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침안면 高枕安眠
[높을 고/베개 침/편안할 안/잘 면]
☞베개를 높이 하여 편히 잘 잔다는 뜻. 근심 없이 편히 잘 잠. 안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함. [참고]고침단명(高枕短命)--높은 베게가 수명을 단축시킨다. |
■ 고황지질 膏肓之疾
[염통밑 고/명치끝 황/어조사 지/ 병 질]
☞고칠 수 없이 깊이 든 병. 1. 명종 때, 이황 연시조 <도산십이곡> 12수
중 제1곡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시골에 파묻혀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다고(공명이나 시비를 떠나 살아가는 생활) 어떠하랴? 더구나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고질병처럼 된 버릇을 고쳐서 무엇하랴? 2. 정철 가사 <관동별곡> 제1행 |
■
고희 古稀
[옛 고 / 드물 희]
☞70세(인생70이 예로부터 드물었다)
每日江頭盡醉歸 매일강두진취귀 酒債尋常行處有 주채심상항처유 人生七十古來稀 인생칠십고래희 穿花蛱蝶深深見 천화협접심심견 點水蜻蜓款款飛 점수청정관관비 傳語風光共流轉 전어풍광공류전 暫時相賞莫相違 잠시상상막상위 조회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을 저당잡혀 미미하고
보잘 것 없음/ 穿花 꽃 사이를 뚫고 다니다/蛱蝶 호랑나비/. 深深見 때로
숨고 때론 나타나는 모양/ 蜻蜓 물잠자리/.款款 유유한 모습/ 風光
봄 경치/. 共 다 함께, 지는 꽃, 호랑나비, 물잠자리, 시인 모두를 가리/
流轉 빙빙 돌다/相賞 봄 경치와 서로 융화되어 상춘의 기쁨을 누림/
莫相違 서로 어기지 말자. |
[참고1] 연령(年齡)을
나타내는 漢字語 [참고2] : 결혼기념일(結婚記念日)을 나타내는 漢字語 紙婚式(지혼식) : 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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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고화과
曲高和寡
[굽을 곡 / 높을 고/화할 화 /적을 과]
☞곡이 높으면 화답하는 사람이 적다, 사람의 재능이 너무 높으면
따르는 무리들이 더욱 적음 그러나 그의 문장은 난해하여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그의 글을 칭찬하는 사람도 드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초왕(楚王)은 송옥에게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경(卿)의 문장을 따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오?" 송옥은 초왕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가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길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아주 쉬운 통속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위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여 따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조금 수준이 있는 노래를 부르자 그를 따라 노래 부르는
사람이 훨씬 적었습니다. 다시 더 어려운 노래를 부르자, 불과
십여 명만이 따라 불렀습니다. 나중에 아주 어려운 노래를 부르자 두세
명만이 따라 할뿐이었습니다. |
■ 곡돌사신
曲突徙薪
[굽을
곡 / 높을 고/화할 화 /적을 과]
☞굴뚝을 구부리고 굴뚝 가까이에 있는 땔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기다.
화근을 미리 치움으로써 재앙을 미연에 방지함. 일의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인은 잔치를 베풀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이웃 사람들의 노고에
대한 보답이었다. 손님들의 좌석도 불을 끌 때 힘쓴 정도에 따라 상석(上席)부터
차례로 배치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처음에 굴뚝을 고치고
땔나무를 치우라고 말해준 나그네의 공로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잔치판이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어떤 사람이 시 한 수를 썼는데 두
구절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
■ 곡학아세
曲學阿世
[굽을 곡 / 배울 학 / 아첨할 아 / 세상 세]
☞학문을 왜곡하여 세상에 아첨한다. 자신의 소신이나 철학을 굽혀
권세나 시세에 아첨함. 또한 그와 함께 등용된
소장학자 공손홍(公孫弘)도 원고생이라는 늙은 신하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원고생은 공손홍에게 태연한 자세로 이르기를,“요즘 學의
도는 어지러워지고 속설이 유행하고 있네. 이대로 두면 유서 깊은 학의
전통은 마침내 사설(邪說)로 말미암아 그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네.
