손에 넣게 위해 먼저
공을 들임. 왕은 화를 내며 물었다. "어찌된 일이냐? 천리마가 오는 도중에 죽은 것이냐? 아니면 죽은 말을 사서 가져 온 것인지 사실대로 말해 봐라." "이미 죽은 말을 샀습니다. 그 가격은 오백 금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으나 영문이나 들어 보려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되물었다. "왜 죽은 말을 샀느냐?" "대왕, 천리마는 귀한 말이라 모두들 집에 숨겨 놓지 결코 내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 오백금에 샀다고 소문이 나 보십시오. 그것도 산 천리마가 아니라 죽은 천리마가 오백 금이라면 앞을 다투어 천리마를 갖고 올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천리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왕 앞에 줄을 서게 될 것입니다." 이 소문이 전해지자 과연 천리마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났고, 왕은 천리마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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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쌓아두로 팔기는 꺼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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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구읍 의 사람. 곱고 덕스럽게 늙은 사람, 곧고 슬기로워
인생의 바른 길을 인도할 수 있는 노인 환공과 노인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주군을 축원합니다. 주군으로 하여금 배우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고, 아래 사람들에게 묻는 것을 싫어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현명한 자는 항상 곁에 간언하는 사람을 있게 합니다." "옳은 말이오. 지극히 덕스러운 자는 외롭지 않소. 한말씀만 더해 주시오." "주군을 축원합니다. 주군이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죄를 짓지 않게 해주십시오." 환공은 이 말에 안색을 바꾸고 화를 내며 말하였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죄를 짓고, 신하가 군주에게 죄를 짓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군주가 신하에게 죄를 짓는다는 말은 일찍이 듣지 못했소. 이는 앞의 두 말과는 다른 것이니 고치시오." 그러자 노인은 앉아 절을 하고는 일어나며 말하였다. "이 말은 앞의 두 말이 자란 것입니다. 자식이 애비에게 죄를 짓는 것은 주위의 친척 때문이고, 신하가 군주에게 죄를 짓는 것은 주위의 편벽된 신하 때문이니, 모두 오해를 풀어 사면해 줄 수 있습니다. 옛날 걸(桀)은 탕(湯)에게 죄를 지었고, 주(紂)는 무왕(武王)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이것은 군주가 신하에게 죄를 지은 것으로 오늘날까지 사면 되지 못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환공은 크게 기뻐하며 노인을 수레에 태우고 돌아와 예를 다하였다. 이와 같이 맥구읍인이란 곧고 슬기로워 인생의 바른 길을 인도할 수 있는 노인을 가리킨다.<두산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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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만 무성하게 자란 것을 탄식함. 고국의 멸망을 탄식하다. 이러한 은나라 주왕에게도 훌륭한 세 명의 신하가 있었다. 논어에서 공자는 "미자(微子)는 떠나고 기자(箕子)는 종이 되고 비간(比干)은 간하다가 죽었다"고 하며 은 나라에는 세 어진 이가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그러나 주왕은 나라를 망치려고 어진 세 신하의 간절한 충언을 듣지 않았다. 미자는 주왕의 이복형으로 아무리 간해도 주왕이 듣지 않자 국외로 망명을 하였다. 기자(箕子)는 주왕에게 간곡한 충고를 했으나 주왕이 들어주지 않자 목숨이나 부지하여 나라를 건지는 방법을 찾으려고 거짓으로 미친 사람 행세를 하며 남의 집 종이 되어서 세상을 숨어살았다. 비간(比干)은 극간을 하다가 능지처참을 당하고 은나라는 결국 망하고 주나라가 세워지게 되었다. 국외로 망명했던 기자는 무왕을 보좌하다가 조선의 왕으로 봉해진다.그래서
주나라의 도읍으로 가던 중 옛 은나라의 도읍을 지나게 되었다.
번화하던 도읍은 흔적도 없어지고 황폐해진 궁궐 자리엔 보리와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지난날의 감회에 젖어 맥수지가(麥秀之歌)를
지어 殷의 도읍은 간데 없고 궁궐터에 보리와 기장만이 무성함을 탄식하였다.
