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침안면 高枕安眠
[높을 고/베개 침/편안할 안/잘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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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를 높이 하여 편히 잘 잔다는 뜻. 근심 없이 편히 잘 잠. 안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함. [참고]고침단명(高枕短命)--높은 베게가 수명을 단축시킨다. |
■ 고황지질 膏肓之疾 [염통밑 고/명치끝 황/어조사 지/ 병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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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칠 수 없이 깊이 든 병. 1. 명종 때, 이황 연시조 <도산십이곡> 12수
중 제1곡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시골에 파묻혀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다고(공명이나 시비를 떠나 살아가는 생활) 어떠하랴? 더구나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고질병처럼 된 버릇을 고쳐서 무엇하랴? 2. 정철 가사 <관동별곡> 제1행 |
■ 고희 古稀 [옛 고 / 드물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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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인생70이 예로부터 드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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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1] 연령(年齡)을
나타내는 漢字語 [참고2] : 결혼기념일(結婚記念日)을 나타내는 漢字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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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고화과 曲高和寡 [굽을 곡 / 높을 고/화할 화 /적을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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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옥은 초왕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가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길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아주 쉬운 통속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위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여 따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조금 수준이 있는 노래를 부르자 그를 따라 노래 부르는
사람이 훨씬 적었습니다. 다시 더 어려운 노래를 부르자, 불과
십여 명만이 따라 불렀습니다. 나중에 아주 어려운 노래를 부르자 두세
명만이 따라 할뿐이었습니다. |
■ 곡돌사신 曲突徙薪 [굽을 곡 / 높을 고/화할 화 /적을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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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을 구부리고 굴뚝 가까이에 있는 땔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기다.
화근을 미리 치움으로써 재앙을 미연에 방지함. 일의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인은 잔치를 베풀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이웃 사람들의 노고에 대한 보답이었다. 손님들의 좌석도 불을 끌 때 힘쓴 정도에 따라 상석(上席)부터 차례로 배치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처음에 굴뚝을 고치고 땔나무를 치우라고 말해준 나그네의 공로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잔치판이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어떤 사람이 시 한 수를 썼는데 두 구절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불에 덴 사람만 귀빈 대접을 받는구나[曲突徙薪無恩澤 焦頭爛額是上賓] |
■ 곡학아세 曲學阿世 [굽을 곡 / 배울 학 / 아첨할 아 / 세상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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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와 함께 등용된
소장학자 공손홍(公孫弘)도 원고생이라는 늙은 신하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원고생은 공손홍에게 태연한 자세로 이르기를,“요즘 學의
도는 어지러워지고 속설이 유행하고 있네. 이대로 두면 유서 깊은 학의
전통은 마침내 사설(邪說)로 말미암아 그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네.