**歪曲(왜곡).阿附(아부).阿諂(아첨) [예문] ▷ 최근 신문지면을 통해 소설가 이문열씨와
이른바 곡학아세(曲學阿世) 공방을 벌였던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25일 "이문열씨의 글에서는 역사와 정의를 찾을 수 없다"고
비판,논쟁이 확산되고 있다.<한국경제> |
■ 골계지웅
滑稽之雄
[익살스러울 골/헤아릴 계/어조사 지/수컷 웅]
☞천하에 제일 가는 슬기로운 사람.≒麒麟兒. 蓋世之世 |
■ 골육상쟁
骨肉相爭
[뼈 골/고기 육/서로 상/다툴 쟁]
☞뼈와
살이 서로 다툼. 같은 혈족끼리 서로 다툼. 煮豆燃豆萁 자두연두기 이 시를 들은 문제는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고 한다. 이때
조식의 나이 열 살이었다. 이후 사람들은 형제간에 서로 다투는 것을
두고는 흔히 이 고사를 인용하였다. 그리고 아주 뛰어난 문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은 칠보지재(七步之才)라 불렀으며,
뛰어난 문학 작품을 칠보시라 하였다. |
■ 공문십철
孔門十哲
[성씨 공/문하 문/열 십/밝을 철]
☞공자의 문인 중 학덕이 뛰어난 10명의 뛰어난 제자.≒사과십철
四科十哲 |
■
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
[빌 공/손 수/올 래/빌 공/손 수/갈 거]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죽을 때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 空手來空手去是人生
공수래공수거시인생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여 [예문] |
■ 공자왈맹자왈 孔子曰孟子曰
☞공자왈 맹자왈 한다. 글방 선비들이 다만 孔孟의 전적(典籍)을
읽으며 그에 하등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空理空論만 일삼음을 보고 하는
말. |
■ 공자천주 孔子穿珠
[뚫을 천/구슬 주]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뜻으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말. . 문득 바느질을 하는 사람은
쉽게 꿸 수 있을 것 같아 근처의 뽕밭에서 뽕잎을 따고 있던 아낙네에게
물어보니 “차분하게 꿀을 가지고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말했다. |
■ 공전절후
空前絶後
[빌 공/앞 전/끊어질 절/뒤 후]
☞비교할 만한 것이 이전이나 이후에도 없을 것으로 생각함. |
■ 공중누각
空中樓閣
[빌 공/가운데 중/집 루/집 각]
☞공중에 누각을 지은 것처럼 근거가 없는 가공의 사물.≒신기루
蜃氣樓 , 沙上樓閣 (사상누각) |
■ 공즉시색
空卽是色
[빌 공/곧 즉/이 시/색 색]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참모습은 공(空)일 뿐 실체가 아니라는
말. 본성인 공(空)이 바로 색(色), 즉 만물(萬物)이라는 말. 만물의
본성인 공이 연속적인 인연에 의하여 임시로 다양한 만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 주제 : 이별이 지닌 가치의 역설적 찬미 |
■ 과공비례 過恭非禮
[지나칠 과/공손할
공/아닐 비/예도 례]
☞지나친 겸손(공손)은 도리어 실례가 됨 |
■ 과유불급
過猶不及
[지날 과/같을 유/아니 불/미칠급]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 중용(中庸)을 가리키는 말.(=過不及) |
■ 과전이하
瓜田李下
[오이 과/밭 전/오얏 리/아래 하]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말. |
■ 관도지기
貫道之器
[꿸 관/법도 도/어조사 지/그릇
기]
☞문(文)이란 도(道)를 관철하는 수단이란 의미로, 문장에서 도가
근본이요 수사(修辭)나 기교(技巧)는 말단에 해당된다는 이론. ▷ 성현의 교훈은 육경에 실려 있으니, 육경이란 도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어찌 이것을 녹봉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도가 나타난 것을 일러 문이라 하니, 문이란 도를 꿰는 그릇입니다. 어찌 이것을 문사의 자구나 꾸미는 기교라 하겠습니까?(聖賢之訓 載在六經 六經者 入道之門也 豈期以此爲干祿之具耶 道之顯者 謂之文 文者 貫道之器也 豈期以此爲雕蟲篆刻之巧耶) ≪율곡전서 습유 잡저 문무책≫ |
■ 관중규표
管中窺豹
[대롱 관/가운데 중/엿볼 규/표범
표]
☞대롱 속으로 표범을 엿본다는 말로 세상 물정을 알지 못하는
좁은 식견을 뜻함 통관규천(通管窺天)
--대롱(管)을 통해(通) 하늘 보기(窺), 견문이 좁은 사람 비유
어느 날, 왕희지의 집 뜰에서 서생들이 모여앉아
노름을 하고 있었다. 이 곳을 지나가던 헌지는 노름판을 한참 동안 보다가
패가 잘 풀리지 않는 한 아저씨 에게 이렇게 훈수를 했다.
"남쪽
바람이 굳세지 못하여 형세가 불리하니 힘을 내세요."