[참고1]기자동래설--기자는
주왕의 횡포를 피하여 혹은 주나라 무왕이 조선왕으로 책봉함에 따라
조선에 들어와 예의,밭갈이,누에치기,베짜기와 사회교화를 위한 팔조지굘를
가르쳤다고 하나 이는 후세사람들에 의한 조작이라는 설이 지배적임,왜냐하면
진나라의 학자인 두예가 그의 저서 <춘추석례>의 주에서 기자의
무덤이 양나라의 몽현에 있다고 적고 있는 만큼 기자동래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임 1. 단군조선; 기원전 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시기 신석기시대 씨족사회로 부족국가는 아니나 씨족의 무리가 단군신앙을 숭배햇지요 그러나 이시대의 기록은 아무것도 남아 잇지않읍니다 나는 그것으로 보아 아마 전설속에 나오는 배달국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단군이 박달나무임금이란 뜻인데 배달이라는 뚯이 밝다에서 왓다고 합니다 배달을중국에서 한문으로 표기과정에서 박달나무 단자로 쓴것 같읍니다 그리고 배달국을 나라로 인정하기 싫어서 임금 군자를 붙인것 같읍니다 2.청동기시대[기자조선]; 우리나라 학설은 청동기 문화가 기원전 12세기경에 시베리아로 부터 들어온것으로 되어잇으나 중국 춘추전국시대 기록에 의하면 중국 주나라가 기자를 왕으로 봉해 동쪽으로 갓다는 공자님 기록이 남아 잇읍니다 이시기부터 고조선은 실제 존재하는 역사시대가 되는겁니다 그러나 그당시 주나라는 황화강 상류의 국가엿읍니다 그러니 기자를 왕으로 봉해서 동쪽으로 같다는것은 고조선이 아니라 황화강 하류의[산동반도] 제나라를 이야기 하는것같읍니다 주나라는 우리나라 서해안을 국경선으로 접하지 못하고 춘우전국시대와서 우리나라와 국경선을 접합니다 3.평양조선; 고조선이 원래는 요동에 잇엇으나 기원전 5세기경에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연나라와 크게 전쟁을 붙어 고조선이 이천여리의 땅을 잃고 패하게 됩니다 그결과로 고조선의 국경선이 만리장성에서 요하강서쪽의 땅을 잃게 되자 고조선은 요동에서 일부는 송화강 유역으로 가 부여를 세웟고 다른 일부는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게 됩니다 이때부터 고조선이 망할때까지 평양을 수도로 삼고 활약합니다 4.위만조선 고조선이 평양으로 옮겨와 체제를 정비하고 요동과 요서지역을 회복할때 중국에서는 진나라가 망하고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가 패권을 다투자 전쟁을 피해 산동반도의 고조선 유민들이 배를 타고와 한강이남에 정착하며 진을 세웟고 북경주변의 고조선 유민[위만세력]들이 만리장성을 넘어 요서지역으로 들어오자 고조선의 왕은 철기문명을 위만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중국침략에 대비하고 송화강 유역에 부여와 한강이남의 진을 정벌하려 하자 위만이 쿠테타를 잃으켜 정권을 잡고 왕이 되엇읍니다 이시기를 위만 조선이라 부릅니다 5.한4군 위만조선이 부여와 진을 속국으로 삼고 한과 무역을 직접 못하게 막으면서 중게 무역으로 부를 쌓자 한무제는 군사를 잃으켜 위만 조선을 침략하고 평양조선을 점령하고 4개의 한라라의 군으로 편입해 버립니다 그군의 위치가 한반도 북서부에[평안도와 황해도 일부지역] 위치합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부족국가들은 한사군과 전쟁을 통해 삼국으로 재편됩니다 [참고2]
槿花世界已沈淪 (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비렸어라. 秋燈掩卷懷千古 (추등엄권회천고)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 (난작인간식자인)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 길재의 시조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듸 업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풀이> 오백년 도읍지(고려의 옛 서울)를 한 필의 말에 의지해 돌아보니 산천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데, 당대의 훌륭한 인재들은 간 데 없구나. 아아, 태평세월을 지냈던 그 때가 꿈처럼 허무하기만 하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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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거북이가 다행히 물에 뜬 나무를 붙잡게 되었다. 불법을 만나기가
어려움.매우 힘든 행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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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어머니가 맹자를 가르치기 위하여 세 번 집을 옮긴 고사.
아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좋은 환경을 가려서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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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지가 입을 닫기가 무섭게 좌중에 날아든 소리가 있었다. "장님이 애꾸눈 말을 타고 한밤중에 깊은 못가에 이르기"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보니 소리의 주인공은 참군이라는 낮은 벼슬을 하고 있는 사나이였다. 그가 뱉은 한마디는 우스갯소리의 대가(大家) 세 사람의 '작품'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관 대작들이 놀고 있는데 함부로 끼어 든 것은 무엄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게다가 은중감은 공교롭게도 그때 한쪽 눈을 다친
상태여서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하게 되었지만 그 외람된 사나이를 어쩔
수도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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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는 부처로부터 28대 조사이며 제2조가 되는 혜가를 만나 이입사행과 선의 정법을 전했다 한다. 6세기초 달마는 서역에서 화북으로 건너와 주로 낙양에서 활동했다. 숭산 소림사 천연토굴에서 9년간 옷한벌로 면벽수행을 하였다. 9년동안 잠도 자지 않고 정진하던 중에 자꾸 잠이 와서 속눈썹을 모두 뽑아서 버리고 눈꺼풀을 손톱으로 잘라서 버렸는데 그것이 차나무가 되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달마는 중국인들에게 부탁하는 것을 싫어하여 강을 건널 때 매화나누나 갈대를 꺾어 타고 건넜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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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내심으로는 배반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