그대는 다행히 젊고 好學의 선비라고 들었네. 부디 올바른 학을 열심히
배워 세상을 넓히도록 노력하게. 절대로 자기가
옳다고 믿는 학설을 굽히어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첨하지 않기를 바라네.”공손홍은
원고의 훌륭한 임품과 학식에 감복하여 자신의 무례함을 사과하고 제자가
되었다. 당시 이름 있는 시인들은 거의 원고의 제자였다고 한다 **歪曲(왜곡).阿附(아부).阿諂(아첨) [예문] ▷ 최근 신문지면을 통해 소설가 이문열씨와
이른바 곡학아세(曲學阿世) 공방을 벌였던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25일 "이문열씨의 글에서는 역사와 정의를 찾을 수 없다"고
비판,논쟁이 확산되고 있다.<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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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계지웅 滑稽之雄 [익살스러울 골/헤아릴 계/어조사 지/수컷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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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제일 가는 슬기로운 사람.≒麒麟兒. 蓋世之世 |
■ 골육상쟁 骨肉相爭 [뼈 골/고기 육/서로 상/다툴 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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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들은 문제는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고 한다. 이때
조식의 나이 열 살이었다. 이후 사람들은 형제간에 서로 다투는 것을
두고는 흔히 이 고사를 인용하였다. 그리고 아주 뛰어난 문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은 칠보지재(七步之才)라 불렀으며,
뛰어난 문학 작품을 칠보시라 하였다. |
■ 공문십철 孔門十哲 [성씨 공/문하 문/열 십/밝을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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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문인 중 학덕이 뛰어난 10명의 뛰어난 제자.≒사과십철
四科十哲 |
■ 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 [빌 공/손 수/올 래/빌 공/손 수/갈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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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죽을 때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獨一物常獨露(독일물상독로) 湛然不隨於生死(담연불수어생사)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여
[예문] 청사초롱에 불밝혀라 잊었던 낭군이 다시 찾아온다 공수래는 공수거요 놀아가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얼사 좋아 얼시구나 좋다 범나비는 이리저리 훨 훨 훨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태평가] |
■ 공자왈맹자왈 孔子曰孟子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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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왈 맹자왈 한다. 글방 선비들이 다만 孔孟의 전적(典籍)을
읽으며 그에 하등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空理空論만 일삼음을 보고 하는
말. |
■ 공자천주 孔子穿珠 [뚫을 천/구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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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뜻으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말. . |
■ 공전절후 空前絶後 [빌 공/앞 전/끊어질 절/뒤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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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할 만한 것이 이전이나 이후에도 없을 것으로 생각함. |
■ 공중누각 空中樓閣 [빌 공/가운데 중/집 루/집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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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 누각을 지은 것처럼 근거가 없는 가공의 사물.≒신기루
蜃氣樓 , 沙上樓閣 (사상누각) |
■ 공즉시색 空卽是色 [빌 공/곧 즉/이 시/색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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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참모습은 공(空)일 뿐 실체가 아니라는
말. 본성인 공(空)이 바로 색(色), 즉 만물(萬物)이라는 말. 만물의