만일 대롱의 조그만 구멍을 통해 표범을 보게 된다면, 표범의 전체 모습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단지 표범의 어느 한 부분만을 보고 이것이 바로 표범이구나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쉽다. 이렇듯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판별함에 일부분만으로 한다면 적지 않은 실수를 하게 된다. 총체적으로 관찰하고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
■ 관포지교
管鮑之交
[대롱 관/절인 생선 포/어조사 지/사귈 교]
☞친구 사이의 매우 다정하고 허물 없는 교제.
衣食足則 知榮辱 의식족즉 지영욕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 의식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 이같은 정치적인 성공은 환공의 관용과 관중의 재능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이긴 하지만 그 출발점은 역시 관중에 대한 포숙아의 변함없는 우정에 있었다. [유]竹馬故友(죽마고우)/,斷金之交(단금지교) /.金蘭之交(금란지교)./芝蘭之交(지란지교)/.知己之友(지기지우)./知音(지음)./刎頸之交(문경지교)./水魚之交(수어지교)./膠漆之交(교칠지교)-아교와 옻처럼 떨어질 수 없는 가까운 사이 [예문] ▷ 관포지교라고 알려졌던 두 친구의 관계가 여자 문제로 하루아침에 멀어졌다. ▷ 모르의 사진작품과 에세이에 대한 좋은 길잡이가 된다. 존 버거의 글 군데군데 진하게 배어 있는 두 일흔 노인의 관포지교는 이 책이 선사하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2006 데일리안> [참고]
飜手作雲覆手雨 번수작운복수우 손 뒤집으면 구름 일게 하고 손엎으면 비 오게 하니 [풀이]빈교행(貧交行)의 행(行)은 '노래'와 같다. 따라서 이 제목은 가난한 떄의 교제에 대한 노래라는 뜻이다. 작가가 장안(長安)에서 빈한한 생활을 하면서 사관(仕官)을 구하던 시절의 작품으로 보인다. 작가의 열망(熱望)에도 불구, 조정(朝廷) 사람들은 그에게 냉담해서 쉽사리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냉담한 세상에 노여움과 절망을 느낀 그가 이 시로써 어느 특정한 개인에 대한 분노를 나타낸 것이란 설도 있다. |
■ 괄목상대
刮目相對
[눈비빌 괄/눈 목/서로 상/기다릴
대]
☞눈을 비비고 보며 상대를 대한다. 한동안 못 본 사이에 상대방의 학식이나 재주가 몰라보게 달라짐. 몰라보게 달라짐, 눈에 띄게 달라짐 [출전]『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여몽전주(呂蒙傳注) |
■ 광일미구
曠日彌久
[빌 광/날 일/더할 미/오랠 구]
☞오랫동안 쓸데없이 오래 끌고 머물며 세월만 보낸다는 뜻. 쓸데없는
소모전 ≒광일지구(曠日持久), 광구(曠久) |
■ 광풍제월
光風霽月
[빛 광/바람 풍/갤 제/달 월]
☞시원한 바람과 맑은 달, 비 갠뒤의 바람과 달,아무거리낌이 없는 맑고 밝은 인품 [출전] 宋書 周敦滯傳 소식(蘇軾)과 함께 북송(北宋) 시대의 시를 대표하는 황정견(黃庭堅 :1045-1105) 은 주돈이에 대하여 깊은 경의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의 인간성에 대하여, "춘릉(春陵)의 주무숙(周茂叔)은 인품이 몹시 높고, 가슴속이 담박 솔직하여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다" 고 평하고 있다. 광풍제월(光風霽月)이란 , "깨끗하게 가슴
속이 맑고 고결한 것, 또는 그런 사람"에 비유하여 사용되고 있다.
또 "세상이 잘 다스려진 일"을 뜻하기도 한다. . |
■ 괘관 掛冠
[걸
괘/갓 관]
☞관직에 있는 자가 제복에 딸린 관(冠)을 벗어 걸어 놓음. 관직을 사임함. [출전] 후한서(後漢書) '봉맹전(蓬萌傳)' 후한 사람 봉맹(蓬萌)은 비록 도둑을 잡는 정장(亭長)이었지만 '춘추(春秋)'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전한(前漢)의 12대 왕 애제(哀帝)가 죽고 왕망(王莽)이 평제(平帝)를 세웠지만 왕망은 평제의 어머니인 위희(衛姬)와 그 집안 식구가 도읍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또 그 일을 간한 장남 왕우(王宇) 내외를 죽였다. 이것을 본 봉맹은 친구에게 "삼강(三綱)은 이미 끊어졌다. 지금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들에게도 재앙이 미칠 것이다." 라고 말하고 그 자리에서 갓을 벗어 동도문(東都門)에 걸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요동(遼東)에서 숨어 지냈다. 봉맹은 왕망이 멸망하리라는 것을 알고 머리에 기와로 만든 분을
올려 놓고 시장거리에서 큰 소리로 울면서 "아! 신(新)나라여,
신(新)나라여(왕망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세운 나라)." 라고
말하면서 거리를 지났다. 왕망이 멸망하고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즉위하자 태수(太守)가 억지로 조정에 들어오려 했으나 칙령(勅令)을
내려 응하지 않았다. |
■ 교각살우
矯角殺牛
[바로잡을 교/뿔 각/죽일 살/소 우]
☞소
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 결점이나 흠을 고치려다 수단이 지나쳐
도리어 일을 그르침. ▷ 대통령이 언론의 보도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무언의 전제 아래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에만 동조해 언론개혁을 촉구하는 것은 소를 죽이더라도 쇠뿔을 고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주문과 다를 바 없다. <중앙일보 김영희 칼럼> |
■ 교언영색
巧言令色
[교묘할 교/말씀 언/좋을 령/빛 색]
동영상
☞교묘한 말과 억지로 꾸민 얼굴 빛. 겉치레만 할 뿐 성실하지 못한
태도. [예문] |
■ 교외별전
敎外別傳
[가르칠 교/바깥 외/다를 별/전할 전]
☞경전(經典) 바깥의 특별한 전승(傳承). 마음과 마음으로 뜻을 전함. 이는 표월지(標月指: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비유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진리를 달에 비유한다면 교(敎)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으며, 이에 반해 선(禪)은 달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다른 종파(宗派)가
모두 교내의 법을 가르침에 반하여, 선종에서만은 교외의 법을 주장하는
것이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그러면 이 以心傳心 敎外別傳說의 근거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拈華微笑 敎外別傳說이다. 선종의 宗旨는 경론 等이나 기타 언설에 의하여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언설이외에 師資가 相接하여 以心傳心의 방법으로써
불타의 正法眼藏을 상전한다는 것인 바 이 기원은 벌써 교주 석존으로부터
시작되어 석존이 摩訶迦葉에게 拈華微笑의 방법으로써 정법안장을 전하신
것을, 그 후 27祖가 모두 以心傳心의 방식으로, 代代 전법을 하였다
하여, 그 純一無雜性을 敎家에 대하여 자랑한다. 혹 말하기를 여래께서 靈山會中에서 捻華示之하시니 迦葉이 微笑하였는지라, 곧 이에 付法하셨다. 또 가로대 여래는 법을 多子塔 앞에서 대가섭에게 付하셨다 라고 하니 世는 모두 이로써 전수의 實이라 하나, 그러나 이는 아직 그 출처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稱取하나 또한 果敢히 써 審詳하지 않노나.(同書 卷1末) 라고 하여 오히려 그 설을 전적으로는 取信하지 않았다. 이에 의하여 본다면 宋代에 들어와서 비로소 이러한 전설이 점차 떠돌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40년 후에 著作된 '建中靖國續燈錄' 卷1에 의하면(1101년 作), "四十九年 三乘顯著, 拈花普示 微笑傳"이라 있고 또 그 후(1183년)에 저작된 '聯燈會要' 卷1에 의하면 비로소 세존이 在靈山會上하사 拈花示衆하시니 衆皆默然이나 唯迦葉이 破顔微笑하니 세존이 云하사되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 微妙法門하니 不立文字하고 敎外別傳하노라 하시고 付囑摩訶迦葉하시다. 라고 하여, 점차 공공연하게 나타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 拈花微笑 敎外別傳說의 근원적인 근거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宋代 智胎의 著 '人天眼目'(1188년 作) 제5 宗門雜錄에, 王荊公 (王安石)이 佛慧泉禪師에게 問云, 禪家에 所謂 拈華는 出在何典이닛가. 泉云 藏經에도, 亦不載로다. 云曰 余頃在翰林苑하여 '大梵天王問佛決疑經' 三卷을 보고 因閱之하니 經文所載가 甚詳하더이다. 梵王이 至靈山하여 金色波羅花를 佛께 드리고 몸을 버려 床坐를 삼아 佛께 請하여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시게 하니 세존은 登坐하사 拈花示衆하시니 人天百萬이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홀로 金色頭陀가 있어 破顔微笑하니 세존이 云하되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하니 分付摩訶迦葉하노라"라고 이 經은 帝王이 事佛하여 請問하는 것을 多談하였는지라 所以로 秘藏되어 世에 듣는 자가 없었다. 라고 되어 있다. 곧 王安石 時代에는 이 '大梵天王問佛決疑經'이라는