본성인 공이 연속적인 인연에 의하여 임시로 다양한 만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 주제 : 이별이 지닌 가치의 역설적 찬미 |
■ 과공비례 過恭非禮 [지나칠 과/공손할 공/아닐 비/예도 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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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겸손(공손)은 도리어 실례가 됨 |
■ 과유불급 過猶不及 [지날 과/같을 유/아니 불/미칠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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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 중용(中庸)을 가리키는 말.(=過不及) |
■ 과전이하 瓜田李下 [오이 과/밭 전/오얏 리/아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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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말. |
■ 관도지기 貫道之器 [꿸 관/법도 도/어조사 지/그릇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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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文)이란 도(道)를 관철하는 수단이란 의미로, 문장에서 도가
근본이요 수사(修辭)나 기교(技巧)는 말단에 해당된다는 이론. ▷ 성현의 교훈은 육경에 실려 있으니, 육경이란 도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어찌 이것을 녹봉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도가 나타난 것을 일러 문이라 하니, 문이란 도를 꿰는 그릇입니다. 어찌 이것을 문사의 자구나 꾸미는 기교라 하겠습니까?(聖賢之訓 載在六經 六經者 入道之門也 豈期以此爲干祿之具耶 道之顯者 謂之文 文者 貫道之器也 豈期以此爲雕蟲篆刻之巧耶) ≪율곡전서 습유 잡저 문무책≫ |
■ 관중규표 管中窺豹 [대롱 관/가운데 중/엿볼 규/표범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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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롱 속으로 표범을 엿본다는 말로 세상 물정을 알지 못하는
좁은 식견을 뜻함 통관규천(通管窺天)
--대롱(管)을 통해(通) 하늘 보기(窺), 견문이 좁은 사람 비유 |
■ 관포지교 管鮑之交 [대롱 관/절인 생선 포/어조사 지/사귈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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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사이의 매우 다정하고 허물 없는 교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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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괄목상대 刮目相對 [눈비빌 괄/눈 목/서로 상/기다릴 대]▶플래시 보기(출처-즐거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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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비비고 보며 상대를 대한다. 한동안 못 본 사이에 상대방의 학식이나 재주가 몰라보게 달라짐. 몰라보게 달라짐, 눈에 띄게 달라짐 [출전]『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여몽전주(呂蒙傳注) |
■ 광일미구 曠日彌久[빌 광/날 일/더할 미/오랠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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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쓸데없이 오래 끌고 머물며 세월만 보낸다는 뜻. 쓸데없는
소모전 ≒광일지구(曠日持久), 광구(曠久) |
■ 광풍제월 光風霽月[빛 광/바람 풍/갤 제/달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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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과 맑은 달, 비 갠뒤의 바람과 달,아무거리낌이 없는 맑고 밝은 인품 [출전] 宋書 周敦滯傳 소식(蘇軾)과 함께 북송(北宋) 시대의 시를 대표하는 황정견(黃庭堅 :1045-1105) 은 주돈이에 대하여 깊은 경의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의 인간성에 대하여, "춘릉(春陵)의 주무숙(周茂叔)은 인품이 몹시 높고, 가슴속이 담박 솔직하여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다" 고 평하고 있다. 광풍제월(光風霽月)이란 , "깨끗하게 가슴
속이 맑고 고결한 것, 또는 그런 사람"에 비유하여 사용되고 있다.
또 "세상이 잘 다스려진 일"을 뜻하기도 한다. . |