經이 翰林苑에 있었다 하나 그러나, 이 경이 대장경 중에 편입되어 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아무 經錄上에도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로써 미루어
보면 이 경은 위경임이 명백하고 또 따라서 拈花微笑 敎外別傳說도 후세인들에
의해 造된 일종의 망설임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다. 不立文字의 意義 중국의 圭峯 宗密의 (780-841) '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에
"然達磨西來唯傳心法 故自云我法 以心傳心 不立文字"라 하여
있고, 또 '景德傳燈錄' 楊億의 序에도 "首從於達磨 不立文字 直指心源
그러나 이러한 扶?이라 하여 문자를 不立하였다는 점에 강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들릴는지 모르나, 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以心傳心'한다는데,
그 진정한 의의가 있을 것이다. 傳法祖師는 初以三藏敎로 兼行이러니 後에 達磨祖師는 單傳心印하여 破執顯宗하였나니 所謂 敎外別傳하여 不立文字하고 直指人心하여 見性成佛케 하였나니라. 然이나 不立文字의 失意者多하여 往往謂하되 屛去文字하고 以默坐로 爲禪하니 斯實吾門啞羊耳요 且萬法紛然하니 何止不立文字리오. 殊不知道猶如通하고 豈拘執一隅아. 故로 卽 文字하면 而文字不可得이니라 文字旣爾하니 餘法도 亦然하리니 見性成佛의 所以也니라. 라고 하여 있는 바와 같이 不立文字의 眞意는 破執顯宗하는데 있는
것이다.(이상의 모든 문헌에 모두 達磨大師부터가 不立文字를 주장한
것같이 말하고 있지만 이하에도 논증하는 바와 같이 달마는 결코 그런
문구를 사용한 일도 없을 뿐 아니라 또 문자를 경시하는 태도를 취한
일도 없었다.) 곧 불교의 근본 목적은 어떠한 宗임을 막론하고 見性成佛에
있지 아니한 宗이 없다. 경론상에도 이러한 취지가 명론되어 있는 것이지마는
중생들은 경론의 이와 같은 근본 취지는 망각하고 도리어 경론의 言說文字에만
집착하므로 이것을 破하기 위하여 不立文字라 하였다는 것이다. 問三曰, 禪家所謂不立文字 敎外別傳矣라 하나 雖然이나 一大藏經이 皆是文字요 禪家語錄도 亦是文字이어늘 若無文字하면 佛祖의 言敎가 依何하여 流布末世耶아. 師曰 文字는 是魚兎筌蹄也니 若得魚兎하면 則筌蹄는 渾是無所用也니다. 修多羅敎는 標月之指也라 若觀月하면 則指亦無所用也나 然이나 人皆認筌蹄하여 不得魚兎하고 認指頭하여 不觀月하니 故로 曰, 不立文字也니다. 라고 奏答하고 있다. 經律論이 言語文字인 것은 사실이다. 문자가
魚兎를 잡는 筌蹄와 같은 것이요, 명월을 가리키는 手指와 같은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魚兎를 잡고 명월을 보기까지에는 그 筌蹄와
手指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魚兎를 이미 잡아 마처고 명월을 이미
보아 마친 후에는 筌蹄와 手指가 무용지물로 되어 버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
■ 교자채신
敎子採薪
[가르칠 교/아들 자/캘 채/땔 나무
신]
☞자식에게 땔나무 캐오는 법을 가르치라, 무슨 일이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근본적인 처방에 힘쓰라. [출전]『속맹자(續孟子)』. 말할 것도 없이 자식놈은 백 보 떨어진 곳으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가까운 곳으로 가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 곳은
언제든지 해올 수 있다. 하지만 백 리 떨어진 곳은 누가 가져가도 되니,
그 곳의 땔감부터 가져와야 우리 집 근처의 땔감이 남아 있지 않겠니?" 아들은 아버지의 깊은 생각을 이해하고 먼 곳으로 땔나무를 하러
떠났다. |
■ 교주고슬
膠柱鼓瑟
[아교 교/기둥 주/두드릴 고/비파
슬]
☞거문고의 기러기 발을 아교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탄다.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전혀 없음. 또는 규칙에 얽매여 변통할 줄 모르는 사람. [출전]『史記』. |
■ 교학상장
敎學相長
[가르칠 교/배울 학/서로 상/자랄 장]
☞가르치고 배우면서 학업을 증진시키고 성장함 [원문]玉不琢이면 不成器요 人不學이면
不知道라. 是故로 古之王者는 建國君民에 敎學先學하니라. 雖有佳肴라도
不食하면 不知其味야요, 雖有至道나 不學하면 不知其善也니라. 是故로
知不足한 然後에 知不足하고 敎然後에 知困하니라. 知不足한 然後에
能自反야요, 知困然後에 能自强야니 故로 曰 敎學相長야니라.**肴(안주
효) |
■ 구맹주산
狗猛酒酸
[개 구/사나울 맹/술 주/ 실 산]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짐. 한 나라에 간신배가 있으면 어진 신하가 모이지
않음 [출전]『韓非者』 外儲說右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집보다 술이 잘 팔리지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마을 어른 양천에게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양천이 물었다.