■ 괘관 掛冠[걸 괘/갓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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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직에 있는 자가 제복에 딸린 관(冠)을 벗어 걸어 놓음. 관직을 사임함. [출전] 후한서(後漢書) '봉맹전(蓬萌傳)' 후한 사람 봉맹(蓬萌)은 비록 도둑을 잡는 정장(亭長)이었지만 '춘추(春秋)'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전한(前漢)의 12대 왕 애제(哀帝)가 죽고 왕망(王莽)이 평제(平帝)를 세웠지만 왕망은 평제의 어머니인 위희(衛姬)와 그 집안 식구가 도읍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또 그 일을 간한 장남 왕우(王宇) 내외를 죽였다. 이것을 본 봉맹은 친구에게 "삼강(三綱)은 이미 끊어졌다. 지금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들에게도 재앙이 미칠 것이다." 라고 말하고 그 자리에서 갓을 벗어 동도문(東都門)에 걸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요동(遼東)에서 숨어 지냈다. 봉맹은 왕망이 멸망하리라는 것을 알고 머리에 기와로 만든 분을
올려 놓고 시장거리에서 큰 소리로 울면서 "아! 신(新)나라여,
신(新)나라여(왕망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세운 나라)." 라고
말하면서 거리를 지났다. 왕망이 멸망하고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즉위하자 태수(太守)가 억지로 조정에 들어오려 했으나 칙령(勅令)을
내려 응하지 않았다. |
■ 교각살우 矯角殺牛[바로잡을 교/뿔 각/죽일 살/소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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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이 언론의 보도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무언의 전제 아래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에만 동조해 언론개혁을 촉구하는 것은 소를 죽이더라도 쇠뿔을 고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주문과 다를 바 없다. <중앙일보 김영희 칼럼> |
■ 교언영색 巧言令色 [교묘할 교/말씀 언/좋을 령/빛 색]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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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묘한 말과 억지로 꾸민 얼굴 빛. 겉치레만 할 뿐 성실하지 못한
태도. [예문] |
■ 교외별전 敎外別傳 [가르칠 교/바깥 외/다를 별/전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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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經典) 바깥의 특별한 전승(傳承). 마음과 마음으로 뜻을 전함. 이는 표월지(標月指: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비유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진리를 달에 비유한다면 교(敎)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으며, 이에 반해 선(禪)은 달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다른 종파(宗派)가
모두 교내의 법을 가르침에 반하여, 선종에서만은 교외의 법을 주장하는
것이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그러면 이 以心傳心 敎外別傳說의 근거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拈華微笑 敎外別傳說이다. 선종의 宗旨는 경론 等이나 기타 언설에 의하여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언설이외에 師資가 相接하여 以心傳心의 방법으로써 불타의 正法眼藏을 상전한다는 것인 바 이 기원은 벌써 교주 석존으로부터 시작되어 석존이 摩訶迦葉에게 拈華微笑의 방법으로써 정법안장을 전하신 것을, 그 후 27祖가 모두 以心傳心의 방식으로, 代代 전법을 하였다 하여, 그 純一無雜性을 敎家에 대하여 자랑한다. 그러면 이 以心傳心說을 전하는 문헌은 과연 무엇인가. 중국 宋代 道原의 作인(서기 1004년 作) '景德傳燈錄'에는 아직, 이 설의 기록이 없다.k 此書는 구체적인 선종사로서 가장 중요한 문헌이다. 중국 선종의 初祖라 하는 達磨大師가 東來한 것은 서기 478년으로 추정되는 바, 이보다도 526년이나 後世에 저작된 이 '傳燈錄'에도 선종 別立의 근거인 拈華微笑, 以心傳心說의 記載가 없다. 이 '傳燈錄'에 의하여 저작된 宋 契嵩의 '正宗記'(1060년 이전 作)에는, 혹 말하기를 여래께서 靈山會中에서 捻華示之하시니 迦葉이 微笑하였는지라, 곧 이에 付法하셨다. 또 가로대 여래는 법을 多子塔 앞에서 대가섭에게 付하셨다 라고 하니 世는 모두 이로써 전수의 實이라 하나, 그러나 이는 아직 그 출처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稱取하나 또한 果敢히 써 審詳하지 않노나.(同書 卷1末) 라고 하여 오히려 그 설을 전적으로는 取信하지 않았다. 이에 의하여 본다면 宋代에 들어와서 비로소 이러한 전설이 점차 떠돌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40년 후에 著作된 '建中靖國續燈錄' 卷1에 의하면(1101년 作), "四十九年 三乘顯著, 拈花普示 微笑傳"이라 있고 또 그 후(1183년)에 저작된 '聯燈會要' 卷1에 의하면 비로소 세존이 在靈山會上하사 拈花示衆하시니 衆皆默然이나 唯迦葉이 破顔微笑하니 세존이 云하사되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 微妙法門하니 不立文字하고 敎外別傳하노라 하시고 付囑摩訶迦葉하시다. 