"자네 집 개가 사나운가?" "그렇습니다만, 개가
사납다고 술이 안 팔린다니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사람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이지. 어떤 사람이 어린 자식을 시켜 호리병에 술을
받아 오라고 했는데 술집 개가 덤벼들어 그 아이를 물었소. 그래서 술이
안 팔리고 맛은 점점 시큼해지는 거요." |
■ 구미속초
狗尾續貂
[개 구/꼬리 미/이을 속/담비 초]
☞개꼬리를 담비의 꼬리에 잇는다. 좋은 것 다음에 나쁜 것을 잇는
것. 또는 쓸만한 인격자가 없어 형편없는 사람을 고관(高官)에 등용함.
벼슬을 함부로 줌. |
■ 구밀복검
口蜜腹劍
[입 구/ 꿀 밀/배 복/칼 검]
☞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나 배 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 속은 음흉한 것. [내용]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의 이임보(李林甫)는 임금의 총애를 받는 후궁(後宮)에게 환심을 사 재상에 올랐다. 그 후「권세와 지위가 장차 자기를 압박할 만한 사람은 반드시 여러 계책으로 제거하고 문학하는 선비들은 더욱 꺼려 혹은 함께 선한 체하다가 달콤한 말로 속이고 몰래 그를 함정에 빠뜨리니 세상 사람들이 '이임보는 입에는 꿀이 있고 배 속에는 칼이 있다'라고 하였다. [원문]勢位가 將逼己者를 必百計去之하고 尤忌文學之士하여 或陽與之善이라가 啗以甘言하고 而陰陷之하니 世謂 林甫는 口有蜜이요 腹有劍이라. * 勢(세력 세) 逼(다그칠 핍) 忌(꺼릴 기) 啗(먹일 담) 陷(빠질, 함정 함) [참고]歷史(역사)를 龜鑑(귀감)으로 삼는 까닭은 治亂(치란)과 興亡(흥망)의 자취를 통해 그 속에서 敎訓(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明君賢相(명군현상)이 있었던 때는 治世가, 昏主奸臣(혼주간신)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亂世가 따랐음을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唐 玄宗(당 현종·712∼755 在位)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사실 中國의 歷代(역대) 帝王(제왕) 중 그 만큼 人口에 많이 膾炙(회자)되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의 일생은 온통 劇的(극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할머니였던 則天武后(측천무후)가 망쳐놓은 大唐帝國(대당제국)을 英明(영명)한 통치로 다시 일으켜 장장 30년에 이르는 유명한 ‘開元之治’(개원지치)를 이루었다. 당나라 최대의 太平聖代(태평성대)였다. 여기에는 물론 玄宗 자신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탁월한 정치력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賢相의 登用 또한 빠뜨릴 수가 없다. 즉 그는 즉위 초부터 강력한 개혁정책을 밀고 나갔는데 이 때 그를 도왔던 이로 名宰相 姚崇(요숭)과 宋璟(송경)이 있다. 결국 천하는 未曾有(미증유)의 太平을 맞게 되어 기록에 의하면 도둑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재위 후반기의 天寶(천보·742∼755)시대는 판이했다. 玄宗의 聰明(총명)도 날로 흐려져 갔으며 忠臣(충신)은 사라지고 주위가 온통 奸臣(간신)으로 채워지면서 급기야 대당제국은 亡國(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당시 대표적 奸臣에 宰相 李林甫(이림보)가 있었다. 宦官(환관) 高力士(고력사)의 추천으로 宰相이 된 그는 간사하고 陰險(음험)했으며 猜忌心(시기심)이 많아 자신보다 훌륭한 자는 눈뜨고 보지를 못했다. 결국 그에 의해 제거된 충신만도 張九齡(장구령), 嚴挺之(엄정지), 李適之(이적지), 李邕(이옹) 등 수십 명에 달했다. 그가 政敵(정적)을 제거하는 방법은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절대로 나서지 않고 남을 시켜 처리했으며 자신은 도리어 칭찬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은밀히 온갖 죄상을 날조하고 뒤집어씌워 꼼짝 못하게 만든 다음 제거했다. 그래서 史家(사가)들은 그를 두고 이렇게 적었다. “口有蜜, 腹有劍”(구유밀, 복유검)-입술에는 달콤한 꿀을 발랐지만 뱃속에는 무서운 칼을 품고 있다. 여기서 나온 말이 ‘口蜜腹劍’으로 겉은 웃는 낯이지만 속으로는 사람을 해칠 무서운 생각을 품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문화가 흐르는 한자] [예문] |
■ 구반문촉
毆槃捫燭
[두드릴
구/쟁반 반/만질 문/촛대 촉]
☞쟁반을 두드리고 초를 만진다,어떤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오해함 [동]군맹모상(群盲摸象)·군맹무상(群盲撫象)·군맹평상(群盲評象)·맹인모상(盲人摸象) "태양은 동반(銅盤)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소." 그는 집으로 돌아와 동반을 찾아 구석구석 만져보고 두드려 보고는 '당당당' 하는 소리가 나자 잘 기억해 두었다. 그 후, 그가 길을 가는데 어떤 절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소리가 동반을 두두렸을 때 들은 소리와 같았으므로, 그 장님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했다. "저것이 바로 태양이오." 그러자 그 사람은 장님에게 말했다. "아니오. 태양은 동반 같기도 하지만 촛불처럼 빛을 낸다오." 장님은 집으로 돌아와 즉시 초 한 자루를 찾아 만져보고는 그 모양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약(대나무로 만든 구멍이 셋 또는 여섯 있는 피리)을
만지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이것이 정말 태양이다." |
■ 구사일생
九死一生
[아홉 구/죽을 사/한 일/날 생]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겪고 간신히 목숨을 건짐. |
■ 구상유취
口尙乳臭
[입 구/아직 상/젖 유/냄새 취]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 아직 어리다. 하는 짓이 어리석고 유치
하다. ▷ 우리 집에서는 새 며느리를 맞는다고 야단 법석을 하며 아직도
입에서 젖내가 제대로 가시지 못한, 열세살
먹은 꼬맹이에 冠帶(관대)를 입히고 紗帽(사모)를 씌워 나귀
등에 올려 앉히고 논틀을 건느고 산모롱이를 돌아 마을 앞을 지나고
고개를 넘어 이와 같은 길을 三十里 쯤이나 갔을까. 역시 어떤 農村
조그마한 초가집 앞에 내려 놓는 것이었다.≪이희승,
隨筆≫ |
■ 구십춘광
九十春光
[아홉 구/열 십/봄 춘/빛 광]
☞봄의 석 달 동안. 석 달 동안의 화창한 봄 날씨. |
■ 구여현하
口如懸河
[입 구/같을 여/매달 현/물 하]
☞입이 급히 흐르는 물과 같다. 거침없이 말을 잘하는 것. [원문]廳象語면 如懸河하여 瀉水注而不竭이라
[예문] |
■ 구우일모
九牛一毛
[아홉 구/소 우/한 일/터럭 모]
☞아홉 마리의 소 중에 하나의 털. 많은 것 가운데 극히 미미한 하나. [출전] 『한서(漢書)』司馬遷, 報任安書
그러나 그런 武帝에게도 북쪽의 오랑캐 匈奴(흉노)만은 커다란 두통거리였다. 영토를 넓히기는 커녕 侵攻(침공)과 掠奪(약탈)을 당해야 했으니 大漢帝國(대한제국) 武帝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장군 李陵(이릉)을 시켜 匈奴를 치게 했지만 오히려 패하여 항복하고 말았다. 武帝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다들 李陵을 逆賊(역적)으로 몰아 부쳤다. 그러나 『사기(史記)』의 저자司馬遷(사마천)만은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武帝가 그의 의견을 물어왔다. 司馬遷은 솔직하게 말했다. “5000의 군사로 8만의 흉노 騎兵(기병)을 당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무리입니다. 그가 항복한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그는 李陵의 친구였다. 하지만 객관적 상황을 고려하여 한 말이 武帝의 노여움을 건드렸음은 물론이다. 결국 그는 下獄(하옥)되어 腐刑(부형·宮刑이라고도 함. 남자의 성기를 자르는 형벌)을 받고 말았다. 司馬遷은 극도의 치욕을 느낀 나머지 자살을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 司馬談(사마담)의 유언이 귓전을 때렸다. 역대로 史官(사관)을 맡았던 家門의 명예를 위해 중국 최초로 通史(통사·모든 왕조의 역사를 담은 것)를 남기라는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유언을 이어야했다. 또 이렇게 죽는다면 개죽음일 뿐이다. 사람에게는 泰山(태산)같이 위엄을 갖춘 죽음이 있는가 하면, 새의 깃털보다도 가벼운 죽음이 있지 않은가. 