라고 하여, 점차 공공연하게 나타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 拈花微笑 敎外別傳說의 근원적인 근거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宋代 智胎의 著 '人天眼目'(1188년 作) 제5 宗門雜錄에, 王荊公 (王安石)이 佛慧泉禪師에게 問云, 禪家에 所謂 拈華는 出在何典이닛가. 泉云 藏經에도, 亦不載로다. 云曰 余頃在翰林苑하여 '大梵天王問佛決疑經' 三卷을 보고 因閱之하니 經文所載가 甚詳하더이다. 梵王이 至靈山하여 金色波羅花를 佛께 드리고 몸을 버려 床坐를 삼아 佛께 請하여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시게 하니 세존은 登坐하사 拈花示衆하시니 人天百萬이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홀로 金色頭陀가 있어 破顔微笑하니 세존이 云하되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하니 分付摩訶迦葉하노라"라고 이 經은 帝王이 事佛하여 請問하는 것을 多談하였는지라 所以로 秘藏되어 世에 듣는 자가 없었다. 라고 되어 있다. 곧 王安石 時代에는 이 '大梵天王問佛決疑經'이라는 經이 翰林苑에 있었다 하나 그러나, 이 경이 대장경 중에 편입되어 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아무 經錄上에도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로써 미루어 보면 이 경은 위경임이 명백하고 또 따라서 拈花微笑 敎外別傳說도 후세인들에 의해 造된 일종의 망설임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전설이 造되게 된 동기는 宋에 이르러 선종의 宗勢가 隆盛하여지니 다른 敎宗佛敎에 그 독특성을 誇張할 필요에 의하였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뿐 아니라, 선종의 28祖의 系譜說도 역시 후세에 造된 것으로 (이에 詳論의 餘裕가 없어 省略하나) 선종으로서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이러한 전설들을 造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은 達磨에 의해 禪法이 初傳된 이래 300여년간에 선이 一宗으로서 堅固한 지반을 닦아서 日就月盛하여 가는 途上에 있으므로 自宗의 系譜를 확실히 해 두어야 할 필요가 28祖說과 또 自宗의 純粹佛敎性을 표시해야 할 必要上 敎外別傳說을 구상해 내었던 것이 아닐까한다. 특히 중국 唐代에까지 융성하였던 모든 교종들은 다 각각 그 所依의 경론이 분명하여 불교로서 행세하는데 유력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선종만이 그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 이류를 밝히기 위하는 同時에 타종의 所依經論보다도 오히려 더 유력한 근거설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扶宗的 운동은 中唐 이후 宋代의 일이었고 禪法을 初傳한 達磨大師로부터 神秀?iddot;慧能에 이르는 禪宗成立時代에 있어서는 그러한 전설이란 전연 없었던 것임에 주의해야 한다. 不立文字의 意義 중국의 圭峯 宗密의 (780-841) '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에 "然達磨西來唯傳心法 故自云我法 以心傳心 不立文字"라 하여 있고, 또 '景德傳燈錄' 楊億의 序에도 "首從於達磨 不立文字 直指心源 그러나 이러한 扶?이라 하여 문자를 不立하였다는 점에 강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들릴는지 모르나, 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以心傳心'한다는데, 그 진정한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대개의 禪客들은 不立文字에 禪宗의 주안점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지 않는가 한다. 그 증거가 대개의 禪客들이 三藏을 무시해 온 것이며 문자를 경시하는 標本으로 六祖 慧能大師의 無識을들고 있다. 그러나 六祖가 경을 중시한 증거는 있을지언정 무시한 증거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이 선종의 宗旨인 바 이 三句 중 "直指人心 見性成佛"이 목적이요 不立文字는 그 목적 달성을 위한 한 수단방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宋代 睦庵 善鄕의 編, '祖庭事苑' 제5 單傳에 傳法祖師는 初以三藏敎로 兼行이러니 後에 達磨祖師는 單傳心印하여 破執顯宗하였나니 所謂 敎外別傳하여 不立文字하고 直指人心하여 見性成佛케 하였나니라. 然이나 不立文字의 失意者多하여 往往謂하되 屛去文字하고 以默坐로 爲禪하니 斯實吾門啞羊耳요 且萬法紛然하니 何止不立文字리오. 殊不知道猶如通하고 豈拘執一隅아. 故로 卽 文字하면 而文字不可得이니라 文字旣爾하니 餘法도 亦然하리니 見性成佛의 所以也니라. 라고 하여 있는 바와 같이 不立文字의 眞意는 破執顯宗하는데 있는 것이다.(이상의 모든 문헌에 모두 達磨大師부터가 不立文字를 주장한 것같이 말하고 있지만 이하에도 논증하는 바와 같이 달마는 결코 그런 문구를 사용한 일도 없을 뿐 아니라 또 문자를 경시하는 태도를 취한 일도 없었다.) 곧 불교의 근본 목적은 어떠한 宗임을 막론하고 見性成佛에 있지 아니한 宗이 없다. 경론상에도 이러한 취지가 명론되어 있는 것이지마는 중생들은 경론의 이와 같은 근본 취지는 망각하고 도리어 경론의 言說文字에만 집착하므로 이것을 破하기 위하여 不立文字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를 屛去하고 默坐하는 것만이 선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啞羊에 불과하다. 만약 문자에 局執하는 자를 위하여 不立文字를 주장한 것이라 하면 어찌 默坐 禪의 局執은 파하지 않을 수가 있으리오. 要는 見性成佛에 있는 것이지 문자를 세우고 좌선을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일본 曹洞宗 螢山紹瑾의 語 '十種勅問奏對集'에 問三曰, 禪家所謂不立文字 敎外別傳矣라 하나 雖然이나 一大藏經이 皆是文字요 禪家語錄도 亦是文字이어늘 若無文字하면 佛祖의 言敎가 依何하여 流布末世耶아. 師曰 文字는 是魚兎筌蹄也니 若得魚兎하면 則筌蹄는 渾是無所用也니다. 修多羅敎는 標月之指也라 若觀月하면 則指亦無所用也나 然이나 人皆認筌蹄하여 不得魚兎하고 認指頭하여 不觀月하니 故로 曰, 不立文字也니다. 라고 奏答하고 있다. 經律論이 言語文字인 것은 사실이다. 문자가
魚兎를 잡는 筌蹄와 같은 것이요, 명월을 가리키는 手指와 같은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魚兎를 잡고 명월을 보기까지에는 그 筌蹄와
手指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魚兎를 이미 잡아 마처고 명월을 이미
보아 마친 후에는 筌蹄와 手指가 무용지물로 되어 버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종교적 실천이 선이나 佛에게는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이 魚兎를 已獲하고 명월을 已觀한 사람에게는 筌蹄와 手指는
필요가 없는 것이지마는 아직 魚兎를 잡지 못하고 명월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緊要不可缺의 도구인 것이다. 단 筌蹄와 手指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알고, 魚兎와 明月을 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不立文字의
경구가 또한 절대 필요한 것이다. 곧 이러한 의미에서 不立文字를 본다면
선과 敎問에 아무런 問隔도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 나라 禪客
중에는 무식이나 다름이 없는 상식으로써 이상에 논증한 禪宗의 역사적인
사실을 무시하고 不立文字라 하여 불교의 교학을 만약 등한시한다면
교주 釋尊 49년간 苦口 寧의 설법에 대한 죄인이 될 뿐 아니라, 자기의
智見 啓發에도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禪宗의
所依經에 대하여(金東華)> |
■ 교자채신 敎子採薪 [가르칠 교/아들 자/캘 채/땔 나무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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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속맹자(續孟子)』. 말할 것도 없이 자식놈은 백 보 떨어진 곳으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가까운 곳으로 가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 곳은 언제든지 해올 수 있다. 하지만 백 리 떨어진 곳은 누가 가져가도 되니, 그 곳의 땔감부터 가져와야 우리 집 근처의 땔감이 남아 있지 않겠니?" 아들은 아버지의 깊은 생각을 이해하고 먼 곳으로 땔나무를 하러 떠났다. |
■ 교주고슬 膠柱鼓瑟 [아교 교/기둥 주/두드릴 고/비파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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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의 기러기 발을 아교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탄다.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전혀 없음. 또는 규칙에 얽매여 변통할 줄 모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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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학상장 敎學相長 [가르칠 교/배울 학/서로 상/자랄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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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고 배우면서 학업을 증진시키고 성장함 [원문]玉不琢이면 不成器요 人不學이면
不知道라. 是故로 古之王者는 建國君民에 敎學先學하니라. 雖有佳肴라도
不食하면 不知其味야요, 雖有至道나 不學하면 不知其善也니라. 是故로
知不足한 然後에 知不足하고 敎然後에 知困하니라. 知不足한 然後에
能自反야요, 知困然後에 能自强야니 故로 曰 敎學相長야니라.**肴(안주
효) |
■ 구맹주산 狗猛酒酸 [개구/사나울 맹/술 주/ 실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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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韓非者』 外儲說右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집보다 술이 잘 팔리지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마을 어른 양천에게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양천이 물었다.
"자네 집 개가 사나운가?" "그렇습니다만, 개가
사납다고 술이 안 팔린다니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사람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이지. 어떤 사람이 어린 자식을 시켜 호리병에 술을
받아 오라고 했는데 술집 개가 덤벼들어 그 아이를 물었소. 그래서 술이
안 팔리고 맛은 점점 시큼해지는 거요." |
■ 구미속초 狗尾續貂 [개 구/꼬리 미/이을 속/담비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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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꼬리를 담비의 꼬리에 잇는다. 좋은 것 다음에 나쁜 것을 잇는
것. 또는 쓸만한 인격자가 없어 형편없는 사람을 고관(高官)에 등용함.