그것은 죽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만약 자살로 끝맺는다면「가령 내가 법에 복종하여 죽임을 당할지라도 마치 아홉 마리의 소 중에 하나의 털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假令 僕伏法하여 受誅라도 若九牛亡一毛라.)동정은 커녕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을 것인 즉 그 명예는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라고 하였다. 그의 심정은 그가 친구 任少卿(임소경)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유명한 ‘報任少卿書’(보임소경서)다. 九牛一毛는 여기서 나온 말로 ‘매우 하찮은 것’을 뜻한다. 마침내 그는 자살을 단념하고 恥辱(치욕)을 감수한 채 通史의 저술에
매달렸다. 不朽(불후)의 명저 ‘史記’(사기)는 이렇게 하여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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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이지학
口耳之學
[아홉 구/귀 이/어조사 지/배울 학]
☞귀로 듣고 입으로 지껄이는 천박한 학문. 귀로 들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이야기하여 조금도 자기를 이롭게 하지 않고, 깊이가 없는 학문을
말함. ≒ 구이(口耳).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으면 그대로 마음에 삭이고, 신체에 정착하여 인격을 높이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사소한 말이나 동작도 많은 사람의 거울이 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면 곧바로 입으로 나온다. 즉, 들은 대로 즉시 타인에게 말하고, 조금도 자신을 수양하는 양식으로 두지 않는다. 귀와 입 사이는 겨우 네치 인데 그 사이동안만 신체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된다. 옛날 사람은 자신의 몸을 갈고 닦고 덕을 쌓기 위해 학문을 했으나 요즈음은 배운 것을 남에게 가르쳐서 생활의 수단으로 하기 위해 학문을 하고 있다. 군자의 학문은 자신의 학덕(學德)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 반해 소인의 학문은 생활의 도구로 하기 위한 것이다. 순자가 지적했듯이 곧잘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싶어하며, 모르는 바를 아는 체 하는 것을 맹자(孟子)는 "사람들의 병폐는 자기가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는 것을 좋아하는 데 있다"고 훈계하고 있다. 이 '구이지학'과 뜻이 비슷한 말로 《논어》〈양화(陽貨)〉편에,
"길에서 설들은 것을 길에서 되받아 옮기는 것은 덕을 버리는 것이다[孔子曰
道聽塗說 德之棄也(공자왈 도청도설 덕지기야)]." 앞 길에서 들은
좋은 말을 마음에 간직하여 자신의 수양의 양식으로 삼지 않고 다음
길에서 곧 남에게 말해 버린다. 결국 '구이지학'과 같은 짓을 하는 것으로,
이것은 스스로 덕을 버리는 것과 같은 짓이다. 좋은 말은 모름지기 마음에
간직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덕을 쌓아야 한다는 뜻이다.<네이버백과> |
■ 구절양장 九折羊腸 [아홉 구/꺽일 절/양 양/창자 장]
☞아홉 번 꺾인 양의 창자. 산길이 꼬불꼬불하고 험하다. 또는 세상이
복잡하여 살아가기 어렵다. |
■ 구화지문
口禍之門
[입 구/재앙 화/어조사 지/문 문]
☞입은 재앙의 문. 말을 삼가도록 경계.≒구시화문[口是禍門] [원문]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 |
■ 국사무쌍
國士無雙
[나라 국/선비 사/없을 무/짝수 쌍]
☞ 그 나라에서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선비. 매우
뛰어난 인재. |
■ 국치비가
國恥悲歌
[나라 국/부끄러울 치/슬플 비/노래 가]
☞나라를 잃은 수치 부끄러움을 탄식, 노래한 작품.
小海容顔苦 幾多耐嚴冬 故國孤臣在 未死但垂淚 풍설(風雪) 석거친 날에 뭇노라 북래사자(北來使者) 소해용안(小海容顔)이 언매나 치오신고, 고국(故國)의 못 죽는 고신(孤臣)이 눈물계워 하노라. *北來使者 : 북쪽 심양에서 온 심부름꾼(사자) *小海容顔 : 우리 나라 왕자의 모습 *언매나 치오신고 : 얼마나 추우신가 *故國의 : 고국의 다음에 생략된 말 : '국치(國恥)에도' *孤臣 : 필자 자신 |