벼슬을 함부로 줌. |
■ 구밀복검 口蜜腹劍 [입 구/ 꿀 밀/배 복/칼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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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나 배 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 속은 음흉한 것. [내용]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의 이임보(李林甫)는 임금의 총애를 받는 후궁(後宮)에게 환심을 사 재상에 올랐다. 그 후「권세와 지위가 장차 자기를 압박할 만한 사람은 반드시 여러 계책으로 제거하고 문학하는 선비들은 더욱 꺼려 혹은 함께 선한 체하다가 달콤한 말로 속이고 몰래 그를 함정에 빠뜨리니 세상 사람들이 '이임보는 입에는 꿀이 있고 배 속에는 칼이 있다'라고 하였다. [원문]勢位가 將逼己者를 必百計去之하고 尤忌文學之士하여 或陽與之善이라가 ?以甘言하고 而陰陷之하니 世謂 林甫는 口有蜜이요 腹有劍이라. ▷ 勢(세력 세) 逼(다그칠 핍) 忌(꺼릴 기) ?(먹일 담) 陷(빠질, 함정 함) [참고]歷史(역사)를 龜鑑(귀감)으로 삼는 까닭은 治亂(치란)과 興亡(흥망)의 자취를 통해 그 속에서 敎訓(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明君賢相(명군현상)이 있었던 때는 治世가, 昏主奸臣(혼주간신)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亂世가 따랐음을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唐 玄宗(당 현종·712∼755 在位)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사실 中國의 歷代(역대) 帝王(제왕) 중 그 만큼 人口에 많이 膾炙(회자)되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의 일생은 온통 劇的(극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할머니였던 則天武后(측천무후)가 망쳐놓은 大唐帝國(대당제국)을 英明(영명)한 통치로 다시 일으켜 장장 30년에 이르는 유명한 ‘開元之治’(개원지치)를 이루었다. 당나라 최대의 太平聖代(태평성대)였다. 여기에는 물론 玄宗 자신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탁월한 정치력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賢相의 登用 또한 빠뜨릴 수가 없다. 즉 그는 즉위 초부터 강력한 개혁정책을 밀고 나갔는데 이 때 그를 도왔던 이로 名宰相 姚崇(요숭)과 宋璟(송경)이 있다. 결국 천하는 未曾有(미증유)의 太平을 맞게 되어 기록에 의하면 도둑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재위 후반기의 天寶(천보·742∼755)시대는 판이했다. 玄宗의 聰明(총명)도 날로 흐려져 갔으며 忠臣(충신)은 사라지고 주위가 온통 奸臣(간신)으로 채워지면서 급기야 대당제국은 亡國(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당시 대표적 奸臣에 宰相 李林甫(이림보)가 있었다. 宦官(환관) 高力士(고력사)의 추천으로 宰相이 된 그는 간사하고 陰險(음험)했으며 猜忌心(시기심)이 많아 자신보다 훌륭한 자는 눈뜨고 보지를 못했다. 결국 그에 의해 제거된 충신만도 張九齡(장구령), 嚴挺之(엄정지), 李適之(이적지), 李邕(이옹) 등 수십 명에 달했다. 그가 政敵(정적)을 제거하는 방법은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절대로 나서지 않고 남을 시켜 처리했으며 자신은 도리어 칭찬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은밀히 온갖 죄상을 날조하고 뒤집어씌워 꼼짝 못하게 만든 다음 제거했다. 그래서 史家(사가)들은 그를 두고 이렇게 적었다. “口有蜜, 腹有劍”(구유밀, 복유검)-입술에는 달콤한 꿀을 발랐지만 뱃속에는 무서운 칼을 품고 있다. 여기서 나온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